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최근 국가교육과정은 미래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 함양에 관심을 가져왔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으로 제시한 ‘자주적인 사람’에 이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자기주도적인 사람’으로 비전을 확장하며 ‘학생 주도성’(Student Agency)을 강조하고 있다(교육부, 2015; 교육부, 2022). 학생이 자신과 세계에 대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학습의 설계 및 실행 전반에 의도적으로 관여하는 등 학습 주체로서의 역할을 책임감 있게 실행하는 실천 능력으로 정의되는 학습자 주도성(편지윤, 정혜승, 2023)은 미래 사회에 필수적인 역량이자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학생 주도성을 기르는 방법의 하나로 과정중심평가가 강조되고 있으며(교육부, 2022), 이를 위한 실천 전략들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권영부, 2024). 평가의 목적을 학습 결과를 서열화하는데 두기보다, 학습 과정을 도우며 학습으로서의 평가(Assessment as Learning)를 실천하는데 둔다면 학습자의 자기 주도성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Earl, 2013).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학생 자기평가(Student Self-Assessment)는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 과정을 성찰하게 하고 메타인지 능력을 기르도록 돕는 핵심적인 교육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박정, 2019; Andrade & Valtcheva, 2009). 교사가 주도하던 평가 권한을 학생과 공유함으로써, 학생 스스로 학습의 목표를 확인하고 자신의 성취 수준을 점검하며 학습을 개선해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Boud, 2003). 또한, 학생 자기평가는 자기조절학습의 주요 요소로서 학생을 자기 학습의 주인으로 만들어 형성적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Black & Wiliam, 2009).
단기적 성취 확인을 넘어 평생 학습자로서의 기초 역량을 닦는 지속 가능한 평가(Sustainable Assessment)의 관점에서도 학생 자기평가는 자기 판단 역량을 함양하게 한다는 점에서 교육적 의의를 지닌다(Boud & Falchikov, 2006). 최근 국내 교육 현장에 확산되고 있는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교육과 개념 기반 교육과정(Concept-Based Curriculum) 역시 지식의 단순 암기를 넘어 개념적 이해와 전이를 목표로 하며, 이 과정에서 학습자가 자신의 사고 과정을 스스로 점검하는 능력을 핵심적으로 요구한다(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 2013; Erickson, Lanning & French, 2017). 즉, 학생 자기평가는 교육 변화의 큰 물결 아래에서 학습자를 자신의 배움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주체로 세우는 결정적 기제이다. 이러한 학생 자기평가의 실행은 교실 현장에서 더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며, 교사들에게 새로운 평가적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평가 패러다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학교 현장에서 학생 자기평가의 내실 있는 정착은 여전히 도전적인 과제로 남아있다(박민애, 손원숙, 2025; 홍소영, 2018). 교사들은 객관성과 신뢰도 확보에 대한 우려, 학생들의 평가 역량 부족,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로 인한 외적 압박과 책무성 등으로 인해 학생 자기평가 실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실행에 어려움을 겪는다(Brown & Harris, 2013). 우리나라의 경우, 초등교사들은 학생 자기평가의 교육적 가치에 공감하고 활용 가능성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실제로 자기평가의 개념과 방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박정, 이진주, 2015). 관련하여, 박정과 이진주(2015)는 초등교사들의 이해와 실천을 지원하기 위한 자기평가의 정확한 용어 정의와 실행 지침의 부재를 지적한 바 있으나, 현장의 고충은 아직도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채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학생 자기평가가 단순히 방법론의 문제를 넘어,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복합적인 맥락과 인식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더욱이 초등 교육은 중등 교육에 비해 정량적 평가에 대한 압박과 평가 공정성에 대한 요구가 상대적으로 낮아 학생 자기평가를 실천하기에 더 호의적인 여건을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Remesal, 2011).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실천이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것은 현상을 단순히 제도적 여건의 한계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주로 이루어졌던 학생 자기평가의 효과성에 대한 논의(장윤선, 2023)를 넘어, 초등교사들이 학생 자기평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재구성하며, 어떠한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탐색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담을 통해 학생 자기평가에 대한 교사의 실천 양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 문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초등교사가 자신의 교육적 신념과 교실 맥락 속에서 학생 자기평가를 어떻게 해석하고 구체화하는지 탐색한다. 두 번째, 초등교사의 학생 자기평가 실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탐색한다. 교사들이 경험하는 학생 자기평가 실천에 대한 논의는 향후 학생 자기평가의 실질적인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학습자 주도적인 평가 방안 수립을 위한 정책적·행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II. 이론적 배경
학생 자기평가(이하 자기평가)는 단순히 학생이 자신의 성적을 매기는 행위를 넘어,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 과정과 결과를 성찰하고 판단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정의된다(Boud, 1991). 구체적으로 이는 학습자가 자신의 수행 수준을 진단하고 학습 목표와 비교하여 그 간극을 확인하는 메타인지적 과정이다(Andrade & Valtcheva, 2009). 이러한 주체적 역할은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 과정을 능동적으로 통제해 나가는 구체적인 심리적 단계를 통해 실현된다. 자기평가는 자기 판단(Self-Judgment)과 자기 점검(Self-Monitoring)의 결합으로서, 학생은 자신의 학습 상태를 인지하고 새로운 개선 전략을 수립하는 자기조절학습(Self-regulated learning)을 수행하게 된다(McMillan & Hearn, 2008). 이러한 관점에서 자기평가는 학습자가 자신의 성취 기준을 내면화하고 주체적으로 배움을 이끌어가는 주도성 함양의 실천적 토대가 된다.
국내 교육 현장에서 자기평가의 위상은 교육과정의 개정과 평가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7차 교육과정에서는 수행평가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획일적인 지필평가에서 벗어나 학생의 수행 과정을 평가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자기평가는 교사 평가를 보완하는 다양한 평가 방법 중 하나로 소개되었으나, 주로 정의적 영역이나 흥미를 확인하는 보조적 수단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다(허인수, 백순근, 2000). 이후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의 평가 체제 전환을 명시하였다(교육부, 2015). 학습의 결과를 서열화하는 것보다 학습 과정에서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평가의 본질임이 강조되면서, 자기평가는 과정중심평가의 핵심 기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학생 주도성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교육부, 2022).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파악하고 학습을 주도해 나가는 역량이 중요해짐에 따라, 자기평가는 단순한 평가 방법을 넘어 ‘학습으로서의 평가’를 실현하는 필수적인 교육 활동으로 격상되었다.
이처럼 자기평가가 중요한 평가 방법으로 꼽히는 이유로는 자기평가가 학습자에게 스스로 자신의 학습 과정을 되돌아보는 자기 성찰(Self-Reflection)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인지적, 정의적 성장을 돕는다는 데 있다. 류혜영(2007)은 자기평가 활동이 학습자의 메타인지 수준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학업성취도의 향상으로 이어짐을 규명하였다. 이 학업성취도 향상 효과는 특정 교과에 국한되지 않는다. 홍소영(2018)은 메타분석을 통해 자기평가가 교과와 상관없이 학습 효과를 높이는 유효한 전략임을 규명하였으며, 구체적으로는 수학과(남형채, 류성림, 2000; 문소정, 신항균, 2020), 과학과(김석기, 2002), 사회과(박미희, 2003), 영어과(류은순, 2009; 이민지, 2020; 이주영, 2014) 및 국어 쓰기 능력(김미정, 김정환, 2007) 등 전 교과에 걸쳐 자기평가의 긍정적인 영향이 확인되었다.
류은순(2009)이 초등 영어 교육에서 자기평가가 학습 흥미나 자신감과 같은 정의적 영역에서도 유의미한 효과가 있음을 밝혔듯이 자기평가의 효과는 정의적 차원과도 연결된다. 자기평가는 학습에 대한 태도와 흥미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문소정, 신항균, 2020; 유현장, 2011; 이민지, 2020). 즉, 자기평가는 학생이 스스로 학습의 주체가 되어 성찰하고 조절하는 과정을 통해 인지적 성장을 이루고 학습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함양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평가는 학생의 학습 도착점을 명확히 측정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기존의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평가 과정 자체가 주는 교육적 효과에 관심을 가진다(Earl, 2013). 교사가 평가 기준과 요소 등을 일방적으로 설계하여 학생의 참여를 할당하는 평가 환경은 일반적인 평가의 형태로 여겨진다. 그러나 자기평가는 학생이 학습 과정 중에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요소를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수행 과정을 돌아보는 능동적 평가 경험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이 과정에서 학생이 직접 평가 요소와 루브릭 설계 과정에 참여하는 등의 적극적인 학생 중심형 평가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Andrade, 2000). 이는 학생 스스로 수행과 점검의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성찰적 사고를 함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후, 자기평가는 학생이 성과물을 제출하고 교사가 채점하여 점수화하는 형태로 마무리되지 않고, 학생의 기록 자체가 질적인 평가 결과로 다루어진다. 자기평가만의 고유한 기록 형태는 학습 과정에서 학생의 내면적 인식과 태도까지 다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자기평가는 전통적 평가와 구별되는 3가지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첫 번째, 자기평가는 일회적 행위가 아니라 학습 과정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순환적 구조를 가진다. ‘설정-수행 -점검-성찰-수정’으로 이어지는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 안에서 평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이 과정 자체가 학습이 된다(Yan & Brown, 2017). 이렇게 과정적 성찰을 강조하는 특성은 자기평가가 결과의 서열화가 아닌, 학습자의 실질적인 성장과 배움을 지원하는 형성적 평가로서 기능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두 번째, 자기평가는 점수나 등급과 같은 정량적 수치보다는, 자신의 수행에 대한 서술, 성찰 일지 등 질적 데이터의 형태를 띨 때 그 교육적 의미가 배가된다. 이는 학습일지를 활용한 자기평가 방법의 효과성에 대해 검증한 이주영(2014)의 연구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박정과 이진주(2015)는 실제 초등 교실에서 학습일지나 자기보고서와 같은 기술식 자기평가가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보고하며, 이러한 질적 자료가 학생의 사고 과정과 학습 맥락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기제임을 드러낸 바 있다. 정량적 평가가 학습 결과에 대한 단편적 정보를 제공한다면, 질적 데이터 기반의 자기평가는 학습자가 어떻게 학습했는지, 왜 그런 결과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자료들은 교사가 학생을 다각도로 이해하고 실질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토대가 된다(Andrade & Valtcheva, 2009).
세 번째, 자기평가의 본질적인 특성이자 실행의 전제 조건으로 평가의 주관성(Subjectivity)을 들 수 있다. 전통적인 평가관에서 주관성은 평가의 신뢰도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이 주관성은 학습자가 평가 기준을 스스로 이해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박정(2019)은 학습의 주체성에 근거해 학생이 스스로 의미를 구성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평가에 있어서도 학생의 평가 주관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평가는 학습자가 적극적 참여자로서 수행과 성찰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경험하고 해석하며 새로운 이해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자기평가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인 주관성은 존중받아야 하며, 학습자가 본인의 생각과 판단을 근거로 평가에 참여하는 형태가 자기평가의 자연스러운 방식이자 가치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처럼 자기평가는 기존 평가와는 구별되는 다양한 특성을 지닌다. 자기평가의 고유한 특성은 자기평가가 갖는 가치와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특수성은 교육 현장에서 자기평가에 대한 오해나 무관심을 불러올 수도 있다. 본 연구는 이상의 특성들이 학교 현장에서 충분히 발현되면서 실천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이면에 숨겨진 원인은 무엇인지 확인함으로써 자기평가가 지닌 교육적 잠재력을 학교 현장에서 온전히 발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III. 연구 방법
본 연구는 초등교사들이 학생 자기평가를 실천하는 과정과 그 기저에 작동하는 인식을 심층적으로 탐색하기 위해 질적 사례 연구 방법을 채택하여 교사들의 자기평가에 대한 경험을 수집하고자 하였다. 앞서 박정과 이진주(2015)는 189명의 초등교사를 대상으로 한 양적 연구를 통해 초등교사들이 자기평가의 가치를 높게 인식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실행하고 있다는 보편적 경향성을 규명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선행 연구가 제시한 논의를 확장하여, 수치화된 응답 이면에 존재하는 교사들의 실제적인 고민과 실천적 맥락을 심층 면담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했다. 이는 선행 연구에서 드러낸 일반적 실행 현상 이면에 숨겨진 의미의 층위를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선행 연구의 논의를 질적으로 확장하고 보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접근은 자기평가의 효과성 검증에 주력해 온 기존의 연구 경향(장윤선, 2023)에서 더 나아가 자기평가의 실천 양상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식의 갈등을 규명하여 자기평가의 현장 안착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는 초등학교 담임교사들을 면담하고, 면담 자료를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 참여자는 대구, 경기, 경북, 경남의 초등학교 교사 중 본 연구의 목적과 취지에 동의하여 면담에 참여 의사를 밝힌 교사들로 구성되었다. 면담 시 연구자의 의도가 담긴 유도 질문을 배제하였으며, 참여자들과의 대화가 더 이상 새로운 개념을 생성하지 않는 데이터 포화 상태에 이를 때까지 지속하여 총 11명의 교사가 연구에 참여하였다. 분석 단계에서는 개인적 판단을 유보하고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면담 일지를 세밀하게 기록하며 연구 과정을 지속적으로 성찰하였다. 이를 통해 연구자 반성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참여자를 선정함에 있어 연구 결과의 타당성과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사항에 유의하였다. 첫째, 근무 지역의 다양성을 고려하였다. 2022 개정 교육과정 등 국가 차원의 평가 정책이 존재하나, 구체적인 실행 지침이나 강조점은 시·도 교육청별로 상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지역 교육청의 정책적 특성이 연구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보편적인 인식과 실행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의 교사들을 포함하였다. 둘째, 교직 경력의 균형을 고려하였다. 학생 주도성 및 과정중심평가 등 최근의 교육적 변화를 교직 입문 시기부터 경험한 저경력 교사와, 기존의 평가 방식에 익숙한 상태에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한 고경력 교사 간에는 인식과 실행에 차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다양한 경력의 교사들을 선정하여 세대별, 경력별 경험의 차이와 관계없이 폭넓은 의견을 수집하고자 하였다. 셋째, 담당 학년의 분포를 고려하였다. 학생 자기평가의 활용 빈도와 양상은 학생들의 발달 단계와 교과 특성에 따라 학년별로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박정, 이진주, 2015) 따라서 특정 학년군에 편중되지 않도록 저, 중, 고학년 담당 교사를 골고루 선정하여 전 학년에 걸친 자기평가 실행의 실제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자료 수집을 위한 면담은 교사 1인당 약 30-50분 내외로 진행되었으며, 대면 면담을 원칙으로 하되, 참여자의 편의와 상황을 고려하여 필요시 원격 화상 회의 프로그램(Zoom)을 활용한 비대면 면담을 병행하였다. 면담은 2025년 10월부터 12월까지 약 3개월간 진행되었으며 하루에 1-2건의 면담을 수행한 뒤 녹음된 내용을 전사하여 분석 자료로 활용하였다. 연구 과정에서 수집된 참여자의 개인 정보와 면담 내용은 연구 목적으로만 활용됨을 안내하고 비밀 보장을 약속하였으며, 모든 참여자는 가명으로 처리하여 익명성을 확보하였다. 연구 과정에서 참여자 식별을 위해 성명 형태의 가명을 부여하였다. 이때 사용된 가명은 참여자의 실제 성명이나 인적 사항과 무관하며, 연구자의 주관적 해석이나 특정 의미가 투영되지 않도록 무작위로 선정된 성명이다. 연구 참여자의 인적 사항은 <표 1>과 같다.
자료 수집을 위해 반구조화된 질문지를 활용하여 심층 면담을 진행하였다. 면담 질문은 주로 교사 본인이 자기평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실제 교실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심층 면담은 도입-본론-마무리의 3단계로 구성하였다. 도입부에서는 라포 형성을 위한 질문을 배치하였으며 허용적이고 공감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교사들이 자기평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솔직한 인식과 고민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도록 하였다. 본론에서는 자기평가에 대한 인식과 구체적 실천 양상에 대한 질문을 배치하였으며 참여자의 답변에 따라 유연하게 추가 질문을 이어가며 심층적인 답변을 이끌어냈다. 추가 질문은 인식과 실천 간의 간극을 확인하는 질문, 실천 중 겪는 갈등이나 한계에 대한 질문 등이 있었다. 또한 먼저 진행된 면담 중에 발견되었던 교사의 인식이 다음 면담에서도 드러나는 경우,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와 이유 등에 대해 추가 질문하며 심도 있는 면담을 진행하였다. 더불어 다른 참여자들과 구분되는 구체적인 실행 모습을 발견했을 경우에도 실행 이유에 대해 추가 질문하였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자기평가에 대해 자유로운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열린 질문을 제시하였으며, 면담 과정 중 언급한 부분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수집된 면담 자료의 분석은 전사된 텍스트를 반복적으로 정독하며 의미 있는 진술을 추출하고, 이를 코딩(coding)하여 범주화하는 질적 분석 절차를 따랐다. 초기 분석 단계에서는 최초 면담에 참여한 4명의 면담 녹음 자료를 전사한 후, 교사들의 인식과 실행 양상이 드러나는 핵심적인 구절이나 문장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겼다. 주로 드러난 실행 양상은 자기평가를 단독으로 사용하지 않는 모습, 비슷한 방법으로 자기평가를 시행하는 모습, 자기평가 결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모습 등이었다. 다음으로, 선별된 자료들을 서로 간의 관계성을 고려하여 귀납적으로 범주화하고 해당 실천의 원인이 되는 교사의 인식을 확인하는 데 집중하였다. 이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이후 이루어지는 모든 심층 면담에서 해당 내용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인터뷰 종료 후 심층 면담 자료 전체를 통합적으로 살펴보며 담당 학년이나 교직 경력, 근무 지역 등에 상관없이 공통으로 드러나는 자기평가에 대한 교사의 경험을 포착하고자 하였다. 특히 개별 사례에서 나타나는 특수성과 전체 참여자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경향성을 비교·분석함으로써, 자기평가에 대한 초등교사들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제시하고 경험의 본질적 구조를 탐색하고자 노력하였다. 교사의 자기평가 실천 양상을 먼저 제시한 후, 그 실천 양상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추론하여 Ⅴ장에 제시하였다. 심층 면담을 통해 수집한 자료는 이 과정에서도 활용되었다. 교사의 실천 양상과 인식으로 구분하여 각 범주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배치하였으며, 서로 비교하며 내용의 중첩, 과도한 짐작이 포함된 내용은 삭제하였다. 동시에 범주의 재조직, 통합, 재명칭 부여, 순서 변경 등의 조정 과정을 거쳤다.
본 연구는 연구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에 참여한 참여자 중 2명의 참여자를 선정하여 검토를 받았다(member checking). 검토자들의 피드백을 받아 다시 연구 결과에 반영하였으며 피드백을 반영한 연구물은 질적 연구 전문가 2명에게 의뢰해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연구자가 참여자의 인터뷰를 과도하게 추론하거나 인터뷰를 해석하면서 개인적 판단을 반영하였는지 점검하였다. 연구자의 편견이 들어가 잘못 해석된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동료 검토(peer examination)를 병행하면서 자기평가에 대한 초등교사의 실천 양상과 그 기저에 영향을 주는 요인과 맥락을 왜곡 없이 드러내고자 하였다.
IV. 초등교사의 자기평가 실천
초등학교 교사들은 자기평가가 어떤 취지로 국가 교육과정에 제시되어 있는지 그 목적과 맥락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조아인: 자기평가가 국가 교육과정에 제시된 이유는 배우는 주체가 학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르치는 교사가 학생의 도달 여부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는 주체인 학생 스스로 ‘내가 얼만큼 배웠고 도달했는지’ 성찰할 기회가 필요하기 때문에 교육과정에 포함시켰다고 봅니다.
교사들은 자기평가의 교육적 목적을 ‘자기 성찰’로 보고 있었다. 이는 학생이 자신의 학습 과정과 결과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국가 교육과정의 평가 운영 방침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교사들은 자기 성찰 역량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자기평가에 대해서는 국가교육과정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박정규: 자기 성찰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들을 보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전체적으로 생각, 학습, 행동 등을 다 성찰할 수 있는 것이라서 엄청 크고, 반드시 키워줘야 하는 역량으로 느껴집니다. 반면, 자기평가는 ‘평가’라는 단어가 들어가서인지, 너무 좁은 단어, 평가의 한 가지 방식처럼 느껴집니다. 두 단어는 범주와 레벨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은 자기 성찰을 광범위하고 필수적인 역량으로 보아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기는 반면, 자기평가는 기술적인 평가 도구로 인식하며 두 개념 사이에 선을 그었다. 교사들에게 자기평가는 자기 성찰이라는 중요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교사들의 자기평가 실천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였다.
이진경: ‘평가에 도움이 될까?’라는 의구심은 있지만 경험을 아예 안 하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해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한 번 훑어보는 식으로 (자기평가를) 사용합니다. 주로 교과서 마지막 부분에 있는 자기평가란을 활용합니다. 보통 국어 교과에 많이 있어요.
교사들은 자기평가를 한 번쯤 경험해 보는데 의의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교과서 마지막 부분에 제시된 자기평가란을 이용하거나 크게 교육적 의의를 두지 않는 가벼운 마음으로 실행하고 평가 결과에 첨부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윤정: 도덕 교과나, 학기 말 학생들에게 나가는 수행평가 포트폴리오의 표지에 자기평가하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넣는 정도로만 활용합니다. ‘자기평가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수행평가 점수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분 내기 정도로 가끔 활용할 뿐입니다.
이주연: 자기평가를 단독으로 하기보다는 다른 친구들의 동료 평가와 더불어 자기평가를 약간 끼워넣는 식으로 진행을 좀 많이 해왔습니다. (···) 자기평가는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를 가지고 한 번쯤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라, 하는 의도죠. ‘너의 수준을 네가 얼만큼 아는지 보자’ 하는 마음도 있고요. 근데 사실 자기평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 크죠. 칸이 남으니까.
이외에도 교사들은 학생들 간 동료 평가 시에, 수행평가의 구색을 갖추는 용도로 자기평가를 끼워 넣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즉, 자기평가의 본래 목적인 자기 성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목적 달성과는 다소 유리된 일회성의 가벼운 활동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평가 실천에 큰 의의를 두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방법은 교사들에게 고민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 결과 교사들은 다소 유사한 방식으로 자기평가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조아인: 가장 최근에 학생 자기평가를 사용한 것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평가 항목에 자기평가가 포함되어 있어서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제가 학생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보충 자료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세 단계로 나누어서 학생 스스로 평가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평가 양식에 맞춰 우수, 도달, 미도달 세 가지로 나누었고, 학생이 스스로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표시하게 했습니다. 평가 기준(문항)은 프로젝트 항목별로 달성해야 할 내용에 대해 질문하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수준이어야 우수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성취 기준 즉, 루브릭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질문을 주고, 아이들이 알아서 세 단계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몇 가지 평가 항목을 제시하고 학생들이 간단한 기호 등으로 결과를 표시하는 체크리스트 방식을 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사가 자기 성찰을 위해 평가 문항을 정교하게 고안하기보다는 해당 수업과 관련된 다소 일반적, 추상적인 성취 수준을 질문 형태로 제시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도달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체크리스트 표기 활동은 대부분 수업의 주요 활동이 마무리된 시점에 일회적으로 이루어졌다.
안희진: 자기평가는 단원이든 차시 활동이든 다 마무리 된 시점에 진행이 되는거죠. 그 다음엔 (결과가 환류되는 것이) 없어요. 그냥 제가 미도달에 표시한 친구들은 말로만 ‘이거 조금 더 노력해야 된다는 생각하고 지내자’라고 그러지. 그걸 딱히 구체적으로 확인하거나 저의 지도에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교사들은 자기평가가 끝난 이후에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로 지도하며 자기평가 활동을 마무리했다. 학습 이후 느낀 점이나 배운 점 쓰기 등의 기술식 자기평가 방법도 활용되었지만 체크리스트 방식과 유사한 결과 환류가 이루어졌다. 자기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추후 학생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자기평가가 가져야 하는 순환적 구조의 특성은 교실 현장에서 실현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교사들은 이와 같은 자기평가 시행 방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박정규: 자기평가라는 용어가 굉장히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영역의 단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교육과정이 바뀌더라도 그 부분은 계속 클래식처럼 남아있는 영역이기도 하고. 그래서 따로 가르쳐주는 데도 없었고, 사실 배운다고 했어도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 평가는 결국 한 장면을 포착해서 ‘잘했냐, 못했냐’를 따지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가 오늘 조금 못했어도 내일은 발전할 것이라 믿고, 부족한 점보다는 잘하는 부분을 더 많이 읽어주고 싶은 성격의 교사입니다. (...)자기평가도 결국에는 그런 성질(한 장면을 포착해서 잘했냐 못했냐를 따지는 성질)을 가진 평가여서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죠.
이처럼 교사들은 자기평가를 평가 방법의 한 종류로 인식하고 다른 평가 방법과 동일한 성격을 가졌다고 보았다. 교실에서 평가는 보통 학습 과정 중 한 시점을 정해 학습자의 목표 달성 정도를 측정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자기평가가 가진 의미는 이와 다르기에 교사들은 자기평가를 평가라고는 생각하지만 기존 평가의 쓸모와는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간극은 자기 성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사조차도 자기평가를 무용하다 느끼게 하고, 자기평가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을 반감시켰다. 그 결과 자기평가는 자기 성찰과는 큰 관련 없이 관성적으로 실시하는 일회적 활동으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초등교사들은 자기평가를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 평가 활동으로 인식하였지만, 이를 모든 교과와 영역에 일률적으로 적용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자기평가가 적용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선별적으로 실행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객관적 정답이 존재하는 교과인지 아닌지는 자기평가 실행을 결정짓는 핵심 기준이 되었다.
박동주: 수학은 거의 지필평가를 합니다. 사회는 보고서 등 좀 더 다양하게 평가하지만, 결국 학생의 결과물을 보고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과학도 실험이 있지만 주로 지필평가를 합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수학에서도 자기평가를 해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방금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런 생각 자체를 못 해봤습니다. 저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는데, 주요 과목의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어야 정답이 없으니 자기평가를 쓰지만, 수학이나 과학은 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생각하니 과학도 충분히 자기평가가 가능한데, 생각을 못 했네요. 주요 과목은 객관적인 잣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평가는 주관적인 방식이니까요.
조아인: 국어 글쓰기나 개념 이해처럼 명확한 평가 기준이 없는 과목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자기평가가 효율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기준이 없으니 자기 스스로 도달 여부를 알아보는 게 의미가 있으니까요. 반면, 국어나 창체 활동에 비해 수학 같은 교과에서는 자기평가가 덜 중요하고 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이 드는거죠. 결론적으로 자기평가는 과목마다 효용성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은 객관적인 정답과 평가 기준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해당 교과 또는 영역에서 자기평가의 효용성이 달라진다고 여겼다. 정해진 정답이 없고 학생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표현할 수 있는 국어, 도덕, 실과 등의 교과나 창체 활동에서는 학생의 주관적 판단을 허용하며, 자기평가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수학, 과학, 사회같이 객관적인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여기는 교과에서는 자기평가의 효과가 낮다고 판단하여 배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주연: 수학, 사회 같은 내용 교과에서는 학생 자기평가를 거의 한 번도 안 쓴 것 같아요. 왜냐하면 좀 고리타분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사회 교과의 지식을 평가하려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조사 기능이 중요한 차시였다면 조사한 결과물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또, 5대양 6대주나 나라를 알아야 되는 경우에는 그 지식을 시험 봐서 알고 있으면 성취가 된 거고 알고 있지 않다면 성취가 안 된 것이죠. 지식이든, 기능이든 정확히 도달한 것이 확인되어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교사들은 평가 과정에서 학생들의 성취 수준을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였다. 지식 중심의 내용 교과에는 학생들이 알아야 할 지식이 있고,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결과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생의 느낌이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자기평가는 지식의 도달 여부를 정확히 판별해 주지 못한다고 여겼다. 한편, 객관적 결과물을 수집하려는 교사의 실천 양상은 교사의 인식뿐 아니라 교실 외부적 요인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윤정: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는 자기평가는 ‘내가 이걸 잘한다/어렵다’ 수준의 체크리스트 방식인데, 첫째로 객관성이 너무 떨어집니다. 둘째로, 그 결과를 수행평가 성적으로 입력하는 것이 저 스스로 납득되지 않습니다. 셋째로, 만약 민원이 발생했을 때, ‘자제분께서 스스로 못한다고 평가했습니다.’ 라고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 교직에 와서 동학년과 평가 계획을 짤 때, 자기평가를 성적에 단독으로 넣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민원 발생 시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교사들은 자기평가 활용에 있어 학부모 민원을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가 근거를 요구하는 외부의 시선 앞에서 학생의 주관적 진술은 타당한 근거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가 결과의 객관성, 공정성 차원에서의 문제 제기 우려는 자기평가 실천을 축소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 교과에서도 교사들이 자기평가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공식적인 결과 산출을 위한 평가에서는 자기평가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수업 중 이해도를 확인하는 형성적 진단(질문에 맞추어 손들기, 팔을 벌려 이해 정도를 표시하기 등), 배움노트 작성과 같은 비공식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는 자기평가를 활발히 활용하는 양상도 목격되었다. 이는 교사들이 자기평가의 유용성을 아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 평가가 요구하는 증거와 객관성의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영역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자기평가는 평가의 주체가 학생이므로 학생의 참여 태도와 판단 기준은 평가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그러나 초등교사들은 학생 판단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며 평가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박도현: 기본적으로 수행평가를 할 때, ‘자기 점수를 평가해 봅시다.’라고 하잖아요. 실제로 객관적으로 높은 점수를 가지고 있는 우수한 학생들은 자기 검열 기준이 높아요. 반면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애들은 ‘이거 잘 주면 되지 뭐’ 하고 그냥 잘 줘버리죠. 그러니까 학생마다 가지고 있는 기준이 달라요. 성취도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객관화할 수 없는 학생들의 자기 기준에 대한 결과라서 객관적 지표로서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평가 기준으로 삼기는 어렵죠.
교사들은 자기평가 시, 학생들이 실제적인 수행 도달 정도와는 다르게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한다고 판단했다. 학생들이 교사가 관찰한 학생의 성취 수준과는 다른 평가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차이가 자기평가에 대한 교사의 신뢰성을 저하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보였다. 또한, 학생들의 평가 태도 또한 신뢰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기평가를 진지한 성찰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단순한 활동으로 여기며 불성실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유현: 자기평가에 대한 생각은 (···) ‘자신을 돌아본다’는 면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평가’로서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원이 끝날 때마다 학생들이 스스로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파악하고 싶어서 교과서에 제시된 자기평가를 하도록 하고 개관 순시를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일렬로 쭉 색칠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 스스로 하도록 했을 때 과연 제대로 될까?’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입니다. (···) 자기평가 실행의 가장 큰 방해 요인은 학생들이 성실하게 참여할지에 대한 문제, 그리고 모두 성적을 잘 받고 싶어 하니 성적에 반영될 때 정직하게 평가할지에 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교사들의 자기평가 실천 경험은 자기평가가 ‘평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운 평가 방법이라고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교사들은 자기평가를 단독적인 평가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교사가 주도하는 평가에서 보조적인 기제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정규: ‘질문 만들기’ 등의 활동을 할 때 질문에 대한 자기 체크리스트를 하긴 합니다. 학생들이 만든 질문의 합리성 등을 따지는 항목에 대해 O/X 등을 하게 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너 다 동그라미 했으니 통과’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3학년이다 보니 문항의 맥락을 이해 못 하거나 관점이 너무 너그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평가를 하더라도, 결국 교사가 다시 피드백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어쨌든 교사가 같이 하는 방식으로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최동환: 아무래도 학생과 1년을 같이 있다 보니 얘가 어떤 학생인지 교사로서 파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학생이 자기평가에서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판단이 가능하고요. (···) 예를 들어, 도덕 교과의 ‘공정’ 단원 수업을 할 때, 평소 이기적인 면이 있던 학생이 ‘나는 공정하지 않다’라고 솔직하게 답변하는 것을 보며 교사로서 학생을 파악하고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가 봐도 너는 좀 공정하지 않았는데, 솔직하네’라고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자기평가는 학생의 자율적 판단에 온전히 맡겨지기보다, 교사의 점검과 승인을 받아야만 그 효력을 인정받는 조건부 활동으로 실행되고 있었다. 또한 교사들은 평소에 학생들을 관찰하며 얻은 정보를 토대로 자기평가 결과를 분석하고 응답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였다. 자기평가의 결과는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보다, 교사가 개별 학생의 성향이나 상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료로 사용된 것이다. 한편, 자기평가 결과를 통해 인지적 성취나 정의적 특성을 파악하려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이들은 자기평가가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이해도와 자신감, 정직성, 적극성 등의 태도를 진단하기에 적절한 참고 자료로서 유용하다고 인식했다.
박동주: 학생이 스스로 작성한 자기평가를 보면, 저는 그 학생이 겪어온 과정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의 지도에도 반영이 되죠. ‘자신감이 없구나, 불러서 격려해 줘야겠다’ 혹은 ‘잘 못하는데 높게 줬네, 이 부분을 더 알려줘야겠다’ 처럼요.
이유현: 수학 시간에 거의 매시간 학생들에게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수업 내용이 진짜 이해가 잘 됐으면 팔을 이만큼 넓게 벌리고, 하나도 모르겠으면 이렇게 좁게 해보세요.’라고 합니다. 학생 스스로 판단한 이해 정도를 파악하려는 것입니다. (···) 대부분의 학생이 팔을 넓게 벌리고(잘 이해했다는 뜻) 있다면, ‘이 부분이 학생들에게 쉽구나. 문제를 조금 더 풀게 하고 넘어가도 되겠다’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깨너비 정도로 ‘보통’인 학생들이 많다면, ‘완전하지는 않구나’라고 판단하여 다음 시간에 개념을 한 번 더 설명하고 넘어갑니다. 만약 대부분이 잘 이해했는데, (손을 모으듯이) 좁게 표현한 학생이 있다면, 다음 수업 시간에 그 학생의 자리로 가서 푸는 과정을 지켜보며 개별적으로 도와주려고 신경 씁니다.
교사들은 실제로 자기평가 결과를 통해 학생 지도나 수업 방향을 설정하는 데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기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수업 진도의 속도, 내용 보충 설명, 집중 지도 등의 의사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자기평가 결과가 교사의 판단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교사만 알 뿐이었다.
최동환: 자기평가 결과는 교사의 성적 산출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행평가에서 자기 자신, 학급, 학교의 공정성을 평가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다짐’까지 적게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학생의 성실도와 진실도 등을 교사가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객관적인 수치화, 정량화가 안 되다 보니까 애매할 수는 있는데 그래도 교사가 판단하는 데는 도움을 주는 좋은 자료였습니다. (···) 평소에 행동은 공정하지 않은데 자기평가에는 ‘다 잘했다’라고 동그라미 친 학생의 경우에는 도달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교사는 자기평가 결과를 단독으로 성적에 반영하는 경우가 절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교사의 판단을 강화하거나 수정하기 위해 참고하는 비공식적 자료로서는 유용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자기평가가 교사의 수행이나 성적 산출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고 답변한 교사들조차 자기평가를 학생의 독립적인 평가 결과물이 아니라 교사에 의한 평가를 보조하는 자료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자기평가 결과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이는 자기평가가 평가의 과정에서 학생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학습을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끄는 고유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초등 교실에서 학생 자기평가는 다양한 교사의 신념과 각 학급의 특수한 맥락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실천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실천의 양상은 단순히 개별 교사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학교 현장의 구조적 맥락과 교사의 내면화된 인식 체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에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구체적인 실천 양상을 형성하고 제약하는 근본적인 영향 요인을 심층적으로 탐색하고자 한다.
V. 자기평가 실천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 탐색
본 연구는 초등교사들과의 심층 면담을 통해 자기평가에 대한 실천 양상을 탐색하고,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교사들의 경험과 딜레마를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 면담에 참여한 교사 대부분은 자기평가와 관련된 학생 주도성, 자기 성찰, 자기조절 학습 등의 교육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평가는 이 역량을 익히는 데 유의미하게 활용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자기평가는 평가 도구로서의 신뢰성과 확실성이 낮다고 판단되었으며, 그 결과 일회성의 가벼운 활동으로 축소되거나 교사 평가에 참고하는 보조 자료가 되었다. 또한, 실질적인 평가 과정에서는 주관성이 개입된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의미 있는 학습 과정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학생 주도성, 자기 성찰, 자기조절 능력의 학습이 중요하며 이것을 익히기 위해 자기평가가 유용하다고 여김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의 실제 실천 양상이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가 과정 자체가 학습으로 여겨지는 새로운 평가 패러다임 속에서 평가는 기존의 평가와는 다른 방향으로 수행될 수밖에 없다. 교육 현장에서 자기평가의 한계라고 여겨진 많은 특성들이 사실은 학습의 도구로서 평가가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학생들이 가진 기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주관성은 학생의 이해와 인식 정도를 드러내며, 학습자의 개별적 맥락이자 학습 중에 일어나는 자기 객관화의 정교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자기평가의 유의미한 실천을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지속성(Yan & Brown, 2017)은 평가가 학습 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자기 주도적 성찰의 도구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정량화된 평가 결과 도출이 어렵다는 특성은 오히려 결과를 비교하는 줄 세우기식 평가에서 벗어나 다소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형태일지라도 학습자의 성찰이 담긴 결과를 그 자체로서 유의미한 교육적 정보로 수용하게 할 수 있다. 이는 인지적·정의적 영역의 성장 정도를 실질적이고 내실 있게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피드백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져 학생의 성장을 견인하는 선순환적 학습 구조를 만들게 된다.
이렇듯 중요한 학습 도구로서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자기평가가 교실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교사들에게 자기평가의 고유한 특성이 익숙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평가가 전통적으로 담당해 왔던 역할과 그에 결부된 특성은 교사들의 인식 속에 ‘바람직한 평가의 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평가의 교육적 활용을 주저하게 만든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교사들의 자기평가 실천 양상은 단순한 교사 개인의 특성이나 방법론적 미숙함이 아닌, 학교 현장에 뿌리 깊게 고착된 ‘전통적인 평가의 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새롭게 변화된 교육 패러다임이 제시하는 평가의 방향성과 현장에 오랫동안 자리 잡아 온 견고한 평가에 대한 인식 및 문화가 충돌하면서 빚어낸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다면 본 연구에서 발견된 현상은 Tyack & Tobin(1994)이 제시한 ‘학교의 문법’(The Grammar of Schooling)을 활용해 이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학교의 문법은 학교 교육을 지배하는 일련의 규칙과 구조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마치 언어의 문법처럼 굳어진 현상을 의미한다. 우리가 모국어를 말할 때 문법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듯, 학교의 구성원들 또한 ‘학교란 으레 그러한 곳’이라는 무의식적인 전제에 기반하여 사고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년별 진급, 과목별로 분절된 시간표, 교사 중심의 일제식 교수, 그리고 점수로 산출되는 등급과 같은 관행들은 본래 교육의 효율성을 위해 고안된 제도적 장치였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이제는 변경 불가능한 학교 교육의 표준이자 본질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학교의 문법은 그 어떤 개혁 시도보다 강력한 관성을 지니고 있어, 새로운 변화가 도입될 때마다 이를 기존의 문법에 맞게 변형시키거나 거부하는 저항 기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학교의 문법 관점에서 본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학습 과정을 성찰하고 평가하게 하려는 새로운 시도는 학교 현장에 공고히 정착된 ‘평가의 문법’(The Grammar of Assessment)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본래의 목적과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본 연구에서 제시하는 평가의 문법이란 개념은 학교의 문법을 평가 영역에 적용하여 재맥락화한 것이다. 학교의 문법이 학교 교육의 조직과 관행을 지배하는 견고한 구조를 의미한다면, 평가의 문법은 학교 현장에서 평가의 본질, 주체, 방식에 대해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공유하고 있는 무의식적인 전제와 규칙이라 정의할 수 있다. 교사들이 자기평가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주변적인 활동으로 유예하거나 변형시키는 현상은, 결국 내면화된 평가의 문법이 새로운 패러다임과 충돌하며 빚어내는 구조적 긴장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 발견된 구체적인 평가의 문법들이 어떻게 학생 자기평가의 실천에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확인된 평가의 문법은 평가의 시점과 목적에 관한 것으로 평가를 학습 활동이 종료된 후 도달 여부를 판별하는 결과 확인의 절차로 바라보는 것이다. 결과 중심적 평가관은 순환적 구조를 지닌 자기평가를 학습 과정 중에 수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형성적 평가’(Black & Wiliam, 2009)가 아닌, 단원이나 차시 학습이 끝난 후 도달/미도달을 체크하고 끝내는 일회성의 활동으로 고착시켰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계기로 과정중심평가가 도입된 지 이미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결과 중심의 평가관은 학교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연구 참여자들과의 면담에서 드러난 자기평가의 실행 시점은 대부분 단원이나 프로젝트의 마지막 차시에 집중되어 있었다. 학습 내용에 대한 이해 여부 등을 마지막 시간에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최동환: (...) 실제로 교사가 피드백을 주려면 학생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자기평가만으로는 알 수가 없죠. 그래서 그런 교과에서는 자기평가를 사용하더라도 부수적인 요소로 들어가야지, 단독적으로 사용하는 건 딱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가 문제 다 푼 다음에, 단원 마지막에 이해했는가? 설명할 수 있는가? 정도에 대해서 O/X 표시 정도는 할 수 있겠죠.
교사들은 자기평가가 학생의 구체적인 학습 결손이나 오개념을 드러내 주지 못한다고 판단하였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제시된 질문이 피드백 루프 안에서 점검과 수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적 성찰을 위한 질문이기보다는 추가 피드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지식의 획득이나 기능의 능숙함을 확인하는 결과 중심의 판정 질문인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교사들이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과정을 평가할 여유나 방법론적 확신을 갖지 못한 채, 결과 확인의 문법에 밀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학습 과정 중에 일어나는 학생의 변화나 사고의 흐름을 포착할 수 있도록 평가를 설계하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과업이다. 하지만, 결과물을 놓고 O/X를 표시하도록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고 명쾌하다. 결국 이러한 실천은 자기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메타인지적 성찰을 배제시키고, 자기평가를 단순한 성취도 자가 진단 수준으로 머물게 했다.
앞서 확인된 바와 같이, 교사들이 자기평가를 ‘기분 내기’나 ‘여백 채우기’ 정도의 활동으로 인식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업과 평가가 분절된 구조 속에서 학습 종료 후에 덧붙여지는 자기평가는 학생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학습의 본류에서 벗어난 부차적인 행위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이미 끝난 학습에 대해 형식적으로 체크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교사들은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육적 정보가 제한적이라고 느낀다. 이런 되먹임 속에 자기평가는 교실에서 의미를 잃고 형식적인 의례로 남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확인할 수 있는 평가의 문법은 평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객관성’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교사들은 실제 평가 장면에서 객관적인 증거와 명확한 변별을 요구하는 평가관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는 자기평가의 본질적 가치인 주관적 성찰과 충돌하며 자기평가의 내실있는 실천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조아인: 저는 평가의 객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강조되는 과정 중심 평가의 취지(모든 학생이 성취기준에 도달하게 만든다)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도 제도적으로 ‘도달’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준을 더 명확하게 해서, 학생이 정말로 아는지 모르는지를 제대로 나타낼 수 있어야 그게 진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은 ‘진짜 평가’란 학생의 성취 수준을 명확한 기준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는 교사 평가와 학생 자기평가 간의 일치 또는 객관성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평가가 그 과정 자체로 학생의 자기 효능감과 자기조절학습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Panadero, Jonsson & Botella, 2017), 학생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자기평가는 객관성이라는 평가의 가장 중요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불완전한 도구로 여겨졌다. 특히, 교사들은 자기평가가 가진 기준의 모호성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평가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교사들에게 학생마다 기준이 다르고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자기평가는 신뢰할 수 없는 도구인 것이다.
이와 같은 판단은 지식의 습득이 중요한 주요 교과(수학, 과학, 사회 등)에서는 자기평가를 배제하는 실천으로 나타난다. 또한, 자기평가 결과가 성적 산출의 근거로 활용될 때 발생할 수 있는 공정성 시비 또는 학부모 민원에 대한 우려는 주요 평가 도구로써 자기평가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게 했다. 이는 평가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은 개별 교사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교사와 학부모 모두 공유한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객관성 지향 관념이 어른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내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주연: 만약 자기평가가 점수화된다면, 학생들은 ‘높게 안 주면 바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양심 없이 사기치는 학생이 있을 거로 생각하기에, 의미가 없다고 볼 것입니다. 학생들도 평가에 대한 공정성이나 객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자기평가는 그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거죠.
이처럼 교육 현장의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평가의 객관성에 대한 절대적 가치는 자기평가가 가진 고유한 기능인 자기 인식 및 자기 성찰을 위축시키고, 자기평가를 주변적 도구로 만드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학습 과정에서 스스로를 평가하고 성찰하는 주관적 성질은 자기평가의 본질적 특성이며(박정, 2019), 학생이 자신의 배움을 내면화하기 위한 필수적 기제이다. 이러한 특성은 객관성 지향이라는 견고한 평가의 문법과 만나며 겉으로만 객관성을 표방하는 방법으로 재맥락화되었다. 평가 결과를 숫자로 표시하거나, 상/중/하(○/□/△) 등으로 단계화하여 표시하도록 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교사들은 자기평가의 필요성과 교육적 가치는 인정하지만, 객관성 확보라는 관념 앞에서 기존의 관행을 유지하거나 안전한 방식을 선택해 타협하는 것이다.
세 번째 평가의 문법은 평가의 주체와 권한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이다. 교사들은 평가를 교사가 학생의 성취 도달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과정이며, 이것이 교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평가에 있어 학생 주도성을 인정하고 학생에게 평가권을 이양하는 데 대한 주저함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교사들은 다양한 평가 방식을 활용하면서도, 최종적인 판단과 확인은 반드시 교사가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이유현: 우선 저는 지필평가를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확실하게 결과가 나오는 지필이나, 논술형 또는 서술형 평가, 혹은 제가 직접 확인하는 관찰 평가를 선호합니다. 제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입니다. 과목별로 말하면, 국어는 글쓰기 등이 있으니 돌려 읽으면서 동료 평가를 좀 하는 것 같습니다. 수학과 사회는 개념을 알아야 하니 지필 및 서·논술형 평가를 많이 합니다. 음악이나 미술은 연주, 가창, 활동 태도 등을 봐야 하므로 관찰 평가를 주로 합니다. 자기평가는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교사들은 서·논술형 평가, 선다형 평가, 포트폴리오 평가, 관찰 평가 등의 다양한 평가 방식을 사용했지만, 모든 평가의 실행 양상에서 평가의 주체가 된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교사들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학생들의 도달 정도를 보고 판단해야만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교사가 직접 평가를 해야 한다’는 평가에 대한 관념이 교사의 인식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평가를 둘러싼 행정적 절차는 교사가 가진 평가에 대한 문법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박동주: 동료 평가와 자기평가 사이의 중요도는 따져볼 수 있는 문제지만 교사의 평가는 별개인 것 같습니다. 관점의 차이죠. 제가 나이스(NEIS)에 성적을 입력해야 하는 교사의 입장이라면 교사 평가가 1순위입니다. 하지만 학생을 지도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학생이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야 제가 무언가를 더 해줄 수 있으므로 자기평가가 1순위입니다. 덧붙이자면 자기평가가 1순위가 되는 교실이 굉장히 이상적인 교실이겠지요.
학생의 지도 과정에 자기평가의 결과가 가지는 중요성을 알고 자기평가가 학생의 성장을 돕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교사도, ‘나이스에 성적을 입력해야 하는 교사’로서는 교사의 학생 평가를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즉, 성적 처리라는 행정적 의무 앞에서 교사는 자기평가의 교육적 가치를 외면하고 교사 주도의 평가를 시행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는 교사의 인식뿐 아니라 학교의 행정적 업무와 문화 전반에도 평가에 대한 고정관념이 반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평가를 교사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여기는 교사의 인식과 학교에 뿌리내린 문화는 Boud(2003)가 지적한 ‘평가 권한의 공유’라는 자기평가의 핵심 철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교사들은 학생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점검하기보다는, 교사가 제공한 기준표에 따라 체크하기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실 현장에서 학생은 학습과 평가에 주도성을 가진 주체라기 보다는 교사가 구축한 평가 환경 안에서 정해진 틀에 따라 평가를 받는 대상으로 존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평가는 학생의 주도성을 길러주는 기제가 아니라, 교사의 평가 결과를 정당화하거나 보조하는 수단으로 존재한다. 즉, 겉으로는 학생 참여형 평가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여전히 교사에게 집중된 실천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VI. 결론 및 제언
본 연구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 가치인 학생 주도성을 실현하는 기제로서 자기평가의 중요성에 주목하였다. 이에 초등교사의 자기평가 실천 양상을 심층 면담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였다.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초등교사의 자기평가 실천에 영향을 끼치는 구조적 요인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를 근거로 한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초등학교 현장에서 자기평가는 교육적 가치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적 동의에도 불구하고, 주변적이고 제한적인 활동으로 다루어져 왔다. 교사들은 자기평가를 학습 종료 단계의 일회적 활동이나 객관적 정답이 부재한 일부 교과에 국한된 활동, 교사 평가를 보조하는 수준의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는 양상을 보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실천의 기저에 변화하는 교육 패러다임과 대조적으로 학교 현장에 공고히 뿌리 내린 전통적인 평가의 상(像)이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Tyack & Tobin(1994)이 제시한 ‘학교의 문법’ 이론이 평가의 영역에서 강력한 관성으로 작동한 결과이며, 내면화된 ‘평가의 문법’이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기존의 익숙한 관행으로 수렴시키거나 제약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자기평가가 본래의 교육적 의미를 실현하며 교육 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학교 현장을 지배해 온 평가 문법의 재구성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평가를 학습이 종료된 후 도달 여부를 판별하는 결과 확인의 수단으로만 국한하거나, 교육적 타당성보다 객관적 증거 확보라는 행정적 방어 기제에 몰두하는 관행, 그리고 평가의 권한을 교사에게 일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들은 자기평가의 본질적 가치를 가로막는 오래된 문법들이다. 이러한 문법이 작동하는 한 학생의 주관적 성찰은 불확실한 것으로 여겨져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기평가의 내실 있는 정착을 위해서는 평가의 의미가 학생 개개인의 고유한 배움 과정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성장을 돕는 적합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데 있다는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인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학생의 내면적 성찰과 변화의 기록이 타당한 평가 결과로 존중받는 새로운 평가의 문법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난 이후에 자기평가는 형식적인 절차나 비공식적 보조 자료라는 한계를 벗어나, 학생 주도성을 기르는 기본 기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규명한 평가의 문법이라는 교육 현장의 구조적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 학생 자기평가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우선, 제도 및 정책적 차원에서 평가 기록 방식의 유연화와 학부모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자기평가의 목적이 점수 내기가 아니라 메타인지 향상임을 공유하는 학부모 연수와 홍보를 통해 정성적 평가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정량적 등급 산출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의 성찰 일지와 같은 질적 기록 그 자체를 평가 자료로 인정하는 등 나이스(NEIS) 및 평가 지침의 유연화도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교사 교육 측면에서는 통합적 연수 및 평가 모델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평가 기법을 가르치는 연수에서 벗어나, 전통적 평가관과 구별되는 자기평가만의 교육적 가치와 특성을 조명하여 교사의 인식을 개선하는 연수가 진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실제 수업 활동 속에서 자기평가의 순환적 구조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평가 역량을 강화하는 연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과정적 성찰의 맥락을 반영한 구체적인 평가 지침 자료 및 평가 모델이 개발되어 교사의 역량 강화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수학, 과학 등 정답이 명확하다고 여겨지는 교과에서도 오답 원인 분석이나 문제 해결 전략 성찰과 같이 적용 가능한 구체적인 자기평가 모델을 개발하여 학생 자기평가가 특정 교과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천적 측면에서는 평가의 주체인 학생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역량을 갖추도록 돕는 현장 친화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Ramdass & Zimmerman (2008)에 따르면, 자기평가는 구체적인 자기 교정 전략(Self-correction strategy)을 통해 가르쳐야 하는 기술이다. 단순히 평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 과정을 어떻게 모니터링하고 어떠한 지표로 성찰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개발하는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자기평가가 형식적인 수준을 넘어 질적으로 깊이 있는 성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고 과정을 언어화하는 성찰 기록 방법에 대한 기능적 교육과 더불어, 스스로의 성장을 진실하고 책임감 있게 대면하는 평가 주체로서의 태도 교육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도는 학생을 자신의 배움을 주도하는 학습자이자 능동적인 평가자로 성장시키며, 나아가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자기 성찰 역량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결정적인 토대가 될 것이다.
기존 선행 연구들이 자기평가의 효과성이나 방법론적 활용을 조명하고 교사의 이해 부족을 주요 변인으로 발견했다면, 본 연구는 자기평가의 구체적인 실천 양상과 기저에 깔린 교사들의 인식을 심층적으로 탐색하는 데 집중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투영된 구조적 문제를 발견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는 자기평가의 실천 양상을 교사 개인의 역량 문제가 아닌 사회적, 제도적 관성의 문제로 재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처럼 본 연구는 현장에 고착된 평가의 문법과 정책의 지향점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실천 과정에서 실질적인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사 차원에서도 교사들이 자신의 평가 관행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본 연구는 초등교사의 인식과 실천 양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였으나, 자기평가의 주체인 학생들의 실제 반응이나 그들이 작성한 자기평가 기록물을 직접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향후 연구에서는 학생의 면담 및 자기평가 자료 분석 등을 통해 교사의 자기평가 실천과 학생의 성찰적 자기평가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