Ⅰ. 서 론
2022 개정 교육과정(교육부 고시 제2022-33호)은 “디지털 기초소양”을 범교과 학습 주제로 신설하고, 정보 교과 시수를 초등학교 34시간, 중학교 68시간으로 각각 두 배 확대하였다. 이 변화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소양을 모든 학생에게 갖추도록 하겠다는 정책적 판단을 담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UNESCO(2024)는 학생용 AI 역량 프레임워크를 발표하였고, EU의 DigComp 2.2, 미국의 AI4K12 이니셔티브 등 주요국에서 AI 리터러시 교육과정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AI 리터러시가 단순한 기술적 역량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 소양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AI 리터러시 교육의 확대와 달리, 그 교육이 지향하는 “목적”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부족한 편이다. “AI 리터러시란 무엇인가”, “어떤 역량을 길러야 하는가”에 논의가 집중되어 있을 뿐, “왜 가르쳐야 하는가”, “어떤 인간을 기르고자 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은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철학적 성찰이 빠진 AI 리터러시 교육은 기술적 역량 훈련에 머물기 쉽고,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 없이 기술을 추종하는 교육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현행 AI 리터러시 교육과정은 대부분 “역량(competency)”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량기반 교육과정은 “학생이 무엇을 알고 있는가”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며, 명확하고 측정 가능한 학습 결과를 강조한다(소경희, 2007, pp. 5-8). 이 접근은 교육 목표를 구체화하고 평가를 용이하게 하지만, 측정 가능한 것만을 교육의 목표로 설정하게 되는 한계를 수반한다. Biesta(2010, p. 26)는 이를 “측정 문화(culture of measurement)”라 비판하며,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할 수 있는 것만을 가치 있게 여기게 된다”라고 지적하였다.
AI 리터러시 교육과정이 역량 중심으로 설계될 때 간과되기 쉬운 철학적 쟁점이 존재한다. AI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 의사결정, 관계 맺기를 변화시키는 기술이므로, “AI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넘어 “AI와 함께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라는 성찰적 질문이 필요하다. 또한 역량기반 접근에서 학생은 사회적으로 미리 정의된 역량을 “습득하는 존재”로 규정되기 때문에, AI 기술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관점과 입장을 형성하는 교육적 경험이 배제되기 쉽다. 교육에서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경험은 종종 계획되지 않은 순간에 일어나지만, 측정 가능한 학습 결과만을 성취기준으로 명시하는 교육과정은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경험을 포착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연구는 Gert Biesta의 “좋은 교육(good education)” 이론을 분석 틀로 삼아, 2022 개정 교육과정 정보교과의 AI 관련 성취기준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Biesta (2010, pp. 19-21)에 따르면, 좋은 교육은 자격화(Qualification), 사회화(Socialisation), 주체화(Subjectification)의 세 기능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자격화는 지식과 기술, 성향의 습득을, 사회화는 기존 사회·문화·정치 질서로의 편입을, 주체화는 기존 질서에 단순히 순응하지 않고 고유한 주체로서 세계에 “등장(coming into presence)”하는 것을 각각 뜻한다. 주체화는 측정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교육의 고유한 영역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역량기반 교육과정 분석에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물론 Biesta의 교육 목적론은 주체화 개념의 모호성(MacAllister, 2016), 세 기능 간 관계의 단순화(Papastephanou, 2015), 인간중심주의적 한계(Murris, 2014; Thompson, 2024) 등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본 연구는 이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Papastephanou(2015, p. 287)가 제안한 “입체시적 광학(stereoscopic optics)”의 방식으로 Biesta의 세 기능을 비판적 분석 도구로 활용한다.
AI 리터러시에 관한 기존 연구는 주로 개념과 구성요소를 규명하는 데 집중해 왔다(Long & Magerko, 2020; Ng et al., 2021; 이유미, 박윤수, 2021). Casal-Otero 외(2023)의 체계적 문헌 검토에서도 K-12 AI 리터러시 연구 대부분이 기술적 이해와 활용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이 확인된다. 한편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소경희(2007), Young(2008), Biesta(2010) 등에 의해 전개되었으나, 이러한 비판을 AI 리터러시 교육과정에 구체적으로 적용한 연구는 찾기 어렵다. 본 연구는 이 학술적 공백에 위치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2022 개정 교육과정 정보교과의 AI 관련 성취기준을 Biesta의 “좋은 교육” 이론으로 분석하여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철학적 한계를 고찰하고, “좋은 AI 리터러시 교육”을 위한 대안적 방향을 모색하는 데 있다. 분석 범위를 정보교과로 한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정보교과는 AI 관련 성취기준이 가장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Biesta의 분석 틀을 적용하기에 적합하며, 성취기준이 인지적 수행을 요구하는 동사(“이해한다”, “탐색한다”, “활용한다” 등)로 진술되어 있어 교육 목적의 기능별 분류가 용이하다. 다만 실과, 기술·가정 등 타 교과에도 AI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 둔다.
위와 같은 연구 목적에 따라 다음 세 가지 연구 문제를 설정한다. 첫째, 2022 개정 교육과정 정보교과의 AI 관련 성취기준은 Biesta의 세 기능 가운데 어느 기능에 편중되어 있는가? 둘째, AI 관련 성취기준에서 주체화 기능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셋째, 역량기반 AI 리터러시 성취기준의 자격화 편중은 어떤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향은 무엇인가?
Ⅱ. 이론적 배경
2장에서는 AI 리터러시의 개념과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특성을 검토한 후, Biesta의 교육 목적론을 고찰하여 분석 틀을 구축한다. 전자가 분석의 대상을 명확히 한다면, 후자는 분석의 관점을 제공한다.
본 연구에서 AI 리터러시는 Long & Magerko(2020, p. 2)의 정의를 채택하여, “개인이 AI 기술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AI와 효과적으로 소통하며, AI를 온라인, 가정, 직장에서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역량의 집합”으로 조작적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를 채택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우선 Long & Magerko(2020)의 정의는 AI 리터러시 연구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표준적 정의로서 학술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다. 다음으로 기술적 이해, 비판적 평가, 효과적 활용을 포괄하여 Biesta의 자격화 기능과 직접 연결된다. 끝으로 “비판적으로 평가”라는 요소는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가치 판단의 차원을 포함하여, 사회화 및 주체화 기능과의 연결 가능성을 내포한다.
Long & Magerko(2020)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관점에서 AI 인식, AI의 강점과 약점 이해, 인간과 AI의 차이 이해, 데이터 역할 이해, 알고리즘 편향성 인식, 윤리적 고려 등 17개 세부 역량을 제시하였다. 단순한 기술적 조작 능력을 넘어 AI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윤리적 판단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Ng 외(2021)는 교육과정 설계의 관점에서 AI 리터러시를 네 영역, 곧 AI 기본 개념 이해, AI 응용 능력, AI 설계·생성 능력, AI 윤리로 구조화하였다. 인지적 차원에서 실천적 차원, 윤리적 차원까지를 다층적으로 아우르는 틀이다.
두 연구의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AI 리터러시를 “측정 가능한 수행 역량의 집합”으로 개념화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Casal-Otero 외(2023)의 체계적 문헌 검토에 따르면, K-12 AI 리터러시 연구 대부분이 AI의 기술적 이해와 활용 능력에 집중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정체성이나 실존적 성찰에 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국내에서도 이유미와 박윤수(2021, p. 454)가 AI 리터러시를 “AI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AI를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며, AI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였고, 박윤수와 이유미(2021, p. 425)는 인지적, 기능적, 윤리적 차원의 역량 모델을 제안하였다. AI 리터러시가 측정 가능한 역량으로 개념화되는 경향은 역량기반 접근의 구조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AI 리터러시의 역량 중심적 개념화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되어 있다. 교육부 고시 제2022-33호 [별책 10]에 제시된 AI 관련 성취기준은 “이해한다”, “활용한다”, “설명한다”, “탐색한다” 등 측정 가능한 수행 동사를 일관되게 사용하며,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둔 결과 중심 설계 방식을 따른다. 이러한 설계 방식은 Young (2008, p. 14)이 지적한 “지식의 도구화” 경향과 맥을 같이 한다.
역량기반 접근은 교육과정 설계의 명확성과 평가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교육 목적의 특정 차원을 부각하고 다른 차원을 주변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소경희, 2007, pp. 12-15). 어떤 교육적 기능이 강조되고 어떤 기능이 배제되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목적을 다차원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 요구된다.
Biesta(2010, pp. 19-21)는 교육이 수행하는 기능을 자격화(Qualification), 사회화(Socia- lisation), 주체화(Subjectification)의 세 차원으로 구분한다. 이 구분은 교육의 목적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구체화하고, 특정 교육 실천이나 정책이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지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자격화는 “특정한 무언가를 하도록 자격을 부여하는 것(qualifying someone for something)”으로, 지식, 기술, 성향 등을 습득하게 하는 교육의 가장 가시적인 기능이다(p. 19). 노동 시장 진입을 위한 직업적 기술부터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데 필요한 지식까지를 포괄하며, 학생이 사회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한다. 자격화 기능은 교육의 도구적 가치와 관련되며, 학생에게 특정 역할이나 직무를 수행할 자격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사회화는 “개인이 특정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질서에 편입되는 것(becoming part of specific social, cultural, and political orders)”을 뜻한다(p. 20). 학생은 사회화를 통해 기존 사회의 전통, 규범, 가치를 내면화하여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의도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비의도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교육의 “보수적 기능”과 관련된다. 문화적 전통이 세대 간 전승되고, 사회적 규범이 재생산되며, 공동체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이 사회화의 핵심이다.
주체화는 자격화나 사회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기능이다. Biesta(2010, p. 21)는 이를 “개인이 고유한 주체로서 세계에 ‘등장(coming into presence)’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기존 질서에 “편입”되는 사회화와 달리, 주체화는 오히려 그 질서를 “중단(interruption)”하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다. Biesta(2020b, p. 94)는 이를 한층 정교화하여, “우리 자기 욕망의 주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에 응답하는 주체로 존재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예측 불가능성과 측정 불가능성이 주체화의 핵심이며, Biesta(2013, p. 1)는 이를 “교육의 아름다운 위험(the beautiful risk of education)”이라 표현한다. 교육이 진정으로 학생의 주체성을 지향한다면, 그 결과를 미리 규정하거나 측정하려는 시도는 주체화의 본질과 충돌하게 된다.
이 세 기능은 “구별될 수 있으나 분리될 수 없다(can be distinguished but cannot be separated)”(Biesta, 2010, p. 21). 실제 교육 실천에서 하나의 활동이 동시에 여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AI 윤리를 가르치는 수업을 예로 들면, 학생들은 윤리적 원칙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자격화), 사회적으로 합의된 윤리 규범을 내면화하며(사회화), 동시에 자신만의 윤리적 입장을 형성할 수 있다(주체화). 이 세 과정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으며, 분석적으로만 구분이 가능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성취기준을 세 기능으로 분류하는 것은 완전한 범주화가 아니라, 해당 성취기준이 “주로” 지향하는 기능을 파악하기 위한 휴리스틱(heuristic) 도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세 기능 간에는 “긴장(tension)”이 존재한다(Biesta, 2010, p. 22). 사회화는 학생을 기존 질서에 편입시키는 반면, 주체화는 그 질서를 중단하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한다. 상반된 방향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Biesta는 둘 다 교육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사회화 없이는 학생이 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하기 어렵고, 주체화 없이는 학생이 사회적 재생산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격화와 주체화 사이의 긴장도 간과할 수 없다. 자격화는 학생의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하지만, Biesta(2013, p. 8)에 따르면 주체화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존재가 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자격화에 치중하는 교육은 학생을 “역량의 집합체”로 환원할 위험이 있으며, 고유한 주체성 형성을 방해할 수 있다.
“좋은 교육”은 이 세 기능 중 어느 하나에 편중되지 않고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Biesta, 2010, p. 26). 그런데 현대 교육은 “측정 문화(culture of measurement)”에 지배되어 있어, “측정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측정할 수 있는 것만을 가치 있게 여기게 된다”라는 전도 현상이 발생한다. 이 측정 중심성은 교육 목표 설정에서 교육과정 설계, 평가에 이르기까지 교육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측정하기 쉬운 자격화 기능은 비대해지고 측정이 어려운 주체화 기능은 주변화된다.
Biesta의 교육 목적론을 비판적 검토 없이 수용할 수는 없다. Papastephanou(2015, p. 285)는 세 기능 구분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으며, 해방(emancipation)이 오직 주체화에만 연결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지식과 기술의 습득(자격화)이 비판적 사고의 토대가 될 수 있고, 민주적 전통에의 편입(사회화)이 사회 변혁의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MacAllister(2016)는 주체화 개념 자체의 모호성을 문제삼으며, Biesta가 주체화를 “일어날 수 있지만 만들어낼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교육적 개입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비판한다. 이 비판에 따르면, 주체화 개념은 교육 실천에 구체적 지침을 제공하지 못하는 추상적 이념에 머물 위험이 있다.
Murris(2014, p. 148)는 Biesta의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며, 주체화 개념이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비인간 관계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AI 기술이 인간의 인지, 정서, 관계 맺기 방식에 깊이 개입하는 시대에, 인간 주체성을 AI와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Thompson(2024)은 Biesta의 주체화 개념이 개인주의적 자아 개념에 의존한다고 비판하였으며, Rømer(2021)는 정치적 차원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Guillemin(2025)은 Biesta의 최근 저작 “세계중심 교육(world-centred education)”에서 주체화 개념이 어떻게 재정립되는지를 분석하며, 주체화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서 “세계 속에서 성숙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내에서도 Biesta 이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져 왔다. 우정길(2014)은 Biesta가 Arendt의 “탄생성(natality)” 개념을 수용하여 주체화를 설명하는 방식을 분석하였고, 김한길과 김천기(2018)는 상호주관성 논의를 통해 “학습자 중심” 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였으며, 박은주(2023)는 “학습화(learnification)” 개념을 중심으로 현대 교육에서 “교육적 학습”의 조건을 탐색하였다.
이상의 비판에도 Biesta의 세 기능 구분은 교육의 다차원적 목적을 가시화하고 특정 기능의 편중을 드러내는 데 유용한 분석 틀을 제공한다. 본 연구는 이 이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AI 리터러시 성취기준의 “측정 가능한 역량” 편중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적합한 렌즈라고 판단한다. Papastephanou(2015, p. 287)의 제안에 따라 Biesta의 세 기능을 “입체시적 광학(stereoscopic optics)”으로 활용하되, 자격화와 사회화의 변혁적 가능성도 함께 고려한다.
Biesta의 교육 목적론이 AI/디지털 교육 맥락에 적용될 수 있는 근거는 최근 연구에서 확인된다. Loftus & Madden(2020)은 “데이터와 AI를 위한 페다고지”를 논의하며 주체화 개념을 고등교육의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에 적용하였다. 이들은 학생들이 데이터 분석 기술을 습득하는 것(자격화)을 넘어, 데이터가 구성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고 데이터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주체로서 자신을 정립하는 것(주체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Knox, Williamson & Bayne(2019)은 “기계 행동주의(machine behaviourism)”와 “데이터화(datafication)”가 Biesta가 비판한 “학습화(learnification)”를 심화시킨다고 분석하였다. 학습 분석(learning analytics)과 적응형 학습 시스템이 학습을 측정 가능한 행동의 변화로 환원함으로써, 교육의 주체화 기능이 한층 주변화된다는 것이다.
Biesta(2020a) 자신도 “Digital first or education first?”라는 글에서 “디지털 교육에는 디지털적인 것이 없다(there is nothing digital about digital education)”라고 주장하며, 교육의 목적(purposes)에 관한 질문이 도구(means)에 관한 질문보다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AI 리터러시 교육에서도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앞서 “AI 시대에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인가”라는 질문이 놓여야 함을 뜻한다. Biesta의 이 문제 제기는 AI 리터러시 성취기준이 기술적 역량의 습득에 편중되어 있는지, 아니면 AI 시대의 인간 존재 방식에 대한 성찰을 포함하는지를 검토하는 본 연구의 문제의식과 직접 맞닿아 있다.
Biesta의 세 기능이 AI 리터러시 교육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격화는 AI 개념 이해, 도구 활용, 알고리즘 구현 등 기술적 역량 습득에 해당하며, 측정 가능성이 높다. 사회화는 AI 윤리 규범의 내면화, 디지털 시민성 함양에 해당하며, 측정 가능성이 중간 수준이다. 주체화는 AI와의 관계에서 인간 주체성을 성찰하고 자신의 고유한 입장을 형성하는 것에 해당하며, 측정 가능성이 낮다. 이 측정 가능성의 차이가 역량기반 교육과정에서 각 기능이 성취기준으로 채택될 가능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를 Ⅲ장의 분석 기준으로 구체화한다.
Ⅲ. 연구 방법
분석 대상은 2022 개정 교육과정(교육부 고시 제2022-33호 [별책 10]) 정보교과의 AI 관련 성취기준 총 21개이다. 중학교(1-3학년) 정보 교과 5개, 고등학교 정보 교과 5개, 고등학교 인공지능 기초 교과 11개가 포함된다. 분석 범위를 정보교과로 한정한 근거는 서론에서 상술한 바와 같다. 분석 대상 성취기준의 학교급별 분포는 <표 1>과 같다.
| 학교급 | 과목 | 핵심 내용 요소 | 성취기준 수 |
|---|---|---|---|
| 중학교(1-3학년) | 정보 | 인공지능의 개념과 특성, 기계학습의 원리 | 5개 |
| 고등학교 | 정보 | 인공지능과 사회, 기계학습과 문제 해결 | 5개 |
| 고등학교 | 인공지능 기초 | 인공지능의 원리와 활용, 데이터와 기계학습, AI와 사회 | 11개 |
| 합계 | 21개 |
고등학교 인공지능 기초 교과의 성취기준이 11개(52.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이는 AI 관련 교육 내용이 고등학교 수준에서 집중적으로 편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정보 교과는 각 5개(23.8%)로 동일하다.
Biesta는 세 기능의 조작적 분류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세 기능이 “구별되지만 분리될 수 없다”는 그의 입장과 일관된 태도이다(Biesta, 2010, p. 21). 따라서 여기서 제시하는 분류 기준은 Biesta의 개념 정의를 바탕으로 연구자가 구성한 해석적 틀이다. Ⅱ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본 분류는 완전한 범주화가 아니라 해당 성취기준이 “주로” 지향하는 기능을 파악하기 위한 휴리스틱(heuristic) 도구이다.
자격화의 핵심은 “~을 할 수 있는 능력”, 곧 “can do” 형식의 수행 가능성이다(Biesta, 2010, p. 19). “이해한다”, “활용한다”, “설명한다”, “탐색한다”, “개발한다”와 같은 동사는 학생이 특정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여 할 수 있게 되었음을 표현하므로, 자격화 기능의 언어적 지표로 삼았다. 사회화의 핵심은 “기존 질서의 수용”과 “내면화”이다(Biesta, 2010, p. 20). “인식한다”, “준수한다”, “실천한다”, “참여한다”와 같은 동사는 학생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이나 가치를 받아들이고 따르게 되었음을 나타내므로, 사회화 기능의 언어적 지표에 해당한다. 주체화의 핵심은 기존 질서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중단(interruption)”하고 자신의 고유한 입장을 형성하는 데 있다(Biesta, 2010, p. 21). “성찰한다”, “탐구한다”(의미 차원), “형성한다”(관점 차원)와 같은 동사가 이에 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분류 기준을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실제 성취기준 진술에서는 하나의 성취기준이 복수의 동사를 포함하거나, 동일 동사가 맥락에 따라 다른 기능을 지향할 수 있다. 예컨대 “AI 윤리를 이해한다”는 “이해한다”라는 동사가 자격화를 시사하지만, 내용이 윤리 규범에 관한 것이므로 사회화로 분류될 수 있다. 이처럼 동사와 내용이 상이한 기능을 시사하는 경우에는 두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되, 판단 근거를 분석 결과에서 투명하게 제시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분석은 네 단계를 거쳐 진행하였다.
1단계에서는 성취기준을 추출·정리하였다. 교육부 고시 제2022-33호 [별책 10]에서 정보교과 “인공지능과 융합” 영역의 성취기준 전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고, 각 성취기준의 코드, 진술 전문, 학교급, 과목을 정리하여 분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다.
2단계에서는 위 <표 2>의 분류 기준을 조작적으로 확정하였다. Biesta(2010, pp. 19-21; 2013, p. 1; 2020, p. 94)의 원전을 반복 참조하여 각 기능의 핵심 특성을 추출하고, 이를 성취기준 진술의 동사 및 내용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기준을 구성하였다.
3단계에서 21개 성취기준 각각을 분류하였다. 먼저 핵심 동사를 추출하여 해당 동사가 지시하는 기능을 1차 판단한 뒤, 성취기준의 내용을 검토하여 1차 판단을 검증하였다. 동사와 내용이 상이한 기능을 시사하는 경우에는 판단 근거를 기록하고 최종 분류를 결정하였다.
4단계에서는 분류 결과를 학교급별·기능별로 정리하여 빈도와 비율을 산출하였다. 아울러 성취기준 진술에 사용된 동사의 빈도를 분석하여 언어적 차원의 편중 패턴을 확인하고, 내용체계표의 “가치·태도” 범주를 검토하여 성취기준 외적 요소에서 주체화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본 연구는 1인 연구자에 의한 분석으로 수행되었으므로, 분류의 주관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다음 절차를 거쳤다. 우선 <표 2>와 같이 분류 기준을 조작적으로 정의하여 각 기능별 원전 정의, 분류 기준 도출 논리, 대표 동사를 명시하였다. 다음으로 21개 성취기준 각각에 대해 핵심 동사, 내용 영역, 해당 기능을 연결하는 분석 메모를 작성하여 분류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였다. 분류 모호성이 있었던 사례에 대해서는 결정 근거를 분석 결과에서 구체적으로 밝혔다.
다만 방법론상 다음과 같은 한계가 있다. 복수 연구자에 의한 평가자 간 신뢰도(inter-coder reliability) 검증이 수행되지 않아 분류의 객관성에 제한이 남는다. 또한 세 기능이 “구별되지만 분리될 수 없다”는 Biesta의 전제에 따르면, 하나의 성취기준을 단일 기능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이론적 긴장을 내포한다. 이러한 한계는 결론에서 재논의하며, 후속 연구에서 수업 관찰이나 교사 면담 등을 통해 보완될 필요가 있다.
Ⅳ. 분석 결과
21개 성취기준을 Biesta의 세 가지 기능으로 분류한 결과, 자격화 17개(81.0%), 사회화 4개(19.0%), 주체화 0개(0.0%)로 나타났다. 학교급별 분류 결과는 <표 3>과 같다.
| 학교급 | 자격화 | 사회화 | 주체화 | 합계 |
|---|---|---|---|---|
| 중학교 | 4(80.0%) | 1(20.0%) | 0(0.0%) | 5 |
| 고등학교(정보) | 4(80.0%) | 1(20.0%) | 0(0.0%) | 5 |
| 고등학교(AI 기초) | 9(81.8%) | 2(18.2%) | 0(0.0%) | 11 |
| 합계 | 17(81.0%) | 4(19.0%) | 0(0.0%) | 21 |
모든 학교급에서 자격화가 80% 이상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주체화는 어느 학교급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자격화 편중과 주체화 부재가 특정 학교급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AI 관련 성취기준 전반의 구조적 특성임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고등학교 인공지능 기초 교과의 자격화 비율이 81.8%로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교과의 전문성이 높아질수록 기술적 역량 심화에 집중하는 경향을 반영한다.
자격화 편중 현상을 언어적 차원에서 확인하기 위해, 21개 성취기준의 핵심 동사를 추출하여 빈도를 분석하였다. 결과는 <표 4>와 같다.
| 동사 유형 | 빈도 | 비율(%) | Biesta 기능 |
|---|---|---|---|
| 이해한다 | 7 | 33.3 | 자격화 |
| 탐색한다 | 5 | 23.8 | 자격화 |
| 활용한다/해결한다 | 3 | 14.3 | 자격화 |
| 분석한다/분류한다 | 2 | 9.5 | 자격화 |
| 평가한다 | 1 | 4.8 | 사회화 |
| 토론한다 | 1 | 4.8 | 사회화 |
| 제시한다/제안한다 | 2 | 9.5 | 사회화 |
| 성찰한다/탐구한다(의미 차원) | 0 | 0.0 | 주체화 |
| 합계 | 21 | 100.0 | — |
“이해한다”가 7회(33.3%)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이며, “탐색한다” 5회(23.8%), “활용한다/해결한다” 3회(14.3%)가 뒤를 잇는다. 자격화 관련 동사가 전체의 81.0%를 차지하는 반면, 사회화 동사는 19.0%에 그치고, 주체화 관련 동사는 단 한 건도 사용되지 않았다. “제시한다”와 “제안한다”는 동사 자체로는 자격화에 가까우나, 해당 성취기준의 내용이 윤리적 판단이나 사회적 역할 규정을 포함하고 있어 사회화로 최종 분류하였다(판단 근거는 2.나에서 상술한다).
17개 자격화 성취기준은 핵심 동사에 따라 세 유형으로 구분된다.
이해·탐색형(12개)은 AI 개념, 원리, 사례에 대한 인지적 학습을 요구한다. [9정04-01] “인공지능의 개념과 특성을 이해하고,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는 인공지능 사례를 탐색한다”, [9정04-02] “인공지능 시스템을 체험하고 그 과정에서 핵심 요소를 탐색한다”, [12정보04-01] “인공지능 사례를 분석하여 원리와 사회적 영향력을 이해한다”, [12정보04-02] “인공지능에서 활용되는 핵심 알고리즘 원리를 이해한다”가 대표적이다. “이해한다”와 “탐색한다”라는 동사는 학생이 AI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여 “알 수 있게 되는” 상태를 지향하며, Biesta의 자격화 정의에 직접 부합한다. 고등학교 인공지능 기초 교과에서도 [12인기01-01]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적용 사례를 탐색하고 원리를 이해한다”, [12인기01-02]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될 미래 사회를 예측하고 진로를 탐색한다”, [12인기02-01] “데이터를 수집 방법에 따라 분류하고, 실생활과 학문 분야에서 데이터의 활용 방법을 탐색한다” 등이 동일한 유형에 속한다.
활용·해결형(3개)은 AI 도구나 기법을 직접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수행을 요구한다. [12정보04-03] “데이터의 특성에 따라 학습 모델을 선택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2인기02-04] “분류 및 회귀 문제를 해결하는 기계학습 기법을 비교·분석하여 주어진 문제에 적합한 기법을 선정할 수 있다”, [12인기02-05] “기계학습 기법을 활용하여 분류 및 회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가 해당한다. “~할 수 있다”라는 진술 방식이 전형적인 ‘can do’ 형식으로, 자격화의 핵심적 언어 지표이다.
기능·절차형(2개)은 데이터 처리나 모델 평가 등 기술적 절차의 수행을 요구한다. [9정04-03] “학습용 데이터를 분류하여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시킬 수 있다”, [9정04-04] “데이터를 변형하여 인공지능 학습 결과의 변화를 탐색한다”가 해당한다. 데이터 조작을 통한 결과 변화의 탐색은 기술적 이해를 심화하는 활동이며, 자격화에 해당한다.
이 유형 분석에서 확인되는 것은, 자격화 성취기준 내부에서도 인지적 차원(이해·탐색)에서 기능적 차원(활용·해결)으로, 다시 절차적 차원(기능·절차)으로의 위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위계가 학교급 간에 체계적으로 배열되어 있지는 않으며, 이는 자격화 내부의 위계화 문제로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4개 사회화 성취기준은 모두 AI의 사회적 영향이나 윤리를 내용으로 다루며, 동사와 내용 사이의 긴장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어 판단 근거를 투명하게 밝힌다.
[9정04-05] “인공지능의 영향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인공지능 시대의 디지털 시민의 바람직한 자세를 토론한다”에서 “분석한다”는 자격화 동사이나, “바람직한 자세를 토론한다”는 규범적 내용을 포함한다. “바람직한 자세”라는 표현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을 전제하며, “토론”이라는 형식이 다양한 관점의 교류를 허용하지만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수렴하는 방향성을 내포하므로, 사회화로 분류하였다.
[12정보04-05] “인공지능 프로젝트에서 산출물의 사회적, 윤리적 영향력을 평가한다”는 윤리적 판단을 포함하는 성취기준이다. “평가한다”는 동사가 외부 기준의 적용을 암시하며, 학생 자신의 윤리적 입장 형성을 명시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사회화로 분류하였다.
[12인기03-02] “인공지능 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을 분석하고, 인공지능 기술의 올바른 활용 방안을 제안한다”에서 “올바른 활용 방안을 제안한다”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에 따른 규범적 판단을 포함한다. [12인기03-03]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바탕으로 인간과 공존해야 하는 존재로서 인공지능의 역할을 제시한다”는 “비판적 자세”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으나, “공존해야 하는”이라는 당위적 표현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을 전제하므로 사회화로 분류하였다.
이 4개 성취기준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AI의 윤리적·사회적 차원을 다루면서도 그것이 “기존 질서의 수용”(사회화)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올바른”, “윤리적인”, “공존해야 하는”이라는 표현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의 존재를 전제하며, 학생 자신이 그 규범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거나 독자적인 입장을 형성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21개 성취기준 중 주체화 기능을 명시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부재”는 동사 차원, 내용 차원, 교과 차원에서 일관되게 확인된다.
동사 차원에서, <표 4>에 나타난 바와 같이 주체화 관련 동사(“성찰한다”, “탐구한다” 등)는 21개 성취기준 어디에서도 사용되지 않았다(0.0%). 성취기준의 언어적 진술 방식 자체가 주체화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 차원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AI 윤리를 다루는 성취기준에서조차 주체화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AI 윤리는 학생이 AI 기술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고유한 입장을 형성할 수 있는 잠재적 영역이다. 그러나 [12정보04-05]는 윤리를 “평가”의 대상으로 설정할 뿐 학생이 자신의 고유한 윤리적 입장을 형성하도록 요구하지 않으며, [12인기03-04] “인공지능으로 인한 딜레마 상황에서 윤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한다”도 “윤리적인 판단”이라는 표현이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의 적용을 전제한다. “AI 시대에 나는 어떤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은가?”, “AI가 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실존적 질문은 성취기준의 범위 밖에 놓여 있다.
교과 차원에서도 이 결과는 일관된다. 인공지능 기초 교과는 AI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선택 교과로서 심화된 성찰이 기대되지만, 11개 성취기준 중 주체화에 해당하는 것은 없었다. [12인기01-02]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될 미래 사회를 예측하고 진로를 탐색한다”는 “탐색한다”라는 동사가 사용되어 자격화에 해당하며, AI 시대에 어떤 인간으로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주체적 성찰을 요구하지 않는다. 주체화 부재는 중학교, 고등학교 정보, 고등학교 인공지능 기초를 관통하는 구조적 특성이다.
다만, 2절에서 분석한 사회화 성취기준 일부에는 주체화의 잠재적 공간이 존재한다. [9정04-05]의 “토론한다”는 형식 자체가 학생 간 다양한 관점의 교류를 허용하며, [12인기03-04]의 “딜레마 상황”은 정답 없는 상황에서의 판단을 암시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교육 실천에서 주체화로 발현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성취기준 진술 수준에서는 사회화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 이 잠재적 공간의 의미는 Ⅴ장에서 논의한다.
성취기준 외에 정보교과 내용체계표의 “가치·태도” 범주에서 주체화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내용체계표는 “지식·이해”, “과정·기능”, “가치·태도”의 세 범주로 구성되며, 각 범주의 핵심 내용 요소와 Biesta 기능과의 연결은 <표 5>와 같다.
| 범주 | 정보교과 핵심 내용 요소 | Biesta 기능 연결 |
|---|---|---|
| 지식·이해 | 인공지능의 개념, 기계학습 원리, 데이터 유형 | 자격화 |
| 과정·기능 | 데이터 수집·분류, AI 시스템 구성, 프로그램 개발 | 자격화 |
| 가치·태도 | 디지털 문화 소양, AI 윤리 의식, 협력적 태도, 비판적 자세 | 사회화 + 잠재적 주체화 공간 |
“지식·이해” 범주와 “과정·기능” 범주는 자격화에 직접 연결된다. “가치·태도” 범주에는 “디지털 문화 소양”, “AI 윤리 의식”, “협력적 태도”, “비판적 자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요소들은 성취기준에서 직접 진술되지 않더라도, 교수학습 과정에서 주체화가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공간을 제공한다. “비판적 자세”는 기존 질서를 “중단”하고 자신의 “입장을 형성”하는 주체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태도가 성취기준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채 내용체계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구조 안에서 주체화가 어떤 위상을 갖는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성취기준으로 진술되지 않은 교육 목표는 교육과정 실행과 평가에서 주변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Ⅴ장에서 심층적으로 논의한다.
Ⅴ. 논의
Ⅳ장의 분석 결과, 21개 성취기준 가운데 주체화 기능을 명시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격화 81.0%, 사회화 19.0%, 주체화 0.0%라는 분포가 나타났으며, 동사 빈도 분석에서도 “성찰한다”, “탐구한다” 등 주체화 관련 동사는 사용되지 않았다(<표 3>, <표 4> 참조). 이 “부재”는 두 가지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으며, 어느 한쪽으로 단정짓기보다 양면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해석은 구조적 한계에 주목하는 관점이다. 성취기준 진술 방식 자체가 측정 가능한 행동 동사를 요구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주체화를 담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표 4>에 나타난 동사들(“이해한다” 33.3%, “탐색한다” 23.8%, “활용한다” 14.3%)은 인지적·기능적 수행을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Biesta(2010, p. 26)가 비판한 “측정 문화(culture of measurement)”가 교육과정 문서의 진술 방식 수준에까지 침투해 있는 셈이다. 한국 교육 맥락에서 성취기준은 교과서 개발, 수업 설계, 평가 문항 출제의 직접적 근거가 되므로, 성취기준에 명시되지 않은 교육적 경험은 실행 단계에서 주변화되기 쉽다.
다른 한 가지 해석은 본질적 긴장에 주목한다. 주체화는 성취기준으로 “명시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명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일 수 있다. Biesta(2013)에 따르면 주체화는 “일어날 수 있지만, 반드시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만들어낼 수 없다(can happen but not necessarily happens, and cannot be produced)”. 성취기준은 “달성해야 할 목표”를 규정하는데, 주체화는 목표로 규정될 수 없는 성격을 지닌다. Biesta(2013, p. 1)가 교육을 “아름다운 위험(the beautiful risk)”이라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이 진정으로 학생의 주체성을 지향한다면, 그 결과를 미리 규정하거나 측정하려는 시도는 주체화의 본질과 충돌한다.
이 두 해석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앞서 검토한 MacAllister(2016)의 비판이 시사하듯, 두 번째 해석은 주체화를 교육과정 문서에 명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성취기준 기반 교육과정의 개선 방향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실천적 한계에 직면한다. 동시에 Papastephanou(2015, p. 285)가 자격화와 사회화에도 변혁적 가능성이 내재한다고 지적한 것은, 첫 번째 해석이 성취기준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표 5>에서 확인한 내용 체계표의 “가치·태도” 범주에 포함된 “비판적 자세”는, 성취기준 진술에는 없으나 교수학습 실천에서 주체화로 발현될 수 있는 잠재적 공간이다. [9정04-05]의 “토론한다”나 [12인기03-04]의 “딜레마 상황”도 마찬가지로, 성취기준 진술 수준에서는 사회화의 틀 안에 있으나 교육 실천에서는 주체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본 연구가 문제삼는 것은 “주체화의 부재” 자체가 아니다. 성취기준 진술 체계 전체가 측정 가능한 자격화에 편중됨으로써, 주체화가 발생할 수 있는 교육적 공간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성취기준이 자격화에 집중될수록, 교사와 학생은 “AI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몰두하게 되고, “AI 시대에 어떤 인간으로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교육 현장에서 후퇴하게 된다. 이 문제는 분석 도구인 Biesta 이론 자체의 한계와도 관련된다. Murris(2014, p. 148)는 Biesta의 주체화 개념이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비인간 관계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는데, AI 기술이 인간의 인지와 의사결정에 깊이 개입하는 시대에 “인간 주체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Guillemin(2025)이 분석한 바와 같이, Biesta의 최근 저작에서 주체화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서 “세계 속에서 성숙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은, AI 리터러시 교육에서 주체화를 재개념화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앞서 확인한 자격화 편중과 주체화 부재는,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전제하는 철학적 가정, 즉 모든 교육 목표는 측정 가능한 학습 결과로 환원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표 4>의 동사 분포가 인지적·기능적 수행 동사로 구성된 것은 이 전제의 직접적 표현이다. 그러한 동사는 학생의 수행을 관찰하고 평가하기에 용이하나, “AI 시대에 어떤 인간으로 존재할 것인가”와 같은 실존적 질문에 대한 성찰까지 담아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역량기반 접근의 교육적 가치를 균형 있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교육 목표의 명확성 측면에서,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역량기반 성취기준은 교사에게 수업 설계의 방향을, 학생에게 학습 목표의 명료한 인식을 제공한다. [9정04-03] “학습용 데이터를 분류하여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시킬 수 있다”와 같은 성취기준은 교수학습의 초점을 분명히 한다. AI 기술 이해·활용 능력의 실제 필요성도 간과하기 어렵다. Long과 Magerko(2020, p. 3)가 AI 리터러시의 핵심 요소로 제시한 “AI 기술의 비판적 평가”는, AI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와 데이터 구조에 대한 기술적 이해를 전제한다. 자격화가 전체의 81.0%를 차지하는 것은 이러한 기술적 역량의 중요성을 반영한 결과로도 읽힌다.
본 연구의 비판 지점은 역량기반 접근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독점”이다. 자격화 편중(81.0%)과 주체화 부재(0.0%)는 역량기반 접근의 교육적 가치가 과도하게 강조된 나머지, 측정 가능한 것만을 교육 목표로 설정하는 경향에 빠졌음을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좋은 AI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현행 성취기준은 AI 리터러시를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만 접근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인공지능 기술의 원리를 이해한다”와 같은 성취기준은 AI를 도구로, 인간을 그 도구의 사용자로 위치시킨다. AI 기술은 단순한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사고 방식, 의사결정 과정, 관계 맺기 방식을 변화시키는 기술이다. 학생들이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넘어 “AI와 함께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면, AI 리터러시 교육은 기술적 역량 훈련에 머물게 된다. Biesta(2020a)가 “Digital first or education first?”에서 “디지털 교육에는 디지털적인 것이 없다(there is nothing digital about digital education)”라고 주장한 것은, 교육의 목적(purposes)에 관한 질문이 도구(means)에 관한 질문보다 선행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앞서 확인한 한국 AI 관련 성취기준의 기능별 분포가 갖는 의미를 맥락화하기 위해, UNESCO(2024) AI 역량 프레임워크 및 주요국의 AI 리터러시 교육과정과 비교하였다. 비교 결과는 <표 6>과 같다.
| 비교 차원 | UNESCO (2024) | 한국 2022 | 호주 DT | 핀란드 | 캐나다 BC |
|---|---|---|---|---|---|
| 역량 구조 | 4차원 | 3범주 | 3가닥 | 횡단적 | 핵심역량 |
| Human agency 명시 | 명시적 | 암묵적 | 부분적 | 명시적 | 암묵적 |
| 학생 정체성 규정 | 공동창조자 | AI 활용자 | 문제해결자 | 시민 | 학습자 |
| 윤리의 위상 | 독립 배치 | 일부 포함 | 통합 | 독립 | 통합 |
| 성찰 관련 동사 | reflect, assert | 이해한다 | consider | reflect | understand |
UNESCO(2024)는 학생용 AI 역량 프레임워크를 네 차원, 곧 인간 중심 마인드셋(Human-centred mindset), AI 윤리(AI Ethics), AI 기술과 응용(AI Technology and Applications), AI 시스템 설계(AI System Design)로 구성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점은 “human agency”를 명시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이다. 프레임워크는 학생을 “공동 창조자(co-creator)”이자 “책임 있는 시민(responsible citizen)”으로 규정하며, 윤리를 4개 차원 중 하나로 독립 배치하고, “자신의 역할 성찰(reflect on one’s role)”과 같은 성찰 동사를 사용한다.
이와 대비하여 한국 교육과정은 “human agency”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 부재하며, 학생 정체성을 암묵적으로 “AI 활용자”로 규정한다. 윤리는 성취기준 일부에 포함되어 있으나 독립적 차원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며, <표 4>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성찰 관련 동사는 사용되지 않는다. 핀란드 역시 “reflect”를 사용하며 학생을 “시민”으로 규정하는 반면, 캐나다 BC는 한국과 유사하게 “understand” 동사에 의존하고 있어, 각국의 AI 리터러시 교육이 상이한 철학적 지향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비교에서 도출되는 시사점은, 한국 교육과정의 자격화 편중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 특정한 철학적 전제에 기반한 설계 결과라는 점이다. UNESCO 프레임워크가 “인간 주체성의 향상”을 AI 역량의 전제 조건으로 설정한 것은, 자격화와 주체화가 반드시 배타적일 필요가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앞서 논의한 주체화의 회복을 교육과정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성취기준, 교수학습, 평가 및 시스템의 세 수준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성취기준 수준에서는 성찰적 진술의 보완이 검토될 수 있다. <표 6>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UNESCO와 핀란드 교육과정은 “reflect”와 같은 성찰 동사를 사용한다. 한국 교육과정에서도 “AI 시대에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성찰한다”, “AI 기술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입장을 탐구한다”와 같은 성찰적 성취기준의 추가가 검토될 수 있다. 다만 이 제안에는 난점이 있다. Biesta의 관점에서 주체화는 “성취”될 수 없으며 “측정”될 수 없다. 성찰적 성취기준을 명시하는 순간, 그것이 또 다른 측정 대상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딜레마를 고려하면, 성취기준 외적 요소에서 주체화의 공간을 확보하는 접근이 오히려 중요할 수 있다.
교수학습 수준에서의 변화가 이 지점에서 핵심적이다. 교사는 성취기준이 요구하는 자격화 기능을 가르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성찰적 경험을 학생에게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9정04-01]의 “인공지능 사례를 탐색한다”를 가르치면서, “이 AI 기술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는 이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가?”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표 5>에서 확인한 내용체계표의 “가치·태도” 범주에 포함된 “비판적 자세”는 이러한 교수학습 활동의 근거가 된다. 교사가 “비판적 자세”를 AI 기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고유한 입장을 형성하는 것으로 해석할 때, 자격화 중심의 성취기준에서도 주체화의 공간이 열릴 수 있다.
평가 및 시스템 수준에서는 한국 교육 맥락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교육과정 실행에 강력한 역진 효과(washback effect)를 미친다. 측정 가능한 성취기준은 평가 문항으로 출제되기 쉽고, 그렇지 않은 성취기준은 주변화된다. 주체화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취기준 수준의 개선만으로는 불충분하며, 평가 체제의 유연화, 과정 중심 평가의 확대,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 자율성 보장 등 시스템 차원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AI 리터러시 교육에서 학생이 AI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입장을 형성하는 과정은 표준화된 평가로 포착하기 어려우므로, 포트폴리오 평가, 성찰 저널, 토론 참여 등 대안적 평가 방식의 활용이 요구된다.
”좋은 AI 리터러시 교육”은 성취기준 문서의 개정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평가 방식, 교사 자율성, 사회적 인식이 함께 변화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Biesta(2010, p. 21)가 강조하였듯이, 좋은 교육은 자격화, 사회화, 주체화의 세 기능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현행 AI 관련 성취기준의 분포는 이 균형이 상당히 기울어져 있음을 보여주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취기준, 교수학습, 평가, 시스템의 모든 수준에서 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Ⅵ. 결 론
본 연구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정보교과의 AI 관련 성취기준 21개를 Biesta의 “좋은 교육” 이론, 즉 자격화(Qualification), 사회화(Socialisation), 주체화(Subjectification)의 세 기능을 분석틀로 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분석 결과, 자격화 기능이 81.0%(17개), 사회화 기능이 19.0%(4개)를 차지하였으며, 주체화 기능은 0.0%(0개)로 나타났다. 성취기준 진술 동사 분석에서도 “이해한다”(33.3%), “탐색한다”(23.8%), “활용한다”(14.3%)가 대다수를 점하였고, “성찰한다”나 “탐구한다” 등 주체화 관련 동사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내용체계표의 “가치·태도” 범주에 “비판적 자세”, “AI 윤리 의식” 등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들이 성취기준으로 구체화되는 방식은 여전히 사회화의 언어에 머물러 있었다. 이 결과는 현행 AI 관련 성취기준이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역량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AI 시대에 어떤 인간으로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적 질문은 교육과정 문서 수준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자격화 편중은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측정 가능성 전제”에서 비롯되는 구조적 한계로 해석될 수 있다. 동시에, 주체화의 본질이 예측 불가능성과 측정 불가능성에 있다는 점에서, 주체화가 성취기준으로 명시되지 않는 것이 주체화의 본질과 오히려 부합할 수 있다는 양면적 해석도 가능하다. 본 연구가 문제삼는 것은 주체화의 부재 자체가 아니라, 성취기준 체계 전체가 자격화에 편중됨으로써 주체화가 발생할 수 있는 교육적 공간이 축소되는 경향이다.
본 연구의 학술적 의의는 세 가지 측면에서 논의할 수 있다. Biesta의 교육 목적론을 AI 리터러시 교육과정 분석에 적용한 국내 연구로서, 교육철학적 관점에서 AI 리터러시 교육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학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또한 성취기준 동사 분석을 통해 자격화 편중 현상을 언어적 차원에서 실증적으로 확인하였으며, UNESCO 프레임워크 및 주요국 교육과정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교육과정의 자격화 편중이 역량기반 접근의 필연이 아닌 특수한 설계 결과임을 제시하였다.
교육 정책 차원에서의 시사점으로는, 차기 교육과정 개정 시 성찰적 진술의 보완, 교사가 주체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수 프로그램 개발, 과정 중심 평가의 확대와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 자율성 보장 등을 들 수 있다.
본 연구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교육과정 문서 분석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실제 교실에서 AI 리터러시 교육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교사가 성취기준을 어떻게 해석하고 재구성하는지는 다루지 못하였다. 단일 이론가(Biesta)의 관점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교육철학적 관점에서는 상이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1인 연구자에 의한 분류의 주관성 문제도 남아 있으며, 분석이 정보교과에 한정되어 실과, 기술·가정 등 타 교과의 AI 관련 내용은 포함하지 못하였다.
후속 연구로는 정보교사 대상 심층 면담 및 수업 관찰을 통해 성취기준의 실제 실행 양상과 주체화의 공간 확보 방식을 탐구하는 사례 연구, 포스트휴머니즘 관점에서 AI 시대의 인간 주체성 개념 자체를 재검토하는 심화 연구, 주요국 AI 리터러시 교육과정에 대한 체계적 비교 분석, 그리고 AI 리터러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AI와의 관계에서 어떠한 주체성을 형성하는지를 질적으로 탐구하는 연구를 제언한다.
AI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기술이다. “좋은 AI 리터러시 교육”은 학생들이 AI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을 넘어, AI 시대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스스로 묻고 응답을 구성하도록 촉진하는 교육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취기준의 개선뿐 아니라 교수학습 방법, 평가 방식, 교사 전문성, 사회적 인식이 함께 변화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