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근대 공교육 체제 수립 이후 학교는 종종 개혁의 대상이 되거나 정치적 목적에서 동원된 ‘희생양’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문제는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도입된 무수한 교육개혁 정책이 ‘땜질식 처방’을 나열하는 것에 그쳐 ‘학교의 문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Tyack & Cuban, 1995). ‘19세기 학교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은 이를 자조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일군의 연구자들은 성공적인 학교혁신의 동인을 규명하는 데 천착했다. 교육개혁 정책의 대부분이 실패로 귀결되었다 하더라도 단위학교 차원의 성공 사례는 존재했으며, 국제적인 맥락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정책 지원의 사례 또한 존재했기 때문이다. 객관적 여건의 열악함을 극복한 효과적인 학교(effective school) 연구들(Muijis & Reynolds, 2002; Rutter et al., 1979), PISA에서 탁월한 성취를 거둔 국가들의 특징을 정리한 보고서(OECD, 2014), 단위학교 수준에서부터 교육청과 국가 수준을 넘나들며 성공적인 학교혁신의 동인을 규명한 연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Fullan, 2010; Hargreaves & Shirley, 2009; Levin, 2008; Sahlberg, 2015). 이 연구들을 종합하면, 성공적인 학교혁신은 학교 구성원들이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할 때, 구성원들이 민주적인 소통을 통해서 집단지성을 발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을 때, 학교혁신의 성과를 확산하기 위해서 인근 학교나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할 때 가능하다. 나아가 이들 연구에서는 정책 당국이 현장의 관점에서 단위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진행되는 학교혁신의 노력을 지원할 때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9년 경기도교육청에서부터 시작된 혁신학교 정책은 이와 같은 논의와 상응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연구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혁신학교 정책은 교원들의 자발성을 가장 중요한 혁신의 동력으로 상정했으며, 민주적 학교 운영 체제나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구성하여 학교의 문화를 위시한 총체적 혁신을 지향했고, 교육청 차원의 혁신학교 정책 또한 단위학교에서 진행되는 혁신의 성과를 총화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박수정·박정우, 2020; 백병부 외, 2016). 최근에는 혁신교육지구 사업이나 마을교육공동체 정책 등을 통해서 단위학교에서 거둔 혁신의 성과를 지역사회 전체로 확장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김용련, 2019; 박수정 외, 2021). 전술한 특징들은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의 혁신학교가 거둔 성과를 보고한 일련의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것이기도 하다(서민희 외, 2021).
한편 최근에는 혁신학교가 거둔 성과와 과제를 성찰하면서 학교혁신의 방법과 목표를 질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백병부 외, 2021). 특히 이들은 혁신학교가 거둔 그동안의 성과는 지속가능성 및 확산과 관련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백병부 외, 2019).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인근의 다른 학교와 연계된 활동을 통해서 혁신의 성과를 확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교원 구성이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우리나라 학교의 특성으로 인해 혁신학교는 그동안 해온 것을 이어가는 것도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들은 학교혁신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학교의 공식적인 교육과정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김성천, 2018; 이주연 외, 2019). 혁신학교에서 진행되는 여러 일들은 교육과정과 연계되지 않은, 학교 운영 방식이나 문화 차원에 국한된 경우가 많았으며, 이마저도 단위학교 혹은 개별교사 차원의 실천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각 시·도교육청과 교육부는 혁신학교의 질적 심화 모델을 개발하고 지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미래형 혁신학교 정책’이나(교육부, 2020), 2022년까지 경기도교육청에서 추진했던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 정책(경기도교육청, 2020)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정책은 그동안의 혁신학교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기본 모델의 개발과 안착에 주력했다면 이후에는 그 성과를 바탕으로 ‘미래형 혁신학교’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계형 교육과정 개발에 집중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진행되는 혁신의 노력을 학교의 교육과정으로 안착시키는 동시에 인근의 학교나 지역사회와 연계된 교육과정 체제를 안착시켜 확장 및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전술한 맥락에서 추진된 경기도교육청 지정 미래형 혁신학교 중 학교 간 연계나 학교-마을 간 연계를 통해서 교육과정을 혁신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과 그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이들 사례는 앞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단위학교 차원에서 진행되는 혁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함은 물론이고 ‘미래학교’의 교육과정이 어떻게 개발되어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교육부(2021)는 학생의 진로 및 적성에 따른 맞춤형 학습을 강조하는 동시에 2022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지역-마을 연계 교육과정, 유·초 연계, 초·중 연계, 중·고 연계 등 통합 교육과정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 연구에서 주목하고 있는 사례를 비롯해서 연계형 교육과정의 개발과 적용의 실제를 깊이 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 간 연계 혹은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과정이 요원한 이상처럼 느껴지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개별 학교가 학교 밖 교육 주체들과의 협력 체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마련했는지, 학교 간 혹은 마을 간 연계 교육과정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교실 안에서 어떠한 수업이 이루어졌는지, 연계형 교육과정 실행의 주체들은 어떠한 경험을 하였는지 등을 살펴보는 일은 정책 당국은 물론이고 교육과정의 혁신을 도모하는 단위학교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II. 이론적 배경
당위적인 차원에서 학교 간 혹은 학교와 지역사회 간 연계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학교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강영택, 2017). 그런데 학교 간 혹은 학교와 지역사회 간 연계를 통한 학교혁신의 필요성은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으로 불리는 일련의 정책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 정책은 단위학교를 개혁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시장논리에 따른 경쟁을 강조한 결과 지역사회와의 협력은 물론이고 학교 간 협력의 가능성마저 희박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Hargreaves & Shirley, 2009; Sahlberg, 2015). 나아가 이와 같은 일이 지속되면서 교육이 전통적인 학업성취 수준을 제고하는 것으로 축소되었으며, 소수의 성공한 학교와 다수의 실패한 학교가 만들어졌고, 교육불평등 또한 심화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Ravitch, 2020).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련의 연구자들은 공동체적 관점에서 학교를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학교구성원들이 공동체적 관점에서 협력적으로 소통해야 하며, 학교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함은 물론이고 단위학교가 인근에 있는 학교나 지역사회와 공동체적 관점에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김용련, 2019; Sergiovanni, 1994). 특정한 학교가 거둔 혁신의 성과가 인근 학교나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서 지역사회 전체로 확산되지 못한다면 그 성과는 일시적인 것에 그치거나 다수의 학교를 희생양으로 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Hargreaves & Shirley, 2009; Ravitch, 2020; Sahlberg, 2015).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학교 간 혹은 학교와 지역사회 간 연계의 필요성은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으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런데 이런 점 외에도 학교 간 혹은 학교와 지역사회 간 연계는 학교혁신의 질적 수준과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먼저 학교 간 연계는 혁신의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 학교 간 연계는 지리적 근접성이나 학교혁신의 목표 및 지향에서의 유사성 등을 가진 학교들이 교육과정의 편성 및 운영을 비롯한 학교 운영 전반에 걸쳐서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학교 간 연계가 활성화된다면 학교혁신에 필요한 일상의 정보가 공유되고 학교혁신의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등이 논의됨으로써 성공적인 혁신의 사례들을 만들어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 간 연계는 혁신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정 학교의 혁신은 교원 구성의 변화 및 리더 교원의 소진, 교육감 교체 등에서 비롯된 정책 중점의 변화, 주변 학교와 연계되지 못하고 고립되는 문제에 부딪히면서 그 성과가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백병부 외, 2019). 그런데 학교 간 연계가 활성화되면 이들 사이의 수평적 네트워크가 구성되어 이와 같은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학교 간 연계를 통해서 형성된 수평적 네트워크는 지역 수준에서 학교혁신의 지도연합(guiding coalition)으로 기능하면서 단위학교 수준을 넘어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혁신 주도 그룹이 교원과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백병부·이수광, 2019). 여러 지역에서 혁신학교 교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의 연구회나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이런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학교와 지역사회 간 연계는 학교를 포함한 지역사회 전체의 교육력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주장에서 좋은 교육은 앎과 삶이 일치할 때 가능한데, 단위학교가 보유한 교육자원만으로는 학교 밖에서의 삶까지를 포함한 일상을 교육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여러 나라에서는 학교를 포함한 지역사회 전체를 교육의 장으로 상정하고,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교육복지투자우선지원사업이나 이 사업이 벤치마킹했던 영국의 EAZ와 EiC 사업, 프랑스의 ZEP 사업 등은 학교를 포함한 지역사회 전체를 교육복지 사업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와 협력을 통해서 학교를 포함한 지역사회 전체의 교육력을 제고하고자 했다(김정원, 2007). 각 시·도교육청이 기초자치단체 및 지역 시민단체들과 협력하여 진행하고 있는 혁신교육지구 사업이나 마을교육공동체 정책 또한 지역사회의 교육자원을 발굴·육성하여 지역사회 전체를 교육생태계로 전환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김용련, 2019; 백병부 외, 2019). 전술한 사례들은 학교가 지역사회와 적극적으로 협력할 때 학교는 물론이고 지역사회 전체의 교육력이 제고됨으로써 학생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이 더 좋은 교육 여건 속에서 의미 있는 학습을 할 수 있으며, 학교교육을 통한 앎이 실제 삶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학교와 지역사회 간 연계는 학교혁신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학교혁신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은 계획과 실천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학교혁신은 학교 구성원들의 노력 외에도 학교 밖의 물적·인적 지원이나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경제적 상황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 밖 여건의 열악함을 극복하고 학교혁신에 성공한 사례도 존재하지만, 이들 사례 또한 교장을 비롯한 교원의 인적 구성이 변화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 또한 흔하다(백병부 외, 2019; Hargreaves & Fink, 2006).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여러 연구에서는 학교와 지역사회의 연계를 강화하고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학교혁신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학교혁신의 지속가능성은 교원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의 노력 못지않게 교육계 안팎의 행·재정적 지원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는 종종 정치적 논리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정치는 한정된 예산을 분배하는 과정인데, 어디에 얼마만큼의 예산을 투여할지를 결정할 때는 교육적 필요나 전문적 판단 못지않게 정치적 고려가 개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특정한 학교의 혁신이 지속가능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시민적 지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Hargreaves & Shirley(2009)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개혁은 교육계에 한정된 전문가주의를 넘어 학부모를 비롯한 시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핵심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금까지의 교육개혁이 교사를 비롯한 전통적인 교육전문가들이 주도하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의 교육개혁은 학부모는 물론이고 지역주민들과의 협력적 거버넌스를 통해서 그 가치와 성과에 대한 시민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Hargreaves & Shirley, 2009). 나아가 이들은 학교혁신이 지역사회의 변화를 목표로 한 것일 때 시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지역사회가 학교혁신을 위해 동원되기만 한다면 시민들이 학교혁신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Hargreaves & Shirley(2009)가 소개한 학교를 통한 지역사회 혁신의 사례, Apple & Beane(2007)이 민주학교(democratic school)로 명명한 사례, 지역에 의한 교육과 지역을 통한 교육에서 지역을 위한 교육을 표방하면서 교육주민자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나라의 혁신교육지구나 마을교육공동체(김용련 외, 2019; 홍지오·김용련, 2018) 등은 학교혁신이 학교를 포함한 지역사회 전체의 변화를 목표로 할 때 지속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9년에 경기도교육청에서 13개 학교를 지정하면서부터 시작된 혁신학교 정책은 민주적 학교운영 체제 수립, 전문적 학습공동체 구축, 윤리적 생활공동체 구성, 창의적 교육과정 운영 등의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공교육기관으로서의 학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여러 연구에서는 혁신학교가 이와 같은 일을 수행하면서 다양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일례로 서민희 외(2021)에서는 혁신학교의 성과를 보고한 연구들을 종합하여 혁신학교가 전술한 과제들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인지적·정의적 성장에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고했다.
이와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혁신학교는 2022년 교육감 선거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에서 주요 정책으로 추진되기도 했다. 나아가 이들 시·도교육청에서는 혁신학교의 질적 심화 및 미래학교 모델 창출을 목적으로 한 학교를 추가로 지정하였다. 이 학교들은 대체로 4년 이상의 혁신학교 운영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양한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학교들인데, 시·도교육청에 따라 혁신자치학교, 미래형 혁신학교, 혁신더하기학교, 행복나눔학교,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 등으로 명명되었다(백병부 외, 2021).
혁신학교의 전국화를 국정과제로 채택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와 같은 시·도교육청의 노력을 국가 수준에서 지원하기 위해 미래형 혁신학교 정책을 추진했다.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2020)에서는 미래형 혁신학교를 ‘그간의 혁신학교가 거둔 성과 위에 과감한 상상력과 실험으로 학교다움의 최대치를 구현하기 위한 공교육 혁신의 모델학교’로 정의했다. 기존의 혁신학교가 왜곡된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면, 미래형 혁신학교는 이와 같은 성과의 바탕 위에서 사회적 요구와 미래사회의 변화를 고려한 새로운 학교 모델을 창출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백병부 외, 2021).
전술한 배경과 함의를 바탕으로 교육부에서는 2021년에는 11개 시·도교육청의 108개 학교를, 2022년에는 12개 시·도교육청의 133개 학교를 미래형 혁신학교로 지정하여 지원하였다. 2021년에 지정된 미래형 혁신학교를 대상으로 그 성과와 과제를 정리한 백병부 외(2021)의 보고에 따르면, 이들 학교는 목적이 있는 학습과 미래형 혁신학교 간 네트워킹 활성화, 민주적 학교 운영 체제의 공고화, 학교구성원의 민주적 성장 지원 체제 강화, 학교자율과정 등을 통한 학교 단위 교육과정 개발 활성화, 지역 단위 교육과정 개발 체제 구축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같은 성과는 미래형 혁신학교가 기존의 혁신학교에 부과된 과제를 이행하는 한편, 학교 간 연계나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혁신의 성과를 확산하고 지역 단위의 교육과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의미한다. 백병부 외(2021)에서는 이와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연계형 교육과정의 편성 및 운영과 지역 단위의 고유 교육과정 창출을 미래형 혁신학교의 핵심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미래형 혁신학교는 학습과 실천, 인간과 비인간, 학교와 학교, 학교와 마을이 연계된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고, 지역 단위의 교육과정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장소성이 살아 있는 지역 교과서를 개발하는 등의 과업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백병부 외(2021)에서는 이와 같은 제안이 구성원의 잦은 교체 속에서 낱낱의 프로그램으로 이해되거나 분절적 혁신으로 실행되기 쉬운 단위학교 중심의 학교혁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전술한 미래형 혁신학교의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서 2021년과 2022년에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를 지정·운영하였다. 이들 학교는 4년 이상의 혁신학교 운영 경험이 있는 학교들이 학교나 지역의 여건에 맞는 고유 과제를 제안하면 교육청이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즉 기존의 혁신학교 정책이 교육청에서 지정한 과제를 각 학교가 수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 것이라면, 이 정책은 학교와 마을이 고유의 맥락 속에서 발굴한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에서는 단위학교 중심의 혁신학교 운영의 관행을 탈피하기 위해서 여러 학교가 공동으로, 혹은 학교와 마을이 협력하여 혁신 과제를 발굴하여 공모하도록 유도하였다. 인근에 위치한 3개 초교를 공동 캠퍼스로 활용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한 사례, 초·중·고 연계 교육과정이나 초·중 통합 교육과정 운영 사례, 마을과 학교가 협의하여 세운 공동의 비전과 실천과제를 토대로 학교자율과정을 운영한 사례, 마을-학교 간 소통과 협력을 위한 마을교육협의회 구성 사례 등을 참조할 때 학교와 마을이 연계하여 ‘학교다움의 최대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경기도교육청, 2020).
나아가 경기도교육청에서는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가 연계형 교육과정의 개발에 주력하도록 하여 기존의 혁신학교가 안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도록 지원하였다(경기도교육청, 2020). 기실 교육과정을 구성하거나 운영하는 데 있어 ‘연계성’의 문제는 대개 분권적 교육과정 결정 체제를 가진 나라에서 서로 다른 학교급 간, 혹은 지역별 학교 간 교육 내용의 연속성(continuity)을 고려해야 하는 의미로 다루어져 왔다(황규호, 1999). 이와 같은 의미에서의 연계성은 분권적 교육과정 체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학습 내용의 중복 혹은 결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단위학교 수준에서 다룰 수 없는 교육 내용을 포괄하거나 교육의 장을 확장하여 교육과정을 풍성하고 다양하게 운영하기 위한 목적에서 진행되는 연계성 논의도 있다. 이는 단순히 교육 내용의 연속성 차원을 넘어 단위학교 차원에서 충분히 제공할 수 없는 교육자원을 지역사회 등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함으로써 ‘학습의 효율화’를 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병환, 2010). 한편, 최근에는 교육과정에서의 연계를 공동 구성(co-construction or co-creation)의 의미로 확대하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Lubicz-Nawrocka, 2019; Lubicz-Nawrocka & Bovill, 2021; Temple Clothier & Matheson, 2019). 앞선 논의가 교육과정의 구성 과정에서 교원의 절대적인 역할을 전제한 것이라면 공동 구성으로서의 교육과정 연계는 교원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나아가서는 지역주민들까지도 교육과정의 구성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Lubicz-Nawrocka & Bovill, 2021).
앞에서 정리한 것처럼 경기도교육청(2020)의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는 학교급 간 연계는 물론이고 학교급 간 연계나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교원은 물론이고 지역주민까지 교육과정의 구성 및 운영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은 경기도교육청(2020)에서 상정하고 있는 교육과정의 연계성 개념이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차원 모두를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III. 연구 방법
이 연구는 학교 간, 학교와 마을 간 연계형 교육과정 개발 및 운영의 실제가 어떠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참여관찰과 면담 중심의 사례연구를 실시하였다. 사례연구 대상은 경기도의 31개 미래형 혁신학교 중 경기도교육청의 추천과 학교의 동의를 거친 두 사례이다. 이 연구에 참여한 학교 유형 및 특성은 다음 <표 1>과 같다. 지역 및 학교명은 모두 가명이다.
연구진은 학교 현장을 방문하여 주요 교육 활동을 관찰하고, 관련자들과의 면담을 실시하여 자료를 수집하였다. 먼저 참여 관찰은 2022년 6월부터 11월까지 매월 2회 정도 진행하였다. 연구진은 수업, 교육과정 운영상의 주요 행사, 마을교사 모임, 교사학습공동체, 학교와 마을 간 협의회 등을 관찰하였다. 이와 함께 학교교육과정, 교수·학습과정안, 학교 행사 관련 자료, 수업 자료, 사진 등을 수집하였고, 관찰 직후에는 관찰일지를 기록하였다. 이를 통해서 연계형 교육과정이 설계·운영되는 과정 전반을 관찰하고자 하였다. 면담은 두 사례의 교사, 학생, 마을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진행하였으며, 면담 참여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 면담 내용을 녹음한 후 전사하였다. 관찰 과정 중에 생겨난 의문점에 대한 질문과 응답, 참여자들의 연계형 교육과정 운영 관련 경험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 개진 등이 중심이었다. 면담 참여 대상 및 일시는 다음 <표 2>와 같다.
자료 분석을 위해 관찰일지와 전사자료를 반복적으로 읽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개념을 메모하며 코딩 범주의 틀을 잡아갔으며, 연구 목적과 관련성이 높은 의미가 있는 구나 절에 일차적으로 코드를 부여하여 뼈대를 만드는 구조 코딩을 하였다(Charmaz, 2006). 이 과정에서 연구참여자들의 말과 행동, 참여자들 간 상호작용, 교육 활동 등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다음으로는 일차적으로 개발한 코드들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고, 사례 간 코드들을 비교하여 비슷한 의미의 코드들은 하나의 범주로 통합하며 상․하위 코드를 개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계형 교육과정 운영의 동인, 연계형 교육과정의 구체적인 양상과 성과 등의 코드가 도출되었다. 이후, 연구진 협의를 통해 두 사례의 연계형 교육과정 개발 및 운영 양상을 아우르는 코드가 무엇인지 논의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에서는 코드가 도출되는 과정 및 결과, 글로 작성된 연구보고서를 연구참여자와 공유하여 참여자의 의견이 왜곡되어 해석되지 않았는지 검토를 받고 수정·보완 과정을 거쳐 분석의 타당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IV. 연계형 교육과정 운영 사례
자연군 푸른면에 위치한 수호초, 정연초, 서인초는 각각 2009년, 2010년, 2014년에 혁신학교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부터 연계형 교육과정을 운영해오고 있다. 세 학교는 전체 마을교사 모임, 학년군별(1∼2학년, 3∼4학년, 5∼6학년) 마을교사 모임을 운영하면서 학교탐방, 운동회, 푸른강 건너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세 학교는 2021년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에 공모하면서 기존의 체험활동 중심의 연계형 교육과정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교과 융합 교육과정의 연계를 시도하게 되었다.
이들 세 학교가 연계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된 배경에는 학교 간 교사네트워크가 있었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마을교사 모임’을 통해서 정기적으로 정보를 교류하는 한편 세 학교가 연계하여 운영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마을교사 모임은 이 지역에 있는 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들의 협의체이다. 구체적으로 이 모임에서는 연초에 각 학교의 한해살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공유하고 있으며, 월별로 학년군별(1∼2학년, 3∼4학년, 5∼6학년) 교사들이 따로 모여 세 학교가 함께 할 수 있는 연계형 교육과정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물론 많은 학교에서 교사들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학습모임을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 세 학교에서는 학교 내 학습모임을 넘어 학교 간 학습모임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서 학교 간 연계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세 학교가 모두 한 학년에 2개 이하의 학급밖에 없는 소규모 학교이기 때문에 동학년 교사 모임을 활성화하기 어려웠다는 조건이 놓여 있다. 이런 조건 하에서 교사들은 자신의 교육적 실천의 의미에 대해 동료적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는 틀을 갖기가 어려웠는데, 마을교사 모임은 이와 같은 한계를 해소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이와 같은 경험이 반복되면서 교사들은 다른 학교의 동학년 교사들과 교실에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실천들을 함께 모색해 나갔다.
제가 무슨 짓을 해도 몰라요. 나 혼자 하는 교육과정이니까. [...] 내가 잘 하고 있나 피드백도 안 될뿐더러. [...] (마을교사 모임에서) 동학년 군을 만들어서 공유도 하고 같이 좀 만나고, [...] 근데 실제 만나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다음에 뭐 할까요? 애들 어때요?” 하다 보면 [...] 동학년 느낌이 들어서 저는 뭐 다른 걸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동료가 있다는 자체가, 학교 동료도 있지만 같이 만날 수 있는 동학년 체제가 있다는 건 힘이 많이 되더라고요. (안수환 교사, 면담, 2022/7/21)
한편 이들 세 학교 교사들이 마을교사 모임을 결성하게 된 배경에는 폐교 위기에 처해 있는 학교의 교육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뭉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안수환 교사, 면담, 2022/7/12). 2016년에 서인초에 부임한 교장은 이와 같은 절박함에 공감하면서 규모가 작은 학교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이를 계기로 자연군 내 교사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합동 연수를 받고 교사 학습공동체를 결성하는 등 지역 내 교사 간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어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세 학교 교사들은 자연스럽게 마을교사 모임을 결성하여 연계형 교육과정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면담에서는 이외에도 세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여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친밀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교사들의 마음이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면담에 참여한 정예은 교사에 따르면, 세 초등학교 학생들은 졸업 후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입학 초기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출신 초등학교가 서로 다른 데서 오는 “알력”이 있었다(정예은 교사, 면담, 2022/7/22). 이를 알게 된 교사들은 세 학교 학생들이 만나서 얼굴을 익히고 관계를 맺으면 중학교에 훨씬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들과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미리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고, 서로 만나니 즐겁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정예은 교사, 면담, 2022/7/22). 이와 같은 진술은 학교 간 연계가 ‘작은 학교 살리기’와 같은 원대한 목표나 학교나 교사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교사들의 마음과 학교 간 교사 네트워크와 같이 이를 묶어낼 수 있는 소박한 조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학생 및 교사 간 교류를 위해 교육과정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많은 혁신학교에서는 학교문화의 혁신이나 학생중심의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그러한 활동들이 학교의 공식적인 교육과정과는 별개의 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같은 학교에서도 해마다 교원의 구성이 어떠한지에 따라 해당 활동들이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거나, 그 학교를 상징하는 활동마저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김성천, 2018; 백병부 외, 2019; 이주연 외, 2019). 이러한 맥락을 고려할 때, 세 학교가 학교혁신을 위해 연계형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서 기술한 배경 하에서 세 학교의 교사들은 연계형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운영하였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푸른강 건너기, 학교 탐방, 운동회, 자연 물소리 길 트래킹, 마을 이야기책 만들기 등 학교를 둘러싼 자연환경과 마을의 특색을 담은 연계형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실천하였다. 세 학교의 연계형 교육과정의 내용 및 운영 시기는 다음 <표 3>과 같다.
여기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세 학교의 연계형 교육과정이 지속적인 진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서로의 얼굴을 익히는 놀이 위주의 활동이 초기 연계형 교육과정의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보다 적극적인 수준에서 연계형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있다. 세 학교의 교사들은 공동의 교과 융합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일회성 행사 위주의 교육활동이 갖는 한계를 극복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를 위해 교사들은 온작품읽기를 중심으로 한 교과 융합 교육과정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이들은 가장 먼저 국가교육과정에 제시된 학습 내용들 중 세 학교에서 함께 배움을 나눌 수 있는 주제를 택하였다. 사회과 교육과정의 ‘지속가능한 환경’, 국어과 교육과정의 ‘읽기의 방법’과 ‘읽기의 과정’을 융합하여 ‘환경’을 대주제로 한 수업을 구상하였다. 그리고 각 교실마다 지속가능한 환경과 관련된 도서를 선정하여 온작품읽기 수업을 한 후 세 학교 학생들이 함께 모여 지구를 위한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환경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세 학교 교사들이 생각하는 교육과정의 ‘연계’는 공동의 교육활동을 세 학교에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교실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구체적인 수업 내용 및 방식은 각 학급의 교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였다. 교사들이 선정한 도서뿐 아니라 그것을 학생들과 읽는 방식이나 수업 내용도 교실 맥락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어 정연초 한지우 교사는 「지구를 구하는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로 온작품읽기 활동을 한 후, 자신의 교육철학과 학생들의 관심에 따라 이후 활동을 기획하였다. 그녀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믿음을 토대로 툰베리의 TED 강연, UN 본부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회의 연설 등을 학생들과 함께 시청하였다. 그녀는 기후행동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피켓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쑥스러운데 가면을 쓰면 안 되겠느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가이 포크스(Guy Fawkes) 가면을 쓰고 진행되었던 시위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궁금증은 최근 있었던 한국 영덕의 반-원전 시위와 독일의 녹색당에 대한 수업으로 연결되었다.
이처럼 세 학교가 공동으로 연계하여 운영한 교육과정이지만 각 교실마다 교육과정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달랐다. 교사들에게 연계 교육과정의 실행은 모든 학교에서 동일한 교육과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연계형 교육과정은 세 학교가 함께 논의를 통해 계획한 것을 배움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을 의미하였다. 세 학교 교사들은 큰 틀을 계획한 후 그것을 출발점으로 두고 각자의 교실에서 학생들과 배움의 여정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그 여정은 각 학교와 교실의 맥락, 교사의 관심, 학생의 반응과 흥미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세 학교에서 환경을 주제로 한 구체적인 배움은 제각각 달랐지만, 교사들은 학생들이 지금 바로 “사소하게 지킬 수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고 실제로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해나가길 원했다(김유진 교사, 면담, 2022/10/31). 이와 같은 바람을 바탕으로 세 학교 교실에서의 배움은 세 학교 학생들이 환경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확장되었다. 학생들은 학급 회의와 학생 대표 회의를 거듭한 결과 학교 근처에서 플로깅을 한 후, 자연군청 앞에 모여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피켓 시위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10월의 어느 날 두 학교 학생들은 학교 근처에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을 마친 후 자연군청 앞에 모였다. 그리고 길을 지나는 시민과 자동차를 향해 준비해온 피켓을 들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외쳤다. 이처럼 세 학교에서 환경 프로젝트는 따로, 또 같이 이루어졌다. 교사들은 세 학교의 학생들이 함께 환경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천함으로써 학교 담장을 넘는 배움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수호초, 정연초, 서인초의 교육과정 연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육과정을 만들고 경험하는 교육 주체들에 따라 달라졌다. 세 학교의 교육과정 연계는 해가 거듭될수록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의 협력 경험이 누적될수록 교과 외 영역에서 교과 영역으로, 일회성 행사 위주에서 일상적 교육 활동으로 연계의 내용과 범위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세 학교 간의 적극적인 교육과정 연계가 동일한 교육과정의 일괄적 적용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교육철학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교육활동을 계획했지만, 각자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수업을 운영하며 배움의 여정을 만들어 나갔다. 이처럼 세 학교는 시공간적 맥락이 만들어내는 변화와 차이를 면밀하게 읽고 그에 적극적으로 조율해가는 방식으로 연계형 교육과정을 운영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마을교사 모임은 세 학교 교사들이 추구하는 교육의 목적과 방향성을 토대로 한 연계형 교육과정을 구상하고 실천함으로써 학교혁신을 지속가능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 학교의 혁신은 교원 구성의 변화와 같은 요인들 때문에 지속가능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백병부 외, 2019). 순환근무제로 인한 교원의 잦은 이동 때문에 학교교육의 철학과 방향성에 대한 교원들의 이해와 공감을 구하는 과정을 매년 반복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기존에 거둔 혁신의 성과가 사장되는 일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세 학교 역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외가 아니었지만, 마을교사 모임은 여기에서 비롯된 어려움을 해소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었다.
2년마다 옮기는 뜨내기 교사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 그런데 그 뒤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선생님들도 재미있는 거죠, 학교에 있는 게. 비록 조금 힘들겠지만. 그래서 그 뒤로는 다 5년 만기를 채우시거나 유예까지 하시고 가시더라고요. [...] 저는 그게 이 마을교사 모임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고, 또 이게 유지될 수 있는 어떤 동력이 아닌가. (안수환 교사, 면담, 2022/7/12)
위의 진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사들은 세 학교 안에서 이동하면서 연계형 교육과정을 이어갔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교육의 방향과 학교 교육과정 혁신의 성과를 이어갔다. 세 학교의 교육철학과 방향성에 미처 공감하지 못한 교사들도 마을교사 모임에 참여하면서 교육적 효능감을 느끼게 되어 이들 학교에 정착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마을교사 모임에 속한 대다수의 교사들은 세 학교에서 모두 근무한 경험을 갖게 되며, 이를 통해서 서로의 학교가 처한 나름의 맥락을 고려하면서 지속가능한 형태로 연계형 교육과정을 구상할 수 있게 되었다.
저는 여기 서인초에 있다가 다시 수호초나 정연초로 갈 생각이 있어요. 지금 여기 세 학교가 다 혁신학교고 여기에 오래전부터 근무하셨던 선생님들은 우리는 이 세 학교를 스위치 해가면서 정년을 할 거다 라는 생각을 가지신 선생님들이 지금 여럿 있어요. [...] 제가 수호초에 있었기 때문에 수호초 선생님들이 어쩌고저쩌고 말을 하는 것을 저는 바로 알아듣고요. (정예은 교사, 면담, 2022/7/22)
교사들은 세 학교 안에서 이동을 하며 자신들이 추구하는 교육의 방향과 학교 교육과정의 혁신을 이어갔다. 혁신학교의 교육철학과 방향성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뜨내기’ 교사들도 마을교사모임에 참여하여 교육적 실천을 이어나가는 경험을 하며 학교에 정착하기도 하였다. 마을교사모임에 속한 대다수의 교사들이 세 학교 안에서 이동하며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학교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서로 공감하고 지지하고 다독이며 협력적 관계를 형성해 갔다.
마을교사모임에서 각자의 교실과 학교에서의 교육 활동을 공유하고, 담임교사로서 가지는 고민을 나누는 과정을 거듭하며 세 학교 교사들은 ‘마을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단순히 교육 자료나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같은 마을의 아이들을 함께 길러낸다는 공동의 책임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모임을 통해 교사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교육적 가치와 학교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들이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와 철학이 결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학교 혁신에 대한 의지는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지지하는 과정에서 공동 교육과정으로 구체화되고 실현되었다. 마을교사모임이 이들 세 학교 교육과정 혁신이 지속될 수 있는 구심점이 된 것이다.
선생님들이 하는 말들이 큰 궤를, 흐름으로 쫙 통한다 라는 걸 아이들이 아는데, 중학교 딱 가니까 교과 선생님들마다 말하는 게 살짝 다른 거죠. 그걸 아이들이 저한테 와서 보고를 하는 거예요. 이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는데, 저 선생님은 저렇게 말하고. 안 맞는다 이거죠. 그리고 아이들이 우리가 그렇게 온작품 활동을 초등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 중학교에 딱 가는 순간 온작품 활동은 그냥 국어 교과라는 한 교과안에 여러 가지 활동 중에 하나로 찌그러져 들어가는데, 그조차도 우리가 초등학교 때 온전히 질 높게 경험했던 그 온작품 활동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 라고 아이들은 보고를 해요. (정예은 교사, 면담, 2022/7/22)
정예은 교사의 말에 따르면 학생들은 세 학교 공동 교육과정을 경험하며 다른 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큰 궤” 안에서 하나의 “흐름”처럼 통한다고 느꼈다. 세 학교 교사들은 자신이 맡은 학급의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이웃 학교 동료 교사들과 공유된 교육 철학을 가지고 마을의 아이들을 함께 길러내고자 공동의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이처럼 교사들은 지속적인 연대와 협력 속에서 우리 마을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 더 나은 교육의 모습을 상상하고 공동의 교육과정을 만들었기에 학생들은 교육 활동 속에 녹아 있는 교육 철학과 가치를 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다.
마을 교사로서의 정체성과 교육철학의 공유는 마을 교사 모임을 지속하도록 만들고 나아가 학교 혁신을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물론 세 학교의 공동 교육과정이 언제나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만은 아니다. 세 학교의 연계형 교육과정은 코로나 19, 혁신학교 정책 지원 여부, 개별 학교의 상황 등에 따라 축소되기도 하고 또 다시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연계 교육과정 운영이 축소된다고 하여 교사들 간의 연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다. 마을교사모임을 통해 교사들은 이제까지 유지해온 연계를 지속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세 학교에서는 정책적 지원을 의식하여 형식적인 연계를 이어간다거나 혹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함께 해온 연계 교육과정을 보다 단단히 구축해나가고자 한다.
경기도 해곡시 세평동에 위치한 세 학교, 즉 구평중, 세평중, 세천고는 각각 2012년, 2010년, 2019년에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들로서 2015년부터 마을 축제를 중심으로 세 학교와 마을이 함께 연계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해오고 있다. 경기도 해곡시는 2011년 1기 혁신교육지구로 선정된 이래 현재 3기에 이르기까지 마을과 학교의 허브 역할을 하는 행복교육지원센터를 설립하는 등 마을과 학교의 연계를 지원해왔으며, 이에 따라 세 학교는 학교와 마을의 연계형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마을학교, 주민자치회, 교육자치회, 세평동 행정복지센터 등 다양한 지역사회 주체들과 거버넌스를 이루어왔다. 세평동에 속한 세 학교와 마을은 2021년 미래형 혁신학교 학교-마을 연계형으로 지정받아 기존의 마을 축제 이상으로 더 적극적인 학교-마을 연계형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으며, 그 내용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해곡 지역의 세 학교와 마을이 연계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된 배경에는 각 학교의 교장, 교감, 혁신 부장, 주무관과 마을 담당자(마을주민이 운영하는 방과 후 마을학교의 교장 및 강사, 세평동 행정복지센터, 세평 교육자치회, 시청, 교육지원센터, 교육지원청 등)들이 함께 연합되어 있는 세평교육자치회가 있었다. 세평교육자치회 홈페이지는 세 학교와 마을 간 연계형 교육과정의 방향을 학교와 마을의 협력을 통해 ‘앎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이들이 세 학교가 공동으로 속한 마을을 학생이 학교에서 배운 앎을 주도적으로 실현하는 삶의 장(場)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 학교와 마을의 연계형 교육과정은 학기 초마다 세평교육자치회에서 마을과 연계한 교육과정 계획을 함께 논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월 운영진의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계획을 수정․보완하며 실행되었다. 운영진 협의회는 매월 1회씩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진행되었으며, 각 학교의 혁신 부장 교사와 학교 간 교사․학부모․학생 네트워크 구성원(분과별 교사협의회, 학부모회 대표, 학생회 대표), 마을 축제 준비위원회(세 학교 학생회 위원, 마을 학교 강사, 학부모회 임원 등) 구성원을 포함하였다. 세 학교와 마을이 연계형 교육과정을 통해 이루고자 한 목표는 크게 다음의 두 가지였다. 학생 맞춤형 진로 교육을 지역과 함께 개발하고 운영하여 학생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과 마을과 학교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목표에 따라 세 학교와 마을은 마을 축제를 비롯하여 마을 방송국 동아리, 청소년의 성장주기에 맞춘 마을 연계 진로교육과정 개발과 같은 비교과 활동에서 연계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한편, 창의적 체험활동 혹은 교과 수업을 활용한 ‘마을’ 프로젝트 수업의 형태로도 학교-마을 간 연계형 교육과정을 운영하였다. 세평중 마을 수업 나눔 협의회에 대한 다음의 관찰 기록은 교육 주체 간 협의 과정의 일부로서 교육과정 운영의 목표와 내용이 어떻게 수정․보완되며 구성되는지 보여준다.
혁신부장 교사: 한 학생이 “이 활동은 가난한 마을에서 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데, 그 질문을 들으니까 교사로서 매우 섭섭하게 느껴졌어요. 이 체인지메이커 수업(마을 연계 프로젝트)과 그 활동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학생들에게 설명되어야 할 것 같아요.
마을 강사: 고등학교에서는 이 활동이 자소서에 반영될 수 있는 활동 경험이었어요. 하지만 중학교 학생들에게는 이런 동기가 없으니 적극적 참여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대학 입시의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시민 역할’을 중학교 때부터 배울 기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 설명돼야 할 것 같아요.
학년부장 교사: 네, 이 수업은 과정 자체가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작년에 교과와 마을을 연계한 수업이 더 밀도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학생들이 엄지척하면서 최고라고 표현했었거든요. 올해 교과와 분리했을 때는 그 의도를 전달하는 것에서 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체인지메이커의 ‘이끌기 교과’를 정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세평중 마을 수업 나눔 협의회 관찰일지, 2022/7/13)
세평중 신은희 교사에 따르면, 마을과의 지속적인 만남은 연계형 교육과정을 운영함에 있어 학교 교사 혼자 할 때보다 “역동성”을 일으킨다(면담, 2022/7/13). 마을주민의 수업은 마을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하며(면담, 2022/7/13), 그것은 교사가 단순히 자료로만 전달할 때는 포함될 수 없는 앎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을과 연계한 교육과정에서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을 지속해서 서로 기억하게 하고, 동시에 학교급과 학생 및 교과 특성에 따라 강조되어야 할 바를 조율하며 적절한 대안을 모색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마을 축제와 관련해서는 세 학교 학생회 임원들이 기획한 아이디어가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다양한 학교 안팎의 자원(예컨대, 주민참여예산, 마을 먹거리, 소음 발생 문제 대처 등)을 공유하고 마련하는 것이 이 학교와 마을 간의 만남 즉, 협의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백은호 교사는 구평중학교에 부임하면서 마을학교 교장의 안내로 “마을 명소, 그다음에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들, 인근의 학교들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쭉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면담, 2022/7/13). 이는 마을과 교육과정 연계를 해야 함에도 세평동 마을을 잘 모르는 교사들에게 마을을 알 기회가 되어 학교의 교사 구성원이 새로 바뀐 상황에서 그 효과를 발휘했다. 요컨대 학교와 마을 간 지속적인 만남은 마을 교사가, 마을주민이, 마을의 여러 공간과 마을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교육과정과 관계 맺도록 함으로써, 마을의 작은 문제들이 학교의 교육과정 안에서 주목받을 수 있게 했다고 할 수 있다.
세평동 민주적 마을살이 운영의 하나로 실행된 세 학교와 마을의 연계 교육과정 중 대표적인 것은 ‘체인지메이커’ 수업이다. 이 수업은 학생들의 삶의 터인 ‘마을’을 배움의 장으로 연결 및 확대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마을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방안을 탐색하게 하는 학생주도 마을 교육과정이다. 구평중과 세평중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마을’ 교과로 별도 편성하여 마을 강사가 운영하는 수업을 약 10~17차시 진행했고, 세천고는 미술교사와 특수교사가 협력한 ‘배리어프리 전시 디자인’ 프로젝트 수업을 약 10차시 진행했다. 대표적으로 구평중과 세천고의 주차별 수업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 <표 4>와 같다.
세 학교의 체인지메이커 수업은 대개 체인지메이커 소개-마을 문제 탐색-해결방안 탐색-해결방안 실행-발표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두 중학교 학생들은 마을 탐방 후 각자 발견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모둠을 구성하여 이를 해결할 방안을 탐색하고 실천하는 활동들을 진행하였는데, 학생들이 탐구 대상으로 삼은 예로는 공원 쓰레기, 공원 음수대의 수질, 불법 주차, 학교 앞 버스정류장의 가로등 설치 등의 문제가 있었다. 마을의 문제해결을 위한 학생들의 최종 보고 및 성과물은 구평중의 경우 교내 복도 전시를 통해, 그리고 세평중은 교내 체험부스 운영을 통해 공유되었다. 세 학교와 마을의 연계형 교육과정으로서 체인지메이커 수업은 교사와 학생들에게 모두 의미 있게 실천되었는데, 그것은 이들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곳”이자 “잘 아는 공간”인 ‘마을’이 탐구 대상이자 학습의 장(場)이 되었기 때문이다(신은희 교사, 면담, 2022/7/13). 마을은 학생들이 언제든 탐방할 수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일상생활에서 늘 마주하는 것이어서 학습 대상에 대한 “공감”이 생기고 그것은 “집중력 있는 질문”을 유발하였다(신은희 교사, 면담, 2022/7/13). 또한 이는 학생들에게 “재미”를 주는 학습이기도 해서 평소 쉽게 지나쳤던 일도 ‘문제’로 여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상상을 하는 기반도 되었다(진은현 학생, 면담, 2022/9/13). 개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똥 비닐 자판기 설치를 구상해본다거나 음수대 수질의 양호성을 증명하기 위해 수질 검사 도구를 사용하여 스스로 실험해 보고, 역사적 전통이 있는 동네 우물 주변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빛과 사운드를 동반한 감지 센서가 달린 쓰레기통을 제안하는 것 등이다. 구평중의 안은지 학생팀은 동네 공원의 쓰레기 문제를 주제로 친구들과 쓰레기 줍기 피켓을 만들어 캠페인 활동을 벌이다가 직접 쓰레기 줍기를 실천하기도 하고, 세평중의 탁희상 학생팀은 공원의 불법 주차 문제를 위한 대안을 가지고 시청에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 신문사는 학생들이 작성한 마을 변화를 위한 활동 기사를 신문에 보도해줌으로써 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평중 박시은 학생은 이 수업을 “마을에 변화를 만드는 활동”으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사회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변혁적 주체로서의 자신감을 얻었다고 평가하였다.
이게 마을에 변화를 만드는 활동인데, 저는 학생 본인의 마음에도 약간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학생이라는 게 시의원이나 시장님 뭐 그런 분들처럼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회 속의 작은 한 사람일 뿐인데, 학생들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진 않거든요,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그런데 이 활동을 통해서 ‘우리도 뭔가 진짜 결과를 만들어 낼 수가 있구나. 이 사회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세평중학교 박시은 학생, 면담, 2022/9/13)
한편, 세천고 학생들은 특수교사 및 특수학급 학생들과 통합 수업으로 미술 전시회에서 ‘장애인들의 어려움’에 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작품을 제작하며 전시회를 기획하는 활동을 진행하였다. 이는 세평동 마을 내 문화시설이 적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면서도 좀 더 의미 있는 방식의 전시회 기획으로 마을주민의 학습까지도 고려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세천고 조은아 학생팀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만질 수 있는 숲 작품을 기획하였는데, “만약에 내 눈으로 봤던 것을 눈 가린 상태에서 표현한다면?”이라는 질문 아래 작품의 소재와 공간 위치, 새소리, 방향제, 작품의 구조 등을 고려했다(면담, 2022/9/22). 세천고 학생들의 미술 작품은 마을의 한 공간을 빌려 전시되었고, 마을주민들이 ‘전시회 지킴이’로 참여하며 협력하였다. 마을 공간을 통한 학생들의 작품 전시는 학생들이 느낀 문제의식과 대안적 상상을 학교 담장을 넘어 ‘마을’ 안의 동료 시민들과 공유하며 확대하는 기회가 되었고, 이를 통해 마을구성원의 학습과 변화에도 기여하는 의미가 있었다. 정리하면, 마을은 세 학교 학생들에게 그들이 변화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모습일지 실험해 보며 더 나은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이 됨으로써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학생들이 배움의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하겠다.
학교와 마을 간 연계형 교육과정의 의미와 효과가 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모든 교사에게 동일한 가치로 경험되거나 인식된다고 할 수는 없다. 해곡 지역의 세 학교도 교사의 순환 전보에 따른 변동, 그리고 고등학교의 경우 눈앞에 있는 입시 문제 앞에서 마을과 교육과정을 연계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천고에서 미술 교과의 이진아 교사가 마을 연계 수업을 하고자 하더라도 고교학점제하에서 입시 교과 위주로 먼저 시간표가 편성되느라 마음껏 블록 수업을 요청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 이를 반영한다. 구평중의 혁신부장 교사였던 백은호 교사 역시 새로 발령받아 학교와 마을 연계의 기반에 대한 그 시작과 필요성을 잘 몰랐으며, 학교 교사의 3/4이 마찬가지 상황이라 마을과의 연계에 ‘위축감’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 학교와 마을 간 교육과정 연계는 일관되게 실행되고 있었는데, 이는 백은호 교사가 보기에 본래 세 학교와 마을이 교육과정 연계를 하고자 한 “방향성”을 “회복시키려는 목적”이 교사공동체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학교 전체적으로도 사실 그 방향성(학교와 마을의 연계)을 가지고 교장 선생님도 가지고 계세요. 예전에 코로나 이전에 했던 것들이 지금 많이 사장이 되고, 위축되고, 선생님들이 또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보니까 하긴 하더라도 좀 변형돼서 하시는 부분들에 대해서 좀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을 다시 회복시키는 게 목적이고. [...] 올해 마을 축제가 다시, 2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못 했다가 다시 이번에 새로 생겨요. 이 방향성을 세 학교와 마을이 함께 지금 추진하고 있는 거고, 계속 협의회를 가지고 있어서 그 주체들끼리 모여서 오늘도 서로 브리핑한다고 하더라고요. (백은호 교사, 면담, 2022/7/13)
구평중은 학교와 마을의 연계형 교육과정을 세 학교 중 제일 먼저 시작했던 학교로 당시 이 일에 함께 참여한 교사가 교장으로 새로 부임한 상황이었다. 또한 세 학교 모두 마을과의 연계형 교육과정을 구상하고 그 기초를 세워온 전년도 혁신부장 교사들이 마을교육공동체 구성원으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이전에 세평중에서 학부모 대표를 맡았던 이가 마을 교사로 활동하며 학교와 계속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새로운 구성원들이 학교와 마을 연계 교육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보이게 만들고, 그래서 새로 이 일을 맡게된 교사로서도 “부담”을 넘어 “마을 교육에 대해서는 소중하게 생각하고 헛되이 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신은희 교사, 면담, 2022/7/13). “학교와 마을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학생들을 잘 배우고 성장시키는 것”이라는 목적이 세 학교의 교사공동체를 이끌도록 한 것이다(신은희 교사, 면담, 2022/7/13).
그걸(학교-마을 연계형 교육과정)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인다는 것은 그래도 (초기에 시작하신 분들이) 정말 무에서 뭔가를 만드신 거잖아요. [...] 그래서 마을교육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그거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거를 헛되이 하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 학교 밖에서 같이 마을이 하나의 공동체가 돼서 그렇게 학생들을 잘 배우고 성장시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최종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엊그제 회의를 하면서 많이 했어요. (신은희 교사, 면담, 2022/7/13)
교사들의 전문적 학습공동체도 학교 구성원들이 공유된 방향성을 가지고 연계형 교육과정을 지속해서 실행해가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 학교는 ‘배움 중심 수업’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교육과정을 실천하고 있었고 이는 마을 교육과정에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구평중의 경우 학교에서 먼저 가르쳐온 교사들의 공개수업에 새로 온 교사들이 “직접 체험” 형식으로 참여해보게 함으로써 학교의 교육철학을 몸으로 익히게 하여 수업의 맥락을 이어가고자 했고, 마을 강사도 여기에 함께 하도록 하였다. 마을 강사에 의한 수업이 ‘마을’을 주제로 하더라도 그것이 ‘배움 중심 수업’의 특성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학교 교사들은 “수업 보기 모임”에 마을 강사들을 초청했고, “학교가 가지고 있는 철학, 아이들의 수업 방식, 방법, 교사들의 마인드가 어떤지도 다 얘기”하며 “거기에 같이 했으면 좋겠다”라고 마음을 나누고자 했다(백은호 교사, 면담, 2022/7/13). 이는 마을 강사들에게도 ‘일제식 수업 형태’의 한계를 극복하고 학생 참여 중심, 배움 중심의 수업 설계가 되도록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요컨대 세 학교는 학교혁신의 방향으로 마을과 연계하는 교육과정을 지속해서 운영해가는 데 있어 구성원의 변화와 그에 따른 새로운 심리적 부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연계형 교육과정의 비전에 공감한 구성원들을 통해 그 방향성이 지속해서 공유됨으로써 계속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V. 논의 및 제언
앞에서는 두 사례를 통해서 학교 간 연계나 학교-마을 간 연계를 통해서 교육과정을 혁신하기 위해 노력의 과정과 결과를 정리해보았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의 사례는 초등학교 간 연계 사례이고, 또 다른 사례는 중·고등학교와 마을 간 연계의 사례이다. 따라서 이들 사례는 단위학교를 넘어선 연계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연계의 대상은 물론이고, 연계의 과정이나 목적을 포함한 구체적인 맥락에서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례는 연계형 교육과정의 확산 및 교육과정의 혁신을 통한 학교혁신의 지속가능성 제고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하에서는 사례 간 분석을 통해 두 사례가 학교 교육과정 혁신에 있어서 어떤 시사점을 주는지를 정리한 다음 몇 가지 제언을 덧붙이고자 한다.
특정 교육 프로그램이 학교 교육과정 혁신으로 치환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학교에서 교육과정에 ‘텃밭 가꾸기’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호평을 받게 되면, 교장을 비롯한 소수의 교원이 주도하여 유행처럼 이를 도입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백병부 외(2016)는 이와 같은 모습을 요소 중심의 혁신과 경험의 표준화 현상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학교혁신의 총체성을 고려할 때, 학교 교육과정 혁신은 그 근간이 되는 철학이나 목적에 대한 구성원의 숙고, 학교의 일상을 비롯한 다른 활동과의 정렬을 위한 노력 등이 수반될 때 가능한 것인데, 이에 대한 고려 없이 특정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학교의 총체적 변화는 물론이고 그 프로그램도 의미 있게 실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술한 모습과는 달리 연구에 참여한 학교에서는 연계형 교육과정을 위한 특정 프로그램의 도입 자체를 학교혁신과 동치시키지 않았다. 대신에 사례 학교에서는 학교의 철학과 비전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연장선에서 학교 교육과정이 다른 학교, 그리고 마을과 왜 연계되어야 하는지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교원은 물론이고 이 과정에 참여한 마을강사 등은 연계형 교육과정을 실행하는 데 앞서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비전과 철학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해당 학교가 처한 맥락 속에서 연계의 필요성을 도출하였다. 구체적으로 사례 학교 교사들은 마을교사 모임이나 지자체 및 마을학교 구성원 등과의 협의회에 참여하면서 ‘좋은 교육’이 무엇인지, 학교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숙고하였다. 그 바탕 위에서 교사들은 학교혁신의 비전을 공유하고, 학교가 처한 맥락과 상황을 고려하며 연계형 교육과정을 통한 학교혁신의 의미를 만들어 나갔다. 따라서 이들에게 교육과정 혁신은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재미를 느낄 수업 내용이나 최신의 교수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과 좋은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며 이를 연계형 교육과정으로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사례 학교에서는 연계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학교 간 혹은 학교와 마을 간 연계가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들은 연계형 교육과정이 일회성 행사나 단편적인 활동으로 운영되는 것을 지양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인근에 있는 학교나 마을을 동원하면서 이를 연계로 인식하지 않도록 경계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다양한 방식의 협의회에 참여하면서 교육과정의 내용과 방법을 진화시키는 한편, 구성원들이 교육과정의 기획에서부터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서 이들은 각자의 교실 벽을 넘어 마을 친구들, 주민들과 공동체를 형성하여 배움의 여정을 함께하며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이들 학교의 연계형 교육과정이 공동 구성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교육과정의 연계는 교원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나아가서는 지역주민들까지도 교육과정의 구성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를 교육과정의 주체로 인식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이들 학교의 연계형 교육과정이 단순한 프로그램의 도입이 아니라 좋은 삶과 좋은 교육에 대한 고민을 담은 학교철학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연계형 교육과정의 구상 및 실행 과정에 구성원들이 주체로 참여하도록 한 것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교철학이 공유되고 내면화되도록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요소 중심의 혁신과 경험의 표준화 현상을 극복하고 총체적인 학교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혁신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학교교육에 대한 비전과 철학이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변화를 강제하게 되면, 혁신은 ‘주어진 의무’처럼 실천되다가 형해화되기 일쑤인데(최진영, 2020), 두 사례는 교육 주체들이 혁신의 목적과 가치를 공유하고, 그 과정에 주체로 참여하는 경험을 통해 더 좋은 삶과 교육을 위해 연계형 교육과정이라는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참여한 교사, 학부모, 마을강사들은 마을의 아이들을 함께 기른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연계형 교육과정의 설계와 운영에 있어서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책임을 가지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서로 의존하고 협력하였다. 학교교육 혁신에서 협력적 문화의 구축이 필수적인 요소임을 고려해볼 때 이와 같은 모습은 이들 학교가 학교혁신의 성공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협의체가 이를 촉진하는 틀로 작용하고 있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례 학교에서는 교원들의 전문적 학습공동체, 마을교사 모임, 마을 교육자치위원회와 같은 협의회를 통해서 연계형 교육과정을 비롯한 학교와 마을의 제반 사항을 협의하고 있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와 같은 협의체가 외부적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비자연적이고 인위적인 형태가 아니라 학생들의 총체적 삶을 지원하고,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교육을 모색하기 위한 고민에서 교원을 비롯한 마을교육의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협의체는 구성원들이 ‘협력적 전문성’을 바탕으로(Hargreaves & O’Connor, 2018) 연계형 교육과정의 기획과 운영의 수준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성공적인 혁신이 현장의 요구에서 비롯된 자발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나아가 전술한 협의체는 사례 학교가 거둔 혁신의 성과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틀로 작용하고 있었다. 순환근무제로 인한 교사의 전입과 전출, 교장의 변화 등 구성원의 변동은 학교혁신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다(백병부 외, 2019). 실제로 학교혁신을 적극적으로 이끄는 리더 교사의 전출, 학교혁신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교사 혹은 교장의 전입으로 기존 교육과정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새로운 구성원이 기존에 운영되어 온 학교의 교육과정에 내재된 교육적 가치,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철학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부족하여 기존의 구성원들과의 마찰과 갈등이 생기기도 하였다. 사례 학교에서도 구성원의 변동은 불가피한 문제였지만, 다양한 협의체는 구성원의 변화에 따라 생기는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는 장이 되고 있었다. 새로운 구성원은 마을교사 모임 등 협의회에 참여하여 학교교육의 철학과 방향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기존의 구성원들이 어떠한 노력들을 경주해왔는가를 목격하게 된다. 예컨대 학교와 마을 간 연계 사례에서는 새로 전입한 교사나 마을 강사들을 모임에 초청하여 배움중심 수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를 위해 기존의 교사들이 어떠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는지 등을 안내하고, 실제로 수업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참여하도록 한다. 사례 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인적 구성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더 진전된 형태의 교육과정 실험을 지속하고 있었다.
OECD(2018)는 미래 교육의 초점은 학생들이 “세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둘러싼 사람, 사건, 환경이 보다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변혁적 역량을 길러주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학습자 개인의 웰빙(well-being) 뿐만 아니라 사회의 웰빙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육부(2021)는 2022 개정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을 “학습을 통해 학습자의 삶과 통합”되는, “삶과 연계된 깊이 있는 학습”에 두기도 했다.
두 사례는 이와 같은 지향이 연계형 교육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연계형 교육과정에는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삶이 얽혀들어 왔다. 각 교실에서의 배움이 학교 담장을 넘어 다른 학교, 지역과 연계되면서 자연스레 학생들의 삶과 긴밀하게 연계된 것이다. 이를 통해서 학생들은 학교 담장 너머 다른 학교의 학생이나 마을과 얽히며 새로운 배움을 경험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익숙한 공간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곳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모습은 연계형 교육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의 배움이 학교 밖으로 확장됨으로써 실제 삶과의 연계성이 강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이 과정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례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의 배움이 교실을 넘어서 삶과 연계되어 보다 깊이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섬세하게 교육과정을 설계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학생, 교실, 학교의 상황과 맥락,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국가 수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였다. 학생들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마을의 친구, 교사, 주민들과 협력하여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마을, 그리고 마을을 둘러싼 환경이 나아지도록 행동할 수 있도록 교육 내용과 주제를 선정하였다. 이와 같은 모습은 ‘학습자 주도성’에 대하여 교사는 가만히 있고, 학습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다.
나아가 사례 학교의 교원 및 마을주민들은 ‘삶’을 학생 개인 수준에서의 삶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 확장하여 공동체적 웰빙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서 연계형 교육과정은 비단 학생, 교사, 학교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지역에도 변화를 만들었다. 학생들이 지역 내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해가며 더 나은 마을을 상상해보는 과정에서 마을의 크고 작은 문제들 또한 개선된 것이다. 이처럼 사례 학교에서 알 수 있듯 연계형 교육과정은 학교가 더 이상 외딴 섬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육 주체들과 관계 맺도록 하고, 학생들이 배움을 삶 속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모습은 학교의 변화가 지역사회의 참여 속에서 학교를 포함한 지역사회 전체의 변화를 목표로 할 때 지속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단위학교를 중심으로 학교 교육과정의 혁신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본 연구가 제시한 두 사례가 갖는 의미는 크다. 그러나 두 사례가 갖는 한계를 중심으로 연계형 교육과정 실천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더욱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방식의 연계가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 다룬 두 사례는 학교 간의 연계 혹은 학교와 마을 간의 연계가 일회적인 행사나 단편적인 활동으로 축소되지 않게 하려는 교사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계형 교육과정은 전체적인 학교 교육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으며, 여전히 이례적인 교육 실천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과정 전반을 공동으로 기획하고 실천하려는 노력 속에서 이들 연계 활동이 유기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단위학교가 가지고 있는 자원만으로는 학교혁신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학교혁신은 학교를 넘어 지역사회 전체로 확장되어 이해될 필요가 있다. 학교가 인근 학교, 지역과 연계하여 교육과정을 설계·운영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화·지역화를 보다 촉진할 수 있는 제도와 지원(국가수준 교육과정 상의 여백의 공간)이 필요하다.
둘째, 교사중심주의를 넘어 연계형 교육과정이 갖는 공동구성의 의미를 강화해야 한다. 연계형 교육과정은 단순히 서로 다른 학교급 간, 학교 간, 또는 학교와 지역 간의 연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계형 교육과정이 갖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교원, 학생, 학부모, 더 나아가 마을 구성원들도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협력적 관계망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본 연구의 두 사례는 교육주체의 범위를 보다 확대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으나, 여전히 교원을 교육과정의 계획과 실천의 주체로 전제하고 있다. 연계형 교육과정의 진전된 실천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보다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보다 다양한 주체들 간의 협력을 꾀하려는 노력이다.
마지막으로, 정책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교육권력의 교체와 함께 정책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 교육부의 ‘미래형 혁신학교’ 정책, 경기도교육청의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는 2022년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다. 학교 간 연계나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혁신의 성과를 확산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중단되었다. 현재 경기도교육청은 단위학교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며 미래교육 실현을 위한 자율과제를 단위학교 중심으로 수립하여 운영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 환경의 변화로 인해 학교 담장을 넘는 연계를 시도해온 학교들은 행·재정적 지원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양한 방식의 연구회나 지역협의체 등 기존에 형성된 자발적 네트워크가 학교혁신의 지도연합(guiding coalition)으로 기능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