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의술, 법률, 사업, 기술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란다.
- <죽은 시인의 사회> 중에서3)
I. 문제제기
우리나라의 지성계는 10여 년 전부터 범학문적 통합(연결, 융합, 통섭 등)이라는 화두를 제시해 왔고, 그러한 흐름 속에서 올해 고시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 과정을 지향한다는 취지 아래, ‘창의·융합형 인재육성’,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인재’ 양성 등을 강조하였다. 특히 과학계를 중심으로 학문 간 장벽을 허물어 하나의 연계된 교수·학습 패러다임으로 묶는 교육(Morrison, 2006; 심재호 외, 2015에서 재인용)인 STEM, STEAM4)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그 결과 2011년 정부의 ‘제2차 과학기술 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2011〜2015)’의 핵심과제 중 하나로 ‘창의적 융합인재 양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융합인재교육(STEAM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심재호 외, 2015).
한편, 홍후조(2014)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구성은 고등학교에서의 진로별 학습기회 보장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①학교 차원의 교육과정 제공, ②학생 차원에서 교과목과 실생활, 교과목과 다른 교과목, 교과목과 학업 진로, 교과목과 직업진로가 통합되는 방식의 학습 효과 창출, ③교과목 차원에서의 문·이과 통합 방안을 제안하였다. 그는 특히 교과목 차원에서는 ①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통합된 과목의 별도 개설, ②상대방 교과에 과학적 혹은 사회적 관계 단원 별도 설치(과학 과목 내에 사회와 관련된 통합 단원 설치), ③해당 과목 고유의 단원 진도를 마치면서, 각 단원 내 도입, 전개, 정리 등에서 통합적으로 접근한 내용을 제시하는 안 등을 보였다. 또한 과학기술계 교과 간에는 ‘STEAM’이 교과 간 통합을 위한 하나의 빅 아이디어가 되듯이, 인문사회계 교과들은 LASS(Language, Arts, Society, Science)를 마련하여, 교육과정 총론 아래 교과 간 단절을 보완할 가교 역할을 할 필요가 있음을 제시하였다.
국어교육학계와 과학교육학계에서도 다음과 같이 일찍부터 교과 간에 소통하고, 통합해야 할 당위성을 피력하면서 통합해야 되는 지점 또는 통합이 되지 않고 있는 지점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 온 바 있다.
박인기 (2006) | • 모든 교과가 자기 교과의 지식이 가지는 정당성에 대해서는 스스로 강화된 논리를 과잉될 정도로 갖추고 있음(p. 3). • 국어교과 안에 있는 ‘언어-언어교육적인 것’이나 ‘문학-문학교육적인 것’이 타교과와 상호 성을 높이고, 나아가서는 그것이 교육 방법 일반으로 매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우리는 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학교교육 실천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진화로 보아야 한다(p. 8). |
김봉순 (1997) | •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학생 활동을 유발시 키려는 타교과의 움직임과, 언어 기능의 학습이 활동을 위한 활동의 차원이 아니라 유목적적이고 상황의존적인 실제적인 맥락에서 언어 능력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려는 국어교과에서의 움직임은 지향점이 같다(p. 76). • 국어과교육은 일반적인 언어 기능의 연구에서 구체적인 내용 분야에 대한 언어 기능의 연구로, 전형적인 맥락에서의 형식적인 언어활동이 아니라 의미 있는 맥락에서의 실제적인 언어활동에 대한 연구로 연구의 범위를 넓혀, 교과교육에서 국어과교육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p. 78). |
김명순 (2007) | • 국어과에서 당연시했던 읽기, 쓰기의 범교과적 도구성이 각 분야의 실제에서 기대만큼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p. 93). • 국어과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영역 일반 문식력 기능이 내용 영역으로 잘 전이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음(p. 116). |
신동희 (2004, p. 113) | 지금까지 과학교육자들은 과학적 소양(scientific literacy)을 언급하면서도 가르쳐야할 과학 지식의 내용이나 과학 탐구 방법에 주로 관심을 가져 왔을 뿐, 과학적 소양은 궁극적으로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리터러시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모든 과학적 활동은 결국 문자화되어 글이나 표, 그래프로 표현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있게 전 달된다. (중략) 수학보다 훨씬 더 많은 글과 자료를 활용하는 과학에서 리터리시의 중요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해 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
이경화 (2005, p. 152) | 교과학습독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과내용과 관련된 독서 자료로, 학습자의 학습 능력 및 독서 수준에 적합한 독서 자료가 선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교과 학습에 적합한 독서전략이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즉, 교과학습독서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과학습독서에 적합한 교수 방법과 전략을 포함하는 교수 모형이 개발되어야 한다. |
박수자 (2005, p. 37) | 독서는 국어과교육만의 과제가 아니라 범교과적인 문제임. 학생으로 하여금 독서의 내면적 효과만큼이나 사회적 역할 인식에 눈뜨게 하려면, 독서를 통해 획득한 지식을 생산적인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도하여야 함. 그것이 사회에 참여하는 지식 생산자로서의 잠재성을 계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인류 문화에 참여하고 그 문화를 향유하는 매우 고귀한 정신적, 사회적 행위이다. 앞으로 독서의 본질과 독서 활동이 의미하는 사회적 기능을 고려할 때, 범교과적 독서 활동과 작문과 관련된 생산 활동에 주목해서 독서 지도를 할 필요가 있다. |
본 연구는 홍후조(2014)가 제시한 통합의 방향에 동의하고, 박인기(2006), 김봉순(1997), 김명순(2007), 신동희(2004), 이경화(2005), 박수자(2005)의 문제 제기에 동감하면서,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한 하나의 대응으로, 과학과 언어(국어)를 교수·학습 차원에서 교사가 융합적으로 통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한 가지 미리 밝혀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연구는 언어(국어)가 교수·학습의 방법적인 측면을 제공하고, 과학은 내용을 제공 한다는 이분법적 전제에 기초하지 않고, 학문분과 간 분과주의적 구획을 상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국어교육 연구자, 물리교육 연구자, 물리교사가 한 팀이 되어, 기존의 국어 교육에서 내용 교과 읽기 교육에서 실행하기 어려웠던 점을 극복하고, 신동희(2004)의 지적처럼 기존 과학교육에서 소홀히 했던 문식성(Kteracy)5)) 신장을 도모할 수 있는 교육 방법을 제 안하여 수업 시간에 투입한 후 그 결과까지 성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논문에서는 전체 연구 중 초반부 연구 결과를 보인 것으로, 과학과 언어(국어)를 통합시킬 수 있는 교수.학습 방법을 제시하여 그러한 방법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교수·학습 방법의 원리를 도출하였다. 후속 논문에서는 이러한 방법론을 구체적인 과학 교육 내용에 접목한 사례를 소개하고, 그것의 수업 실행 효과와 장단점에 대해 보고하고자 한다.
본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연구진들은, 해외에서 쓰이는 교수·학습 모형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 흔히 활용되는 방법을 모형화하고자 하였다. 이는 일차적으로 외국의 고유한 맥락에서 발생한 교육 방법을 우리의 교실 현장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차이(gap)와 난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진들은 그간 우리 학계에서는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 방법을 하나의 교수·학습 모형으로 이론화,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많지 않았다는 점에도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연구진들은 현재 학교교육 안팎에서 활용되고 있는 읽고 논의하고 쓰는 방식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읽고 논의하고 쓰는 방식은 흔히 국어과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교육 내용이자 교육 방법이기도 하면서, 범교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학습 방법이자 교수 방법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외의 경우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이러한 교육 방법을 이론적으로 접근하여 모형화한 사례가 드물다.
이 연구는 통합적 교수·학습을 실천하는 틀로써, ‘讀(읽기)·討(논의하기)·論(글쓰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흔히 ‘讀·討·論’이라고 하면, 무엇인가를 읽고 토론(debate)할 거리를 추출해서 토론하고 그에 대해 논술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본고에서 ‘讀’은 책읽기를 포함하여 다양한 글(텍스트) 읽기를 포함하는 의미이고, ‘討’는 교육 토론(academic debate)를 의미하지 않고 토의, 협의, 이야기 나누기 등 각종 논의하기를 모두 포괄하는 의미를 나타낸 다. ‘論’도 흔히 말하는 어떤 쟁점에 대해 찬반을 구분하고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는 논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적 글과 같이 전형적인 주요 장르(major genre) 쓰기 등 주로 학습 결과로서의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학습의 과정 중에 이루어지는 비교적 적은 분량의 설명하기, 요약하기 등 주변 장르(minor genre) 쓰기 등을 모두 포함한다.
‘讀·討·論’은 크게 새로운 방법론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학교교육 내 정규 수업 시간에 讀·討·論의 방법을 자주 활용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독서토론반 운영이나 기타 여러 교과 외 활동으로 독서, 토론, 논술 활동은 수없이 많이 이루어져 왔고6) 현재 에도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교육에서도 讀·討·論의 방법론을 활용한 사례(신희선, 2008; 김양선, 2009)들도 보고되었는데, 이 외에도 실제 실천 사례들은 더 많을 것이다. 문제는 국내에서는 이러한 교육 방법이 하나의 교수·학습 모형으로 체계화된 적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게 될 북클럽 프로그램(Book Club Program)만 하더라도 열악한 교육 환경에 놓인 Allen Street School에서 시작한 교육 실천이 시발점이었고, 그러한 교육 실천을 미시건 주립 대학의 독서교육 연구자들이 가세하는 프로젝트로 발전하면서 그와 관련된 많은 연구 결과들을 생산하였다(Raphael & Hiebert, 1996).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계는 대체로 해외 교육 현장의 내적 문제로부터 촉발된 실천 기반의 이론적 성과를 수입하는 데에 급급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도 기반을 두고, 국내에서 초·중·고 학교 안팎의 교육 및 대학교육에서 여러 형태로 실천되고 있는 讀·討·論 수업을,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여 하나의 교수·학습 모형으로 제안하려는 것이다.
아래 장에서는 우선 국어와 과학 교육에서 제안된 讀·討·論 관련 교수·학습 모형들을 검토 한 후(2장), 교수·학습에서 讀, 討, 論하는 과정이 함의하는 교육적 의의에 대해 살피고 과학 수업에서 유의해야 할 교수·학습 원리를 제안하고자 한다. 단, 이때 기존의 읽기 교육이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학문 문식성 개념을 도입하고 그와 관련하여 과학언어와 과학 지식의 속성 및 과학자들의 읽기 방식에 대한 검토를 바탕으로 하여 읽기 과정에서 지향해야 하는 원리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3장). 그리고 3장의 검토 내용에 따라 讀·討·論 모형의 교수·학습 원리를 제안할 것이다(4장). 이후 후속 연구에서는 본 논문에서 제안한 교수·학습 모형을 실제 고등학교 물리 수업에 적용한 후 그에 대해 성찰하는 연구를 진행할 것이다.
글머리에서 인용한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은, ‘의술, 법률, 사업, 기술’과 ‘시, 아 름다움, 낭만, 사랑’이 우리 삶 속에 공존하는 것임을 상기해 주지만, 이 두 가지 부류를 결합, 혹은 융합, 복합하는 것까지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연구는 서로 성질이 다른 과학과 언어(국어)를 결합하여 수업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고 한다.
Ⅱ. 관련 교수·학습 방법 검토
아래에서는 읽고, 이야기하고, 쓰는 활동 등을 활용하는 다양한 교수·학습 모형 중에서 과학과 언어(국어)를 통합하려는 본 연구의 취지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방법론과 최근 강조되고 있는 STEAM의 통합적 교육 방법에 대해서 검토하고, 각 방법론과 달리 본 연구가 제안하는 학문 문식성 개념과 결합한 ‘讀·討·論 모형’7) 특성과 의의를 논하고자 한다.
북 클럽 프로그램은 애초에 문학작품을 토대로 독해력을 향상시키는 문식성 지도를 강조하면서도, 필자와 독자 간 관계 속에서 독자로서 학생의 역할을 자각하면서 학생들이 독자 공동체 또는 문학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방향을 지향하였다(Raphael & Hiebert, 1996). 그 방법론으로 수업에서 읽기, 쓰기, 읽은 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소규모 모둠 활동, 전체 학급에서 모든 학생이 읽은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공유 시간, 교사의 명시적 지도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Raphael & Hiebert(1996)은 문학 작품 읽기에서 나아가 문식성 지도와 교과(사회, 역 사) 지도를 통합하는 방법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하나의 주제 하에 내용교과 학습과 그와 관련된 문식 학습을 하게 하였다. 가령 남북 전쟁을 다룬 소설을 읽기 전에 그와 관련된 역사 지식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학생의 소설 속 사건전개의 이해와 감상의 폭을 넓혀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문식성 지도와 교과 내용 지도의 통합은 문식성 지도의 내 용을 교과의 학문공동체의 문식 실천의 특성에 기반하여 구성했다기보다는 문식성 지 도와 내용교과 지식을 따로 가르치고, 어떤 접점을 찾아 연결하는 방식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3장에서 살펴보게 될 내용 문식성 지도가 갖는 한계를 띤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의 학문 문식성 기반 ‘讀·討·論 모형’ 수업과는 변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라연, 노명완(2004)이 중1 대상으로 북 클럽 프로그램을 1주일간 6 차시에 걸쳐 수업 시간에 활용한 바 있다. 이 연구는 김라연(2006)에 대한 예비 연구의 성격을 갖는데, 그 결과가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김라연, 노명완(2004)는 예비 연구라는 한계도 있지만, 프로그램 실행 기간이 일주일로 매우 짧았고, 교사에게는 외부 연구자에 의해 부가된 수업 방법이었기 때문에 교사의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을 뿐 더러 교사가 프로그램에 대한 신념이나 효과에 대한 확신도 없는 상태로, 학생들도 수업 방법에 대한 이해나 적응 정도가 낮은 상태이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충실히 수행 되기 어려웠다고 본다. 이후 김라연(2006)에서는 연구자가 교사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고1을 대상으로 13주 동안 프로그램을 시행하였고 그 결과, 학생들의 의미 있는 변화를 관찰하였다. 사실 이 두 연구는 교사가 본인이 행하는 교수·학습 방법에 대한 이해와 그 효과에 대한 신념이 없으면 교수·학습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고, 교사가 교수·학습 방법을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활용하는 상황이 전제되지 않고 타인으로부터 임무가 주어지는 상황이라면, 어떤 좋은 방법도 학습자들의 학습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움을 시사한다.
북 클럽 프로그램은 독자 반응 이론과 같이 문학 비평에서 독자(학습자)의 창의적 의미 구성을 존중하는 이론을 기반으로, 애초에 저소득층 지역 학교의 학생들을 자립적인 읽기 능력을 갖추고 즐거이 읽는 독자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즉 일차적으로 문식성에 대한 인지적 능력과 정의적 태도를 신장하고자 한 것으로, 본 연구가 지향하는 것과 같이 교과 통합적 교수·학습의 방법론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다.
본고가 제안하는 ‘讀·討·論 모형’은 과학 수업에서 활용되는 방법으로, 학문 문식성에 방점을 두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북 클럽 프로그램과는 차별된다. 그러나 북 클럽 프로그램과 ‘讀·討·論 모형’은 읽기, 논의하기, 글쓰기를 중요한 방법으로 활용한다는 점, 그리고 학교교육 내 수업 상에서의 변화를 꾀하고자 한 점은 서로 다르지 않다. 다만 ‘讀·討·論 모형’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 실천 방법을 이론화, 체계화한 결과라는 점에서 변별된다. 마지막으로 북 클럽 프로그램이 교사의 명시적 지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점은 ‘讀·討·論 모형’에서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SWH는 과학 교육의 실험 활동 속에서 발견적(heuristic) 탐구 과정을 촉진하는 수업의 틀로써 제안되었다. SWH는 아이디어의 표현, 동료 간 협력적 협의, 글쓰기의 활동을 포함하고 있고, 이러한 활동에 대해 교사와 학생이 각각 따를 수 있는 활동의 틀을 <표 1>과 같이 제시한다.
* Keys et al.(1999, p. 1068-1069)을 바탕으로 제시함.
<표 1>에서 볼 수 있듯, SWH에서 교사는 실험 활동에 돌입하기 전에 실험에서 다루는 개념(수업주제)에 대한 학생의 사전 이해 정도를 점검하고, 주제와 관련된 브레인스토밍, 질문 하기 등의 실험 전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그런 후에 학생들은 실험을 수행하고, 학습 일지 작성과 같은 글쓰기를 통해 개인적으로 자신이 수집하거나 관찰한 데이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후 데이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동료와 비교한다. 이 모둠별 협의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수집한 데이터로부터 일반화시킨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주장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동시에 학생들은 권위 있는 저작물을 읽거나 교사의 도움을 받아 개념에 대한 최초의 생각을 수정하거나 정교화시켜 나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의 마지막에는 조금 더 정련된 형태의 글쓰기 과제(실험 보고, 설득적 글쓰기, 연구 포스터 제작 등)를 통해 탐구과정에 대한 자신의 이해정도를 보이고 소통하기 위해 글을 쓰게 된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개념에 대한 학생의 이해 정도를 점검한다(Keys et al., 1999).
이상의 틀을 활용하는 SWH는 학생들로 하여금 실험실에서 다루어지는 개념에 대해 의미 있게 동료들과 협의하고 읽고 사고하도록 독려하여, ①자신과 타인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하고, ②협의 후 글쓰기 과제 부여를 통해, 개별적 의미(지식) 구성과 사회적 의미 구성을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수업 모형이다. 전통적 실험 보고서는 문제 탐구, 방법, 관찰, 데이터, 증거, 주장(결론), 가설 사이에 연결고리 없이 각각에 대해 쓰는 방식이었다면, SWH는 협의하고 글쓰기를 하는 과정을 통해 이 각각의 단계 사이를 연결 하는 방식을 취한다(p. 1082). 또한 SWH는 과학계라는 학문공동체에서 통용되는 독특한 특성(자료 수집 시 시간 엄수의 전통, 증거가 되는 데이터 평가하기, 설명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이론 구성하기 등)과도 조응하는 방식을 활용한다(Keys et al., 1999). 이러한 SWH 모형을 국내 중2 과학 수업에 적용해, 학생의 인지수준 발달, 과학개념 이해, 논의, 글쓰기 능력에 있어 서 향상이 있었음을 보고한 연구(남정희 외, 2008)도 있다.
SWH는 기존의 실험 활동 위주의 과학 수업을 협의하기, 쓰기, 읽기 등의 문식 활동과 연계해서 수업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그러한 수업 전개의 방식이 과학자들의 과학 활동과 크게 닮아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과학 교육 방식과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 ‘讀·討·論 모형’도 읽고, 논의하고, 쓰는 단계가 있다는 점에서 SWH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①‘讀·討·論 모형’은 주로 수업의 초반에 과학개념(학습주제)에 대한 제시나 입력(input)을 글(텍스 트) 읽기로부터 시작한다는 특징이 있고, SWH는 실험 후 협의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이론이나 설명을 읽는 단계로 기획되어 있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②SWH는 실험 활동이 전제가 되는데 반해, ‘讀·討·論 모형’은 실험 활동이 없어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모든 과학 수업이 실험 활동을 수반하는 것은 아님을 상기할 때 ‘讀·討·論 모형’이 가지는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③‘讀·討·論 모형’은 교과통합형 수업 모형으로 모든 교과에 적용 가능한 수업의 틀이라는 강점이 있는데 반해, SWH는 과학교과에 국한된 수업 모형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과학교육계에서는 학생의 ‘논변활동을 강조한 개방적 과학탐구활동 모형’(김희경, 송진웅, 2004)이 제안된 바 있는데, 이 모형은 실험 과정 속에서 쓰기 논변활동(argumentation)과 말하기 논변활동을 극대화하여 학생들이 지식 생산의 특성과 지식의 사회 구성적 특성을 체험하게 하는 수업 모형이다. 이 모형은 SWH와 방법은 다르지만 과학교육의 지향점은 유사 하다고 할 수 있고 과학 수업에서 말하기와 쓰기, 특히 논변활동과 같은 문식 활동을 강조한 다는 점에서 SWH나 ‘讀·討·論 모형’과 유사점을 갖는다. 그러나 SWH와 같이 과학교육 특수 한 방법론이라는 점, 동료의 보고서 읽기 외에 학습할 개념에 대한 텍스트 읽기 단계가 없다는 점에서 ‘讀·討·論 모형’과 차이가 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는 많은 물건들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기술이 적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과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문제들의 대부분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문 간 상호작용과 연계성을 강조하는 STEAM 교육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과학창의재단(2012)도 융합인재교육(STEAM) 홈페이지에서 STEAM 교육의 특징을 ‘융합’으로 제시하면서 ‘융합적 소양(STEAM Literacy)’은 다양한 지식을 활용해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궁극적인 융합은 실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융합’이라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STEAM 교육의 특징이 비교적 구체적인 데 비해 STEAM 교육의 방법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도 명료하게 제시된 것이 없고, 단지 STEAM 교육에서 강조해야 하는 점이나 방향성만을 제시하고 있다. STEAM의 기초가 된 STEM의 경우 Zollman(2012; 심재호 외, 2015에서 재인용)은 STEM 소양을 증진하기 위해서 소양의 융합, 내용과 교수활동의 혼합이 필요하여 학생들의 태도, 신념, 자아 효능감, 자신감, 동기를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창의 적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STEM에 Arts가 더해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한(Belvins, 2012; 심재호 외, 2015에서 재인용) STEAM 교육은 창의성, 혁신, 감성, 유연성, 적응력의 함양을 강조하고 있다(심재호 외, 2015). 한편 백윤수 외(2011)가 제시한 한국형 STEAM 교육인 4C-STEAM 교육에서는 지식 및 개념의 융합(Convergence), 창의성(Creativity), 소통(Communication), 배려(Caring)를 강조하고 있다(심재호 외, 2015).
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STEAM 교육 홈페이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융합인재교육 홈 페이지(http://steam.kofac.re.kr)에도 STEAM 교육이 취지와 주제 중심으로 개발된 많은 STEAM 교육 프로그램들이 탑재되어 있으나 그러한 STEAM 교육 프로그램들의 모태가 된 모형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로부터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심재호 외(2015)는 앞선 연구자들이 제시한 STEAM 교육 모형들마다 융합의 방식이나 요소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학교 현장의 교사들이 비교적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고 실천 하기 용이한 STEAM 교육 모형과 수업 설계를 위한 준거 틀을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讀·討·論 모형’은 애초에 이러한 과학기술계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읽기, 논의하기, 쓰기가 모든 교과의 학습에 기초적인 활동이 된다는 점에서 여러 교과교육에서 범교과적으로, 통합적으로 수업하는 데 요긴한 교수·학습의 틀로 역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Ⅲ. 학문 문식성 기반 ‘讀·討·論 모형’의 이론적 배경
본 장에서는 우선 ‘讀-討-論’ 과정이 갖는 교수·학습적 의의를 개인의 지식 구성 차원에서 밝힌 후(1절), 기존의 읽기 교육이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학문 문식성 신장이라는 측면에 대해 설명하고(2절) 그와 관련된 과학 언어와 과학 지식의 특성(3절) 및 과학자들의 문식 실천의 한 단면인 읽기 특성 등(4절)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검토를 통해 학 문 문식성 기반 ‘讀·討·論 모형’에서 유의해야 할 교육적 원리를 도출하고자 한다(5절).
학생들은 읽기를 통해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때에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기존의 사전 지식과 연결시키거나, 자신의 배경지식이나 경험을 활용해 텍스트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한다는 것은 이제 거의 상식이 되었다. 학교교육에서 어느 교과목을 막론하고 학생들이 교과의 새로운 내용(주제)을 접하게 되는 통로는 흔히 교과서가 된다. 교과서는 대체로 내용을 단원별로 구분하고, 단원 내에 학습목표나 학습주제와 관련된 텍스트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새로운 지식을 교과서 내 텍스트 읽기로부터 출발하여, 교사의 설명, 관련 연습 문제 풀이(관련 학습활동 하기), 내용 정리 및 평가 등을 통해 습득하게 된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데 있어서 텍스트 읽기가 끝난 뒤에 반드시 ‘討(논의하 기)’ 과정을 거치고, 그런 다음에는 반드시 ‘論(글쓰기)’ 과정을 거쳐서 하자는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讀-討-論’ 과정은 지식을 구성해 가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과정이기도 한데, 이를 아래에서 지식 구성(knowledge construction)에 관한 비고츠키의 공간(Vygotsky Space) 모형을 활용하여 설명해 보고자 한다.
[그림 2-1]에 나타난 비고츠키의 직사각형 공간은 사적↔공개적 차원과 개인적↔사회적 차원으로 구분되고, 이에 따라 ①공개적-사회적(공간 I), ②사적-사회적(공간 Ⅱ), ③사적-개인적 (공간 Ⅲ), ④공개적-개인적(공간 Ⅳ)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개인의 ‘인지과정’ 및 ‘인지구조의 발달’은 공간 I에서부터 공간 Ⅳ를 거치면서 이루어지게 된다. 공간 I과 공간 Ⅱ사이에서 개인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대화로(또는 담론으로) 교류하면서 가지게 되는 생각들이 적합한지를 알게 된다. 여기에서는 적합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공간 Ⅱ와 공간 Ⅲ 사이에서 개인은 이전에 적합화를 거친 생각을 자기것으로 만들거나 그 과정에서 변형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변형이라고 한다. 공간 Ⅲ과 공간 Ⅳ 사이에서 개인은 이전에 혼자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이야기를 통해(또는 행위를 통해, 또는 둘 다를 통해) 타인에게 공개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공개화를 거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공개된 개인의 생각은 공간 Ⅳ와 공간 I 사이에서 개인 본인의 생각이자 타인의 생각이게도 되는, 관례를 따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를 관습화라고 명명하였다. 이러한 흐름을 따르면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도움을 받으면서 개인의 ‘인지구조’가 형성되고 ‘인지과정’은 이루어지게 된다. 여기까지는 2D차원에서 설명한 것인데, 여기에 시간의 축을 더한 3D차원의 설명은 [그림 2-2]를 통해 가능해진다. [그림 2-2]는 [그림 2-1]이 나타내는 지식구성과 내면화의 과정이, 달리 말하면 학습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특징을 잘 포착해 준다. [그림 2-1]이 나타내는, 하나의 개념(혹은 하나의 학습주제)에 대해 내면화해 나가는 이러한 학습은 차례차례로 이루어져야만 하는데, 이것을 [그림 2-2]로 표현하고 있다9). 인간의 인지 발달에 있어서 개인 간 심리 범주와 개인 내 심리 범주를 구분하고, 인간의 고등 정신 기능이 ‘언어’에 의해 개인 간 심리 기능(interpsychological funtion)에서 개인 내 심리 기능(intrapsychological function)으로 전환, 즉 내면화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비고츠키 이론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이다10).
이러한 비고츠키의 공간에서 讀·討·論이 일어나는 지점에 대해 알아보자. 텍스트 읽기, 즉 讀은 공간 Ⅲ(사적-개인적)에서 일어나고, 공간 Ⅳ와 공간 I에서 읽은 내용(또는 지식)에 대해 여러 형태로 논의하는 과정, 즉 討를 통해 학생들은 읽은 내용에 대해 자신의 앎을 조금 더 정교화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학생의 학습은 문어(텍스트), 구어(논의하기), 다양한 개념(단어의 의미, 배경지식 등)과 다양한 자료(담화, 인쇄물 등)에 의해 중재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학생이 자신이 읽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보다 유능한 동료나 교사의 도움을 받아(비계 지원) 이해의 폭과 깊 이를 확장할 수 있다. 타인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학생들이 지식을 내면화하는 데 도움을 주 고, 해당 지식을 개인적 차원(공간 Ⅱ와 공간 Ⅲ)으로 진척시켜 나갈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된 다. 그런 다음에 학생들은 공개된 공간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획득한 앎을 글쓰기를 통해(즉 論을 통해) 구성물을 만들어 내고, 이를 사적, 개인적(인지적)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글(자신의 앎, 자신의 학습의 결과)로 변형하게 된다.
이러한 ‘讀·討·論’의 과정은 사고 과정에 대한 Marzano et al.(1988)의 설명에서도 핵심적인 요소이다([그림 3]).
[그림 3]은 지식습득에 이해, 개념형성, 원리형성, 이야기 나누기(oral discourse)라는 요소 (또는 과정)가 포함되고, 지식생산(또는 지식적용)에는 이야기 나누기, 글쓰기, 문제해결, 의사 결정, 탐구·조사라는 요소(또는 과정)가 포함됨을 나타낸다. 讀을 통해 학생들은 학습주제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된다(이 과정에서 개념이나 원리 형성도 이루어질 수 있음). 討는 [그림 3]에서 지식습득과 지식생산 양쪽에서 중요한 사고과정으로 나타나 있다. 즉 討를 통해서는 지식습득에도 도움을 받고, 지식생산이나 적용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論을 통해 지식을 생산하거나 지식을 적용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쓰기는 일찍이 Emig(1977)이 “학습의 독특한 양식”(p. 122)이라고 설파한 바 있고, 최근 우리나라에 논술 교과 도입의 정당성을 보인 원만희, 한혜정(2015)도 쓰기는 학습의 방법이고 사고 단련을 위한 좋은 수단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Alvermann et al., (2013, p. 180-181)은 쓰기를 하려면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살피고 그 중에서 무엇을 활용할지 결정해야 하고, 알아보아야 할 부분에 주목하게 해주기 때문에 쓰기가 선지식과 새롭게 보게 될 자료를 연계하는 교량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즉 쓰기가 학습의 결과를 드러내는 행위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쓰기를 통해 많은 것을 새롭게 학습할 수 있게 됨을 강조하였다. 실로 ‘讀·討·論’의 과정은 지식 습득과 지식 생산이나 적용에 필요한 핵심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학생들의 성공적인 학습에 필수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국어과교육에서는 언어(국어)에 대한 교육도 하지만 언어를 다루는, 즉 읽고, 이야기하고, 쓰는 것에 대해서도 교육한다. 인간의 사고가 언어 없이 이루어지지 않고,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완성해 준다는 점, 그리고 읽고, 이야기하고, 쓰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모든 학습의 기본 도구가 된다는 점11)을 상기해 보면, 국어과교육이 타교과교육과 융·복합적으로 접근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이 국어과교육 내에 응축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국어과교육에서는 읽기 영역이 따로 설정되어 있고, 국내외에서 읽기 교육과 관련된 논의들이 많이 진전되어 있다. 읽기 교육은 학생들의 읽기 능력 발달 단계에 따라 문자 해득 이전의 학생들에게는 문자를 해독(decoding)할 수 있게 하고, 문자 해독 완료 후에 읽기 유창성 (reading fluency)을 확보하고, 사실적, 추론적, 비판·평가적 독해력을 갖추어 나가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지적 측면뿐만 아니라 읽기 습관 형성, 읽기에 대한 관심과 흥미 갖기, 읽기에 대한 긍정적 태도 형성 등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나아가 이러한 읽기 능력과 태도를 바탕으로 여러 영역의 지식 습득에 읽기를 활용할 것을 독려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내용 영역 읽기(content area reading) 또는 내용 문식성(content literacy)12)이라고 불리면서, 지금까지 읽기의 일반적인 전략과 기능을 사회, 역사, 과학, 수학 등 내용교과에서 읽기(또는 학습)를 할 때에 적용하게 하는 방법론, 즉 내용교과의 지식 지도와 문식성 기능 지도의 통합을 제안해 왔다. 예를 들어, 중심내용 파악하기나 요약하기와 같은 중요한 읽기 전략을 과학 시간에 과학 텍스트를 읽고 해 보게 하는 방식들이다. 국내에서는 이경화 외(2007)가 읽기 전략과 기능들을 다양한 교과에서 결합한 예들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국내에서는 읽기의 일반적인 전략을 내용교과 교사가 활용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인식이 학교교육에 널리 퍼져 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중·고등학교 교육에서는 더욱 그렇다13).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의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김명순, 2007). 미국에서는 모든 교사가 읽기 교사여야 한다는 식의 노력이 있어 왔지만, 각 내용교과 교사들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고(Conley, 2008), 일반적인 문식성 전략이 문학, 과학, 역사, 수학 등의 전문화된 텍스트 학습에 자동적으로 전이되지 않는(Moje et al., 2001) 등 그러한 방법론에 대한 비판과 거부가 있어 왔다. 동시에 그러한 방법론에 대해 반성하면서 학문공동체의 문식 실천에 토대를 두는 학문 문식성에 주목하는 목소리가 높다(Moje, 2008; Shanahan & Shahnahn, 2008; Gillis, 2014; Shanahan & Shahnahn, 2014 등). 최근 미국의 공통핵심기준(Common Core State Standards)에서 역사, 사회, 과학, 기술 교과 등에서 학문 문식성(disciplinary literacy)14))을 강조(조병영, 서수현, 2014)하는 것도 하나의 예가 되겠다.
학문 문식성은 대체로 일정 수준 이상의 읽기 기능과 전략이 계발되고, 수준 높은 내용교과 학습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청소년과 성인 문식성기에서 강조된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및 평생 교육 차원에서는 궁극적으로 본인의 전공 분야나 관심 분야의 독서를 꾸준히 하는 전문가나 교양 있는 시민을 육성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했을 때, 이 학문 문식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이슈가 된다. Shanahan & Shahnahn(2008)은 예전에 비해 현재는 정보기반 기술의 확대, 노동 시장의 국제화, 노동 인구의 국제적 교류 등으로 인해 직업 세계에서 문식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내용 문식성과 다른 학문 문식성 신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들은 [그림 1]과 같이 문식성 계발의 단계를 ‘기초 문식성→중급 문식성→학문 문식성’으로 제시하고, 학교교육에서 이러한 순서로 문식성 교육을 실시하여 마지막 단계에서는 학문 문식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학문 문식성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미국의 공통핵심기준에도 강조되면서 과학, 문학, 역사의 학문 문식성을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변화가 있다(Shanahan & Shahnahn, 2014). 학문 문식성을 갖추는 것과 관련하여 Moje(2008)는 학문이라는 것은 담론들에 의해 구성된다는 전제 하에, ①각 학문분과의 학문공동체의 담화와 문식 실천의 특성을 알아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 ②각 내용교과 학습 시 해당 학문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될 때 학습이 성공적으로 일어날 수 있으며, ③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교과가 다루는 지식인데, 이러한 지식을 과거처럼 암기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문식 실천 속에서 지식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학습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보았다.
어떤 학문분과든 학문분과가 창출하는 지식의 특성이 있고,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는 독특 한 방식이 있다. 또한 학문분과 내에서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증거의 종류나 해당 분야의 전문 가가 지식을 소통하기 위해 활용하는 독특한 언어적 특징이 있기 마련이다. 학문 문식성은 이러한 학문분과의 지식의 특성과 지식 창출 방식의 특성, 학문분과의 언어사용의 특성과 지식 소통의 언어적 특성을 알고 이를 활용(Alvermann et al., 2013; Shanahan & Shahnahn, 2014) 할 수 있는 능력과 그러한 특성으로 정의해 볼 수 있다. 이를 Lemke(1990)식으로 말하자면, 학생들이 과학자처럼 과학을 하고, 말하고, 쓰고, 사고(추론)하는 데 있어서 과학의 특수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과학교과에 필요한 학문 문식성을 갖추는 것이 될 것이다.
“모든 학문분과는 고유한 의사소통 방식과 언어가 있다. 즉 그 학문분과에서 통용되는 고유한 수사적 원리, 논증의 유형, 문헌작성 방식, 즐겨 쓰는 문장 형식 및 전문용어 등을 사용하며 학문적 소통을 한다(신선경, 2009, p. 36).” 과학계에도 그러한 특징이 있는데, 과학 언어는 명사(구)화된 용어가 많고, 3인칭이나 수동 형태의 문장이 많이 쓰인다. 과학에서는 어떤 현상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다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치환하기 위해 명사(구)화한 용어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 텍스트에는 내용 영역 텍스트 중 문장당 알아야 할 용어들이 가장 많이 나오고, 선지식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에게 부담을 준다. 또한 일반용어는 이러한 새로운 개념들 사이의 관계(비슷하다, 다르다, 특징이다, 그 결과 등)를 나타 내기 때문에 학생들은 일반용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Alvermann et al., 2013, p. 18-19). 이러한 과학 언어는 학생들에게 생경한 언어사용역(register)으로 인식되고, 학생들은 과학 언어를 오래 연습하지 않고서는 편안하지 않은 언어로 인식한다(Lemke, 1990, p. 172).
국내에서도 과학 언어의 특성을 고찰하였는데(신선경, 2009), 지식 구성의 특성상 과학 언어는 ①관찰과 분류의 과정을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동사의 명사화, ②현상에 대한 수량화, 수식화가 일어나고, ③실험을 통한 검증을 중시하는 과학 연구의 특성상 행위와 작용을 중시하는 조작적 정의와 동작성 서술어의 사용이 많으며, ④과학 설명 중에는 비유 대상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에 입각한 은유와 유추의 사용이 두드러진다고 보았다. 한편, 이덕환(2013)은 과학용어가 표현의 정확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며 그 의미가 매우 제한적이고 정교하고, 약어(略語)의 사용도 많아지고 있다고 하였다. 더불어 그는 과학에서는 수학 방정식, 그래프, 각종 관계를 시각적 자료로 나타내기 위해 특별한 기호언어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Lemke(2004)는 이러한 과학 언어의 특징을 “독특한 혼종어(p. 33)”라고 하면서 과학교육에서 복합양식 (mulitimodal) 문식성이 요구됨을 강조하였다.
한편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칠 때에는 이러한 과학 언어의 특수성과 함께 과학 개념(지식)의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자연의 이치와 규칙성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개념들 중에서 일상생활에서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들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과학 개념(지식)은 일상생 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아주 이상적인 경우를 가정하여 탄생하였기 때문이다15).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학습할 때 지식이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어려워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습한 과학 개념(지식)을 자신의 경험과 같은 수준으로 내면화할 수 있도록 과학사를 함께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과학교육 연구자들도 있다. 즉 선대 과학자들의 사색과 토론을 통한 과학 개념(지식)의 발달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도록 하면 학생들이 과학 개념(지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한수연, 2014; 권명순·김선영, 2014; 백성혜, 2013; 이봉우·신동희, 2011). 그러나 과학사가 과학 개념(지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과학사 자체가 또 다른 학습 내용이 된다는 점과 현재 교육과정의 과학 시수를 고려하면 과학사의 활용 범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과학 개념(지식)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과학 개념(지식)의 발달 과정을 축약하여 경험해 보도록 할 수 있는 교수·학습 방안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학사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과학을 능숙하게 하려면 과학 개념이나 과학적 사실에 대한 앎뿐만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에 대한 언어적 서술(개념)과 그것을 수학적 공식으로 옮겨 놓은 것 간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과학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상해 놓은 여러 가지 기호들(그림, 차트, 표, 그래프 등)에 대해서도 온전히 이해해야 하고, 동시에 여러 기구들을 조작할 수 있는 기계적·기술적 능력도 요구된다 (Lemke, 2004, p. 38).
이런 이유들 중에서도 특히 수학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은 과학을 포기하거나 흥미로워 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며, 통상 문과생이라고 하는 학생들은 과학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들은 과학적 사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많다. 가령 자신이 사는 지역에 터널을 뚫거나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건설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러한 건설 작업이 우리의 생태계를 얼마나 교란시키는지, 그리고 어떤 건설 공 법이 얼마나 자연친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 즉 과학적 사실에 대한 평가로 부터 여타 정치·사회·경제적 이해 관계에 대한 고려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예를 떠나 서도 과학에서 비롯되는 기계·기술·전자 등은 우리 일상의 삶이 토대로 하고 있는 분야들 이고, 세상의 모든 사물(대상)들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려는 과학은 우리의 삶과 밀착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과학교육은 학생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소망하는 바와 거리가 있다. 이러한 소망은 비단 문과생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이과생들에게도 필요한 것으로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 진정으로 흥미를 가지고 이를 여타 분야와 결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낼 수 있도록 육성하는 것은, 융·복합적 인재 육성을 갈망하는 우리 시대의 사명이다.
과학자들이 과학 언어를 읽어내는 방법을 알 수 있다면 앞에서 학생들에게 명시적으로 지 도하여, 학생들이 과학자들처럼 문식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Shahnahn et al.(2011)은 그러한 부분에 대해 일단의 해답을 제시해 준다. 그들은 화학, 역사, 수학 전문가들의 읽기 특성을 분석하여, 각 학문분과 전문가들의 읽기 방식이 여러 가지로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그들에 의하면, 전문가들의 읽기는 ①자료 출처 분석(텍스트의 출처나 저자의 관점에 대한 고려), ②자료의 맥락(텍스트가 쓰인 시점과 텍스트가 미친 영향에 대한 고려), ③확증 작업(텍스트 내용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점에 대한 고려), ④텍스트 구조(정보 조직 방식), ⑤시각적 요소(사진, 흐름도, 표와 그래프 등에 대한 고려), ⑥비판과 같은 여섯 가지 항목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였다(p. 406). 이 항목들에 대해 화학자의 읽기 특성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료 출처 분석에 있어서 역사학자는 저자의 관점에 대해 철저하게 고려하는 데 반해, 화학자는 출처를 텍스트 선택 시에만 고려할 뿐 텍스트에 대한 해석에는 크게 참조하지 않았다. 둘째, 과학정보는 급속하게 변화하기 때문에 정보의 가치를 결정할 때 텍스트가 쓰인 시점에 대해 중요하게 고려하였고, 일부 증거를 다른 이론들과 연결시키는 등 맥락화하는 작업을 하였다. 셋째, 텍스트를 읽으면서 결과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확인해 가면서 읽었다. 넷째, 특정 정보를 찾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 텍스트 구조를 이용하였다. 다섯째, 개념을 시각화하면서 텍스트를 읽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상해낸 것들 (텍스트, 차트, 다이어그램, 그래프, 사진 등)과 상호적으로 연계시키면서 읽어 내는 방법을 활 용하였다. 여섯째, 과학 정보의 타당성 및 다른 과학 증거와의 합치 정도를 평가하면서 읽는 특징을 보였다.
또한 Lemke(1990)는 사회 기호론적(social semiotics)16) 관점에서 학생들에게 과학계에서 과학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면서 말하고 쓰고 사고(추론)하는 데 있어서 과학의 특수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학교육의 중요한 목표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과학교사들이 과학 언어의 의미적, 문법적 특징을 완전히 명시적으로 가르치 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학생이 스스로 과학 언어의 특수성을 터득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과학 교실 대화의 주도권을 교사가 갖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고 꼬집으면서 학생들이 수업 중에 주제에 대해 길게 논의한 후에 항상 글쓰기를 하게 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과학 지도 방법을 변화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그는 과학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와 과학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서로 연결시킬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과학에서 절대적인 사실이나 이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다른 목적에 의해 항상 대안적인 이론들이 존재함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이 이러한 과학의 속성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이를 위해 과학 시간에 수집되는 증거들을 바탕으로 이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것을 역설하였다. 더불어 학생들의 관심사와 과학의 문제가 연결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주어진 문제 상황을 해결하거나 어떤 사회적(정책적) 사안을 결정할 때 학생들이 본인의 비추어 과학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도할 것을 제안하였다.
앞에서 검토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교육 방법에 대한 시사점을 얻은 수 있다. 우선 앞서 Moje(2008)과 Lemke(1990)에서 살펴본 것처럼, 학생들은 낯설더라고 본인들도 어떤 문제에 대해 과학자처럼 접근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나 적극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讀’의 과정에서는 ①학생들이 어려운 과학 용어에 친숙해질 수 있게 도움을 주고, ②학생들이 과학자들의 읽기 방법을 차용하여 텍스트를 읽을 수 있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이때 앞에서 밝힌 과학 언어의 특징과 과학자들이 텍스트를 읽을 때 자료 출처 분석, 자료 맥락, 확증 작업 등에서 보이는 특징을 명시적으로 지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討’의 과정에서는 ①학생의 일상 언어와 과학 언어 등 여러 언어사용을 독려하고, ②이론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항상 대안적 이론의 존재를 점검하면서 토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③주어진 문제 상황이나 우리가(혹은 자신이) 처한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이나 개선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하며, ④과학과 관련된 정책 사안에 대해서도 토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討’의 과정에서는 학생들이 활용하는 일상 언어와 과학 언어와의 간극(gap)과, 일상 경험과 과학적 개념(지식) 간의 간극을 좁히거나 연결시키는 작업이 일어날 수 있도록 교사는 살피고 적절한 자료(필요하다면 과학사적 맥락 등)와 조언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즉 교사는 지도 시 학생들의 일상 언어를 과감히 활용하고 학생의 일상에서의 과학 경험과 과학 설명을 활발히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학생이 과학자, 또는 과학자와 비슷하게 일상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음을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論’의 과정에서는 실험보고서, 연구 포스터 등 주요 장르(major genre) 쓰기와 설명하기, 요약하기 등 주변 장르(minor genre) 쓰기를 모두 포함하여 최종적으로는 과학에 대해 다소 긴 글쓰기를 완료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할 것이다. ‘論’의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讀’으로부터 시작된 과학 지식에 대한 입력(input)으로부터 ‘討’ 과정에서 발전시킨 아이디어들을 종합하면서도 새로운 제안이나 지식, 또는 비판적 대안이 도출되는 방향으로 글쓰기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Ⅳ. 학문 문식성 기반 ‘讀·討·論 모형’ 제안: 과학과의 예
그럼 아래 <표 2>에서는 III장에서 설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과학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讀·討·論 모형’의 단계별 주요 활동을 제안한다. 과학 시간에는 실험 활동이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게 마련인데, 우선 이 논문에서는 국어과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실험 활동이 없는 ‘讀·討·論 모형’의 단계별 주요 활동을 제시한다. 후속 연구를 통해 실험 활 동이 있는 경우에 대한 방안도 제시하고자 한다.
‘讀’ 과정의 초반부에 행하는, 과학자의 과학 텍스트 읽기 방법과 과학 언어의 특성에 대한 설명과 시범은 매 시간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최초로 讀·討·論 수업을 진행할 때 제시하고 수업 시간마다 선택되는 텍스트에 따라서 설명해야 하는 지점과 설명의 폭과 깊이를 달리하면서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선택되는 텍스트에 따라서 이것이 과학 이론과 관련된 것인지, 어떤 문제 해결과 관련되는 것인지, 과학과 우리의 일상(일상 경험이나 정책적 선택 등)과 관련되는 것인지 수업의 초점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텍스트에 따라서 ‘討’ 과정에서의 논의의 초점이 달라질 것이고, ‘論’에 필요한 글쓰기 장르도 달라질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수업 내용에 따라 특정화되고 구체화될 것이다. ‘讀’의 과정에서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과학자처럼 읽는 방법을 이해하고, 그것을 따라해 보는 활동이 진행되는 것이므로, 이때에 본인들이 과학자인양 하는 자신감이나 적극성을 띠고 텍스트를 대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필요한 경우에 교사는 해당 텍스트와 관련된 과학사적 맥락을 설명 하는 자료를 추가적으로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 또는 아예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차시나 단원을 讀·討·論 수업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討’의 과정에서는 일상 언어와 과학 언어의 연계, 일상 경험과 과학 경험과의 연결과 조합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마지막으로 讀·討·論 수업에서 부여하는 글쓰기 과제(장르 및 주제 선정 등)는 수업 내용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고, 이는 수업 초반에 안내될 수 있다. 최종적으로 학생들의 쓰기 결과를 공유하면서 수업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한다. 학생들의 쓰기 결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될 수 있는데, 가장 우수한 글을 발표하게 하거나 모든 학생들의 글을 게시하는 등 여러 방법을 활용하되, 학생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讀·討·論 모형’ 수업의 성공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우선 50분 단위 속에서는 진행에 어려움이 있어서, 충분한 시간 확보(3시간 이상의 묶음시간제17) 활용)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학기별 또는 학년별 수업 중 어떤 부분에서 ‘讀·討·論 모형’으로 진행할지 미리 정할 필요가 있다.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서는 ‘讀·討·論 모형’이 성공하기 어렵고, 학생들이 ‘讀·討·論 모형’으로 수업하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정도의 횟수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한 학기 약 17주 중에서 적절한 양으로 배치하고, 적절한 단원에서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에 성공적으로 수업이 운영되면, 학생들은 두 번째 수업부터는 새로운 수업 모형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학생들이 讀·討·論 수업 방식을 자발적으로 요구하는 수준으로까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앞서 김라연, 노명완(2004)는 교사에게 외부자가 부과하는 새로운 교육 방법이 그 실행력에 있어서 문제가 있음을 살펴본 바 있다. 교사가 곧 연구자로서 참여하는 우리 연구에서는 그와 같은 제약은 없애고, 교사의 수업에 ‘讀·討·論 모형’ 이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진행하고자 한다.
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능력과 흥미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과학고, 영재고 등에 재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떤 내용으로, 어떤 방식으로 수업하든지 수업 진행에 있어서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讀·討·論 모형’은 과학 영재 학생들에게 과학 공부를 하면서도 인문·사회적 영역(읽기와 토의, 글쓰기)을 넘나들면서 학습하게 하는 데 좋은 틀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본 다. 보다 중요하게, ‘讀·討·論 모형’은 오히려 과학에 관심이 없는 인문·사회 계열, 예·체능 계열, 또는 취업 계열의 학생들이 인문·사회적 방법론을 활용하면서 과학 지식을 습득하거나 과학 공부의 묘미를 느끼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또한 ‘讀·討·論 모형’은 앞에서 살펴본, 심재호 외(2015, p. 719)의 ‘학교 현장의 교사들이 비교적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고 실천하기 용이한 STEAM 교육 모형과 수업 설계를 위한 준거 틀을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에도 어느 정도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수업을 하는 교사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수업의 틀은 ‘讀·討·論’이고, 그 과정에서 교사가 얼마든지 다양한 변주와 교육 내용 통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STEAM 교육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의 차이고 있고 그에 따라 융합교육의 목표가 다양한 현재로서는, STEAM 교육의 여러 목표 중에서 정보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고 여러 분야의 내용을 토대로 토의·토론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어서 ‘讀·討·論 모형’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18)
이뿐만 아니라 학문 문식성 개념을 토대로 한 ‘讀·討·論 모형’은, 기존에 일반적인 문식 기능을 내용교과 지도에 무차별적으로 대응시켜 수업하게 하던 방법론에서 벗어나, 실제적인 교과내용을 학습하는 동시에 해당 교과 학문공동체의 문식 실천적 특성을 가미하여, 학생들 이 학문 문식성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동시에 ‘讀·討·論’이라는 핵심적인 학습 방법을 활용하여 학습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讀·討·論과 같은 모형은 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지만, 북 클럽 프로그램도 읽기 부진아나 비모어 화자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에도 효과적이었음(Goatley et al., 1995, 김라연(2006)에서 재인용)을 볼 때 저성취 학생들에게도 충분히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와 관련된 후속 연구들이 수행되어 논의들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Ⅴ. 후속 과제
우리는 본 논문에서 제시한 ‘讀·討·論 모형’을 향후 일반고의 물리 시간에 적절한 차시와 단원에서 적용하고, 그 효과와 가능성에 대해 성찰하는 연구를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본 연구에서는 실험이 없는 물리 수업에 대한 ‘讀·討·論 모형’을 제시하였는데, 앞으로는 실험 활동을 전제로 한 ‘讀·討·論 모형’ 정립 가능성에 대해서도 탐색하고자 한다. 결국 과학자들도 과학적 발견에 대해 토론하고, 그에 대해 글(논문 등)로써 알리고, 그럼으로써 하나의 담론을 형성하여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이 수립되어 감을 상기한다면, 실험 활동을 동반하면서도 ‘讀·討·論’ 하는 작업은 여전히 유효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이를 수업 시간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보고, 이러한 방안에 대해 향후에 탐색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능력별, 진로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학문 문식성 개념에 기반한 讀·討·論 모형’을 실행하고 그 효과와 가능성에 대해 성찰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그 전에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학문 문식성이 기반하고 있는 여러 전제들과 이론적 배경에 대해서도 보다 정치하게 이론적으로 고찰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나아가 ‘학문 문식성 개념에 기반한 讀·討·論 모형’을 기반으로 사회, 수학, 예술 등 다른 교과와 통합할 수 있는 수업 설계와 그 효과에 대해 연구하여 언어(국어)와 타 영역의 통합적 수업의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다. 더불어 홍후조(2014)에서 제안되었던 것처럼, 교과목 차원 통합의 한 방법으로 사회, 과학, 기술, 예·체능 계열 각 교과에 讀·討·論 모형을 활용한 단원을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학교교육이 진정으로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보고, 이러한 소명에 이 연구와 향후의 연구들이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본고는 ‘讀·討·論 모형’을 과학 수업에 적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논의된 것으로, 국어 수업에의 적용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밝혀 둔다. 국어 수업에서는 기존의 북 클럽 프로그램을 적용하여도 국어과 교육에서 중점을 두는 교육 내용을 지도하는 데 큰 불편이 없을 것 이라고 본다.
에필로그: 나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은 자연과학의 중요성과 그것의 사회과학과 인문학과의 통합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저 단순한 동반자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식 체계의 기초를 다지는 통합 말이다.
- 에드워드 월슨(2005), <지식의 대통합, 통섭>의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