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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교육의 방향 설정을 위한 제언 - 중 •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독도 기술을 중심으로 한 고찰 -

김화경 1 ,
Hwa-kyong Kim 1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영남대학교 교수,독도연구소장
1Professor, Yeoungnam University, Chief Director of Dokdo Institute
Corresponding Author : Hwa-ky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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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May 01, 2011 ; Revised: Jun 12, 2011 ; Accepted: Jun 21, 2011

Published Online: Jul 31, 2011

요약

본 논고는 앞으로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 • 고등학교에서의 독도 교육의 방향을 마련하기 위해 서 집필되었다. 이러한 목적 아래 수행된 연구 결과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신라 때에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함으로써 독도가 한국의 영토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독도가 울릉도에서 가시거리 내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산국 사람들의 생활공간이었고, 또 우산국의 영 역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을 가진다는 지적을 하였다. 둘째 한국의 중 •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 는 사실을 확약 받고 돌아온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이것을 사실로 증명할 수 있는 자료 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에 남아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그가 일본에 건너 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당시 ‘우산도’라고 부르던 독도에 ‘자산도(子山島)’ 란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후에 자산도라는 이름을 붙인 지도가 만들어졌던 것 으로 보아, 독도에 대한 영토의식이 존재했었다는 상정을 하였다. 또『숙종실록』보궐 정오편 숙종 40년(1714년) 7월 신유(辛菌: 22일) 조의 기록, 곧 “울릉도의 동쪽에 섬들이 서로 마주 보이는데, (이것이) 왜의 경계에 접해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독도가 명백하게 조선의 영 토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교과서에 기술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였다. 셋째 1900년 10월 27일 대한제국 정부가 칙령 제41호로, 울릉도에 울도군을 설치하고 이 군에서 울릉 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는 것을 공포했다. 여기에서 석도라고 하는 것이 독도라는 근거로, 당시에 고종이 송도와 죽도, 우산도 이 세 섬이 울릉도를 통칭한다고 했다는 것과 실제로 이미 그 이 전에 이들 세 섬이 그려진『해동여지도』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면서 서종학의 연구를 수 용하여, 독도(獨島)는 음차자(音借字)이고 석도(石島)는 훈차자(訓借字)이며, 이러한 이두식 표기는 조선 후기까지 사용되었던 첩정(牒呈)의 한 형태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추정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 을 수 있는 사실이라는 것을 해명하였다. 본고에서는 이렇게 명확한 증거가 남아 있는 세 가지 사실들을 중심으로 한 내용을 중 •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기술한다면,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 본 사람들에게도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Keywords: 독도 교육; 자산도; 안용복; 이사부; 해동여지도; 석도; 고유 영토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