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
20세기 전반 미국 초등과학교육은 자연 현상에 대한 관찰과 기술을 중심으로 한 교수 관행에서 학습자의 경험과 사고 과정을 조직하는 교육으로 점진적으로 전환되는 흐름을 보였다(Underhill, 1941). 이러한 전환은 과학을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사고의 방식으로 이해한 듀이의 경험 철학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었다(Dewey, 1916). 듀이는 학습을 외부 지식을 전달받는 과정이 아니라 문제 상황에서 출발하여 탐색과 반성을 거쳐 경험이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관점은 과학 학습의 성격 규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Dewey, 1938). 이에 따라 초등과학교육에서는 관찰·실험·사고를 분리된 활동으로 다루기보다 하나의 연속적인 경험으로 조직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Underhill, 1941).
한국 교육에서 듀이식 탐구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이전에도 아동의 감각과 경험을 중시하는 교육 사조는 이미 부분적으로 수용되고 있었다(이길상, 2003). 근대 초기 한국 교육에서 페스탈로치의 직관 교수와 사물 중심 학습이 일본을 경유하여 소개되었으며 이는 이후 Nature-Study 수용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박다혜, 2015). 이러한 흐름은 해방 이전부터 자연에 대한 직접 관찰과 경험을 강조하는 교육관이 일정 부분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해방 이후 교육은 민주국가 건설과 민주 시민 양성의 핵심 영역으로 인식되었고 오천석을 중심으로 한 새교육운동 교육자들은 듀이의 교육철학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경험 중심·탐구 중심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김종준, 2022; 오성철, 2017; 이윤미, 2024). 오천석은 교육을 민주주의의 실천 과정으로 이해하였으며 교과 학습 역시 학습자의 경험과 사고를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이윤미, 2024). 이러한 진보주의 교육 담론은 교수요목기 교육 정책과 결합하며 교과 편성 전반에서 비교적 실험적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형성하였다(국성하, 2014). 그러나 정부 수립 이후 초대 문교부 장관으로 임명된 안호상은 민족주의 교육을 지향하였고 이에 새교육운동은 교육적 전환점을 맞이한다(김종준, 2022; 오성철, 2014; 이윤미, 2017).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교육운동 교육자들은 미국식 진보주의를 그대로 도입하기보다 교육과정 개편과 교과서 편찬을 통해 핵심 요소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전략을 취하였다(강일국, 2002, 2009).
이와 같이 새교육운동은 해방이라는 시대의 대전환점에서 우리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이끌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그에 따라 사회과에서는 민주 시민 교육이라는 교과 성격과 맞물려 교육과정과 교과서 형성 과정을 다룬 연구가 다수 이루어졌다(박남수, 1999; 이진석, 2003; 차조일 외, 2012). 반면 과학교육에서는 교육과정의 역사에 관한 연구가 다수 축적되었으며(고연숙, 김효남, 2016; 임용우, 김영수, 2013), 해방 이후 과학교육에서 Nature-Study를 중심으로 경험 중심 교육의 배경이 논의된 바 있으나(박다혜, 2015, 2025), 교수요목기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듀이식 탐구가 어떻게 도입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한 연구는 제한적이었다.
이에 본 연구는 새교육운동의 주요 특징이 교수요목기 『과학 공부』 교과서의 구성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분석하여 해방 직후 과학교육이 교과서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새교육운동을 어떤 양상으로 수용하였는지를 밝히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이를 통해 앞으로의 탐구 관련 과학교육사 연구에 역사적 기틀을 제공하고자 한다.
Ⅱ. 연구 방법
본 연구는 문헌 분석과 교과서 분석을 결합한 질적 연구이다. 연구는 이론적 맥락 분석과 교과서 비교 분석의 두 단계로 진행된다.
본 연구의 연구 대상은 교과서와 교육 잡지 기고글이라는 두 범주로 구성된다. 먼저, 일제강점기 말기에 발간된 『初等理科』(4~6학년) 교과서와 교수요목기에 발간된 『과학 공부』(4~6학년) 교과서, 같은 시기 미국 초등학교에서 사용된 과학 교과서 『Discovering our world』(book one–three)이다. 『초등이과』는 광복 전후 시기 초등 과학 교과서의 내용 조직과 서술 방식의 변화를 비교하기 위한 것이고 『Discovering our world』는 『과학 공부』의 단원 구성 및 삽화와의 비교를 통해 교수요목기 과학교육에서 나타난 진보주의 교육사상의 수용 양상을 분석하기 위한 기준 텍스트로 설정하였다.
아울러 1940년대 후반 한국에서 발간된 교육 잡지 『새교육』과 『조선교육』에 수록된 과학교육 관련 글을 함께 분석 대상으로 포함하였다. 이는 당시 새교육운동에서 과학교육이 어떠한 교육관과 방향성을 지향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새교육』 잡지는 1948년 7월 조선교육연합회(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창간한 교육 전문 월간지로(한국학중앙연구원, n.d.), 광복 이후 새교육운동을 대표하는 교육 잡지이다(남호엽, 2011). 『조선교육』은 1946년 8월 ‘민주교육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해 이후 ‘조선교육연구회’로 개칭한 단체에서 펴낸 잡지로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보수적 성향과 민주주의 교육을 강조하는 ‘새교육 계열’의 성향을 모두 아우른다는 평가를 받는 잡지이다(남호엽, 2011).
따라서 새교육운동에서 과학교육이 어떤 방향을 추구했는지 1940년대 후반 이 두 잡지에 실린 과학교육 관련 글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표 2).
일제강점기, 1940년대 우리나라 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https://www.nl.go.kr) 온라인 자료 검색을 통해 수집했고 미국 교과서는 Internet Archive(https://archive.org)를 통해 확보했다.
자료 분석은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 첫째, 새교육운동과 진보주의 교육사상에서 강조된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이론적 맥락을 정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습자의 경험, 질문 제기, 관찰과 탐구를 주요 분석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둘째, 이러한 분석 기준에 따라 『초등이과』와 『과학 공부』의 단원 구성, 도입부 서술, 삽화, 탐구 활동 제시 방식을 비교 분석하였다. 특히 단원 제목의 형식, 질문의 배열 방식, 학습자 경험의 활용, 질문–실험–정리 구조의 제시 여부를 중심으로 분석을 수행하였다. 또한 『Discovering our world』와의 비교를 통해 교수요목기 과학 교과서가 진보주의 과학교육의 내용 조직과 표현 방식을 어떠한 방식으로 수용했는지를 검토하였다.
연구 결과에서 원문 표기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따랐다. 한글 표기는 현재와 맞춤법, 띄어쓰기가 다른 경우가 많아 최대한 원문 그대로 사용하되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에만 현재 문법에 맞게 표기했다. 그로 인해 직접 인용의 경우 ‘두째, 여덜째’ 등 현재 표기와 다른 부분도 실려 있을 뿐 아니라 ‘여덜째’와 ‘여덟째’와 같이 동시기 교과서에도 원본에 따라 다른 표기가 존재한다(문교부, 1952, 1953b).
국한문혼용체의 경우에는 한자는 한글로 바꾸되 나머지는 원문과 동일하게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經驗은 그構成된 觀念을 學習者에게 理解納得 할수있는것으로 할뿐 아니라 새로운 經驗을 說明하는데 不可缺한 要素가 된다(한병조, 1948a).’는 ‘경험은 그구성된 관념을 학습자에게 이해 납득 할 수 있는 것으로 할뿐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설명하는데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한병조, 1948a)’와 같이 현재 독자들이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자만 한글로 변경해서 제시하는 방법으로 수정을 최소화하였다.
마지막으로 일본어, 영어로 된 원문은 최대한 원래의 뜻을 살리는 범위 내에서 번역해 현재의 어법에 맞게 표기하였다.
Ⅲ. 연구 결과 및 논의
『과학 공부』의 내용 구성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발간한 『초등이과』와 『이과교육의 신진로』 (윤재천, 1947)를 통해 과학 교과서 편찬을 맡았다고 밝힌 윤재천이 과학 교재 구성을 참고하기 위해 직접 번역했던 『Discovering our world』의 4~6학년 전체 목차를 비교했다(표 3, 4). 이때 학년이 아니라 ‘one, two, three’로 표시된 『Discovering our world』를 4~6학년 교재와 비교한 것은 『이과교육의 신진로』 (윤재천, 1947)에 제시된 내용을 따랐다.
일제강점기 『초등이과』와 교수요목기 『과학 공부』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단원 조직의 기준에 있다. 『초등이과』는 계절의 순환과 일상적 생활 장면을 따라 단원이 배열되어 있으며 학습 대상은 자연 현상이나 학습자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과 활동이다. ‘봄의 정원, 여름의 위생, 가을의 밭, 겨울의 생활’과 같은 단원 구성은 자연을 과학적 개념 체계로 조직하기보다 생활의 흐름 속에서 경험하도록 배열된 방식이다(朝鮮總督府, 1943). 이는 자연을 교과 내용으로 분절하기보다는 아동의 생활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는 구성으로서 계절 중심 조직이라는 특징을 보이며 이러한 특징은 학년이 낮을수록 두드러진다(박다혜, 2025). 또한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과학 기술을 중시하고 직업과와 이과의 연계를 강조하던 당시 교육계의 흐름에 맞게 학년이 높아질수록 ‘비행기, 전신기’ 등의 주제가 등장하게 된다(박다혜, 2025).
반면 『과학 공부』는 동일한 생물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루면서도 질문 형식의 단원 제목을 통해 학습 내용을 문제 중심으로 조직되었다(문교부, 1953a, 1953c, 1953e). 각 학년의 첫 단원이 모두 생명 현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후 물리 지구과학 영역으로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보인다. 이러한 구성은 학년 간 계열성과 반복성을 의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동일 주제를 점차 다른 관점에서 다루도록 배열한다는 점에서 초등이과의 계절 순환형 조직과 구별된다. 또한 단원 제목 자체가 ‘어떻게’라는 질문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학습 내용을 서술적으로 제시하기보다 사고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학 공부』의 단원 구성은 『Discovering our world』와 거의 동일하다(표 4). 『과학 공부』의 단원은 학년별로 모두 8개인데 그중 다수가 『Discovering our world』와 같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4학년은 ‘자석은 어떻게 일하는가?’를 비롯해 총 6개 단원, 5학년은 ‘생물은 어떻게 먹이를 얻는가?’ 등 5개 단원, 6학년은 ‘소리는 어떻게 생기는가?’ 등 3개 단원이 동일 학년 『Discovering our world』와 같았다. 학년은 다르지만 『과학 공부』 5학년 ‘전기는 우리를 어떻게 돕는가?’와 ‘왜 나는 내 몸을 조심해야 하는가?’ 단원은 윤재천(1947)이 6학년 교재로 제시한 『Discovering our world three』에 반복되고 있어 4~6학년 『과학 공부』의 총 24개 단원 중 16개 단원 제목이 『Discovering our world』와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학 공부』는 질문 형식의 단원 아래 또다시 질문 형식의 소단원이 제시된 특징을 보이는데 이와 같은 구성 또한 『Discovering our world』와 동일하고 그 내용도 유사하다(표 5). 『과학 공부』에서 이와 같은 형식을 취하는 것은 교재가 학생의 환경이나 심신의 발달을 고려하여 구성하고자 했던 당시 새교육운동의 흐름과 동일하다(남태경, 1949a, 1949b).
자연계에 관한 사물현상을 생도 심신의 발달 생도교양의 견지에서 고찰하여 적당히 선택배열하고... (남태경, 1949b, p. 36)
이와 같은 교육적 사상에 따라 학생의 수준을 고려한 단계적인 질문으로 소단원을 구성한 것이다. 또 문제 중심 단원 조직은 학습자를 지식 전달의 대상이 아니라 사고 활동의 주체로 설정하려는 교육관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새교육운동에서 강조한 문제 해결 중심 학습, 사고 중심 학습의 관점이 교수요목기 과학 교과서의 단원 구조 차원에서 구현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과학 공부』의 삽화는 학생들의 경험을 반영하거나 실험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에 주로 사용되었다. 『과학 공부』에 수록된 삽화는 교과서 내용 이해를 돕는 보조 자료의 역할을 넘어 학습자의 경험과 관찰 활동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림 1]과 같이 삽화에는 실험 도구나 관찰 대상뿐 아니라 이를 직접 관찰하고 조작하는 학생의 모습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이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결과 중심 삽화와는 달리 학습자의 활동과 관찰 과정을 강조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삽화의 특징은 『초등이과』와 비교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그림 2). 『초등이과』의 삽화가 주로 대상이나 결과를 중심으로 제시된 반면, 『과학 공부』의 삽화는 학습자가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장면을 포함함으로써 학습자의 존재를 교과서 서사 속에 적극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이는 학습자를 교과서 밖의 관찰자가 아니라 학습 과정 내부의 주체로 설정하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과학 공부』의 삽화는 『Discovering our world』의 삽화와 내용 및 표현 방식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그림 3]에 제시된 바다 위의 배 삽화나 [그림 4]의 월별 낮과 밤의 길이를 나타낸 도표는 동일한 개념을 거의 같은 시각적 구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교수요목기 과학 교과서가 단원 구성뿐 아니라 시각 자료 활용 방식에서도 미국 진보주의 과학교육 교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보여준다. 당시 미국은 1930년대 이후 듀이의 진보주의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Underhill, 1941). 그에 따라 저술된 미국의 교과서를 적극 반영한 『과학 공부』는 당시 미국의 진보주의를 통해 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이바지하고자 했던 새교육운동의 의도를 보여준다.
이처럼 『과학 공부』의 삽화는 자연 현상을 추상적 개념으로 제시하기보다 학습자가 자신의 경험 세계와 연결하여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경험을 학습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했던 새교육운동의 교육관이 교과서의 시각적 구성에까지 확장되어 나타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진보주의 교육에서 학습자의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한 학습의 출발점이 된다. 한병조(1948a)의 글처럼 당시 새교육운동에서도 학습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교과 내용의 구성을 강조했다.
경험은 그 구성된 관념을 학습자에게 이해 납득 할 수 있는 것으로 할 뿐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설명하는데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한병조, 1948a, p. 44).
이는 교재 구성의 도입부에서 잘 드러난다. 『초등이과 제6학년』의 ‘아주까리’ 단원의 도입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경제적 효용과 전쟁 도구로서의 쓰임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 비해 『과학 공부 6-2』와 『Discovering our world three』의 ‘소리는 어떻게 생기는가?’에서는 학생들의 일상생활 속 경험을 이용해 학습을 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약에 사용하는 아주까리기름은 아주까리의 씨에서 짜낸 것이다. 아주까리기름은 또한 비행기의 기계용 기름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빈 땅을 이용하여 아주까리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朝鮮總督府, 1944b, p. 24)
여러분 중에는 풍물놀이나 음악회에 가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 때에 여러 가지 소리가 모두 한 번에 나는데, 각 소리가 다 다르게 들린다. (문교부, 1952, p. 65)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조율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소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Beauchamp et al., 1940c, p. 124)
이러한 도입 방식은 학습 내용을 국가적·사회적 목적에 종속시키기보다 학습자의 생활 세계를 학습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 교육관의 변화를 반영한다. 일상 경험을 기반으로 한 도입은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동시에 이후 제시되는 과학 개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지적 발판으로 기능한다. 이는 학습자의 경험을 학습 내용과 연결하는 새교육운동의 기본 원리가 교과서 서술에 반영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림 5]에 제시된 『과학 공부 5-2』 ‘생물은 어떻게 기후 변화에 순응하는가?’ 단원의 시작을 보면 학생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직접적인 관찰을 유도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과학 공부』에서는 이전 학년에서 학습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새로운 학습과 연결하기도 한다. “우리는 4학년 때에 … 배웠다”와 같은 표현은 단원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이는 학습자의 누적된 학습 경험을 새로운 학습의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구성은 학습을 단절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연속적인 경험의 확장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4학년 때에 화석 공부를 한 일이 있다(문교부, 1952, p. 26).
우리는 4학년에서, 생물은 그 얼개에 따라 몇 무리로 나뉘어 있음을 배웠다(문교부, 1952, p. 29).
아울러 단원 학습 이후 제시되는 ‘우리가 할 일’과 같은 구성 요소는 학습 내용을 일상생활 속 실천으로 확장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이는 교과서 학습을 교실 안에 국한하지 않고 학습자의 생활 세계로 연결하려는 새교육운동의 지향이 교과서 차원에서 구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4. 소리굽쇠를 막대로 때려서 소리가 나거든, 이것을 물에 넣어 보자.
5. 박달나무 같은 여문 나무로 목금을 만들어 보자. 또 수수깡으로 그림과 같은 목금을 만들어, 그 소리를 들어 보자. 이것도 훌륭한 악기가 된다. (문교부, 1952, pp. 75-76)
요컨대 교수요목기 『과학 공부』에 나타난 단원 도입과 학습 전개 방식은 학습자의 경험을 학습의 출발점이자 조직 원리로 삼고자 한 새교육운동의 교육관이 교과서 서술에 구체적으로 반영된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초등이과』가 국가적·사회적 목적과 결부된 효용 중심의 설명을 통해 학습 내용을 제시한 데 비해 『과학 공부』는 학생들의 일상적 경험과 친숙한 생활 장면에서 질문을 제기하고 이를 관찰과 탐구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학습을 구성하고 있다. 또한 이전 학년의 학습 경험을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단원 학습 이후의 활동을 생활 세계로 연결하려는 구성은 학습을 단절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연속적인 경험의 확장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들은 학습자의 경험이 개념 이해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조직하고 설명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인식이 교과서 구성 전반에 반영되었음을 시사하며 교수요목기 과학교육에서 새교육운동의 경험 중심 교육관이 내용 조직과 서술 방식 차원에서 수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과학 공부』의 교재 구성에서 확인되는 또 하나의 핵심적인 특징은 질문–실험–정리의 과정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리는 어떻게 생기는가?’ 단원에서는 소리에 대한 학생의 경험으로 단원을 도입한 뒤 ‘소리는 어떤 때에 생길까?’라는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가설을 설정해 보도록 유도하고 여러 차례의 실험을 반복하도록 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도록 한다(문교부, 1952). 마지막으로 자신이 발견한 것을 스스로 공책에 적음으로써 학생이 자신의 실험 결과와 생각을 정리하도록 구성했다.
소리는 어떤 때에 생길가?
〔실험〕 1. 쇠로 만든 자를 책상 위에 놓고 자의 반 쯤이 책상밖에 나오게 한 다음, 한 손으로 자를 책상에 꼭 누르고, 한 손으로 자의 다른 끝을 조금 눌렀다가 놓아 보아라.
〔실험〕 2. 한 아이는 고무줄을 두 손으로 당겨서 팽팽하게 하고, 한 아이는 이 고무줄을 손가락으로 퉁겨 보아라.
〔실험〕 3. 놋대접을 젓가락으로 두드려 보아라. 다음에 놋대접에 물을 가뜩 담고 두드려 보아라. 이 때에 물의 표면을 잘 살펴보자.
O 위의 몇 가지 실험에서 여러분이 발견한 것을 공책에 적어 보자. (문교부, 1952, pp. 55-57)
이 과정에서 학생은 교사가 제시한 결론을 암기하는 존재가 아니라 질문에 대한 답을 탐구 과정을 통해 구성하는 주체로 설정된다. 특히 동일한 질문에 대해 여러 실험을 반복하도록 구성한 점은 단일 실험 결과에 의존하지 않고 반복과 비교를 통해 결론에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과학적 탐구에서의 신중한 관찰과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관을 반영한다.
이와 같은 교재 구성은 가설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에서 당시 새교육운동기에 중요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동일 글에서 ‘가설 제안을 초등학교 교사들이 등한시한다.’는 내용도 함께 다룬 것을 보아 『과학 공부』에 제시된 탐구 과정이 실제 수업에서 얼마나 충실히 구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상 국민학교에는 아동이 자기가 만든 가설을 제안하고 이것을 검토 심의할 기회가 있도록 구비되어야 한다. 아동에게 기회를 주며 문제해결상의 가설을 제안할 것은 사실인대 국민학교선생은 이것을 등한시 하였다. (한병조, 1948b, p. 117)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교재에 직접적으로 제시된 “과학자는 … 현상을 현상 그대로 보려고 힘쓴다.”는 서술은 정답 암기 중심 학습에서 벗어나 탐구 과정과 과학적 태도를 중시하려는 교육적 지향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과학 공부』의 질문–실험–정리 구조는 교수요목기 과학교육이 지향한 이상과 방향을 교과서 차원에서 명확히 드러내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과학 공부』 교재 내에서도 탐구에 대한 바른 태도를 직접 언급한 부분이 존재한다. 아래와 같이 교사가 제시하는 정답을 외우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깊이 있게 탐구하는 태도를 기르고자 했던 당시의 교육 기조를 확인할 수 있다.
과학자는, 한 실험을 할 때에는, 그 실험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현상 그대로 하나도 빼지 않고 보려고 힘쓴다. 그리고 같은 실험을 여러 번 거듭하여 이만하면 틀림이 없다고 믿어 질 때에 비로소 어떻다는 맺음말(결론)을 내린다. 우리도 이러한 태도를 길러야 한다(문교부, 1952, p. 67).
이와 같은 교재 구성은 가설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당대 새교육운동 관련 논의와 긴밀히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아래의 글을 통해 과학 학습을 정답 암기의 과정이 아니라 반복 관찰과 신중한 검토를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탐구 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교육관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그런고로 필자는 무엇보다도 저 수험 본 위의 교육을 단호 배격하는 동시에 이과 교육에 의하여 극력 과학적 정신-비판적 태도로 물사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 즉격물치지의 정신-이 발양 되도록 기방법 조치의 개선을 강조 역설하는 바이다(최규남, 1948, p. 26).
이러한 점에서 『과학 공부』에 나타난 질문–실험–정리 구조는 교수요목기 과학교육이 지향한 탐구 중심 교육의 이상과 방향을 교과서 차원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제시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즉, 『과학 공부』는 가설 설정과 검증이 충분히 실천되지 못한 현실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한병조, 1948b), 탐구 과정과 과학적 태도를 교육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이를 교재 구성에 반영하려 했던 당시 새교육운동의 지향을 분명히 드러내는 자료라 할 수 있다.
Ⅳ. 결론 및 제언
본 연구는 교수요목기 초등 과학 교과서 『과학 공부』를 중심으로 새교육운동과 진보주의 교육사상이 초등 과학교육에 어떠한 방식으로 수용되었는지를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단원 구성, 삽화, 학습 내용 도입과 전개 방식, 탐구 활동 구성이라는 네 가지 측면에서 새교육운동의 핵심 원리가 교과서에 반영되었음을 보여준다.
첫째, 단원 구성 측면에서 『과학 공부』는 질문 형식의 단원 제목과 단계적인 소단원 배열을 통해 학습 내용을 문제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이는 자연 현상을 분절된 지식 체계로 제시하기보다 학습자가 질문을 따라 사고를 전개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사고 중심·문제 해결 중심 학습을 강조한 새교육운동의 교육관이 교과서의 구조적 수준에서 구현된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동일한 주제를 학년별로 반복·확장하는 구성은 학습자의 발달과 경험의 누적을 고려한 진보주의적 교육과정 조직 원리를 반영한다.
둘째, 삽화 구성 측면에서 『과학 공부』는 학습자의 관찰과 실험 활동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삽화에는 관찰 대상뿐 아니라 이를 직접 관찰하고 조작하는 학생의 모습이 함께 제시되어 있으며 이는 학습자를 지식의 수용자가 아니라 탐구의 주체로 위치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미국 진보주의 과학교육 교재의 영향을 반영한 것으로 새교육운동에서 강조한 경험 중심·활동 중심 학습관이 교과서의 시각적 구성에까지 확장되어 나타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학습 내용의 도입과 전개 방식에서 『과학 공부』는 학습자의 일상적 경험을 학습의 출발점으로 삼고 이전 학년의 학습 경험을 반복적으로 호출하여 새로운 학습과 연결하고 있었다. 이는 학습을 단절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연속적인 경험의 확장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교육관을 반영한 것이다. 단원 도입부와 ‘우리가 할 일’과 같은 구성 요소는 학습 내용을 생활 세계로 확장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며 이는 새교육운동에서 강조한 교육과 생활의 연속성 원리가 교과서 서술에 구체적으로 구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넷째, 탐구 활동 구성 측면에서 『과학 공부』는 질문–실험–정리 구조를 통해 과학 학습을 탐구 과정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반복적인 실험과 관찰을 통해 학생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구성된 활동은 과학적 사고와 태도를 중시한 진보주의 교육관을 반영한다. 이는 과학을 정답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사고의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새교육운동의 지향이 교과서 차원에서 분명히 드러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종합하면, 교수요목기 『과학 공부』에 나타난 새교육운동의 수용은 특정 교수 방법의 도입에 그치지 않고 교육과정의 조직 원리와 교과서 서술 방식 전반에 걸쳐 학습자의 경험과 사고를 중심에 두는 교육관이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는 해방 직후 과학교육에서 새교육운동이 교육과정과 교과서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수용되었음을 밝힘으로써 이후 한국 과학교육에서 탐구 중심·경험 중심 교육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