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 개발을 표방한바, 이러한 개발 방향과 그에 따른 추진 과정이 총론을 넘어 교과 교육과정의 개발 단계에서도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였는지 반성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교육부(2021a, 2021b)는 2021년 4월에 큰 틀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 계획’을 발표하였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을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으로 선언하고 국가교육회의,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등과의 협업을 기반으로 교육 주체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추진 체제를 마련하였다. 국가교육회의는 미래 교육 비전과 주요 쟁점에 대하여 국민참여단 등이 중심이 된 숙의 토론을 통해 개선안을 도출하고,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를 통해 교원과 교육전문직 등의 현장 의견을 수렴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협조하에 교육부는 개정추진위원회와 함께 포럼, 토론회, 공청회, 심의회 등 현장 의견 수렴 및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정안을 마련하고, 특히 국가교육과정통합포털을 통해 교육과정 개정 과정을 수시로 알리고 국민 의견을 직접 수렴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수렴된 국민 의견을 토대로 교육부(2021c, 2021d)는 2021년 11월에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을 발표하였다.
이후 교과 교육과정으로서 202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은 이러한 교육부의 추진 계획 및 총론 주요 사항을 방향타 삼아, 국어과 교육과정 개발 방향을 설정하였다. 또한 본격적인 국어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과정에서도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이라는 기치에 맞추어 다양한 교육 주체들로부터 의견을 다각도로 수렴하고자 하였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표방한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이 성공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잣대로 평가해 볼 수 있는데, 총론 및 교과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의견 수렴’이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이에 유용한 시각을 제공한다.
202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은 2년여 동안의 기초 연구와 개발 연구를 거쳐 개정 방향을 수립하고 교육과정 시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창구로부터 국어과 교육과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였다. 이러한 과정에 참여한 국어과 교육과정 연구·개발자로서 여러 주체들의 요구를 청취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되돌아봄으로써, 그 당시 촉급한 일정으로 미처 살피지 못했던 부분과 향후 점검하고 보완할 부분을 반성적으로 되짚어보고자 한다. 국어과 교육과정이 국민적 의견이 수렴된 총론의 지향성을 담아내면서 동시에 학교교육 현장의 적합성을 제고해 달라는 일련의 요구들을 충분히 담아내려고 하였는지라는 내적인 반성과 함께, 혹은 담아낼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되었는지라는 외적인 상황도 이제쯤 관찰자의 시각에서 메타적으로 점검해 보려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어과 교육과정 개발 과정을 중심으로 대내외 요구 수용에 대한 과정을 재구성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비판적으로 점검함으로써 향후 총론 및 국어과 교육과정 개발 절차 및 의견 수렴 방식에 대한 대안적 안목을 형성하고 이를 기반한 정책적 시사점을 궁극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교육부 주도로 개정된 마지막 교육과정으로, 이에 따른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추후 국가교육위원회 주도의 국가교육과정 개발에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포함한 지금까지의 교육과정 개정은 교육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2022년 9월 국가교육위원회가 공식 출범함에 따라 국가교육과정 개정 방식 및 참여 주체들의 역할 변화가 예고된다. 이제 국가교육과정 개정과 모니터링은 국가교육위원회가 담당하고, 국가교육과정 실행 지원은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을 중심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이러한 역할 변화를 염두에 두고 교육부가 주관했던 2022 개정 교육과정 개발 절차 및 의견 수렴 방식을 비판적 안목으로 점검함으로써, 향후 국가교육위원회 주도의 국가교육과정 개발 방식에 대한 유용한 시사점을 국어과 교육과정의 개발 사례를 기반으로 모색해 보고자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내건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은 일종의 슬로건으로, 일정한 지향성 정도를 나타내는 간결한 추상적 문구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좀 더 구체적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의 의미를 ①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여 정책수요자들의 사회적 합의를 통한 최선의 대안을 설정, ② 국민, 전문가 등 교육 주체의 참여를 통해 현장 수용성 높은 교육과정 개발, ③ 미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높여 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 마련 등의 세 항목으로 정리하여 제시하였다(교육부, 2021d, p. 3). 여기서 ① 항목은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이 뜻하는 바를, ② 항목은 ①에 따라 기대하는 결과를, ③ 항목은 ①, ②에 따라 수반되는 추가적인 효과를 제시한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즉, 국민 참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거친 교육과정은 현장 수용성이 높고, 이러한 과정은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제고하여 종국에는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효과를 볼 것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정이 실제로도 그러했는지는 혹은 그러할 것인지는 다각도의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다만, 현 시점이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초반부임을 감안할 때, 본고에서는 ① 항목에서 언급한 ‘국민의 참여 확대’와 ‘사회적 합의’가 의견 수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2)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의견 수렴이 어떠했는가를 살피는 것은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이때 ‘국민’이라는 주체(who)의 문제, ‘함께’라는 방법(how)의 문제, ‘교육과정’이라는 내용(what)의 문제를 의견 수렴 측면에서 참여 인원, 절차, 내용과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어떤 국민을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느 기간과 어느 단계에서 어떠한 조사 방식으로, 어떤 내용 안건을 선정하여 어디까지 수용 또는 합의하여 의견을 수렴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에 2022 개정 교육과정 개발 과정을 기초 연구가 추진된 ‘교육과정 개발 방향 수립’ 단계(2020년 11월~2021년 10월)와 정책 연구가 추진된 ‘교육과정 시안 개발’ 단계(2021년 12월~2022년 12월)로 나누어 각 단계별 의견 수렴 양상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II. 교육과정 개발 방향 수립 단계의 의견 수렴 고찰
교육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의 개발 방식을 [그림 1]과 같이 안내하였다. 우선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교육 주체의 참여를 확대하고 여러 관련 기관과의 협력적 거버넌스를 통해 수행한다는 것을 기존과는 다른 차별적 방식으로 내세웠다. 물론 기존으로 상정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여러 교육 주체들의 참여와 관련 기관의 협업은 있었으나,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이러한 측면을 교육과정 개발 과정의 주요 절차로서 제도화하여 중점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은 확연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교육 주체의 참여 확대’는 교육 주체의 다양성 확보와 교육 주체의 양적인 확대를 동시에 지향하고 있다. 이는 곧 다양한 계층·분야의 사람들을 가급적 많은 규모로 참여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한다. 이와 더불어 ‘관련 기관 협업’을 제도화하여 이러한 교육 주체의 다양성과 양적인 확대를 용이하게 하는 지원 체제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발 방식을 구현하기 위해 교육과정 개발 방향 수립 단계에서는 먼저 ‘참여 주체(who)’로서 교육과정 개발의 추진 체제를 구축하고 의견 수렴의 대상자를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이에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추진 체제를 [그림 2]와 같이 제시하였다. 이에 따르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4개의 위원회와 현장 의견 수렴을 주요 추진 체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 참여와 기관 협업을 제도화하여 교육과정 개발의 주요 추진 체제로 마련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다. 즉,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제 분야의 위원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자 하였고, 국가교육회의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협력을 통해 의견 참여의 통로를 확대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이전 개정 과정에 비해 크게 진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을 표방하며 다수가 참여하는 방식의 추진 체제를 구축하려면 무엇보다 여러 참여 주체가 분명히 드러나고 그 역할이 명료해야 한다. 교육부가 밝힌 [그림 2]의 2022 교육과정 개정 추진 체제에서는 실제 총론 및 교과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주체의 위치와 역할을 파악하기 모호하다.3) 즉, 2022 개정 교육과정 개발의 추진 체제가 다양한 위원회를 설정하고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구도는 강조해 놓았으나, 이들로부터 개진되는 여러 의견들을 수렴·분석하고 더 나은 개선안을 최종적으로 마련해 가는 실질적인 교육과정 연구·개발 주체가 드러나지 않음은 의사결정 및 개발 주체의 면모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육부가 밝힌 또 다른 [그림 3]의 추진 체제를 보아도 연구·개발 주체의 위치와 역할이 불분명하다.4) 여기서는 ‘정책 연구’로 간접적으로 그 역할이 확인되나, 여전히 참여 주체로서 표시되어 있지는 않다. 즉, 정책 연구에 동원되는 추정상의 인원으로 숨겨져 있다.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의 추진 체제는 개발 방향을 수립하는 단계는 물론, 교육과정 시안 ‘개발 단계’도 분명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교육부는 [그림 3]에 대해, “국가교육과정 개정추진위원회의 개정 과제 논의·검토 후 정책자문위원회의 자문·조정, 현장 의견 수렴을 거쳐 교육과정심의회 심의 후 개선안 마련”으로 간략히 설명을 제시하였는데(교육부, 2021d, p. 4), 이는 총론의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흐름을 안내한 것이다. 즉, [그림 3]에서 제시한 이러한 추진 체제는 교육부가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을 마련하기 위해 구축한 것으로, 정작 본격적인 교육과정 개발 과정의 추진 체제는 별도로 마련해 놓지 않았다. 대신에 [그림 3]의 추진 체제가 총론 주요 사항 마련 이후에도 작동한다고 설명하고 “총론과 교과 시안 마련 연구 추진 및 국가교육회의 등 관련 기관을 포함한 개정 관련 상시협의체 지속 운영” 정도로 안내하였다(교육부, 2021d, p. 4). 이러한 추진 체제가 실제 교육과정 시안 개발 과정에서는 어떠한 위상과 역할로 작동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의 추진 체제로서 각 ‘위원회(who)’는 그 역할을 분명히 하고 민주적인 ‘절차(how)’를 통해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 과정에서는 ‘개정추진위원회’가 다소 논란이 되었다. 교육부는 기존 2015 개정의 ‘개정연구위원회’를 2022 개정에서는 ‘개정추진위원회’로 이름을 변경하고 이를 ‘교육과정 개발·운영을 위한 논의 및 의사결정을 진행하는 기구’로서 운영하였다(교육부, 2021b, p. 23). 이러한 개정추진위원회는 전체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 전방위적으로 걸쳐 있어서 오히려 그 역할이 불명료한 측면이 있다. 그리하여 한편으로 개정추진위원회가 교육부의 주도적인 총괄 기능을 가리고 책무성을 분산하는 방편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 개정추진위원회는 교육계는 물론 인공지능·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장(박형주) 외 20명의 위원이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및 교과 시안 개발과 관련한 전반적인 쟁점들을 논의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2021. 4.~2022. 12. 동안 총 21명 위원이 총 17회 회의 진행; 교육부, 2022b 참조). 총 21명의 위원은 기존 2015 개정의 10명보다 확대되었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포함된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소수의 위원이 또는 총론 및 교과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다른 분야 전문가가 전반적인 총론과 교과의 여러 민감한 쟁점들을 심층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의문은 국가교육과정 개정추진위원회(2021. 7. 27.)의 ‘고등학교 교과목 구조 개편 권고문’으로 촉발된 측면이 있다. [그림 4]는 개정추진위원회 권고문의 일부를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 고등학교 일반선택과목을 국어·영어·수학은 3개로, 사회·과학은 4개 이내로 감축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에 따라 국어과의 경우 4과목 구성(2021. 7. 18. 시안 : ‘화법과 작문’, ‘독서와 사고’, ‘언어와 디지털 의사소통’, ‘문학과 삶’)을 유지하다가, 3과목 구성(2021. 9. 17. 시안 : ‘화법과 언어’, ‘독서와 작문’, ‘문학’)으로 변경하였다.

이때 사회 교과를 포함하여 여러 교과에서 일반선택과목 수 감축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개정추진위원회에 대한 항의가 있었고 이에 대해 성명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향후 고교학점제 운영을 고려한 수능 체제 개편 시 일반선택과목이 수능 대상 과목이 될 가능성이 높음에 따라 다른 진로선택과목 또는 융합선택과목에 대한 실질적인 학생 선택권에 제약을 준다고 보아, 모든 교과가 개정추진위원회의 권고를 최종적으로는 수용하여 일반선택과목 수를 감축하였다.
다만, 당시 한국사회과교육학회(2021. 8. 20.)의 성명서를 통한 지적은 의미 깊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즉,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다양한 주체들의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을 지향한 것은 평가할 만하나 의견의 최종 결정 단계에서 비민주적 요소가 완전히 극복되지 못했”고, “여러 쟁점과 갈등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을 한 개정추진위원회가 위원장 외에 모든 위원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서 “위원 구성의 자의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며, 의사결정의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게 만든다”는 지적을 하였다. 특히 ‘고등학교 교과목 구조 개편 권고문’에 대해 “위원회의 성격과 권한에 대해서도 명확히 파악할 수 없으며 어떠한 근거와 논리로 탐구영역의 교과목 수 감소를 권고하는 것인지도 모호하다”는 항의의 내용을 담았다.
따라서 향후 개정추진위원회는 교육과정 개정 체제에서 구체적이고 분명한 역할을 설정하고, 위원 구성 측면에서 적정 규모의 인원으로 대표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회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가급적 공개하는 것을 지향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과 안내가 필요하다.
또 다른 위원회인 ‘각론조정위원회’도 그 역할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각론조정위원회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기능했던 기구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미래 교육 방향 제시 및 총론의 취지가 각론에 반영되고 교과별 내용 중복 해소 및 교과 이기주의를 견제할 수 있도록 주요 쟁점을 논의·조정”하는 역할로 추진 체제에 포함되었다(교육부, 2021b, p. 23). 교육과정 개정 시기마다 총론과 교과의 불협화음은 있어왔고,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일정 정도 마찰은 있었다(2021. 4.~2022. 12. 동안 총 36명 위원이 총 6회 회의 진행; 교육부, 2022b 참조). 특히 내용 체계와 핵심 아이디어 등의 관련 용어에 대한 협의가 마지막까지 조율이 쉽지 않았다. 일례로, 국어과는 내용 체계를 ‘핵심 개념 - 내용 범주 - 학년(군)별 내용 요소’로 구성할 것을 제안하며, 총론에서 제시한 ‘핵심 아이디어’의 용어보다는 ‘핵심 개념’이라는 용어 사용을 주장하였으나, 각론조정위원회가 다른 교과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한 용어의 통일성을 요구하여 최종적으로는 내용 체계에서 ‘핵심 아이디어’로 용어를 변경·수용하였다.
다수의 교과 교육과정 연구·개발진은 총론과 교과의 상호 협의는 여전히 부족하고, 총론의 일방적 지시를 통한 각 교과의 수용 정도로 전체 협의회가 진행된다고 인식하였다. 단적으로, 한국사회과교육학회(2021. 8. 20.) 성명서에서 “총론과 각론의 괴리를 조정하기 위해 각론조정위원회를 두는 등 개선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총론 중심 교육과정 개정 방식이라는 낡은 관행은 여전히 종식되지 않았”으며, “실제로 총론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 각론 전문가들의 숫자는 매우 적다”는 불균등을 지적하였다. 마찬가지로 교과교육학회(2022. 1. 18.) 성명서에서도 민주적이고 참여적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하려는 노력은 이전에 비해서 크게 진전된 것이나 “중요 의사결정이 정작 소수 전문가에 국한된 총론 중심의 낡은 틀 내에서 결정”된 것은 여전하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교과교육 관련 학회들은 매 교육과정 개발 시기마다 이와 유사한 성토의 목소리를 각론조정위원회를 대상으로 내었으나,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크게 해결되지 못하고 여전한 양상이었다.
각론조정위원회는 총론 및 교과의 연구책임자와 교육부의 연구협력관 간 상시협력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각론조정위원회는 별도로 위원장이 지정되어 있지 않음으로써, [그림 5]와 같이 ‘연구 추진 협력’이라는 명목하에 교육부가 실질적인 주도성을 가진 주체로서 기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론과 교과 간 또는 교과와 교과 간 쟁점이 여전하기에 각론조정위원회의 존치 필요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교육부가 밝힌 위원회 역할을 다시 보면, 애초에 “미래 교육 방향 제시 및 총론의 취지가 각론에 반영되고 교과별 내용 중복 해소 및 교과 이기주의를 견제할 수 있도록 주요 쟁점을 논의·조정”하는 기구로 설정함으로써(교육부, 2021b, p. 23), 일정한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즉, 총론의 취지가 각론에 반영되는 일방향성(총론 → 각론)을 기반으로 교과 이기주의를 견제한다는 역할이 그러하다. 따라서 각론조정위원회는 각론만 조정 대상이 된다는 함의를 담은 명칭을 수정하고, 총론과 교과가 상호 협의하는 기구로서의 역할로 새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5) 이에 따라 각론조정위원회는 ‘교육과정조정위원회(가칭)’ 정도로 명명해 볼 수 있겠다. 이에 향후 각론조정위원회는 그 역할을 좀 더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으로 전환하고 여러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위원장을 별도로 둘 필요가 있다(혹은 총론과 교과의 각 대표로서 복수의 워원장도 가능함). 또한 교육과정 총론과 교과의 유기적 협의를 통해 진행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총론과 교과 간 상호 수정 및 보완 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교육과정심의위원회’는 교육과정 제·개정에 관한 사항 심의, 연구·조사를 위한 자문 기구로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하위 심의회로 교과별 교육과정에 관한 사항 조사·심의를 위한 교과별 위원회(21개 각 20명 내외, 410명), 각급학교(유치, 초등, 중, 특수, 고등, 특성화고) 교육과정의 조정에 관한 사항 조사·심의를 위한 학교별 위원회(6개, 135명), 교육과정 제·개정의 원칙 및 목적 조정에 관한 사항과 다른 위원회에 속하지 아니하는 사항 조정·심의를 위한 운영위원회(30명), 정책수혜자인 학생, 지역교육과정 및 지역사회 각 분야 전문가 등의 의견 수렴을 위한 참여위원회(2개, 60명)가 운영되어 전체 약 636명의 인원이 참여하였다. 이때 국어과의 경우 연구·개발진의 입장에서 교과별 심의위원회는 교육과정 개발 배경을 이해하는 해당 교과의 전문가 또는 교사로 구성되어 운영되므로, 실효성 있는 의견이 개진됨에 따라 이에 대한 심의 내용은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교육과정심의위원회는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교육과정 실행 중에도 존치가 필요하며, 이로써 지속적인 교육과정 점검을 통해 추후 개정에서 유효한 개선 방향 설정에 기여할 수 있다. 2017년~2020년의 경우 교육과정심의위원회가 연평균 26.5회 회의 개최 실적이 있었다. 즉, 상시 심의회를 두고 정례적으로 교육과정 일부 사항 및 후속 지원 개발 자료 심의 등과 관련하여 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향후에도 교과별·학교급별 심의위원회를 상시적으로 구축·운영함으로써 해당 교과별·학교급별 교육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 속에서 차기 개정의 방향을 전문성과 특수성을 바탕으로 누적된 근거에 기반하여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정책자문위원회’는 “교육과정의 다양한 관점을 기초로 쟁점·논의 과제를 검토, 교육과정 연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안 등에 대한 자문 수행 및 개선점 제안” 등을 위해(교육부, 2021b, 23), 사회 각계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30여 명의 범사회적 전문가로 구성·운영된다. 이 기구는 교육과정 개정에 실질적인 기능을 담당하기보다는 개정의 명분을 얻기 위한 명목상의 기구에 가깝다.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은 교육 방향을 결정하는 ‘의제(what)’를 선정할 때 국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이에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총론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국가교육회의에서는 일반 국민들의 의견 수렴에,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현장 교사들의 의견 수렴에 초점을 두어 추진하였다. 따라서 국가교육회의,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등의 거버넌스에 의한 의견 수렴 과정이 어떠했고, 그 결과가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 결정에 유효하게 영향을 끼쳤는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국가교육회의(김진경 의장)는 교육과정 개정의 총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대국민 설문 조사(약 10만 명), 온라인 토론방(약 3천 명), 온라인 공개 포럼(약 4천 6백회), 권역별 토론회(약 5백 명), 집중 토론회(약 1백 명) 등을 실시하고,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사회적 협의를 추진하여 국민 의견 수렴 결과를 토대로 국가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권고안을 발표하였다(국가교육회의, 2021b). [그림 6]은 10만 명의 의견을 조사하고(2020. 10.) 여러 차례의 토론과 숙의를 거쳐 최종 권고안(2021. 9. 9.)을 마련한 1년여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은 기존의 일회적 여론 수렴을 벗어나 단계적으로 논의 주제를 좁혀 가면서 숙의를 하는 좀 더 진일보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일련의 의견 수렴 과정을 479쪽 상당의 ‘국민 참여 국가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사회적 협의 백서’(국가교육회의, 2021a)로 남긴 것도 추후 교육과정 개정에 참고할 만한 의미 있는 기록으로서 평가할 만한다.
[그림 7]은 국가교육회의가 최종적으로 제출한 권고안의 일부로, 크게 3가지 측면(Ⅰ. 교육과정의 방향, Ⅱ. 교육과정 편성·운영, Ⅲ. 학교 교육과정 지원)에서 제안보다는 좀 더 강력한 권고 형태로 의견을 제시하였다(국가교육회의, 2021a, pp. 13-15). 첫째, 교육과정의 방향 측면에서는 ‘교육의 가치와 지향’, ‘학생 주도성’, ‘교육과정의 자율화·분권화·지역화’를, 둘째, 교육과정 편성·운영 측면에서는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 ‘교수·학습 및 평가의 자율권’, ‘교과별 학습 내용의 양 적정화’, ‘서·논술형 평가’, ‘강화해야 할 교육’을, 셋째, 학교 교육과정 지원 측면에서는 ① 교육과정 자율권 확대에 대해 ‘교육과정의 질 관리와 격차 해소’, ‘교육과정 협의체 내실화’를, ② 고교학점제에 대해 ‘학생의 진로·학업 설계 지원’, ‘학교 간 격차 해소’, ‘운영 지원’, ‘학교 개설이 어려운 과목 지원’, ‘대입제도 개선’을, 그 외에 범주로 ③ ‘학습격차 해소’, ‘온·오프라인 학습 지원’, ‘범교과 학습 운영 유연화’ 등을 권고하였다.

이러한 국가교육회의의 항목별 권고안은 총론의 교육과정 내용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을 보인다. 실제 권고안의 항목이 총론의 목차 및 내용 구성과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그림 6]의 절차를 따라가면 권고안을 토대로 교육부의 총론 주요 사항이 마련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어느 정도 설계된 교육부의 방향이 국가교육회의의 의제에 반영되고 그것의 수렴된 결과로 나타난 측면도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즉, 교육부가 2021년 2월에 이미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 계획’을 밝히고 있던바, 국가교육회의의 집중 토론회 의제도 결국 고교학점제 관련 내용으로 귀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적 협의 절차에 참여했던 일부 참여자들은 정책의 합리성을 마련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의구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유경훈, 2022, p. 60). 마찬가지로 “이미 교육부 주도로 2022 개정 교육과정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일정 부분을 빼내 국가교육회의가 주관하는 행태로 사회적 협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간적 제약과 내용적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김용, 2022, p. 31).
한편, 국민 참여 및 사회적 협의를 위한 의제는 총론 차원으로 국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교과 교육과정 연구·개발진의 입장에서는 국가교육회의에 나타난 국민 의견을 직접적으로 참고하는 데 한계가 있다. 즉, 2022 개정의 경우 총론의 방향에 대해서는 국민 의견을 대대적으로 수렴했다고 볼 수 있으나, 교과로서는 이러한 과정이 실상은 없었다. 보통 교과 교육과정 개발의 경우 총론의 개발 방향이 일정 정도 수립된 후 그에 맞추어 교과 개발 방향을 제한적으로 설정하면서 주로 교과 관련 전문가나 교과 교사들을 중심으로 일회성의 조사를 통해 개발 방향을 수립한다. 국어과의 경우도 기초 연구 단계에서 학생, 교사 등의 제한된 대상을 중심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으나, 단순히 인식 조사에 머물러 그것을 분석, 논의하고 나아가 수요자 간 토론이나 숙고를 통한 협의가 없는 상태였다.
국어과에 대한 대내외 요구를 조사할 필요가 있는 것은 총론에서 준 교육과정 개발 방향 외에도 국어과 자체에 대한 요구를 직접적으로 청취함으로써 교과 교육과정이 총론과 상호 영향을 주면서 현장에 밀착된 교과 교육과정을 개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례로, 2007 교육과정 개정 시기에 국민을 대상으로 국어과가 요구를 설문 조사한 바가 있다. 당시 국어교육에 대한 국가·사회의 요구를 분석하기 위해 학생, 학부모, 교육전문가(교수), 교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이와 별도로 사회 인사(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계 인사; CEO 또는 정책 결정자)를 대상으로 델파이 조사를 실시하였다. 특히 사회 인사의 경우 2차에 걸친 델파이 조사를 통해 점차 의견을 수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총론 차원의 교육 지향성 외에도 교과 교육과정 차원에서도 특정 의제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시안 개발 이전에 대국민을 상대로 교과 교육에 대한 요구 조사와 의견 수렴이 일정 정도 필요하다. 예컨대, 국어교육에서 대국민을 상대로 의견을 물을 수 있는 것은 국어교육에 요구하는 바, 국어과의 중장기적 의제나 풀기 어려운 난제, 혹은 다른 분야와 맞물려 있는 융합적 접근이 필요한 의제 등이 안건으로 상정 가능하다. 이는 국어교육의 직접적인 수요자인 교사, 학생 등 외에도 일반 국민과도 어느 정도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202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과 관련하여서는 매체 영역 신설과 관련한 방향성은 교육과정 개발의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사회적 협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판단된다. 즉, 국어과에서 매체 영역을 다루는 것은 기존의 텍스트를 기반한 정통 국어와 달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하는 점, 초등과 중등 국어 교사 간 매체 수용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점, 국민들 간도 학교에서 매체 영역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점, 매체 내용은 교과 간 중복되는 지점도 있어서 교과별로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역할 배분이 사전에 필요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즉, 국민의 총의가 모인 총론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국어과에서 ‘매체 영역 신설’로 구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총론의 당위와 교과의 당위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필요시 교과 차원에서도 별도의 교육적 지향성을 국민들을 대상으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에 향후 교육과정 개정에서 교육 방향을 결정하는 ‘의제(what)’를 선정할 때 국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하고, 이때 미리 정해진 정책 방향을 토대로 의제를 선정하기보다는 국민적 요구를 토대로 의제가 선정될 필요가 있으며, 총론은 물론 필요시 각 교과의 의제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최교진 회장)가 주관한 현장 교사들의 의견 수렴은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 결정에 유효하게 영향을 끼쳤는가를 반성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현장 교원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를 활용하였다.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제안하여 자발적으로 전국의 유·초·중·고·특수·직업 교원, 교육 전문직 등이 모인 조직이다(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2023, p. 8).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를 통해 2차례 대대적인 의견 수렴이 있었는데, 먼저 1차로 2021년도에 1,971명이 참여하여 교육과정 총론 방향에 관한 의견을 제시했으며, 다음으로 2차로 2022년도 상반기에 6,164명이 참여하여 교과 교육과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전체 과정을 524쪽 상당의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 백서’로 기록함으로써(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2023), 향후 교육과정 개정에 참고할 만한 유용한 자료를 남겼다.
먼저 교육과정 개발 방향 수립 단계에서 [그림 8]과 같이 총론 방향에 대해 1차 현장 교원의 의견 수렴이 있었다.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는 전국을 32개 지역 네트워크로 나누어 2021년 1월부터 교육과정 이해 세미나(2021. 4.), 집중 토론(2021. 5.~6.), 집중 숙의(2021. 7.), 설문 조사(2021. 8.) 등을 거쳐 10월에 1차 제안서를 작성(2021. 10.)하여 제출하였다(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2023, p. 19).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1차 제안서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총론 6개 영역에 대해 현장 교사들의 요구를 담아 작성하였다. [그림 9]와 같이 새로운 교육과정 거버넌스와 분권화 및 자율화, 교육과정의 방향,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 교과 교육과정 운영, 특수교육 교육과정 정비, 학교 교육과정 지원 등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제안은 교사들의 요구이기에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현실적인 개선 의견이 많은데, ‘학년군제 폐지’, ‘범교과학습 폐지’, ‘성취기준 폐지’ 등과 같이 일부 내용은 좀 더 과감한 교육과정상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현장 교원의 대대적인 협조와 지역별 협의 과정을 통해 마련한 내용이 2021년 10월에 교육부에 전달됨으로써 2021년 11월에 발표한 총론의 주요 사항에 심도 있게 반영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으리라 판단된다.

이에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를 통한 지역별 교사들의 의견 수렴은 상향식 의사 수렴 방식과 현장 기반의 의제 선정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으나, 실제 고교학점제 등을 포함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교육 방향이 어느 정도 결정된 상태에서 현장 교사들의 의견 수렴이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 결정에 유효하게 영향을 끼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여기에는 의견 수렴 결과를 충분한 검토하여 반영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제약도 있었다.
III. 교육과정 시안 개발 단계의 의견 수렴 고찰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은 국민 참여 확대와 관련 기관 협업을 기반으로 하므로, 그에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여 교육과정 개발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여야 한다. 이때 국민 의견을 수렴하여 개발 방향을 수립할 수 있는 기간을 포함하여 교육과정 시안 개발 기간도 여러 집단의 의견을 검토하고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체계적 일정 관리와 충분한 시간 확보(how)’가 필요하다.
그런데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을 표방하며 다양한 경로의 검토 일정이 추가되었음에도,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교육과정 시안 개발과 이에 대한 의견 수렴은 기존 2015와 유사하게 1년여에 걸쳐 촉급하게 진행되었다. 202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을 사례로 의견 수렴을 중심으로 하는 추진 일정을 제시하면 [그림 10]과 같다. 주요하게는 교원을 대상으로 현장 네트워크 의견 조사, 핵심 교원 의견 조사가 있었고,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참여소통채널 운영, 공청회 개최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은 일정 속에서 검토 대상자를 달리하며 지속적으로 국어과 교육과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였고, 이를 토대로 연구·개발진은 시기별로 시안을 수차례 업데이트하였다.

국어과 교육과정 시안을 최종 완성해야 하는 2022년 12월 일정까지 기존 2015 개정보다 훨씬 많은 대규모의 대상자로부터 전방위적인 의견 조사 및 검토 과정이 있었다. 이때 검토자도 초, 중, 고 국어과 교육과정 전체 분량에 대해 긴급한 일정에 맞추어 유효한 의견을 주기는 쉽지 않았으며, 또한 개발자도 여러 경로에서 대규모의 검토자로부터 의견을 받는다고 해도 이미 시안이 지속적으로 수정됨에 따라 반영하기 어렵거나 의미 없는 의견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즉, 여러 경로로 대규모 의견을 수합하는 데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나, 개발진의 입장에서 그것을 검토·논의하여 수정할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함으로써 그만큼의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반성의 여지가 있다. 게다가 개발자의 입장에서 교육과정 시안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하는 작업 외에도, 여러 경로로부터 받은 검토 의견에 대해 다시 일일이 그 반영 여부와 미반영 사유를 적어서 피드백해야 하는 작업이 추가됨으로써 또 다른 부담이 가중되어 정작 시안 개발에 집중하기 어려운 점은 문제라 할 수 있다. 또한 검토진의 입장에서도 검토 의견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고 미반영 사유가 늘어나면서 검토 의견 제안에 대한 효능감이 떨어졌으리라 생각된다.
요컨대,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 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수렴하는 체제는 어느 정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으나, 그러한 경로에 맞는 필요 시간을 확보하면서 개발 절차를 진행하고 관리하는 측면은 다소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에서 교사는 실질적인 교육과정 ‘연구·개발 주체(who)’로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 개정에서 교사의 역할은 점차 비중을 높이고 있다. 2007 개정 교육과정부터 교사 참여에 주목하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이를 강조한 것은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라 할 수 있다. 당시 교육부는 교육과정의 현장 적합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전체 연구·개발진 중 1차 연구는 30%, 2차 연구는 40%를 교사로 구성할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였다(이쌍철 외, 2023, p. 17). 나아가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교과 교육과정 연구·개발 팀을 구성할 때, 현장 교사 50% 이상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점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40% 이상의 교원 구성비와 비교할 때 한층 연구·개발 주체로서 교사의 역할을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과 교육과정의 연구·개발 주체는 특정 내용 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학교급, 학년군별로 해당 내용 영역의 성취기준을 학생 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체계적으로 배치하고 이를 문서로 진술·구성하면서 이러한 작업 자체를 메타적으로 해설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사실 이러한 능력은 교사의 현장 경험만으로 성취되는 것은 아니고 별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측면이 있다. 교과의 특성과 상관없이 연구·개발자의 과반을 교사로 구성할 경우 교과의 영역별 전문성 배치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나아가 특정 영역은 다시 세부 하위 영역별로 별도의 전문성을 요구하기도 하다. 그리하여 교과 내에서 각 학교급, 내용 영역 등을 고려하여 개발자를 구성할 때 해당 분야에서 복수로 전문가를 구성하여 균형 있는 시각을 확보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일례로 국어과의 경우 문학 영역의 전공자 1명이 초, 중, 고 공통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주로 개발하게 되고, 문학 내 하위 영역에 대한 전문성도 홀로 감당해야 하므로, 해당 영역은 개인의 역량에 좌우되거나 그 영향이 커질 여지가 있다. 그러한 가운데 교수와 교사로 대별하여 연구·개발자가 구성되다 보니, 교수가 영역 팀장으로 해당 영역별 문서 진술 작업을 하고 교사는 그에 대해 검토 작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그 역할이 분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즉, 국어과의 경우 교사의 연구·개발자로서의 역할이 제한적으로 운영된 측면이 있었다.
현장 적합성이 높은 교육과정을 개발한다는 명분하에 교육과정 연구·개발진 구성에서 교과 특성에 상관없이 교사 비율을 일정 비율로 일괄적으로 높이려고만 하는 점은 다소간 재고의 여지가 있다. 즉, 교육과정 연구·개발진에서 교사 비율을 높이는 것이 직접적으로 현장에 밀착된 교육과정 개발로 이어지는지는 유의하여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실제 교육과정 시안 개발 단계로 진입했을 때에는 전체 뼈대가 완성된 후에 교과별 내용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해설하는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주요 과업이므로 이에 맞는 인적 구성이 무엇보다 필요로 하다. 국가교육과정 개발 시 현장 적합성을 제고하고 현장 교사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나, 현장 교사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과 연구·개발 주체가 현장 교사여야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6) 따라서 향후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일정 비율로 교사 비율을 강제하기보다는 교과 특성에 맞도록 어느 정도 인적 구성에 허용 범위를 주고, 그 가운데 교사가 연구·개발 주체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방점을 둘 필요가 있다.
교사들도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연구 역량 강화에 대한 요구를 하고 있다. 한 방편으로, 실천교육교사모임은 각 교원단체의 전문성을 갖춘 현장교원을 국책연구기관(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에 파견하고 일정 기간 공동 연구 후 학교 현장 복귀 과정을 통해 학교 현장의 연구역량을 신장하고, 교육정책 연구의 현장성을 높여야 한다고 요구한다(국회, 2025, p. 100). 이러한 대상자는 소수 교원이기는 하나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일회적 참여가 아닌 연구와 개발을 함께 진행하면서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으로, 교사는 개정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육과정의 실행을 공유하고 의견을 피드백하여 모니터링함으로써 추후 교육과정 개정의 기반이 되는 맥락을 이해하는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일부라도 교사의 교육과정에 대한 모니터링 과업은 상시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과업에 참여한 교사는 향후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교육과정 연구·개발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다.
소수 전문가 중심의 교육과정 개정 방식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단순히 교육과정 개정 작업에서 교사 비율을 기계적으로 늘이는 것만은 아니어야 한다. 이제 교사의 참여 비율보다는 실제적인 결정 단계에서의 역할 비중을 좀 더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는 교육과정 시안 개발 단계에서도 2차로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전국 17개 시도 405개 교과 네트워크 총 6,164명의 교원이 참여한 가운데 집중 토론 및 숙의 과정을 거쳐 초등 교과별, 중등 교과별, 직업 교과(군)별, 특수, 유아 영역의 각론 제안서를 교육부에 제안하였다. 즉, [그림 11]과 같이 교과 교육과정에 대한 사항을 안건으로 이해 세미나(2022. 1.~3.), 집중 토론 및 숙의 과정(2022. 3.~5.), 제안서 제출(2022. 6. 30.)의 일정을 거쳤다(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2023, p. 99). 이 가운데 국어 교과의 경우 초등 531명, 중등 425명인 총 956명이 국어과 대표로 활동하였다(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2023, pp. 96-97).

이러한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에 참여한 경험에 대해 교사들이 보고한 바도 있다. 홍원표, 온정덕(2024, pp. 12-13) 연구에 따르면, 그간 교육과정 개정에서 교사 참여는 자율적 측면이 부족하였는데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자율적으로 현장 네트워크에 참여하였고 교사 스스로 참여에 대한 효능감도 높았으며, 의견 수렴이 상당히 수평적이고 상향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고하였다. 한편, 김세영, 안용순, 신은희(2024)의 국어 교사로서 참여 경험을 보고한 연구에서는 교사들이 교육과정 문서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고 새로운 내용의 경우 현장 적용에 대한 실제를 고민했다고 긍정적인 경험을 강조하면서도, 2022 개정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서 학회와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 교과 모임과의 소통이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위계적이고 일시적인 소통에 그치고 말았다는 지적도 하였다.
교과의 입장에서 2차 제안서는 교과 교육과정에 대한 해당 교과 교사들의 검토 의견이므로 상당한 유의미한 내용들이 있었다. 그런데 현장 네트워크의 2차 제안서는 2022년 6월 30일에 완성되어 교육부에 제출되고 이것이 국어과 연구·개발진에게는 8월 11일에 전달됨으로써, 수개월에 걸쳐 의견이 수렴되고 숙의 과정을 거친 현장 교사의 귀중한 제안임에도 전달 시기가 늦어짐으로써 실제적인 내용의 반영 시기를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제안은 연구·개발진에게 가급적 빠른 시일에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므로, 총론 개발 방향을 위한 토론과 숙의 과정을 거친 제안과는 다른 방식으로 간략하지만 심도 있는 논의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즉, 국민 참여 확대와 사회적 협의를 위해 토론과 숙의를 진행하더라도 ‘제안할 의제와 사안(what)에 따라 그 일정을 탄력성 있게 조율(how)’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에서는 2022년 3월~5월 사이 전국의 교사들을 통해 교과별로 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의견을 모아 합의 과정을 거쳐 6월에 제안서를 마련하였고, 교육부는 논의를 거쳐 이를 국어과 교육과정 연구·개발진에게 8월 11일에 [그림 12]와 같은 문건으로 제공하였다. 여기서 국어 교사들이 제출한 의견서에서 ‘매체 교육 내실화는 찬성하나 매체 영역 신설은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제안이 교육과정 시안이 완성 단계에 접어드는 8월 시점에 전달받은 까닭에 매체 영역 전면 재고와 같은 국어과 영역 전체를 흔드는 의견을 수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어과의 경우,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를 포함하여 공청회 등의 여러 채널을 통해 매체 영역 신설에 대한 우려가 마지막까지 있었고, 이것이 마지막 심의 단계인 교육과정심의회(2022. 11. 9.)에서 [그림 13]과 같이 안건으로 오르기도 하였다. 다만, 국어과 공청회 개최(2022. 9. 30.) 이후에 이미 초등 저학년 매체 영역 관련 성취기준을 상당 부분 수정한 상태여서, 교육과정심의회에서 초등학교의 매체 영역 삭제를 더 이상 요구하지는 않았다. 실제로도 매체 영역 설정은 이미 기초 연구 단계부터 수행되어 시안 개발까지 완료된 상태이어서 12월 교육과정 고시 직전인 11월 교육과정심의회의 이러한 안건을 사실상 수용하기는 어려웠다. 여러 채널을 통해 전달된 매체 영역 신설에 관한 우려에 대해서, 초등 저학년에서는 매체 영역의 내용을 약화하고 전체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는 성취기준 수를 다른 영역과 달리 적게 할당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다만, 매체 영역 신설은 국어과에서 5영역을 6영역으로 설정하는 상당한 큰 변화이므로, 사전에 상당한 정도로 공론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은 대국민 참여와 민주적 숙의 과정을 추구하므로, 기본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을 염두에 두고 ‘일정 관리(how)’를 해야 한다. 특히 국민을 상대로 의견을 조사하고 수렴하는 과정에서 토론과 숙의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의견을 반영하는 과정에도 토론과 숙의가 필요함을 고려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의견을 전달하는 시기가 교육과정 시안 수정이 가능한 시기인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 의견 수렴 결과가 정작 반영되지 못하면 많은 이의 수고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국민참여소통채널’에 교육과정 시안을 2차례 공개하여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국민참여소통채널 운영은 이전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온라인 의견 수렴 절차이다. 국민참여소통채널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1차 운영 기간(2022. 8. 30.~9. 13.) 동안 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의견을 받았고, 공청회(2022. 9.~10.)를 거쳐 수정된 교육과정 시안에 대해 다시 2차 운영 기간(2022. 9. 28.~10. 3.) 동안 재차 의견을 수렴하였다. 1차 운영 기간 동안 국민참여소통채널을 통해 일반 국민 4,751건, 학생 461건, 교원 2,648건 등 총 7,860건의 의견이 모아졌는데, 총론에 대해 가장 많은 1,523건의 의견이 접수되었고 교과별로는 사회 1,361건, 도덕 1,078건, 국어 886건, 역사 715건 순으로 의견이 많았다(교육부, 2022a). 이때 국어과 경우는 1차 기간 동안 받은 886건의 의견 중, 2015 개정에 있었던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새 교육과정에 다시 포함해 달라는 요구가 대부분이었다. 2차 기간 동안은 3,000건 이상으로 의견이 대폭 증가하였는데, ‘한 학기 한 권 읽기’에 대한 요구는 여전하였으나, 국어과와 무관한 의견들이 정치 쟁점화되어 다수 올라왔다. 즉, 1차를 거쳐 2차에서 불필요한 논쟁이 상승적으로 일어나서 의견 건수가 대폭 늘어났지만, 국어과에 실효성 있는 의견은 많지 않았다.
국민참여소통채널을 1차로 운영하는 동안, 진보 성향의 집단에서는 ‘생태전환교육’, ‘노동인권교육’이 원래의 시안에서 점차 후퇴하는 양상을 보이는 측면을 지적하고, 보수 성향의 집단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양성평등’의 용어 사용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용어를 중심으로 한 정치 쟁점화는 교육과정 공청회 기간에 표면화되었고, 2차로 소통채널을 운영하는 동안 그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가운데 국민참여소통채널의 의견들이 실제로 국민 의견이었는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당시 신문 기사 중에서도 “8월 30일∼9월 13일 온라인으로 접수된 의견을 교육부에서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총론에 대한 의견 1천394건 가운데 60%에 달하는 820건이 9월 12일과 13일 이틀간 집중적으로 게재되”었고, “특히 조사나 오타 등을 제외하고 비슷한 문장으로 이뤄진 의견이 몇 초, 몇 분 간격으로 올라왔다”는 보도도 있었다(연합뉴스, 2022. 12. 15.).
김종훈(2023, p. 173)은 일부 교과 교육과정 문서에 사용된 용어를 중심으로 벌어진 담론의 충돌은 정작 새로운 국가교육과정의 주요 변화(예: 학교자율시간, 진로연계교육, 고교학점제 등)에 대한 교육적인 논의를 압도해 버림으로써 이를 학교교육을 통해 구현하기 위한 방안의 모색 등 국가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중요한 논제가 용어 사용을 둘러싼 논쟁의 뒤편으로 밀려나고 말았음을 지적한다. 즉,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서로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나, 작은 사안으로 정작 중요한 논의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은 문제라 할 수 있다.
국어과의 경우도 해당 용어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 ‘양성평등’ 등에 대한 요청의 글이 국어과에 많이 올라옴으로써 정작 국어과와 관련한 의견을 살피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국어과에 해당하는 의견이라도 ‘한 학기 한 권 읽기’ 추가 요구가 압도적이어서 정작 2022 개정 국어과의 주요 변화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거의 살피기 어려웠다. 사실 202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은 ‘초등 저학년 34시간 증배’, ‘디지털·미디어 역량 및 매체 영역 신설’, ‘고등학교 공통 과목 학기별 분리’, ‘고등학교 선택과목 신설’ 등 굵직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이에 대해서는 유의미한 의견이 거의 없었다. 즉, 온라인 소통채널을 통한 대단위 의견 수렴은 자칫 어느 한쪽으로 의견이 몰아치듯이 쏠림으로써 오히려 다양한 교육 주체들로부터 즉시적인 점검을 받는다는 온라인 채널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국민참여소통채널의 경우 온라인을 통한 대단위 조사이므로 다수 국민의 의견을 빠르게 수합하고 교육과정 연구·개발자의 입장에서도 그 결과를 비교적 빠르게 전달받음으로써 대단히 효율적인 ‘의견 조사 방식(how)’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이러한 효율적 방식을 유용하게 활용하고자 한다면, 국민의 실질적인 견해가 적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1차적인 여과가 필요하며, 의견들 간 갈등은 드러내더라도 그것을 불필요하게 증폭시키는 것은 견제할 수 있는 보완적 장치 마련이 요구된다.7)
IV. 향후 의견 수렴의 방향과 과제
교육부가 주도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을 기치로 여러 층위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의도와 그에 따른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과 한계도 있었던 바는 분명하므로, 향후 개정에는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2022년 9월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요청은 더욱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남은 과제는 고스란히 국가교육위원회의 몫으로 남겨진 상황이다. 교육부 주관의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그 경험이 국가교육위원회 주관의 교육과정 개정 절차에 유용한 시사점이 되어야 한다. 이에 향후 국가교육위원회가 국가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할 때 지향해야 할 방향과 그에 따른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국가교육위원회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제시한 ‘국민 참여 확대’와 ‘사회적 합의’의 취지를 계승할 필요가 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과정 개정을 중점적으로 담당하게 된 주요 의미는 무엇보다 교육정책 및 교육과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중립성을 토대로 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추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과 함께하는 교육과정에 대한 지향성은 국가교육위원회 주도의 교육과정 개정에서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가교육과정 개정에서 국민 참여 확대와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국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한다고 할 때, 이를 추진하기 위한 안건(의제) 선정, 의견 수렴의 대상 인원과 절차 등을 사전에 세심하게 설계해 둘 필요가 있다. 즉, 대국민 의견 수렴을 어떤 의제로, 어느 단계에서 어떤 규모의 인원을 대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추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공론화는 사전에 충분한 준비와 기획이 있어야 이후 토론과 숙의를 거친 원만한 합의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의견 수렴 방법을 활용해 본 것은 의미 있는 시도였으나, 일부는 유효한 의견으로 최종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이를 참고하여 각 방법이 필요한 절차에서 작동하여 불필요한 소요 없이 합의로 의견이 모아지고 그것이 유효한 의견으로서 최대치 반영될 수 있도록 섬세한 기획이 필요하다.
여기서 국민 참여를 확대하여 국민 의견을 조사하는 방법, 사회적 합의로서 권고안 도출을 위한 협의 방법 등을 국가 교육정책 특성이나 교육과정의 개정 방향에 따라 탄력적으로 채택할 수 있다. 국민 참여의 인적 규모, 운영 절차, 참여 기법 등은 교육정책 및 교육과정 개정의 변화 방향이나 진폭의 크기에 맞추어 달리 적용해 볼 수 있다. 예컨대, 국가교육과정의 패러다임의 대변화가 예고되는 전면 개정일 경우 대단위 규모로 장기간에 걸친 국민 의견 수렴이 가능하고, 수시 일부 개정일 경우 그에 맞는 적정 규모로 운영이 가능하다.
한편으로 국가교육위원회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같은 현장 교사의 자율적 협력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이제 교육부 주도가 아닌 상황에서 협조적인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하여 교육과정 개정에서 지원을 받을 것인가는 또 다른 과제가 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향후 거버넌스의 확장만이 아니라 확장된 거버넌스의 적절한 역할 배분과 효용성 있는 운영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 의견 수렴을 중시하는 맥락 속에서 교육과정 개정에서 중심을 갖고 진행할 바는 국민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과 전문가가 결정해야 할 사안을 구분하는 것이다. 공론화가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공론화의 한계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정책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중구난방으로 논의되도록 함으로써 비일관적인 의사결정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 공론 참여자들은 자신의 권력 또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론화를 지지할 수도 있다(신현석, 최상훈, 2023, p. 230). 이에 먼저 국민 의견 수렴이 필요한 사안을 적정하게 가려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교육과정 개발 과정의 추진 체제와 절차를 정교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가교육위원회가 국가교육과정 개정에 관한 권한은 법적으로 부여받았으나, 이를 진행하기 위한 인적 여건 및 체제가 아직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국가교육과정 수립·변경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는 어느 정도 구축되었으나, 후속적으로 이루어질 국가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단계와 그에 따른 인적 구성 및 운영 절차 등은 아직 정교화되지 않았다. 현재로서 국가교육위원회가 국가교육과정 개발에서 동원할 수 있는 추진 체제는 ‘국가교육과정 전문위원회’, ‘국가교육과정 모니터링단’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출처: 국가교육위원회(2023)의 2022~2023 국가교육위원회 백서를 참조하여 작성함.
최근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수시 개정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1, 2학년 신체활동 통합교과 신설’과 관련하여 전문위원회와 모니터링단의 의견 수렴을 통해 국가교육과정 수립·변경 계획(안)이 의결됨에 따라(국가교육위원회, 2024. 7. 16.), 오는 2025년 12월 고시를 목표로 곧 초등학교 1, 2학년 ‘즐거운 생활’ 통합교과와 여기서 분리될 신체활동 통합교과의 교육과정 개발 작업이 추진될 예정이다. 이와 같이 전면 개정은 아니지만 수시 개정은 언제든 진행될 수 있으므로, 미리 전면 및 수시 개정을 위한 세부적인 추진 체제와 절차를 구축해 놓아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가 현재의 추진 체제에 기반하여 마련한 국가교육과정 개정 절차는 [그림 14]와 같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교육과정 수립·변경 계획안 심의·의결 후 본격적으로 ‘국가교육과정 개발’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명확한 추진 체제와 절차를 파악하기 어렵다. 즉, 교육부 주도의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 체제에서 다양한 경로로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여러 위원회를 통해 조율해가는 양상을, 국가교육위원회 주도의 추진 체제에서 전문위원회와 모니터링단을 어떻게 활용하여 이를 계승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법령으로는 교육과정 개정 시 전문위원회와 모니터링단을 활용하는 체제 정도만 상정해 볼 수 있다. 대신에 이러한 추진 기구는 상시적으로 운영 중이어서 교육과정 개정과 관련한 정보를 누적·공유하고 선발된 인원을 중심으로 해당 의제를 집약적으로 논의하는 효율적인 의견 수렴 방식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교육과정 개발에 들어가면 현재의 전문위원회와 모니터링단의 인원이 많지 않기에 향후 해당 분야와 교과에 대표성을 띨 수 있는 정도의 적정 규모로 보강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현재로는 국어의 경우 전문위원회 1명, 모니터링단 중등 국어 교사 7명이 국어 교과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는 선정된 인원이라 할 수 있어서 해당 인원만으로는 향후 교과 교육과정 개정에 대비하기는 어렵다. 이에 전문위원회 하위로 전문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여 학교급별·교과별 소위원회가 운영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위원회도 교육과정 개정 시에 일회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구축·운영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소위원회의 구축이 가능하다면, 2022 개정의 학교급별·교과별 심의위원회 기능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소위원회는 현재보다 확충된 학교급별·교과별 교육과정 모니터링단과 연계하여 향후 교육과정 개정에 전문적이고 유효한 추진 체제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엄문영 외(2024) 보고서에서는 현재의 국가교육위원회 관련 법령하에서 구현 가능한 교육과정 개정 추진 체제를 [그림 15]와 같이 제시하였다. 이는 ‘국가교육과정 연구·개발’ 주체를 중심축으로 명확히 설정하고 ‘현장 네트워크’를 통한 여러 교육 주체들로부터 의견을 형성해 연구·개발의 방향을 잡아가는 상향식 모형을 보여준다는 데에서 기존 2022 추진 체제와 비교하여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 관련 현장 네트워크의 의견을 누가 어떻게 수렴해 갈 것인가, 사전 검토와 의견 수렴의 역할을 하는 전문위원회와 모니터링단은 어느 규모로 확충하여 어느 단계에 투입·활용할 것인가, 개발 연구 협력의 역할을 하는 여러 관련 기관들과는 어떠한 방식으로 협조를 요청할 것인가, 연구·개발의 중심 기능을 수행할 국가교육과정 연구센터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어떠한 위상으로 위치시키고 이에 따라 어느 규모를 갖추어 운영할 것인가, 심의·의결을 담당할 국가교육위원회 전체 회의가 총론 및 교과 교육과정 제반에 대한 여러 쟁점을 전문성과 대표성을 가지고 심의·의결할 수 있는가 등과 같은 후속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에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교육과정 개발 과정의 추진 체제는 물론, 여러 현실적 문제를 타개하며 추진할 수 있는 정교한 추진 절차를 함께 구축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교육과정에 대한 상시적인 의견 수렴이 가능하므로 교육과정 개정, 실행, 환류로 이어지는 시스템 속에서 차기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을 설정해가는 장기적인 안목의 추진 체제와 절차도 구축해 놓을 필요가 있다.
셋째,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교육과정의 개정 절차와 과정을 공유하고 교육과정 관련 위원회의 협의 사항과 의결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국민 참여를 활성화하되 사회적 합의에 대해서는 각각 지향점이 다르므로, 소수의 전문가나 위원회가 대표성을 띠고 결정을 한 경우에는 논의 과정과 그 결과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기존 교육부와 달리 국가교육위원회에 좀 더 기대하는 바는 민주적 절차와 그에 따른 투명성 확보일 것이다. 투명성 확보의 일환으로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의견들을 기록해 두고 이에 대해 논의한 바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2 개정에서는 일부 개진된 의견들을 기록한 바 있으나, 의견을 심의하고 반영하는 과정은 기록하거나 공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기껏 많은 의견을 제시했으나 반영되지 못했다는 불만이 여전히 남게 된다. 호주의 경우, 교육과정 개발 절차마다 다양한 보고서를 공개하고, 협의회가 진행되고 종료될 때마다 협의의 내용과 결과를 담은 협의회 보고서를 공개하며, 협의에 관한 의견을 수렴한 후 그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관한 계획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내용을 웹사이트에 게시한다(권오남, 박수민, 이경원, 2019). 핀란드의 경우도 교육과정 개정 과정을 온라인을 통해 국민과 공유하고 그 가운데 진행되는 전문가의 의견 교환을 공개하며, 연구책임자가 교육과정 개정 상황과 변동 상황을 설명해주는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이르멜리 할리넨, 2020).
이러한 투명성의 확보는 정치적 중립성을 견인할 수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경우 추진 중인 2022년 5월에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치적 용어와 관련한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인 바가 있다. 그런데 교육과정 개정에서 이러한 정치적 논쟁의 개입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해야 할 국가교육위원회의 경우는 이에 대해 더욱 민감해야 하며, 민주적 절차와 그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통해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국민 참여를 통한 교육과정 개발은 전문가 중심의 교육과정 개발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즉, 국민 참여를 통한 교육과정 개발은 교육과정에 관한 전문가의 역할은 인정하되, 대신에 전문가가 여러 교육 주체들의 의견을 현실 가능한 대안으로 모색하여 결정하고 그러한 결정이 어떠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는지 공개하고 설명해 주기를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