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최근 직업계고 재구조화는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직무 구조 전환이 중등 직업교육의 운영 조건을 재편하는 상황에서 학교 운영의 핵심 과제로 재부상하고 있다(교육부, 2024). 이에 따라 정부와 유관기관은 신산업 분야 대응, 학과 개편 지원, 실습 기반 확충 등을 중심으로 재구조화 정책을 추진하고, 「2024년 직업계고 재구조화 지원 사업 학과 개편 운영 사례집」(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이하 직업계고 재구조화 사례집)과 「2022개정 직업계고 교육과정 편성·운영 안내서」(윤형한 외, 2025, 이하 직업계고 교육과정 안내서)를 통해 실행 모델을 확산하고 있다(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윤형한 외, 2025). 교육과정의 변화가 교육 목적의 판단을 수반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Biesta, 2009), 현재의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은 단순한 외형적 개편을 넘어 ‘무엇을 성과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재구조화는 학과 개편 및 통폐합, 실습 인프라 확충 등 가시적 조치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 성과는 학생 충원율 및 취업률과 같은 정량 지표로 평가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교육부, 2024; 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이때 성과 지표는 재구조화를 교육과정의 질적 변화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산출의 문제로 번역함으로써, 학교 운영을 단기 성과의 논리로 정당화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교육이 성과주의(performativity)의 규율 속에서 조직되는 현상(Ball, 2003) 및 감사(audit)의 확산이 야기하는 검증 가능성 중심의 통치 합리성(Power, 1999)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직업계고 재구조화 논의는 어떤 학과가 유리한가?라는 선택 문제를 넘어 재구조화가 학생을 산업 인력으로 규정하는지 또는 노동과 삶의 관계를 해석·판단하는 직업 주체성 형성을 포함하는지를 교육 목적의 문제로 전환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관련 선행연구를 검토하면 직업계고 재구조화는 산업 수요 정합성, 학교 경쟁력 제고, 정량 지표에 기반한 추진 기준 마련 등 기술적·도구적 처방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왔다(이병욱 외, 2024; 김재홍·도수관, 2021; 송낙현·이찬·최현정, 2023). 특히 직무 능력 중심 교육과정의 확산은 정책적 필요에 의해 정당화되어 왔으나, 교육과정이 목적 판단보다 효율적 훈련 설계로 기울 수 있다는 비판 역시 제기되어 왔다(고경임, 2015). 이러한 접근은 직업계고 재구조화를 교육 목적의 배분(무엇을 우선하고 무엇을 주변화하는가)이라는 질문으로 충분히 전환하지 못하며, 성과 지표가 강화될수록 교육이 검증 가능한 것만을 남기는 감사 문화로 수렴할 위험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데 한계를 지닌다.
재구조화 담론이 어떤 언어와 장치로 교육을 재규정하는지 드러내기 위해서는, 정책 문서 및 운영 사례집 등에 나타난 정당화 논리를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문서분석 기반 질적 내용분석이 효과적이다(Bowen, 2009). 본 연구는 비에스타의 개념을 선험 범주로 설정한 뒤 텍스트를 코딩·해석하는 지시적 질적 내용 분석(Directed Qualitative Content Analysis)을 적용하여, 성과 및 책무성 어휘가 교육 목적을 어떻게 재배치하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재구조화가 공적 문서(직업계고 교육과정 안내서,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 관련 연구논문, 보도자료)를 통해 제시·확산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문서분석은 담론의 구조화 효과를 재현 가능하게 제시하기 위한 필수 전제가 된다(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윤형한 외, 2025).
이에 본 연구는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이 전제하는 교육 목적(자격화·사회화·주체화)의 배분 구조를 비에스타의 개념틀로 분석하여, 담론에서 주변화되는 교육적 가치와 의미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2024년 직업계고 재구조화 지원 사업 학과 개편 운영 사례집」(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2022 개정 직업계고 교육과정 편성·운영 안내서」(윤형한 외, 2025), 「직업계고 60곳, 반도체·AI 등 신산업 분야로 개편」 보도자료(교육부, 2024, 이하 직업계고 재구조화 보도자료)를 분석 대상으로 설정하고, 교육 목적(자격화, 사회화, 주체화), 학습화, 그리고 교육의 위험 논의를 분석틀로 적용한다. 본 연구의 결과는 직업계고 재구조화를 산업 변화에 따른 학과 개편으로만 이해하는 관점을 넘어, 교육 목적의 균형과 판단의 문제로 재구성하는 이론적 근거와 정책적·실천적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
앞서 기술한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정한 구체적인 연구 문제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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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은 교육 목적(자격화·사회화·주체화)을 어떤 방식으로 배분·우선순위화하며, 그 배분은 어떤 정당화 논리로 구성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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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직업계고 재구조화 관련 문서에서 ‘성과’와 ‘책무성’의 언어는 교육을 학습성과 중심으로 번역하는(학습화) 장치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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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은 교육의 불확실성(아름다운 위험)을 어떻게 다루며, 위험의 수용과 제거(리스크화)는 주체화의 조건을 어떻게 재구성하는가?
이상의 연구 문제를 통해 본 연구는 성과 중심 설명이 간과해 온 교육 목적의 편중과 그 효과를 드러내고, 재구조화 담론이 구성하는 학생·학교·직업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방향을 모색한다.
Ⅱ. 이론적 배경
본 절에서는 직업계고 재구조화가 정책적으로 어떤 문제의식과 목표 아래 추진되어 왔는지, 그리고 기존 연구들이 어떤 관점에 집중함으로써 무엇을 간과해 왔는지를 제시한다. 특히 재구조화가 성과 중심의 언어로 구성될 때, 교육과정의 변화가 교육적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산출의 문제로 재규정될 수 있음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생 수 급감과 산업·직무 구조의 재편이라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정책적 대응으로 강화되어 왔다. 직업교육 체제는 학생 모집 기반의 약화와 더불어 산업 현장의 기술 변화, 직무의 재구성, 신산업 분야의 부상 등에 직면하면서, 학교 운영의 지속 가능성과 교육과정의 정합성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이에 따라 직업계고는 전통적 학과 체계가 산업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다는 진단 아래, 학과 개편·통폐합, 신산업 분야 학과 신설, 실습 인프라 확충, 운영 모형 확산 등 가시적이고 제도화된 방식으로 재구조화를 추진해 왔다(교육부, 2024; 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윤형한 외, 2025).
이 과정에서 정책은 ‘무엇을 바꾸었는가’(학과명, 교육과정 편성, 장비 구축, 협약 체결)와 함께 ‘무엇을 달성했는가’(충원율, 취업률, 진학·자격 성과)를 핵심 성과로 제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재구조화는 학교의 생존 및 지원 체계와도 결합하면서, 성과 지표는 학교 운영의 정당화 논리를 구성하는 핵심 자원으로 기능한다. 그 결과, 재구조화는 교육 목적, 내용의 의미, 교수·학습의 관계와 같은 교육과정의 질적 변화보다는 정책 집행의 가시성과 관리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서술되기 쉬운 조건을 갖는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관련 선행연구는 대체로 산업 수요 정합성, 취업률 제고, 학교 경쟁력 강화, 운영 효율성 확보 등 효율과 성과의 관점에서 문제를 설정해 온 경향이 두드러진다(김재홍·도수관, 2021; 송낙현·이찬·최현정, 2023; 이병욱 외, 2024). 이러한 연구들은 재구조화의 추진 요인, 성공 요인, 제도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데 기여했으나, 재구조화 자체가 교육 목적을 어떻게 재배치하는지에 대한 규범적·교육학적 분석은 상대적으로 제한적 이었다. 특히 재구조화가 교육적 가치 판단의 문제라기보다 인력 수급과 직무 적합성을 해결이라는 기술적 과제로 전제될 경우, 교육은 산업 변화에 대한 적응 장치로만 이해되기 쉽다.
또한 직무 능력 중심 교육과정의 확산은 정책적 필요와 결합해 정당화되어 왔으나, 교육과정이 목적 판단보다 효율적 훈련 설계로 기울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어 왔다(고경임, 2015). 선행연구 분석 결과, 직업계고 재구조화와 관련한 연구 공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기존 논의는 재구조화의 핵심 성과를 취업·자격·충원 등 측정 가능한 지표에 두면서, 교육 목적의 다층성(특히 주체화)을 주변화할 위험을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둘째, 재구조화의 정당화 논리는 학생을 성과 달성의 대상으로 위치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으나, 이러한 효과를 교육철학적 준거로 분석한 연구는 제한적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 공백을 비에스타의 교육 목적론과 학습화, 아름다운 위험의 개념을 통해 보완하고자 한다.
본 절은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을 교육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핵심 개념틀로서, 비에스타의 교육 목적(자격화·사회화·주체화)과 학습화 개념을 개관한다. 특히 직업교육 맥락에서 주체화의 의미를 조작적으로 명료화 하여 개념의 추상성을 최소화한다.
비에스타는 교육의 목적을 자격화·사회화·주체화로 구분하며, 교육을 단일 목적의 최적화로 환원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Biesta, 2009). 자격화는 학습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 영역으로, 지식·기술·자격·역량을 포함한다(Biesta, 2009). 직업교육에서 자격화는 직무 수행 능력, 실습을 통한 기능 습득, 자격증 취득, 취업 역량 강화 등으로 구체화되며, 직업계고 정책 담론에서 가장 전면화되기 쉬운 목적이다.
사회화는 개인이 사회적·문화적·직업적 규범과 질서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뜻한다(Biesta, 2009). 직업교육 맥락에서 사회화는 조직 적응, 직업 윤리, 산업 현장의 규범 내면화, 현장 친화적 태도의 형성 등으로 드러난다. 이는 명시적 교육과정뿐 아니라 숨겨진 교육과정을 통해 강화될 수 있으며, 재구조화가 산업체 요구를 우선할수록 사회화 목적은 상대적으로 정당화되기 쉽다.
주체화는 학습자가 기존 질서 속에서 단순히 기능을 수행하거나 규범에 적응하는 존재를 넘어, 책임과 판단의 주체로 등장하는 조건을 가리킨다(Biesta, 2009). 직업교육에서 주체화는 성숙한 직업인의 존재 방식과 연관된다. 예컨데 노동과 삶의 관계를 해석하고 자신의 진로 결정을 성찰하는 능력, 위험과 불확실성을 수용하며 시행착오 속에서 판단을 형성하는 경험, 부당한 노동 관행이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윤리적 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 등으로 조작적 정의를 할 수 있다. 주체화는 자격화·사회화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지만, 성과 지표 중심의 담론이 강화될수록 측정 불가능한 가치로 취급되어 주변화될 위험이 증가한다.
위에서 제시한 교육의 세 목적은 상호 배타적이라기보다 중첩되며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교육의 문제는 ‘어떤 목적이 옳은가’가 아니라, 특정 맥락에서 어떤 목적이 우선되고 어떤 목적이 후퇴하는지, 그리고 그 배분이 어떤 교육적 결과를 낳는지 판단하는 데에 있다(Biesta, 2009). 이 관점은 본 연구의 첫 번째 연구문제(교육 목적 배분 분석)의 이론적 준거가 된다.
비에스타가 말하는 학습화는 교육이 교육의 언어가 아니라 학습의 언어로 대체되면서 교육 목적에 대한 질문이 약화되는 현상을 가리킨다(Biesta, 2005). 학습화가 강화될수록 교육은 ‘무엇을 위해’보다 ‘무엇을 달성했는가’의 프레임에서 조직되고, 교육적 가치 판단은 성과, 측정, 효율의 언어로 재배치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에서 충원율·취업률 등 지표가 성과를 대표할 때, 교육과정은 목적의 균형을 논의하기보다 산출의 관리 체계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Ball(2003)의 성과주의(performativity) 논의는 학습화를 설명하는 유용한 보조적 이론이 된다. 성과주의는 교육 조직이 지표와 평가에 의해 규율되면서, 학교와 교사가 보여줄 수 있는 결과를 중심으로 자신과 활동을 구성하는 현상을 설명한다(Ball, 2003). 또한16 Power(1999)의 감사(audit) 문화는 검증과 증빙의 체계가 조직 운영을 재편하고, 측정 가능한 것이 곧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쉬운 통치 합리성을 형성한다는 점을 강조한다(Power, 1999). 이 두 논의는 재구조화 담론에서 성과 및 책무성 어휘가 왜 강력하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 교육 목적(특히 주체화)이 왜 설명의 주변부로 밀려나는지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두 번째 연구문제에서 성과와 책무성 언어를 단순한 정책 수사로 보지 않고, 교육을 학습 성과 중심으로 번역하는 담론적 장치로서 해독한다. 이는 재구조화 담론이 교육과정을 관리 가능한 산출로 재규정하는 메커니즘을 드러내기 위한 분석적 관점이다.
본 절은 불확실성의 수용 및 제거가 주체화 조건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다. 핵심은 교육의 불확실성이 결함이나 실패 위험이 아니라 주체가 형성되는 조건이라는 관점에 있다. 비에스타는 교육이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만남과 응답을 포함하며, 이러한 불확실성이 교육을 살아 있는 사건으로 성립시키는 조건이라고 본다(Biesta, 2013). 교육은 계획과 통제를 통해 완전히 산출을 보장할 수 없으며, 바로 그 지점에서 학습자는 타자와 세계를 마주하며 자신을 재구성한다(Biesta, 2013). 그러나 정책 담론이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할 리스크로 규정할 때, 교육은 표준화·통제·매뉴얼·평가 체계로 수렴하며 결과의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수 있다.
비에스타는 교육을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실천으로 규정하며 이를 ‘교육의 아름다운 위험’(beautiful risk)으로 개념화한 논지를 제시한다(Biesta, 2013). 여기서 ‘아름다움’은 위험을 미화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교육이 표준화된 결과 및 산출로 환원될 수 없다는 규범적 진술을 가리킨다. 특히 직업계고 교육 맥락에서 불확실성은 안전하게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학생이 노동 세계의 조건을 해석하고 판단을 형성하는 주체화의 조건으로 재개념화될 필요가 있다.
직업계고 재구조화가 정량 지표 중심의 책무성 체계와 결합할수록, 불확실성은 교육의 조건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변수로 전환되기 쉽다. 예컨대 표준화된 교육과정 설계, 성과 중심 평가 항목, ‘우수 사례’의 모델 확산은 변동성을 억제하고 예측 가능한 성과 산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교육의 위험을 리스크 관리의 대상으로 환원하는 ‘리스크화’의 경향으로 이론화될 수 있으며, 본 연구는 문서 담론에서 이러한 리스크화 단서를 체계적으로 포착한다.
직업교육에서 불확실성은 단지 진로의 불안정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생이 자신이 수행할 노동의 의미를 묻고, 현장의 규범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며, 시행착오 속에서 판단을 형성할 기회 자체가 교육적 불확실성에 포함된다. 이 기회가 차단될 때 학생은 성공을 산출하는 대상으로만 위치지어지고, 주체화는 성취를 위한 수단적 역량으로 축소될 수 있다.
따라서 직업교육에서의 주체화는 (1) 안전·권리·윤리 등 노동의 질적 조건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능력, (2) 부당한 관행을 단순 수용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거나 대안을 탐색할 수 있는 태도, (3) 장기적 삶의 관점에서 직업 선택을 재해석하는 판단의 형성으로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재구조화 담론이 이러한 주체화의 조건을 확장하는지, 또는 리스크화 논리 속에서 조건부로만 허용하는지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Ⅲ. 연구방법
본 연구는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이 교육 목적(자격화·사회화·주체화)을 어떻게 배분·우선순위화하며, 성과·책무성 언어를 통해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재규정하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지시적 질적 내용분석(Directed Qualitative Content Analysis)을 연구 접근으로 채택하였다. 지시적 내용분석은 기존 이론이나 선행연구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아 이론이 제시하는 변수(개념)를 선험 범주로 설정하고, 자료에서 이를 확인·코딩하는 연역적 접근이다. 또한 이 접근은 이론의 적용 가능성과 설명력을 점검하고, 개념을 정교화·확장하는 데 목적을 둔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목적에 부합한다(Hsieh & Shannon, 2005; 손행미, 2017).
특히 본 연구는 비에스타의 교육 목적(자격화·사회화·주체화), 학습화, 교육의 ‘아름다운 위험’ 개념을 분석틀로 설정하고, 재구조화 관련 문서가 해당 개념들을 어떤 방식으로 호출·배치하는지를 문장·문단 수준에서 체계적으로 추적하였다. 이때 지시적 내용분석의 엄밀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론적 범주를 문서 텍스트에서 식별 가능하도록 조작적 정의를 정교화하고, 범주에 부합하는 표현·문장 구조·정당화 맥락을 기준으로 초기 코딩 규칙을 명시한 뒤 코딩을 수행하였다(손행미, 2017). 예를 들어 ‘주체화’는 단순히 ‘자기주도’와 같은 표면적 표현의 등장만으로 판정하지 않고, 판단·책임·성찰의 요청이 텍스트에 실제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학생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 성과 경로로 환원되지 않는지에 초점을 두어 판정 기준을 세분화하였다.
아울러 분석 과정에서는 기존 이론을 보완하거나 반대 방향의 의미를 드러내는 부가적 범주가 발견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선험 범주와의 긴장 관계를 검토하면서 범주의 폭과 하위범주를 정련하였다(손행미, 2017). 즉, 범주의 정련은 임의적 추가가 아니라, 선험 범주로 설명되지 않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확인될 때 그 판단 근거를 연구자 메모로 기록하고, 비교·대조를 통해 하위범주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수행하였다. 다만 본 연구의 분석은 단어 빈도나 표면적 분포를 산출하는 기계적 내용분석에 머물지 않는다. 질적 내용분석은 텍스트를 체계적으로 범주화하되, 텍스트의 내용과 맥락적 의미, 그리고 언어가 수행하는 의사소통의 구조에 주목함으로써 인상적·직관적 해석을 넘어 보다 엄격한 방식으로 의미를 해독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된다(손행미, 2017).
따라서 본 연구는 내용분석 절차를 따르되, 재구조화 문서가 사용하는 언어(예: 성과, 효율, 책무성, 표준화)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특정한 현실을 구성·정당화하는 방식에 분석의 초점을 두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로 규정되고, 무엇이 ‘해결’로 제시되며, 무엇이 ‘성과’로 인정되는지 의미 구조를 중심으로 텍스트를 재구성하여, 재구조화 담론이 교육 목적의 판단을 어떻게 약화시키는지(학습화), 그리고 불확실성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 가능한 리스크로 환원하는지(리스크화)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지시적 내용분석은 분석 결과를 범주별 전형(exemplar) 인용과 코드 제시로 근거화할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 빈도·순서·백분율 등 기술 통계를 보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손행미, 2017), 본 연구는 결과 제시에서 문서 위치 정보(문서명, 쪽, 절)을 일관된 규칙에 따라 병기하고, 발췌–코드–해석의 연결이 추적 가능하도록 제시하였다.
본 연구의 분석 대상은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이 공식적으로 제시·확산·정당화되는 공적 문서로 한정한다. 여기서 공적 문서란 정책의 방향을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직업계고 교육과정 안내서), 정책 실행의 모형을 제시하는 운영 사례집, 그리고 재구조화의 필요 및 성과를 사회적으로 정당화하는 교육부 보도자료를 의미한다. 이러한 문서들은 학교 현장의 교육과정 운영과 사업 참여의 준거로 작동하며, 재구조화의 문제, 해결, 성과 구성을 안정적으로 반복·확산시키는 매개라는 점에서 담론 분석의 적합한 자료가 된다.
다만 본 연구는 공적 문서의 개념적 범위를 폭넓게 설정하되, 연구문제의 텍스트 근거를 가장 밀도 있게 포함하는 핵심 기준을 충족하는 문서를 중심으로 최종 분석 코퍼스를 구성하였다. 이에 따라 최종 분석 코퍼스는 「2022 개정 직업계고 교육과정 편성·운영 안내서」(윤형한 외, 2025, 이하 직업계고 교육과정 안내서), 「2024년 직업계고 재구조화 지원 사업 학과 개편 운영 사례집」(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이하 직업계고 재구조화 사례집), 「직업계고 60곳, 반도체·AI 등 신산업 분야로 개편」 보도자료(교육부, 2024, 이하 직업계고 재구조화 보도자료)의 총 3종으로 한정하며, 각 문서의 세부정보는 <표 1>에 제시하였다.
| 구분 | 문서명 | 선정 근거 | 분석 목적 | 분량 |
|---|---|---|---|---|
| 정책 가이드라인 | 2022 개정 직업계고 교육과정 편성·운영 안내서(교육부·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5) | 교육과정 운영의 규범 제시, 현장 준거로 기능 | 목적 배분(자격화/사회화/주체화) 및 학습화 단서 탐색 | 총 240쪽 |
| 실행 모델 | 직업계고 재구조화 학과 개편 운영 사례집(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 실행 모형의 표준화·확산, 성과 서사의 전형 제시 | 성과/책무성 언어의 작동 및 정당화 논리 분석 | 총 320쪽 |
| 보조 자료 | 교육부 학과개편 보도자료(교육부, 2024) | 사회적 정당화(문제-해결-성과 프레임) 강화 | 담론의 사회적 맥락 파악 및 보조 비교 | 총 18쪽 |
본 연구의 자료 선정은 다음 기준에 따른다. 각 기준은 공적 문서의 담론 기능과 텍스트의 정보력을 중심으로 유형화하여 적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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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표성(규범성): 직업계고 재구조화의 방향과 기준을 규범적으로 제시하고, 현장의 준거(표준)로 작동하는 문서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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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확산성(전형화): 일선 학교에 실행 모델로 보급되어 실제 운영과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갖는 문서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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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식성·공개성(정당화 기능): 공적 기관이 발간·배포하여 사회적으로 정당화 기능을 수행하는 문서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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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구문제 적합성(텍스트 판독 가능성): 교육 목적 배분, 성과·책무성 언어, 위험 및 불확실성의 처리 방식이 텍스트 수준에서 확인 가능한 문서일 것.
또한 코퍼스 구성의 투명성과 재현 가능성을 위해 다음 자료는 제외하였다.
본 연구가 최종으로 확정한 분석 대상 문서의 상세 목록과 구성은 <표 1>과 같다. 선정된 자료는 양적으로는 3종에 집중되어 있으나, 총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텍스트를 포함하고 있어 담론의 미세한 구조를 해독하기 위한 두터운 기술(thick description)의 토대가 된다.
본 절은 이론적 배경과 분석 절차를 연결하는 가교로서, 공적 문서에서 개념을 어떻게 식별하고 판정할 것인지 제시한다. 이를 위해 텍스트 내 식별 지표와 포함·제외 기준을 표로 구체화하되, 비에스타의 개념을 결론의 기준으로 전제하기보다는 재구조화 담론이 교육의 목적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고 번역하는지 드러내기 위한 감지 장치로 활용한다. 즉, 본 연구에서 비에스타의 자격화·사회화·주체화는 공적 문서가 무엇을 성과로 인정하고 어떤 종류의 학생, 학교, 직업을 구성하는지 판독하기 위한 출발점이며, 분석 과정에서는 문서의 어휘와 서사 구조 간 불일치 지점을 통해 범주 경계를 점검·조정하는 절차를 포함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관련 공적 문서가 교육의 성과를 취업·자격과 같은 수행 산출로 압축하는지, 산업 및 조직 규범으로의 편입을 성과로 제시하는지, 또는 노동과 삶의 관계를 해석하고 윤리, 권리, 안전 문제를 판단하는 주체적 자리를 확장하는지를 구분하기 위해 교육 목적의 배분 구조를 1차 범주로 설정하였다. 각 범주는 직업교육 맥락에서 조작적 정의, 텍스트 내 식별 지표, 포함 ·제외 판정 기준을 통해 <표 2>와 같이 구성하였다.
비에스타의 범주만으로는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이 교육적 판단을 어떻게 대체하는지를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성과·책무성 언어가 교육을 ‘목적’이 아니라 ‘성과’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을 2차 준거로 설정하였다. 구체적으로 학습화는 목적 판단이 성과 관리로 치환되는 순간을, 성과주의는 보여줄 수 있는 결과가 가치의 기준이 되는 교육 구조를, 감사 문화는 검증 및 증빙 체계가 가치 판단을 압축하는 조건을 해독하기 위한 질문과 지표로 <표 3>과 같이 구성하였다. 2차 준거는 비에스타의 틀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동일 텍스트 구간을 교차 판독함으로써 목적의 배분과 성과 장치의 작동이 결합되는 지점을 식별하기 위한 분석 장치로 기능한다.
| 분석 초점 | 해독 질문 | 텍스트 내 식별 지표(키워드/문맥) | 해석 포인트 |
|---|---|---|---|
| 학습화 | 교육이 ‘목적’이 아니라 ‘성과’의 언어로 번역되는가? | 성과/지표/KPI/평가/환류/개선/관리/모니터링/선정/확산 | 목적 판단이 성과관리로 대체되는 순간(무엇을 위해 → 무엇을 달성) 포착 |
| 성과주의 | 지표가 학교·교사·학생의 행위를 규율하는가? | 우수사례/성과 창출/성과 제시/성과 중심 운영/경쟁력 | ‘보여줄 수 있는 결과’가 가치의 기준이 되는 구조(Ball, 2003) |
| 감사문화 | 검증·증빙 체계가 가치 판단을 압축하는가? | 검증/증빙/책무/점검/평가 기준/성과 보고/관리 체계 | 측정 가능한 것이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조건(Power, 1999) |
본 연구의 분석 절차는 자료 몰입에서 코딩·범주화·해석에 이르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연구의 투명성과 재현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비에스타 개념의 조작적 정의와 텍스트 내 식별 지표를 절차의 중심에 배치하였다.
수집된 문서를 반복적으로 통독하며 재구조화 담론의 전반적 어조와 핵심 서사 구조를 파악하였다. 이 단계에서는 특히 문서가 재구조화를 어떤 문제로 규정하는지, 어떤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지, 무엇을 성과로 인정하는지를 중심으로 메모를 축적하였다. 동시에 성과·책무성·표준화 관련 표현이 등장하는 문맥을 표시하여, 이후 단계의 집중 코딩 대상(핵심 구간)을 예비적으로 식별하였다.
본 연구는 비에스타의 개념을 선험 범주로 설정하되, 문서 분석에 적용 가능하도록 직업교육 맥락에서 조작적 정의를 정교화하였다(Hsieh & Shannon, 2005). 예를 들어 자격화는 직무 수행 능력, 역량, 실습, 자격, 취업 역량과 같은 수행 지향 어휘 및 문장 구조와 연계하였다. 사회화는 산업체 요구, 조직 적응, 직업 윤리, 현장 친화, 규범 내면화 등 편입·적응의 맥락에서 식별되도록 정의하였다. 주체화는 단순히 자기주도라는 표현의 존재로 판단하지 않고, 판단·책임·성찰이 실제로 요청되는지, 그리고 노동과 삶의 관계를 해석하는 주체적 자리가 열려 있는지 여부로 판정하도록 기준을 세분화하였다.
또한 학습화는 성과·지표·환류·개선·관리·책무성 등의 언어가 교육 목적을 투입과 산출의 논리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핵심 지표로 삼았다(Biesta, 2005). 이때 Ball(2003)의 성과주의 논의는 지표 중심 규율이 학교 운영과 주체 형성에 미치는 효과를 설명하는 보조 이론으로 활용하였고, Power(1999)의 감사 문화 논의는 검증 및 증빙의 요구가 교육의 가치를 측정 가능한 것으로 압축하는 조건을 해석하기 위한 보조 준거로 활용하였다(Ball, 2003; Power, 1999).
조작적 정의를 바탕으로 1차 코딩에서는 선험 범주(자격화·사회화·주체화, 학습화, 위험 수용 및 리스크화)를 텍스트 구간(문단, 표, 항목)에 부여하였다. 이후 동일 범주로 분류된 자료를 비교하며 하위 범주를 도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범주의 경계가 모호한 사례는 연구자 메모를 통해 판단 근거를 기록하고, 범주 정의를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일관성을 확보하였다. 연구문제별 코딩의 초점은 다음과 같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범주화 결과를 단순 요약에 그치지 않고, 텍스트가 구성하는 의미 구조를 연결하여 해석하였다. 특히 주체화가 문서에서 직접 언급되더라도 그것이 성과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제시되는 경우는 ‘조건부 주체화’, ‘도구화된 주체화’로 구분하여 논의하였다. 이러한 해석 전략은 재구조화 담론이 교육 목적의 균형을 어떻게 재배치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학교·직업의 의미가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되는지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
코딩과 자료 관리는 Excel 기반 코딩 매트릭스(문서-쪽/절-발췌-코드-메모)로 수행하였고, 범주 간 비교는 문서 유형별, 연도별 매트릭스를 구성하여 반복 비교하는 방식으로 수행하였다.
본 연구는 질적 연구의 엄밀성을 확보하기 위해 Lincoln과 Guba(1985)의 신뢰성 준거(credibility, transferability, dependability, confirmability)를 참조하여 분석의 정합성과 투명성을 제고하였다.
첫째, 신빙성(credibility)을 위해 자료에 대한 반복적 몰입과 지속적 비교를 수행했으며, 범주 판정의 근거를 연구자 메모로 축적하였다. 또한 직업계고 교육과정 안내서,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 보도자료 및 정책 연구물을 교차 비교하여 특정 문서의 수사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하였다.
둘째, 전이가능성(transferability)을 위해 분석 결과를 일반화 가능한 결론으로 단정하지 않고, 문서의 발간 맥락과 정책적 기능을 함께 제시하였다. 또한 핵심 논거가 되는 텍스트를 문서명과 쪽·절 정보를 포함하여 인용함으로써 두터운 기술(thick description) 방식으로 제시하였다.
셋째, 의존 가능성(dependability) 확보를 위해 코딩 규칙을 명시하였으며, 범주 정의의 수정 이력과 결정 근거를 기록하여 분석 절차의 추적 가능성을 높였다.
넷째, 확증 가능성(confirmability)을 위해 연구자의 해석이 자료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감사 추적(audit trail)을 구축하였다. 감사 추적에는 코딩 매트릭스(문서-쪽, 절-발췌-코드-해석 메모), 범주 정의표, 대표 발췌 목록, 범주 정련 과정에서의 판단 메모가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연구자가 현직 교사로서 직업교육 담론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미 지니고 있음을 분석의 전제로 인정하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 반성적 주관성(reflexivity)을 분석 과정에 포함하였다. 특정 담론을 비판하려는 선이해가 코딩을 과도하게 이끌지 않도록, 판단이 어려운 의미 단위는 ‘유보’로 표시한 뒤 범주 정의로 되돌아가 재판정하는 절차를 반복하였다. 이 과정에서 판단 근거는 연구자 메모로 기록하였다.
본 연구는 재구조화 정책이 공적 문서에서 어떻게 정당화되고 언어화되는지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이 해당 담론을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수용·변형·저항하는지까지 직접 포착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본 연구의 결론은 실행 효과에 대한 인과적 단정이 아니라, 정책 담론이 교육 목적을 배치하는 방식과 그 정당화 논리의 구조를 해독한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본 연구는 공적 문서에 나타난 담론 구조를 분석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현장 실행의 다양성과 맥락적 조건은 후속 연구에서 보완될 필요가 있다.
Ⅳ. 연구결과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은 출발부터 교육 목적의 질문을 전면화하기보다, ‘경쟁력·적응력·미스매치 해소’와 같은 산업·고용의 어휘로 정당화된다(교육부, 2024). 교육부의 직업계고 재구조화 보도자료는 사업 목적을 경쟁력 제고와 교육과정 고도화로 명시하고, 재구조화를 학교 교육의 재해석이 아니라 산업 변화 대응을 위한 체질 개선으로 제시한다(교육부, 2024). 이때 학생은 ‘삶과 노동의 관계를 사유하는 존재’라기보다 지역 일자리 미스매치의 해결과 신산업 적응을 담당하는 대상으로 호명된다.
직업계고 교육과정 안내서는 교육과정 편성의 출발점을 외부 산업 및 인력 동향 분석에 두고, 이를 인력양성유형 설정 등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NCS) 기반 교육과정 편성의 기초 자료로 규정한다(윤형한 외, 2025). 직업계고 교육과정 설계는 교육적으로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보다 어떤 인력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의 프레임을 우선시한다. 학과 교육목표 또한 산업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인 양성으로 제시된다(윤형한 외, 2025).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에서도 대구A직업계고(콘텐츠마케팅과), 안양B직업계고(웹툰메이커스과) 등 여러 사례가 유사한 논리로 전개된다. 학과 개편의 배경은 ‘급변하는 산업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인력양성이 필요하다’는 진술처럼, 개편을 현장 적합성과 실무역량 강화로 수렴시키는 방식으로 제시된다(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이 구성은 비에스타의 관점에서 교육을 자격화의 사다리로 과잉 배치하고, 교육이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세계에 놓이게 하는가라는 판단을 후경화한다.
사회화는 표면적으로 ‘학교 구성원의 참여’와 ‘운영 절차의 민주성’으로 제시되지만, 실질적으로 직업계고 재구조화의 방향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규범 장치로 작동한다. 대구A직업계고(콘텐츠마케팅과) 사례는 설문과 의견 수렴, 운영위원회 심의, 교육청 승인 등 일련의 절차를 통해 학과 개편을 추진한다(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설문 결과 또한 직업계고 재구조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교직원 찬성률 97.9%로 제시되며, 개편의 정당성은 토론 가능한 판단이라기보다 수치로 확정된 합의로 제시된다(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또한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의 여러 프로그램은 학교·학생의 활동을 외부 이해관계자(중학교, 지역사회, 산업체)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한다. 예를 들어 월별 추진 일정에 홍보 활동과 중학생 대상 직업체험 캠프가 포함되는 사례는 학생 활동의 교육적 의미가 경험 그 자체라기보다 학교의 개편과 생존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재배치되는 경향을 드러낸다(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사회화는 결국 학생을 기존 산업 질서에 부드럽게 편입시키는 것뿐 아니라, 학교 조직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학생과 교사가 함께 정렬되는 과정으로 강화된다.
주체화 어휘는 직업계고 교육과정 안내서와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에 명시적으로 등장한다. 직업계고 교육과정 안내서의 체크리스트는 자율 및 자치활동에서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능력 함양을 언급한다(윤형한 외, 2025). 그러나 그 문장 바로 앞은 진로 및 취업·진학과의 연계라는 조건을 달고 있으며, 진로활동 역시 꿈과 비전을 취업·진학에 연결하는 설계 능력으로 제시된다. 즉, 주체화는 세계와 자신을 비판적으로 관계 맺는 존재 방식이라기보다 성과 경로에 자기 자신을 효율적으로 정렬하는 능력으로 도구화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에서 제시된 취업역량강화를 위한 스피치 특강과 같은 프로그램은 자기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하지만, 그 목적이 즉각 취업 역량으로 환원될 때 주체화는 자기 자신이 되는 교육이 아니라 성과 달성을 위한 자기 관리로 환원된다. 더 분명한 장면은 자생적이고 주체적인 의식이 정착을 위한 협조로 의미화되는 대목이다. 비에스타의 언어로 말하면 주체화가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조직 안정과 사업 성공의 태도로 재규정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은 교육적 가치 판단을 투입과 산출의 관리 문제로 치환한다. 직업계고 교육과정 안내서가 제시하는 직업계고 재구조화의 절차는 진단-처방의 단계화된 흐름으로 구성되며, 학교는 체크리스트와 단계별 설계 절차를 따라 교육과정 개편을 완결된 문서 산출물로 제시하도록 요구된다(윤형한 외, 2025). 이는 교육을 사건이 아니라 계획·실행·점검이 가능한 프로젝트로 번역하는 전형적 학습화 장치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보도자료는 사업 성격을 경쟁력 제고, 체질 개선, 적응력 향상 등으로 규정하며, 개편 지원을 예산, 컨설팅, 연수, 기자재 확충으로 제시한다(교육부, 2024). 결과적으로 교육의 질은 교육적 경험의 두께보다 현장 적합성과 산출 가능성의 기준에서 읽히기 쉽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 역시 개편의 효과를 취업률, 자격 취득,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으로 제시하며, 취업률 향상이 개선 과제, 운영 성과의 핵심 지표/어휘로 반복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의 운영 사례들은 교직원 찬성률, 신입생 충원율, 프로그램과 기자재 및 운영 일정을 표와 목록으로 제시해 개편의 정당성을 증빙 가능한 형태로 구성한다. 이는 학교가 교육의 의미를 말이 아니라 표, 목록, 수치와 같은 증빙 가능한 형태로 제시하도록 압력을 받는 구조를 드러낸다. Ball(2003)이 말한 성과주의의 언어는 여기서 측정 가능한 것의 우위를 통해 교육과정의 정당화를 조직하며, Power(1999)가 지적한 감사 가능성은 ‘문서로 증명되는 혁신’의 요구로 강화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 자체가 운영 사례의 형태로 성공 서사를 구성하고 유통하는 매체로 기능한다. 더 나아가 일부 사례는 취업역량 특강, 취업역량 강화 연수와 같은 진로·취업 프로그램과 교원 연수를 패키지로 구성하고, 이를 다른 학교가 참조할 수 있는 모델로 제시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학생들의 자율적 활동 역시 학교의 생존과 성과라는 목적 아래 재배치되는 경향이 확인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의 부산C직업계고 사례에서 학생들은 학과 홍보 영상 제작 및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서술되나, 이러한 활동의 성격은 학생의 내면적 성장보다는 학교의 신입생 충원율 제고라는 정책적 성과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동원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비에스타가 경계한 학습화의 전형으로, 학생의 주체적 행위가 교육적 사건이 아닌 관리 가능한 성과 서사의 일부로 포섭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맥락적 다양성이나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실패나 우회는 쉽게 탈락하고, 표준화된 성공 방정식이 강화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에서 불확실성은 교육의 본질적 조건이라기보다 제거해야 할 리스크로 다뤄진다(교육부, 2024; 윤형한 외, 2025). 직업계고 교육과정 안내서의 진단 및 처방 체계는 직업계고 재구조화를 교육과정 편성 진단의 결과로 연결하고, 필요한 경우 학과를 재구조화하도록 설계한다. 이는 다양한 학생의 진로 경로, 지역 산업의 변동성과 같은 불확실성을 위험의 감내가 아니라 진단과 처방을 통해 통제 가능한 변수로 처리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보도자료에서 직업계고 재구조화는 산업 인력 ‘미스매치 해소’와 ‘적응력 제고’로 정당화되며, 성공은 곧 적기 대응과 경쟁력의 확보로 표상된다(교육부, 2024). 이때 실패는 교육적 실패라기보다 경쟁력 부족과 같은 관리 지표로 환원되기 쉽고, 그 결과 학교는 예측 가능한 산출을 선택하도록 유도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에서 학과 개편은 교육과정 목록-프로그램 운영-취업 연계로 정렬되며, 학생 경험은 취업역량 특강과 같이 탐색의 여지보다 전공역량 강화-취업역량 강화의 경로로 안내된다(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비에스타의 관점에서 교육은 예상 밖의 만남과 중단(interruption)을 포함하는데, 이러한 문서 구조는 그 가능성을 사전에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운영 사례집은 졸업생 취업이 학과의 성패에 중요하므로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시스템을 구축해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고 제시한다(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4). 표면적으로는 지원으로 제시지만, 학생은 위험을 감수하고 판단하는 주체라기보다 관리 및 지원 시스템의 객체로 재구성된다. 더욱이 자생적이고 주체적인 의식이 소통 및 협조를 통한 안정적 정착으로 정의될 때, 주체화는 비판과 판단의 역량이 아니라 정책 실행의 순응적 태도로 축소된다. 이러한 해석이 특정 문서의 인상적 수사에 대한 판단에 머물지 않도록 본 장에서 사용한 대표적 전형을 증거-코딩-해석의 연결로 정리하였고, 그 내용은 <표 4>와 같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관련 공적 문서는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을 ‘산업 수요에 대한 적합성’과 ‘성과의 증빙 가능성’이라는 축에서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때 학생과 교사는 세계와 자신을 비판적으로 관계 맺는 주체라기보다 정해진 경로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협조하는 존재로 호명되는 서사가 반복된다. 다시 말해, 교육 목적의 배분은 자격화·사회화 중심으로 기울고, 학습화의 언어는 그 기울기를 지표와 절차로 고정시키며, 불확실성은 열린 가능성이라기보다 관리 대상의 리스크로 환원되는 방식으로 조직된다. 이러한 흐름을 종합하면,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은 교육을 ‘무엇을 위해’라는 목적 판단의 장으로 남겨두기보다 ‘어떻게 성과를 산출하고 증명할 것인가’의 문제로 재배치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Ⅴ. 결론 및 제언
본 연구는 직업계고 재구조화가 교육과정의 질적 전환이라기보다 성과 중심의 관리 논리로 추진되며, 그 과정에서 교육 목적에 대한 판단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문서 담론 분석을 통해 실제로 어떻게 구성·정당화·강화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특히 비에스타의 교육 목적(자격화·사회화·주체화)과 학습화, 그리고 ‘아름다운 위험’의 관점을 분석틀로 삼아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이 직업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재규정하는지 분석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은 직업교육의 목적을 직무역량과 현장 적응의 언어로 우선 배치하며, 자격화(직무 수행 능력)와 사회화(조직 적응·규범 내면화)를 성과의 핵심 근거로 전면화한다. 반면 주체화는 문서에서 배제되거나 등장하더라도 취업을 위한 자기관리 혹은 성과 달성을 위한 자기주도성으로 재맥락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 결과 주체적 직업인은 독자적 교육 목적이라기보다 성과 체제를 원활히 작동시키는 보조적 표상으로 축소된다.
현재의 직업계고 재구조화는 교육 목적의 균형을 충분히 숙고하기보다 산업 인력 수급이라는 외부 요구에 교육과정을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은 교육 목적(자격화·사회화·주체화)을 배분하기보다 사실상 서열화하며, 자격화 및 사회화의 압도적 우위를 전제하는 불균형을 강화한다. 이 불균형은 직업교육이 기능적 성취를 넘어 삶과 노동의 관계를 해석하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근본 질문을 후경화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에서 취업률, 충원율, 자격 취득률과 같은 성과 지표는 결과를 설명하는 도구를 넘어 정책의 정당성과 학교 운영의 방향을 규율하는 핵심 기제로 기능한다. 또한 우수 사례의 제시, 단계화된 절차, 체크리스트, 보고 및 증빙 중심의 문서 체계는 교육을 가치 판단의 문제라기보다 산출 관리의 문제로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교육 활동은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정렬되고, 학교는 교육적 선택의 다양성보다 감사 가능한 형태의 결과물을 생산하도록 제도적 압력을 받는다.
성과주의와 감사 문화는 직업계고 재구조화를 교육과정의 의미 재구성이 아니라 성과 관리로 수렴시키는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 그 결과 학교 현장은 혁신의 내실보다 증빙의 완결성에 유리한 활동을 선호하게 되며, 교육의 본질적 질문인 무엇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은 점차 삭제된다. 본 연구는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이 교육을 학습성과의 언어로 대체(학습화)하는 방식으로 목적에 대한 판단 가능성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은 학령인구 감소, 산업 변화, 인력 미스매치 등을 위기로 호출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표준화, 절차화, 컨설팅, 관리 체계를 강조한다. 이때 교육의 불확실성은 학생이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과 세계를 재구성하는 조건이라기보다 제거해야 할 실패 위험으로 재규정된다. 결과적으로 학생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을 구성하는 주체라기보다 학교가 설계한 안전한 경로를 따라 성과를 달성해야 하는 관리된 대상으로 구성되기 쉽다.
리스크 관리 중심의 교육은 단기 성과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학생을 삶과 노동의 의미를 스스로 구성하는 주체로 성장시키는 데에는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 비에스타의 관점에서 교육은 본래 ‘아름다운 위험’을 내포하며, 그 위험을 제거하려는 통치 합리성이 강화될수록 주체화의 조건은 축소된다. 본 연구는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이 바로 그 축소의 경로를 제도적 언어로 정당화·정상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의 편향성(자격화·사회화 우선), 학습화의 강화(성과·증빙 중심), 위험의 리스크화(불확실성 제거)는 우연한 문장 선택이 아니라 정책 문서가 작동하는 제도적 환경과 정당화 규칙 즉, 성과를 산출하고 증명해야 한다는 통치 합리성 속에서 구조적으로 생성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선행연구가 재구조화를 주로 효과성(취업률·충원률·산학연계), 운영 모델, NCS 적합성의 관점에서 기술·평가해 온 것과 달리 본 연구는 직업계고 교육 목적(자격화·사회화·주체화)의 판단이 어떻게 후경화되는지(학습화)와 주체화가 어떻게 축소되는지(‘아름다운 위험의 리스크화’)를 이론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차별적 의미를 갖는다.
본 연구가 확인한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의 특징은 학교의 외형과 제도는 정교해지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위해 가르치는가라는 교육 목적의 질문은 상대적으로 비워져 있다는 점이다. 이 빈 중심은 공적 문서가 교육의 목적 논쟁을 열어두기보다 산업 수요, 인력 미스매치, 적응력 같은 외부 조건을 문제로 학과 개편, 기자재 확충, 산학연계, 표준화 절차를 해결로 묶어 제시하는 정당화 구조를 통해 강화된다. 학과 개편, 기자재 확충, 산업 연계, 표준화된 운영 절차는 모두 더 나은 직업교육을 표방하지만, 교육의 핵심이 산업 수요에 부합하는가로 환원될 때 직업계고 재구조화는 목적 판단의 공백이 재생산한다. 비에스타의 관점에서 이는 교육이 무엇을 성취했는가의 언어로 번역될 때(학습화), 교육의 목적 판단(자격화, 사회화, 주체화의 균형)이 정책적 기술로 대체되는 전형적 양상이다. 산업 수요 맞춤은 직업교육이 고려해야 할 중요한 조건이지만, 그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직업교육의 정당성은 산업을 넘어선 인간의 성장, 시민적 책임, 노동의 윤리와 같은 가치와 결합될 때 확보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직업계고 재구조화는 물리적·제도적 업그레이드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목적(자격화·사회화·주체화)의 균형을 다시 묻는 교육학적 재구조화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선행연구는 직업계고 재구조화를 현장 적합성 제고, 교육과정 고도화, 산학협력 강화와 같은 기능적 개선의 서사로 설명하거나, 성공 요인을 운영 모델(절차, 프로그램, 지원체계)로 정리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에 비해 본 연구는 개선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개선이 어떤 목적 판단의 공백 위에서 정당화되는지를 드러냄으로써 교육을 둘러싼 목적의 질문이 어떻게 비워지는지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을 교육학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빈 중심의 형성은 2장에서 논의한 비에스타의 교육 목적(자격화, 사회화, 주체화)과 학습화 관점에서 정책 문서가 목적 판단의 영역을 성과, 절차의 언어로 대체하면서 교육 목적의 균형을 후경화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 속 자기주도성은 대체로 취업 경쟁에서의 성공, 즉 성과 경로의 효율적 수행을 의미한다. 이 결과의 이유는 문서가 불확실성을 감내할 교육의 조건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위험으로 전제하고, 그 위험을 줄이는 방식으로 학생과 교사의 역할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에스타가 말하는 주체화는 성과를 더 잘 내는 학습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자신 사이에서 판단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등장하는 경험을 포함한다. 직업교육 맥락에서 이는 부당한 노동 관행, 안전과 권리의 문제, 조직 내 위계와 차별, 기술 변화가 초래하는 불평등을 마주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적 역량까지 포괄한다. 결국 직업교육은 기능인을 넘어 민주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는 공적 가치와 맞닿아 있으며, 주체화를 주변화하는 재구조화는 직업교육의 공공성을 약화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본 연구는 관리된 주체가 오히려 직업교육의 목적을 협소화하는 역설을 드러내며, 주체화의 복원을 민주적 직업교육의 핵심 과제로 제기한다.
선행연구에서는 직업계고 학생의 자기주도성이나 진로역량을 주로 취업 가능성과 연계하여 논의해 왔다. 본 연구의 의미는 같은 주체성 어휘가 문서에서 어떻게 성과 경로 정렬로 축소되는지, 주체화가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성과 체제를 원활히 작동시키는 태도로 재명명되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해명하는 데 있다. 이는 주체화를 결과 변수로 측정하거나 프로그램 효과로 환원하는 접근을 넘어 주체화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판단의 여지, 중단의 가능성, 위험을 감내하는 교육적 공간)을 정책 담론 수준에서 어떻게 약화시키는지 보여준다.
관리된 주체의 역설은 비에스타의 주체화 개념과 ‘아름다운 위험’ 논의에 비추어, 교육이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만남과 중단의 조건을 축소할수록 주체성이 성과 경로 정렬의 태도로 번역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성과 지표는 교육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지만 교육의 전부를 대표할 수는 없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이 보여주듯 성과 지표와 증빙 체계가 강화될수록 학교는 숫자 달성에 유리한 활동을 선택하게 되고, 교사의 판단은 절차와 매뉴얼의 하위 기능으로 밀려난다. 이 양상은 단지 행정 부담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이 학습성과의 관리로 번역되는 학습화의 심화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요구되는 전환은 행정적 책무성에서 교육적 책무성으로의 개념 재정의이다. 교육적 책무성은 지표의 충족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에 응답하는 책임이며, 교사가 학생의 경험을 해석하고 교육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건을 포함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가 진정한 혁신이 되기 위해서는 학교가 증빙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에 응답하는 교육 공동체로 기능하도록 운영 조건을 재설계해야 한다.
선행연구에서는 성과지표를 정책 성과 확인이나 운영 개선 도구로 취급하면서도 지표가 교육의 정당성을 대체하는 순간 발생하는 문제를 충분히 전면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 포착되었다. 본 연구는 성과주의, 감사문화가 단지 평가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목적 구성을 바꾸는 담론적 장치로 작동한다는 점을 분명히 제시한다. 따라서 본 연구의 기여는 지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지표가 교육적 판단을 대체하지 않도록 교육적 책무성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하는 데 있다.
성과주의, 감사문화가 교육적 책무성을 잠식하는 문제는 학습화와 성과주의, 감사 가능성 논의의 연장선에서 교육의 정당화가 가치판단에서 증빙 가능한 산출로 이동하는 담론적 조건을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의 분석 결과는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이 산업 수요에 기반한 자격화와 사회화에 편향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직업계고의 존립 근거가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데 있다는 현실적 측면을 고려할 때, 자격화를 부정하기보다는 교육의 세 가지 목적(자격화·사회화·주체화)이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며 보완될 수 있는 담론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에 본 연구의 논의 범위 내에서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첫째, 공적 문서 내 주체화의 조작적 정의와 서술 논리를 재정립해야 한다. 직업계고 재구조화 담론 분석 결과, 주체화는 취업을 위한 도구적 역량이나 성과 경로에 순응하는 태도로 축소되어 나타났다. 따라서 향후 교육과정 안내서나 지침서 등에서는 주체화를 단순한 자기주도성이 아니라, 노동 세계의 부당함에 문제를 제기하고 위험과 책임을 스스로 판단하는 시민적 존재 방식으로 명료하게 정의하고 이를 설계 원리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둘째, 우수 사례의 선정 기준과 서사 구조를 산출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행 사례집은 취업률이나 충원율 등 증빙 가능한 성과 위주로 교육을 재규정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우수 사례 서식에 교육 목적의 균형을 점검하는 항목을 도입하고, 표준화된 성공 방정식 대신 학교 현장에서 겪은 교육학적 고민과 시행착오, 그리고 학생의 주체적 성장을 보여주는 질적 서사가 포함되도록 문서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셋째, 성과 지표가 교육적 판단을 잠식하지 않도록 담론적 여백을 허용해야 한다. 감사 문화와 리스크 관리 중심의 언어는 교육 현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 규정하며 교사와 학생의 주체적 자리를 위축시킨다. 따라서 직업계고 재구조화 관련 정책 문서들은 모든 활동을 수치로 증빙하도록 압박하기보다, 교사가 학생의 맥락에 맞춰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아름다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재량을 인정하는 유연한 언어 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