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 론
오랫동안 평가는 선발과 배치를 목적으로 실시되어 왔다. 평가의 결과로 주요하게 거론되던 석차(席次)라는 용어는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평가의 의미를 대변한다. 석차는 자리 석(席)과 차례나 순서를 의미하는 차(次) 자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자리의 순서를 뜻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석차를 가장 객관적인 평가 결과로 이해해 왔다. 이는 평가를 학습자의 상대적 위치를 아는 기회 정도로 받아들여 온 오랜 마음의 습관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인식은 평가관의 변화 논의와 함께 약화되고 있다. 평가는 본래 학생의 학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상대적 위치 확인은 부차적인 것이라는 논의가 그것이다. 평가는 학생이 모르는 것을 확인해 더 잘 알 수 있게 도와주는 자료가 되며, 교사와 학교가 교육과정을 반성하는 근거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평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학생의 배움에 대한 지원 여부이다(Swaffield, 2011).
이와 같은 평가관의 변화는 공교육을 개혁하려는 흐름과 맞물리며 수업활동과 연계한 평가를 확대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져 왔다. 이른바 과정중심평가로서, 경기도 교육청을 비롯한 여러 시도 교육청은 교육과정 정책 차원에서 과정중심평가를 추진하고 있다(경상북도교육청, 2016; 신혜진, 안소연, 김유연, 2017; 전라남도교육청, 2016). 평가의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은 국가 교육과정 차원에서도 이루어져 왔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은 “학습의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를 강화하여 학생이 자신의 학습을 성찰하도록 하고, 평가 결과를 활용하여 교수-학습의 질을 개선”할 것을 강조하였다(교육부, 2015, p. 3). 이와 같은 변화는 궁극적으로 “학습의 결과뿐만 아니라 학습의 과정을 평가하여 모든 학생이 교육 목표에 성공적으로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표를 둔다(교육부, 2015, p. 33).
평가에 대한 관점의 변화와 여기에서 추동한 평가 방식의 변화는 수업의 변화로 이어진다. 과거에는 수업을 하는 것만을 교사의 역할로, 이를 잘 받아들이는 것을 학생의 역할로 보았다. 이 관점에서 수업 시간 동안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는지는 교사에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존의 수업으로는 이전과는 다른 인간을 길러낼 수 없다는 성찰은 다양한 고민을 이끌어 냈다. 이 중 하나가 지금까지 한정적인 기능만 수행한 평가를 교육 활동의 주요 요소로 포섭하여 학생의 배움을 증가시키려는 흐름이다. 구체적으로 김순남 외(2013)는 학생 평가 패러다임 변화의 방향을 네 가지로 제시한 바 있다. 첫째, 학습 측정을 위한 평가에서 학습을 위한 평가로의 변화, 둘째, 결과 중심적 평가에서 과정 중심적 평가로의 변화, 셋째, 모든 교과평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의적, 인성 평가로의 변화, 넷째, 교육과정-수업-학생평가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평가로의 변화이다. 이처럼 가르침보다 배움을 중시하는 일련의 흐름은 새로운 평가 방법들에 대한 제안과 함께 교육과정-수업-평가가 연계된 수업으로의 변화를 강조했던 것이다(신혜진 외, 2017).
변화를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하는 교사들 대다수도 과정중심평가가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사들은 과정중심평가가 학생수행의 질 향상과, 수업-평가의 연계 및 통합 증가, 경쟁 및 결과 중심의 평가 문화 탈피 등의 변화를 추동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고현, 2019). 이처럼 과정중심평가는 평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집약시킨 정책적 구호에서 출발했으나(신혜진, 안소연, 김유연, 2017) 현장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정책 수용성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본래 정책은 새로운 일련의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정책을 실현하는 수단의 단계를 구분하고 각 단계마다 수행해야 하는 작업이나 그 작업 수행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들을 명시한다. 실행 주체들은 이 내용들을 숙지하고 정책을 수행하게 된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실천의 주체가 개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빈틈없이 설계된 정책을 구안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개인마다 실천 방식이나 내용은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Duncan(1981)과 Young(1979)은 정책 대상 집단의 태도에 대해 수용(acceptance)이나 순응(compliance) 등으로 구분하고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대상 집단의 태도를 정책 집행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과정중심평가 역시 2015 개정 교육과정 이후 평가에 대한 국가적 정책 차원에서 시행되었다. 따라서 정책 수용 주체의 태도에 대한 유형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정중심평가에 대부분 호의적인 교사들의 반응을 고려한다면, 이 정책에 대한 교사들의 태도는 순응-불응의 이분법적 방식으로 나눌 수 없다는 차이를 지닌다. 다만 이를 수행하는 개인마다 구체적인 실천 양태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과정중심평가를 수행하고는 있으나 본 정책의 의도를 이해하는 정도, 정책을 적용하는 층위, 계획된 변화를 수행하는 정도에서 개인 간 격차를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교사들의 과정중심평가 실천 방식을 확인하는 것은 교육과정 정책이 적용되는 방식을 확인하는 사례로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역점을 두고 진행되는 교육과정 정책이 학생들에게 어떤 경험된 교육과정을 제공하는지 구체적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이상의 분석은 교육과정 정책에 줄 수 있는 유용한 시사점 탐색의 근거가 된다.
이와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아래의 두 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첫 번째, 초등학교 교사들은 과정중심평가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가? 두 번째, 초등학교 교사들에게서 나타나는 과정중심평가의 유형과 특징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본 연구는 초등학교에서 과정중심평가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초등학교 교사들과 심층면담을 진행하였다. 이 자료를 질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교사들이 실제로 수행하는 과정중심평가의 방법과 유형을 드러내고자 한다.
II. 이론적 배경
초기 과정중심평가는 결과중심평가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등장했다(박정, 2017; 신혜진 외, 2017; 이경화 외, 2013; 임은영, 2017). 이때 결과중심평가는 수업한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학습이 종료된 후 시험지에서의 정답 선택 여부에 따라 학습의 결과를 판단하는 평가로 볼 수 있다(신혜진 외, 2017). 박정(2017)은 이렇게 대립관계에 근거해 결과중심평가를 이해한다면 총괄평가, 학습한 결과 평가, 선택형 지필평가 모두가 결과중심평가에 포함된다고 본다. 따라서 그 반대항인 형성적 평가, 과정 중심의 평가, 다양한 유형의 평가방식을 사용한 피드백 가능한 평가가 과정중심평가로 응집되어 소개되었다. 즉 평가 형식이나 방식, 시기 등 평가의 외현적 특성에 근거해 과정중심평가가 정의된 바 있다.
여기에 이형빈(2015)은 총괄평가를 포함한 진단평가와 형성평가 모두를 과정중심평가로 포섭하는 변화를 보였다. 점수 외의 정보 제공은 거의 없는 결과중심평가와 달리 수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학습과정에 의미 있는 정보를 수업에 피드백 할 수 있는 평가를 과정중심평가로 보는 것이다. 이 경우 과정중심평가는 수업 과정에 유의미한 정보 제공이라는 내현적 특성에 기반해 결과중심평가와 구분되게 된다. 즉, 평가에 대한 관심이 학생의 실력을 잘 측정하는가의 문제에서 학생의 학습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가의 문제로 옮아가는 것이다.
한편 학습자의 성장과 발달 지원이라는 평가의 목적을 공유하면서도 평가 결과 이외에도 평가에서 얻은 다양한 정보를 수업에 반영하는 평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교육과정-수업-학생평가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수행하는 평가가 제안된다. 경기도교육청(2016)은 교육과정- 수업-평가의 순환적 체제를 제시하며 일체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이하 교수평 일체화). 본래 평가의 변화가 강조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학습을 통한 학습자의 성장과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서이다. 이형빈(2015)은 수업은 바뀌었는데 평가 방식은 그대로이며, 구성주의적 수업을 하되 행동주의적 평가를 하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하였으나 경쟁적인 방식으로 평가하는 현실을 모순으로 본다. 이와 같은 모순이 있는 한 학습의 과정에 평가를 하든, 평가 결과를 수업에 피드백하든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수평 일체화는 수업과 평가가 통합(integration)되어 평가가 교사에 의한 탐구의 과정으로 기능하기를 지향한다(Palmer, 1996: 김정민, 2018, p. 847에서 재인용).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김덕년(2017, p. 7)은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그것만을 중심으로 학생중심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첫 번째 단계로 꼽았다. 이후 수업 활동 과정을 관찰하여 평가하고, 그 평가 과정을 기록해 학생이나 수업의 피드백 자료로 사용한다. 이렇게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교육내용을 엄선해 수업과 평가가 계획되면, 평가가 수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학습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김정민, 2018, p. 848). 즉, 평가의 변화가 수업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것이다(김덕년, 2017, p. 15). 그 결과 평가 이후 학습 과정에 투입되는 정보는 평가 결과에 그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평가는 수업에서 교사가 학생을 탐구하고 여기에 맞는 피드백을 제공하는 일종의 상호작용이 된다. 평가의 방법이나 시기, 모습은 다양하기 때문에 특정 평가 방식을 교수평 일체화에 따른 평가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방식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평가와 수업을 연계시키려는 노력, 즉 교육과정 재구성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과정중심평가에서 평가는 학생의 학습을 돕고, 교사의 수업을 개선하는 실천방안이 된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9). 학습의 지원은 학습이 종료된 후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정책은 최종적으로 수업의 변화를 의도하고 있다.
정책은 바람직한 사회상태를 이룩하려는 정책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수단에 대하여 권위 있는 정부기관이 공식적으로 결정한 기본방침으로 해석된다(정정길 외, 2016, p. 13). 이 정책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며 여기에 강하게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하나로는 정책 대상 집단의 태도가 논의된다.
정책 대상 집단의 태도에 대해 학자들은 순응(compliance), 동조(conformity), 지지(support), 관여(involvement) 등의 다양한 용어를 사용해 구분해 왔다(백승관, 2010; 조희정, 2018; Duncan, 1981; Jansson & Rezvani, 2019; Young, 1979). Young(1979)은 이 중 수용에 대해 특정 행위규범이나 규칙에 일치하는 행위자의 태도로 본다. 반면 이러한 규범이나 규칙과 일치하지 않는 일련의 행동을 불응으로 정의한 바 있다. 즉, 순응은 불응의 대립항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Duncan(1981)은 외현적 행동의 변화만을 정책을 수용하는 태도의 담지자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즉, 정책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행위를 정책을 준수하고 복종하거나 여기에 거부하는 행동의 변화로 분류하는 관점에서 확장시켰다. 행동변화와 가치체계의 변화를 함께 고려하는 포괄적 의미로 정책에 대한 태도를 순응과 수용으로 세분화한 것이다. 이처럼 순응은 외현적 행동이 일정한 행동규정에 일치하는 것인데 비해 수용은 행동의 변화만이 아니라 내면의 가치체계와 태도의 구체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개념화 되었다(주경일, 2005에서 재인용). 즉, 수용은 순응이 확장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주체의 정책 해석 과정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치체계의 변화는 그 정책을 정당화하는 정책적 구호들이 터한 가치, 이를테면 철학이나 배경을 이해하고 여기에 동조하는 데에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용 개념은 정책 추진의 주체들을 단순히 순응, 저항하는 대상이나 집단으로 파악하기 보다 주체적으로 정책을 해석하고 수용하는 능동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는 관점을 포함한다.
Duncan(1981)과 Young(1979)의 연구가 정부 정책 일반에 대한 정책 대상 집단의 태도를 다루었다면 김이경, 김지혜(2014), 김희규, 김경윤(2011), 주경일(2005), 하동엽, 김갑성(2017)은 교육정책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김이경, 김지혜(2014)는 창의경영학교 지원사업을 받아들이고 수행하는 교사들의 태도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하여 이들의 태도를 정책수용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김희규, 김경윤(2011)의 연구 또한 교원 성과상여금 제도를 중심으로 한 교사들의 태도를 정책수용의 관점으로 드러냈다. 즉, 교육정책 연구에서 정책수용은 정책에 대해 정책대상집단이 행동 등 외현적 변화뿐만 아니라 내면의 가치체계의 변화를 일으키는 수준을 의미한다. 이는 정책대상 집단이 정책의 취지와 효과를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집행하려는 의지를 갖는 태도로 해석되고 있다(조희정, 2018, p. 11).
교사가 정책의 대상인 정책을 다룬 연구들의 경우 정책 대상 집단을 능동적 주체로 보는 관점이 두드러진다. 특히 주경일(2005)은 학교 조직은 구성원이 공무원 신분이면서도 행정직원과는 다른 교수-학습 수행상의 전문직이므로 기존 정부 조직과는 다른 특성을 지님을 드러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교사집단은 상부기관이나 관료제의 성격이 강한 학교 행정가의 지시사항이나 정책 등에 대해 피상적으로 복종(순응) 또는 불복종(불순응) 하기보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적극 표출하거나 정부의 교육정책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입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보았다(주경일, 2005, p. 71). 즉, 정책 대상 집단으로서 교사들의 태도를 순응-불순응 이라는 대립관계로 드러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교사들은 공무원 또는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을 가지므로 기본적으로는 국가 정책을 수행할 의무를 진다. 그 결과 표면적으로는 국가 정책들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문직이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고 특정 정책을 능동적으로 파악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정책을 자신의 판단에 근거해 해석하면서 내면적 가치체계와 태도의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능동성은 교사들을 ‘정책 수용’으로 이끈다. 하지만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정책에 대한 능동적 파악이 부족한 경우 공무원으로서 의무만을 수행하는 수준에서 정책을 실천할 수 있다. 즉, 정책 지시나 법규가 요구하는 행위규범에 일치된 행동만을 보이는 ‘정책 순응’ 단계에 머물기도 한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볼 때 과정중심평가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은 수용-순응 관계로 구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과정중심평가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첫 번째, 평가 방식의 변화이다. 결과 중심적 평가에서 과정 중심적 평가로의 변화를 추구하며, 그 결과 수업의 과정에서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 방법의 활용이 권장된다. 이때 다양한 평가 방법은 학습활동이 다 전개된 후 이루어지는 단원평가, 학기말고사 이외에도 평가 시기 및 횟수의 다양화를 통한 수시평가를 포함하며, 교사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적절한 평가방식이 결정된다. 평가 방식의 변화는 평가와 관련한 외현적 변화로 분류된다. 즉, 반응 유형 상 순응 유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평가 목적의 변화이다. 평가를 학습한 결과를 측정하는 단계가 아니라 학습에 유의미한 정보를 얻고 여기에 근거해 수업을 개선하려는 변화를 추구한다. 평가 목적의 변화는 평가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내면적 가치체계가 변화를 일으키는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반응 유형에서 수용에 해당한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교사들의 과정 중심 평가 수행 유형을 분류하면 아래의 <표 1>과 같다.
외현적 변화 (행동)\심층적 변화 (평가의 목적) | 평가의 목적은 학습자의 성장과 발달 · 평가의 변화가 수업의 변화로 연결. · 수업과 평가의 동시 계획, 유기적 실행. |
||
---|---|---|---|
변화 없음 | 변화 있음 | ||
평가 형식의 실제적 변화 | 평가 시기, 방법, 횟수가 다양해 짐 | 순응 | 수용 |
III. 연구방법
본 연구는 과정중심평가를 수행하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실천 유형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유형화를 위한 기초자료 수집을 위해 초등학교에서 과정중심평가를 수행한 교사들을 대상으로 심층면담을 진행하였다. 연구 참여자는 서울, 경기 및 인천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 중 연구 취지에 동의하여 면담을 허용한 교사들로 선정하였다. 본 연구의 참여자를 선정할 때는 두 가지 사항에 유의하였다. 첫 번째, 서울, 경기, 인천에 근무하는 교사들이 골고루 안배되기를 의도하였다. 과정중심평가 정책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천명된 바 있지만, 그 구체적 실행은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제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지역에 치우친 면담이 이루어진다면 면담 내용이 지역 교육청의 정책적 특성에 의한 것인지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 근무 경력을 제한하였다. 과정중심평가 정책의 효과 및 도입에 따른 변화는 이전과의 비교를 통해 좀 더 명확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도 이전 수행평가와의 차이에 관한 질문을 다수 제작하여 면담에 활용하였다. 따라서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근무한 교사, 즉, 2017년 이전부터 근무를 시작한 교사를 면담 대상자로 선정하고자 하였다.
교사 한 명당 50분 정도의 면담을 진행하였으며 주로 원격회의 시스템인 Zoom을 활용하여 이루어졌다. 일대일 면담을 원칙으로 했지만, 교사가 원하는 경우 일대 다 면담 형식으로도 진행하였다. 심층 면담은 2021년 12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진행되었으며 하루에 한 건 또는 두 건의 면담을 진행한 후 녹음하여 전사하는 과정을 거쳤다. 연구 과정에서 드러나는 참여자의 개인 신상에 관련된 모든 내용에 대해 익명성과 비밀 보장을 약속하였으며 참여자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하였다. 연구 참여자의 인적 사항은 <표 2>와 같다.
면담은 주로 교사 본인이 과정중심평가를 어떻게 이해하며 실천하고 있는지, 이전 수행평가와 비교했을 때 실천상의 차이는 무엇인지, 각각의 교과별로 어떻게 과정중심평가를 수행하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연구에 참여한 모든 교사는 과정중심평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구체적 실천에 대한 교사별 차이는 과정중심평가의 해석이나 현실적 한계와 관련이 있다 판단하였다. 따라서 다른 참여자와 비교하여 구별되는 실천 모습을 보이는 경우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심도 있는 면담을 진행하였다. 구체적으로 근무교의 평가 방침이나 학부모, 학생 요인, 교사의 교육관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공감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과정중심평가를 수행하며 맞닥뜨린 다양한 고민과 실천의 한계를 최대한 드러내고자 하였다.
인터뷰 종료 후 심층면담 자료 전체를 살펴보며 교육과정 운영 단계에 따라 범주화하고자 하였다. 교육과정 운영은 보통 ‘계획-수업-평가’ 단계를 거치므로 ‘평가계획과 수업’, ‘평가수행’, ‘평가 결과 처리’ 주제로 유목화하였다. 지속적인 분석을 통해 각 범주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재조직하거나 비교하며 범주 간의 통합, 재명칭 부여, 순서 변경 등의 조정 과정을 거쳤다. 이후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교사의 과정중심평가 수행에 대한 유형화를 시도하였다. 자료를 분석하며 교사별 유형화 보다는 수행 내용에 대한 유형화가 더 적절하다 판단하였다. 한 명의 교사가 한 가지 유형에만 해당하는 평가 수행을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사회과 수업에서는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한 수업과 평가의 통합을 실천하는 교사지만, 수학과 수업에서는 교과서 진도나가기 중심의 결과중심평가를 실천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이에 한 명의 교사가 다양한 유형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여기에 대한 일체의 판단은 배제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연구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에 참여한 참여자 중 두 명의 참여자를 선정하여 검토를 받았다(member checking). 검토자들의 피드백은 다시 연구 결과에 반영되었다. 피드백을 반영한 연구물은 대학에서 질적 연구 방법론을 강의하는 질적 연구 전문가 세 명에게 의뢰해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연구자가 인터뷰 내용에 대해 과도하게 추론하거나 해석 시 개인적 판단을 삽입하지는 않았는지 검토하였다(peer examination). 관련 피드백을 바탕으로 내용을 수정하여 교사들의 과정중심평가 운영 모습과 유형을 왜곡 없이 드러내고자 하였다.
IV. 초등학교 교사들의 과정 중심 평가 운영
과정중심평가는 교수평 일체화를 통한 수업과 평가의 긴밀한 관련을 주요 방법으로 한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여기에 기반해 배움중심수업으로 전환하기를 유도한다. 실제로 교사들은 과정중심평가의 도입 이후 평가를 고려한 교육과정 재구성과 수업 설계를 좀 더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수림: 교육과정 짤 때 우리도 5why를 해요. (...) 5학년 아이들이 이거는 왜 배울까? 역사 왜 배우지? 해서 5why 해봐요. 그리고 또 나중에 큰 주제, 큰 틀을 잡아요. 그러면 한 3주제 4주제 잡히거든요. 그럼 그 큰 틀 안에서, 각 주제를 어떤 흐름으로 가져갈 건가를 해서. (...) 조선(주제)에 와서 생각했던 게 그러면 현재를 만드는 게 무엇이냐? 우리가 계속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어떤 개인의 신념이 역사를 만든 게 아닐까? 그럼 개인의 신념이 중요한 거네. 그럼 이건 어떻게 알 수 있지? 이거 어떻게 갖는 거지? 이걸 아이들이 가졌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이런 식으로 계속 접근하면서 아이들이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으려면 뭐가 필요할까? 이렇게 우리끼리 질문하고 대답하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했어요. (...) 과정중심평가니까 평가를 어떻게 해야 된다 이것보다는 큰 틀 잡아가면서 그 안에서 평가가 들어가게 했던 거 같아요. 딱 이건 평가야 하고 했던 기억은 없고요.
홍교사에 따르면 과정중심평가는 특정한 평가 방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학생들이 알아야 하는 내용을 정하고, 그 내용을 학생들이 알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정한 후, 학생들이 이 근거들을 생산하기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과정이었다. 즉, 수업을 구성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때 어떤 평가 방법을 활용해야 하는지, 평가 시기는 어떠해야 하는지는 수업의 과정과 내용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과정중심평가를 수행하는 교사들은 수업과 평가를 구별 짓지 않았다.
손두영: 수업이 있는 곳에 평가 있고 수업 자체가 평가다. 그러니까 (...) 수업의 과정에 개입하고 적극적으로 피드백 하면서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고 수업에서 요구하는 어떤 목표들에 접근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하면서 피드백 해 주고. 그것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일종의 스케폴딩을 놔주는 거예요. 어디서 문제가 생겼고 어디서 지원이 필요한지.
평가와 수업을 같게 바라보면서 교사들의 평가에 대한 관점, 즉, 평가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가는 어떤 것을 배우고 난 뒤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결과에 도달했는지를 묻는, 수업의 결과를 확인하는 의미를 벗어났던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을 갖는 교사들은 평가를 교실 안에 있는 개인들의 상호작용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적시에 가장 적절한 지원을 투입하는 일종의 순간포착으로 보았다.
평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성취기준 도달이라 여기고 수업 도중 학생들의 실력을 확인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는 교사들도 있었다. 이 경우 교사들은 과정중심평가에 대해 특정 내용 지도 종료 후가 아닌 지도 중간에 평가를 진행해 학생이 현 시점까지의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평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즉, 과정중심평가의 요체를 평가의 중간 투입으로 보는 것이다. 그 결과 과정중심평가가 이끌어낸 변화는 평가 시기 측면에 집중되었다.
이수민: 저는 과정중심평가를 수업이 종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수업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수준 파악을 해서. 다시 수업으로 환류하기 위한 평가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수업 진행 중간에 하는 중간 확인 과정인 거죠.
이와 같은 과정중심평가의 해석에서는 수업은 수업이고 평가는 평가로 구별해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또 이 경우 단원 종료까지 학습의 과정을 평가하기 위한 평가 횟수 증가가 예상되기도 했다. 단원 진도 종류 후 총괄평가로 평가를 수행한 과거와 다르게, 학습의 과정에 언제든 평가를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업과 평가는 엄밀하게 구분되어 수행되므로 수업과 평가를 연결하려는 노력은 물리적 차원의 연결로 실천되었다. 즉, 교사들에게는 제때 평가 도구를 투입하고 수업 시간동안 학생들이 작성한 과제물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관건인 작업이 되었다. 아래의 인터뷰에서도 노교사는 수업과 평가의 관련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평가의 적시 투입을 꼽았다.
연구자: 선생님은 수업을 구성하실 때 평가를 염두하고 구성하시는 편인가요?
노민아: 그렇죠. 저는 교과서나 주간학습이나 주간학습계획에 항상 표시를 해두거든요. 이번 차시에 평가를 해야겠다. 이전 차시에 어떤 내용들을 어떤 수업을 해 가지고 이 차시에 가서는 무엇을 평가를 해야겠다. 하고 주로 주간학습 계획이라든지 이런 데 표시를 하는 편이에요. 교과서에도 표시를 하고요.
위의 질문을 통해 연구자는 노교사가 과정중심평가의 주요 방법 중 하나인 교수평 일체화 실행 경험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노교사의 경우 수업과 평가의 일체화를 평가 시기, 즉 평가의 형식적 측면에 집중해서 판단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과정중심평가의 진행은 기존의 교과서 진도나가기 수업으로도 수행할 수 있어 보였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손교사는 아래와 같이 판단하고 있었다.
손두영: 2015 교육과정에서 과정중심평가가 제시가 됐고. (...) 전체적인 흐름 자체가, 교과서나 이런 거의 구성 자체가 이른바 수업에 학생들이 참여하고 해석해서 수행해 가는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교사용 지도서의 모든 면에서 과정중심평가의 방향으로 평가계획들이 제시돼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도서의 평가계획을 그대로 따라 쓴다고 해도 과정중심평가에 따른 수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교과서나 지도서가 학생의 배움을 증가시키고 성취 기준 도달에 유용하다 판단된다면 이를 이용하는 것도 적절한 교육과정 운영 방법이다. 하지만 교과서 진도나가기 수업이라는 기존 방식의 유지는 과정중심평가가 의도했던 수업의 변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처럼 교실에서는 기존의 수업 방식이 교육과정 개혁에 따라 다소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반면 총괄 평가가 주류를 이루었던 과거에 비해 단원 진도 중간에 보는 시험처럼 평가 시기를 조절하는 등 평가 형식 차원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업과 평가를 긴밀하게 관련시키기 위해 교사들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하는 활동 대다수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의 참여 상황이나 성취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필요하다 여겼다. 그래서 수업의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학습지를 촘촘하게 제작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신승기: 사회나 도덕 같은 경우는 묶어서 프로젝트 수업을 하거든요. 만약 6학년 2학기 단원에서 환경오염에 대해서 한다면 학생들한테 주제를 정하게 해가지고 자기가 확인하고 싶은 환경오염은 무엇인가? (를 정)해서 그거에 맞게 제가 학습지 제작을 매 차시하다 해요. 한 차시마다 학습지를 채워가지고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하면 그것마다 개별적으로 평가를 들어가고요. 프로젝트 하나에 한 5~6차시 정도 들어가는데 맨 마지막 차시에서는 (지금까지 한 활동들을) 발표하는 것으로 해서 학생들 역할별로 (...) 개별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라고 하죠? 포트폴리오를 학습지에 꽂게 해서 그걸 평가하고요.
신교사의 경우 학생들이 학습해야 할 것을 얼마나 잘 학습했는지 가늠하는 수단으로 평가를 이해하는 관점은 유지하면서 과정중심평가를 진행하였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시기가 좀 더 확장된 형태로 수업에서 적용되었다. 즉, 과거에 학생들은 단원평가, 학기말평가 등 학습이 완료된 시기에만 평가를 받았다면 현재에는 수업 전반에 걸쳐 평가 근거 자료를 생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수업의 결과에서 수업의 과정으로 평가의 대상이 확대되는 것이 왜 평가 근거 자료 생산의 증가로 연결되는 것일까? 아래의 지교사의 인터뷰를 통해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연구자: 선생님이 선호하는 평가 방식이 있으세요?
지혜수: 저는 논술형이요. 왜냐하면 뭔가 이게 결과지가 있어야지 평가할 때 증거 자료가 되니까? 객관적인 증거자료가 될 수 있어서? 활동지라든지 논술형이라든지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거요. 두번째로 선호하는 건 교과서, 활동지, 제가 만든 활동지요. 그러니까 활동하는 거를 중간에 점검할 수 있는 자료들이죠. 저는 뭔가 증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 관찰형 평가는 제가 별로 선호하지 않아요. 관찰 평가는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저는 봐요. (...) 그래서 관찰 평가를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확인 한 번 해보는 체크리스트 같은 것을 같이 했어요.
이렇게 평가에 있어서 객관화된 자료, 즉 일종의 증거가 필요한 주된 이유는 교사들이 “평가에 대해 시비가 없었으면 좋다고 생각”(강재희)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신교사는 과정중심평가를 진행하면서 평가에 대한 시비가 증가할 것을 우려해 좀 더 꼼꼼하게 평가 루브릭을 작성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신승기: 과정중심평가는 시험지 한 장으로 해서 딱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실 되게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고 시비가 많이 붙을 수 있는 영역이거든요. 애들이 저희 팀 발표 잘했잖아요. 근데 왜 점수가 보통이에요? 라고 하면 너희들은 이 부분에서 잘못했고 발표할 때 어떠한 자료가 부족했고 너희들 자료 조사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누구누구 놀고 있었고 이런 것들을 좀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줄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근데 루브릭이 없으면 얘기를 전혀 못해요.
평가 결과에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이 집중되는 맥락 안에서 수업의 전 과정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정책적 설명은 수업의 전 과정을 기록화하려는 노력으로 전개되었다. 반면 평가의 근거를 제공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평가, 예를 들어 계획되지 않은 평가나 학생의 태도를 관찰하는 평가들은 그 활용이 제한되기도 했다. 사전에 안내되지 않은 평가는 하지 말라는 학교측의 권고가 있어 이를 따르는 사례도 있었다(고민수).
이와 같은 평가 운영의 기반에는 평가는 배운 내용을 학생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작업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 결과 교사들은 과정중심평가를 학습의 과정에서 진행하는 성취도의 측정과 동일시했다. 이렇게 과정중심평가가 평가 횟수나 시기 등 형식 차원의 변화만 견인하는 경우, 학생의 평가 부담이 오히려 증가하는 등 정책이 의도한 결과와는 거리가 있는 교육과정 운영이 나타날 수 있어 보였다.
반면 과정 중심 평가는 교사가 평가에 대해 고민하고 더 적절한 평가 방법을 구안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교사들은 지금까지 경험해 왔던 평가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학습 내용이나 교과의 특성에 맞는 평가 방법 활용이 필요하다는데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고민수: 옛날 같으면 시험지 나눠주고 얘들아 이거 해. 몇 점 만점에 몇 점이야. 이렇게 평가 했잖아요. 근데 아 그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이런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에서 실제로 평가를 할 때도 요즘에는 이제 다 시험으로만 평가를 하진 않잖아요. 그래서 결과만 가지고 평가를 하지는 않는. 현장에서도 그렇게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강재희: 국어는 솔직히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그 능력을 평가할 때 단원평가만 가지고는 굉장히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단원평가는 대부분 그냥 문해력을 테스트하는 정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아이가 정말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 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거는 단원평가 방식으로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주로 수업 시간에 아이가 자기 생각을 쓰는 걸 본다든지, 실제로 발표를 시켜서 말하는 능력을 본다든지.
이처럼 과정중심평가를 진행하며 교사들은 인지적 영역을 측정하는 데 집중해 왔던 기존의 평가 형식을 바꾸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률적으로 적용해 왔던 정량적 평가방식을 바꾸고, 평가하고자 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데 가장 적절한 평가방식을 선택해 평가를 진행했다. 이는 “개인이 습득한 지식, 기능이나 기술을 실제 생활이나 인위적 평가 상황에서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performing), 어떻게 수행하는지(how to perform)를 서술, 관찰, 면접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평가 방법”(성태제, 2014: 신혜진, 안소연, 김유원, 2017에서 재인용)인 수행평가와 유사한 평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즉, 과정중심평가는 현장에서 수행평가와 유사하게 인식되어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과정중심평가를 ‘과정중심 수행평가’로 한정하여 명시하는 경우(전경희, 2016)를 고려하면 이와 같은 동일시는 과정중심평가 도입의 의도를 실현하는 운영 방법 중 하나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내실 있는 수행평가를 운영해 과정중심평가를 실현하기도 하지만, 수행평가와는 다른 평가를 운영하는 교사의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홍수림: 예전에는 수행평가를 하기 위해서 아이들한테 그때그때 학습지 주고 평가 한다고, 이거 평가야, 수행평가야 하고 평가한다든지 이런 게 있었거든요. (...) 문제가 세 개 있으면 세 개 중에 두 개 맞으면 상이고 적으면 중 이런 식으로 평가를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식으로는 전혀 하지 않아요.
홍교사는 실제로 학교에서 수업과 평가를 통합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경우 수행 평가지를 만들고 학생이 정답을 맞힌 개수에 따라 등급을 부여하는 평가 방식은 수업에 맞지 않다고 판단하고 다른 방법을 고민했다.
이처럼 과정중심평가는 교사들이 평가 결과가 아닌 평가 방법, 나아가 교육과정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교사들은 가르치고자 하는 '지식, 기능'과 평가로 측정할 수 있는 '지식, 기능'이 다르다면 평가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고 자연스레 대안을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평가의 변화는 교과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였다. 평가를 통해 학생의 성취도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교과, 구체적으로 주지 교과의 평가 방법은 이전과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자: 선생님께서 국어는 총괄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하셨는데요.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신승기: 결국에는 총괄평가가 꼭 필요한 과목들이 이제 국어랑 수학인데. 그리고 뭐 사회도 필요하다면 필요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과목이 학생들의 등급을 나눠버리고 변별력이 있고 학생들의 향후 진로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과목들이기 때문에 총괄 평가를 실시하는 거거든요. (...)학생들의 등급을 나눈다고 하는건 아무래도 수능이겠죠? 우리나라 입시 제도가 있으니까요.
평가는 학습자에게 자신이 배운 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 정보가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교과들에 한해 총괄평가 즉, 결과의 평가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해당 교과들은 전통적으로 지식 전달 위주의 수업을 진행해 왔던 교과들이다. 물론 교과의 특성에 따라 교사가 적절한 평가 방법을 구안하는 것은 당연한 교육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신교사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평가 방법을 결정하는데 입시제도 등 외부적 요인이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변별력이 있는 교과라는 것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양에 따라 서열화 할 수 있는 교과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앞으로 학생들이 마주칠 현실에서, 몇몇 교과의 경우 많은 지식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시될 것이라는 예상은 과정중심평가 수행에 영향을 끼쳤다. 입시에서 서열화 될 가능성이 높은 과목들은 학생의 일생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공부를 시키려면 지식 중심의 지필평가가 필요하다 판단했던 것이다. 반면 체육이나 미술, 음악 교과를 평가할 때에 교사들은 학생들의 성실도나 진보의 정도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 모습을 보였다(김지수, 지혜수). 이처럼 교사들은 과정중심평가를 운영하면서도 자신이 해석한 현실에 따라 절충적인 평가를 운영하기도 했다.
교사들은 과정중심평가 도입 이후 달라진 점 중에 하나로 평가 결과에 대한 피드백 증가를 들고 있었다. 이전에는 지필평가의 경우 점수를, 수행평가라면 상, 중, 하(4단계 척도일 경우 매우 잘함, 잘함, 보통, 노력요함) 점수를 알려주는 것이 주요 평가 처리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반면 과정중심평가는 학생의 성장에 대한 지원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코멘트 제공이 평가 이후의 주요 활동으로 자리잡았다.
홍수림: 예전에는 상, 중, 하 이렇게 결과만 기록을 하고 끝이었고 피드백 없이. 근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학생이 지금 세 개 중에 두 개밖에 못 쓰면 세 개 쓸 수 있게 더 지도하는거죠. (...) 근데 이렇게 했는데도 안 되는 학생들도 물론 있죠. 그럼 이제 그럴 때는 평가할 때 그걸 고려해서 하는데 그러니까 결과적으론 거의 다 도달을 하게 되죠. (...)그래서 상, 중, 하가 꼭 있어야 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처럼 교사들은 평가 결과를 기반으로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의 성취기준 도달을 위해 적극적인 피드백을 전개하고 있었다. 또한 결과만을 평가의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진보의 정도가 보인다면 이를 반영해 평가하고 있었다. 그 결과 지필평가의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던 평가 결과의 객관성이나 평가에서의 엄격성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나아가 NEIS에 평가 결과를 기록해야 하므로 3단계 또는 4단계 척도로 평가 결과를 기입하기는 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평가의 엄격성에 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교사들은 평가에 있어서 큰 재량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판단하기도 하였다.
노민아: 시기나 횟수도 예전에는 뭐 이제 단원이 끝날 때 시험 한 번 치고 평가하고 이런 거였다면 이제는 뭐 수업 중간 중반에도 평가를 하고 그다음에 단원 초에 평가를 했더라도 단원 말미에 가서 얘가 또 좀 더 성장한 모습이 보이면 이제 평가 결과를 올려주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좀 더 융통성이 있어진 것 같아요.
연구자: 그럼 단원평가는 이제 안보시나요?
노민아: 단원평가는 하고 있어요. 단원이 끝날 때 국어 수학은 꼭 하고 나머지 교과는 뭐 필수는 아니고.
이처럼 교사들은 기록되는 평가는 온정적으로, 융통성있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기록되지 않는 평가, 이를테면 NEIS에 표기되지 않는 주지교과의 평가는 정량적으로, 엄격하게 시행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기록되는 평가와 기록되지 않는 평가의 분리를 보였다(고현, 2019). 이는 교사들이 과정중심평가를 지도 중간에 하는 평가, 지식 평가는 자제하는 평가로 해석하는 현실과 관련이 깊어 보였다. 과정중심평가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여기지만 평가는 학습자가 알고 있는 정도를 객관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과 확인을 위한 지필평가도 병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가 결과를 성취 기준 달성을 위한 자료로 여기면서 교사들은 학부모에게도 학생의 성취에 대해 과거보다 많은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었다.
고민수: 평가한 거에다가 코멘트를 달아서 줘요. 이걸 집에 보내서 부모님 확인을 같이 하기도 하고 아니면 집에 보내지 않고 애들한테만 (보여주기도 하고요). (학교에서) 수업 시간 중에 평가한 거에 대해서 통지를 해라 해서. 같이 보고 네가 예를 들어 뭐 이런거는 왜 이렇게 됐는지 다시 한번 볼래? 이렇게 한번 피드백의 과정은 학교에서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문제를 풀었는데, 아이가 틀렸거나 감점이 있어요. 그러면 거기에다가 왜 감점이 있는지. 또 어떻게 쓰는 게 좀 다른 건지 안내해 줘요.
이처럼 객관적인 평가의 자료가 있다면 피드백 제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평가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객관적 증거를 남기기 어려운 평가의 경우 이와 같은 피드백 제공은 상대적으로 감소할 수 있어 보였다. 아래의 강교사의 사례에서 그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자: 관찰법에 따른 평가와 피드백은 어떻게 하세요?
강재희: 저는 그거를 상, 중, 하로 대개는 표시를 하고 어떤 특이점이 있는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옆에다가 메모를 아주 짧게 그냥 하기도 하는데. 주로 이제 상, 중, 하로. (...) 그 특이점이라는 거는 굉장히 잘한 아이들에 대한 메모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제대로 잘 못 해내는 아이들에 대한 메모일 수도 있고 그렇죠. 예를 들어 토의를 하는데 토의에서 전혀 자기 의견은 말하지를 못한다든지 그런 것들. 그래서 나중에 학기말에 생활기록부를 쓸 때도 그 내용을 참고해서 평가해요.
이처럼 평가 결과에 대한 정보를 통보하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평가의 경우 수행 결과에 대한 정보나 이에 대한 피드백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과정중심평가의 도입 이후 다양한 평가 방법의 활용이 권장되고 과거보다 지필평가 이외의 평가들이 많이 활용된다. 하지만 피드백의 근거를 제시하기 어렵다 보니 학생들이나 학부모는 시험 점수로 평가 결과를 제공받았던 과거에 비해 관련 정보를 얻을 기회가 이전보다 줄어들 수 있어 보였다.
교사들은 평가를 통해 주로 학생들의 성취기준 도달 여부를 확인했다. 만약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이 있다면 이것을 문제 상황으로 인식하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구체적으로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지도 한 후 같거나 비슷한 내용의 평가를 다시 한번 보는 방법을 활용하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교사들은 과정중심평가 이후 재시험 보는 경우가 증가하였다고 밝혔다. 일부는 재시험의 기준을 학교 차원에서 설정하기도 하였다.
박희수: 저희 학교는 재평가와 재시험? 혼용해서 사용하긴 하는데 재평가나 재시험을 실시하고 선생님들에 따라서는 사용했던 시험지를 다시 사용하거나. 첨삭해 주거나. 이런 식으로 되도록이면 학생이 좀 쉽게 (성취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요. (...) 처음 시험을 보고 나서 잘하는 경우에는 그냥 잘함으로 끝나지만 보통이나 노력요함은 재시험을 봐야 하니까 재시험을 언제 볼거고 어떻게 볼거고 이거를 학생, 학부모한테 개별적으로 안내해야 되다 보니까(...).
이처럼 과정중심평가의 목표가 모든 학생의 성취기준 도달로 해석되면서 이 정책은 성취기준 도달을 위한 계속적인 기회 제공으로 실천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평가-피드백 제공-재평가’의 방법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재평가는 시험지를 사용하는 지필평가에 주로 적용되는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평가의 목표가 모든 학생의 성취기준 도달이 된다는 것은 과정중심평가가 바람직하게 시행된다면 모든 학생들이 성취기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판단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학교 차원에서 제대로 된 과정중심평가 운영을 강조하면서 교사들에게 모든 학생들을 성취기준에 도달시킬 것을 강조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수민: 학교에서는 되도록 잘 주라고. 통과 못하면 통과할 때까지 (평가) 다시 해서 (성취기준) 통과를 시키라고 해요. 근데 못하는 아이들은 진짜 끝까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4단계 평가 중에서 보통이나 노력요함은 한 반에 진짜 5~10 퍼센트 사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다 매우 잘함 주려고 해요. 후하게 주려고 해요.
이렇게 교사들은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의 경우에는 보충지도와 재평가를 하며 ‘잘함’ 이상의 결과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과의 처리가 학생의 학습에 유의미한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 보였다. 물론 평가의 목적을 학생의 성취도 확인에만 두었던 과거의 신념은 변화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평가가 성취기준 달성을 위한 도구로 이해되며 모든 학생의 성취기준 도달이 교사 책무성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평가 결과의 활용은 과정중심평가가 의도한 변화의 정도를 교육적 실천 단계에서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인다. 학급이 목표로 하는 평균 점수를 제시했던 이전과 비교할 때 학급의 목표가 점수에서 ‘잘함’으로, 즉 수치에서 글자로의 변화로 그 개선의 정도를 감화시키기 때문이다.
학습자의 성취기준 도달이 수업의 목표이자 평가의 목표로 인식되면서 평가 결과는 이 목표 달성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수업한 내용을 학습하는 것은 학습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던 과거와 달리 교사들은 평가 결과를 자신의 수업을 반성하는 데 활용하였다.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수업 방법을 바꾸거나 이미 수업했던 내용을 복습하는 등의 피드백을 운영해 나갔다.
박상민: 성취도나 도달도를 평가하는 게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의 점수가 되지만 교사 입장에서는 내가 아이에게 지도를 얼마나 잘했고 이해를 시켰나 하는 나의 점수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수행평가를 하고 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이해하고 있다 싶으면 내가 이 부분을 지도를 잘 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고. 생각보다 내 기준에 많이 못 미칠 때는 그 부분의 수업을 내가 제대로 한 게 맞나. 어떻게 다시 보충을 해야될지 고민을 많이 합니다. 별도로 다시 지도하기도 하고.
이렇게 평가는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했다. 학생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교사에게는 학생들의 성취도 전반에 대한 정보와 함께 수업 방법 및 진도의 속도 등을 조절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는 평가를 수업의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도 인식하면서 오는 변화로 보인다. 평가가 수업의 결과로만 이해되면 평가 결과는 수업과 어떤 연결도 가질 수가 없게 된다. 모든 교육적 행위의 투입이 끝난 이후에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가가 수업의 과정으로 인식되면 평가 결과는 수업에 반영될 기회를 확보하게 된다. 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배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면 아직 종료되지 않은 수업의 과정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들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처럼 평가는 수업의 질을 관리하는 일종의 도구로 학습자뿐만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학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수업이 아니라 배움이며, 배움은 교사와 학생 모두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교사들 또한 평가의 목표는 학습자의 배움에 대한 지원이라는 인식을 공유한 결과로 보인다.
V. 과정중심평가 수행 유형
이상의 분석을 바탕으로 과정중심평가는 수업 종료 후 학습자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확인하는 기회로만 평가를 활용하던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사들은 과정중심평가를 진행하며 스스로를 배움의 촉진자로 여기고 평가를 통해 배움을 향상시키려는 다각도의 노력을 전개하고 있었다.
선행연구 분석에서는 과정중심평가 정책이 의도한 변화를 실천하고 내면화한 정도를 기준으로 교사들의 대처를 수용-순응 유형으로 구분한 바 있다. 하지만 연구를 진행한 결과 과정중심평가를 수용한 정도, 순응한 정도에도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와 같은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수용-순응 유형을 세분화하고자 한다. 분석 결과 교수평 일체화를 실천해 평가의 변화가 수업의 변화로 연결되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과정중심평가를 학습의 과정에 수행하는 평가로만 이해하는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결과중심평가를 지양하기 위해 학습 종료 전에 평가를 하지만 평가 결과에 집중해 피드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변화는 이전 평가와 비교해 평가 시기의 변화라는 평가 형식에만 한정된 변화로 보인다. 이와 같은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가로축은 평가와 연계한 ‘수업의 변화’로 설정하였다. 그래서 과정중심평가 정책은 궁극적으로 교육과정 운영의 변화를 의도했음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한 교사들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수업과 평가를 둘 다 변화시킨 경우 정책이 의도한 교육의 변화를 이해하고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보아 ‘수용’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구체적 도식은 아래의 [그림 1]과 같다.
수업과 평가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평가가 변화했으면 이전과는 다른 수업이 전개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평가의 형식은 바꾸었는데 수업은 그대로라는 것은 수업과 평가가 여전히 분리된 상태이며 이는 평가의 변화가 안착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본래 정책은 정책목표와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정책 수단에 대한 기본 방침으로 구성되어(정정길 외, 2016), 특정 사업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형식)을 규율하는데 집중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처럼 형식 차원에 그친 변화는 정책을 따르고만 있지 이를 통한 교육의 변화, 즉 정책의 의도와 철학까지는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숙고를 바탕으로 평가 형식의 변화에 한정한 실천 사례를 ‘순응’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이외에도 과정중심평가의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현실적 제약이나 이전 평가 방식에 대한 선호로 수업과 평가 모두에서 변화를 보이지 않는 사례는 이전 방식을 유지하는 ‘고수’로 분류하였다. 반면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운영하는 등 변화를 추구하고는 있으나 이전과 유사한 결과중심 지필평가를 운영하는 경우 ‘타협’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물론 타협 유형의 경우 과정중심평가 정책을 충실히 실천하지 않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이 의도한 교육 활동의 변화를 일부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고수 유형과는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평가방식을 바꿀 필요를 느끼고는 있으나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교육 활동의 변화 정도를 조절한 것으로, 즉 타협한 것으로 해석하여 ‘타협’으로 명명하였다.
해당 유형에는 평가의 목적이 학습자의 성장과 발달의 지원임을 알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평가 방식과 시기를 다양화함과 동시에 수업과 평가를 통합하는 사례가 포함된다. 그 구체적 방법 중 하나로는 성취기준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평가와 수업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교수평 일체화 교육과정 운영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손두영: 수업 자체가 일종의 평가라는 입장으로 접근하는 생각이고. 그런 면에서 애초에 수업을 설계할 때부터 (...) 수업의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느 포인트에서 학생들의 평가를 포착할 거냐. 이런 거 포인트를 설정해 뒀다가 그걸 체크하고. 뭐 이런 식으로 진행합니다.
교사는 수업 내내 학생과 상호작용하며 학생의 학습 수준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피드백을 수시로 제공한다. 해당 유형에서 평가는 시험을 위한 시간을 할애한다거나 별도의 시험지를 배부해서만 수행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보인다. 즉, 이전의 수행평가와는 차이를 보인다.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의 결과 홍교사는 아래와 같이 수행평가가 지금의 수업과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홍수림: 수행평가가 아이들이 배워야 되는 게 이런저런 게 있다면 이걸 전체적으로 봐준다기 보다는 진짜 협소한 거, 이거 하나. 수학 도형영역에서 직각삼각형을 그릴 수 있다 이거 하나. 이렇게만 짚어주는 느낌이었거든요. 도형 단원을 배웠으면 이 도형 전체에 대한 이해보다는 내용 하나만 다룬 느낌이 좀 있었던건데 거기에서는 이제 좀 벗어났다고 할까요?
시험지를 작성해 평가를 하다보면 문제에서 다룬 몇 가지 성취기준에 학생들이 도달했는지 여부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학생의 성장은 총체적 변화이므로 분절적 내용을 기준으로 한 학습 결과의 확인은 과정중심평가의 목적에 맞지 않다는 것이 홍교사의 판단이었다. 그 결과 홍교사는 수업에서 의도한 학생의 성장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평가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처럼 해당 유형의 사례들은 학생에게 배움이 일어났다면 보일 수 있는 총체적 변화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교사는 자연스럽게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메타적 관점에서 그 내용을 파악하는 작업을 거쳤다.
본 유형에는 과정중심평가 정책을 이해하고 평가를 학습자의 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한 행위로 이해하는 사례들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수업의 과정에 이루어지는 평가는, 진도 나가는 단계를 세밀화해 각각의 단계가 종료된 후 수행되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평가가 수업 도중에 이루어지지만 주로 평가의 결과를 참조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즉, 결과중심평가에 비해 평가가 다루는 내용의 범위가 더 좁다는데 주된 차이가 있다. 이 경우 수업과 평가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실행까지는 이루어지지 못해 수업 도중 따로 시간을 할애해 평가를 수행하게 된다. 즉 평가 형식은 변했으나 이 변화가 수업과는 절연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 구체적 내용을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학습이 완료되기 전 또는 학습 완료 후 평가하고, 그 평가 결과에 근거해 학생들에게 보충적 지도를 하는 사례였다. 이전과 비교해 평가는 학생의 성장을 지원하는데 활용되기는 하나 교육과정 운영상의 변화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수민: 주지교과의 경우 이 아이를 통과 시켜야 하니까 거의 옆에서 가르쳐 주고요. 수행평가를 (통과) 못 했잖아요. 그럼 옆에 앉혀놓고 이거 이렇게 하는 거야. 다시 한번 해보자 내 옆에서. 다시 쓰고 그러니까 진짜 전혀 모르는 거 아니면 잘함은 나오게 해요.
이처럼 과정중심평가를 학습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로 이해하는 경우 평가를 수시로 투입하는 모습도 보였다.
박상민: 예전과 비교했을 때 (평가) 시기를 학기 말이나 단원을 묶어서 한 단원 끝날 때쯤 했는지 안 했는지의 차이가 커요. 그러니까 요즘에 달라진 거는 요걸[학년 말이나 단원 마지막에 했던 평가를] 좀 나눠서 여러 번 수시로 확인을 하는 거요. 그리고 수업 중에 태도를 좀 본다는 거요.
연구자: 왜 평가 횟수가 늘어났나요?
박상민: 과정을 평가해야 하는데 과정중심평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그러면 횟수를 좀 늘려봐야겠다 라고 전략을 세웠어요.
학습의 단계별로 평가를 하므로 자연스럽게 평가의 횟수는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평가와 수업이 분리된 상태에서 평가 횟수의 증가는 평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한다. 잦은 평가는 더 많은 지도 자료의 확보를 가능하게 해 학생의 성취기준 도달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반면 이 경우 평가의 목적은 학습에 대한 지원보다는 학생의 성취도 확인 측면이 더 강조된다. 학습자의 성장이 성취기준 도달로 한정되지 않는 이상, 잦은 평가의 교육적 효과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학습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평가, 인지적 영역 중심의 지필평가를 지양하고 측정하고자 하는 학생의 능력에 적절한 평가를 수행하는 사례이다. 예를 들어 국어과 평가의 경우 이전에는 단원에 제시된 지문을 읽고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지필 평가가 다수 시행되었다. 하지만 과정중심평가 도입 이후 학습한 단원이 ‘설명하는 글’을 쓸 수 있게 하는데 주안점을 둔다면 학생에게 설명하는 글을 쓰게 하고 이를 확인하는 평가로 평가 방식이 변화하였다. 즉, 수업의 목표를 확인하고 이 목표의 달성 여부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평가 방식을 선택해 평가한다는 특징이 있다.
하여름: 일단 국어는 (...) 시 단원이 나오면 각 주제마다 시를 쓰게 되잖아요. 그리고 다른 친구의 감상도 적게 되잖아요. 그러면 교과서 자체가 그냥 하나의 과정을, 그 단원의 과정으로 보고 교과서로 평가하기도 했거든요. 아이가 수업 시간에 단계마다 어느 정도 자신의 활동을 적었고. (...) 마지막에 단원평가라고 본 게 아니라 교과서로 (아이의) 작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 정도면 잘 자기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이렇게 평가를 한거죠.
이와 같은 변화는 실제로는 수행평가의 내실 있는 운영 방식과 유사한 시도로 보인다. 즉, 성취기준 도달 여부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평가 방법을 고안하고 실행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응 유형은 앞서 이야기한 2015 개정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특성을 살펴보면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과정중심평가를 교육과정 총론에서 강조한 만큼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학습자의 실질적 과제 수행, 학습 단계별 교사의 확인을 염두하여 만들어졌다는 특징을 보이기 때문이다(손두영). 따라서 해당 유형은 교과서 진도를 그대로 진행하면서 교사가 계속 교과서를 검사하며 학생의 수행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평가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수행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진도나가기 수업을 하며 국어 교과서 검사나 수학익힘책 검사 결과를 평가에 반영하는 방식으로써, 이와 같은 운영은 평가를 통한 수업의 변화와는 거리가 있는 실천으로 보인다.
과정중심평가가 강조하는 평가 방법, 시기의 변화나 평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수업에서는 실천하지 않는 사례에 해당한다. 교사들 대다수가 과정중심평가의 도입 취지에 대해 동의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와 같은 대응을 불순응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책의 취지를 알고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소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 ‘고수’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이 유형은 교사별로 모든 교과의 교육과정 운영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교과에서만 확인된다는 특징이 있었다.
신승기: 아무래도 학생들이 지금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갈 때까지 제일 고통받는 게 수학이거든요. 사실 대부분 학생들이 그렇고. 수포자들도 많이 만들어지고. 그리고 특히 초등학교 6학년들에게 가장 힘들어했던 개념이 나누기 개념. 특히 수가 커질수록 나누기에 대한 개념이 약해가지고 그거에 대해서 지필 평가를 제가 일부러 보지 않으면 학생들이 공부를 잘 안 하더라고요.
신교사의 경우 다른 과목을 지도할 때에는 교수평 일체화를 실천하고 있었으나 수학 교과에서는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즉, 기존의 진도나가기 수업과 함께 지필 중심의 단원평가를 강조하고 있었다. 김교사 역시 수학과 과학 같은 교과는 알아야 하는 개념들을 확실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지필 평가는 학생들을 공부하게 하므로 이 교과들을 지도하는 데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김지수: 공부를 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거. 물론 어떤 학생의 참여도가 높을 수 있는 단원도 있지만 또 그렇지 않은 단원도 굉장히 많아요. 제가 그냥 정말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알려줘야 하는. 그런 거는, 그런 지식은 딱 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체육, 음악, 미술 등 실제 수행 능력이 중시되는 교과의 평가에서는 ‘고수’ 유형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학생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지식의 양이 많은 교과, 입시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교과, 즉, 주지 교과에서 본 유형에 해당하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이와 같은 유형이 확인되는 이유는 상급학교로 갈수록 주지 교과를 대상으로 한 지식 중심의 선택형 평가 결과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교사의 인식 때문이었다. 실제로 초등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의 이후 학업에 필요한 기초적 지식이나 소양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김영실, 곽소영, 2022). 물론 중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 또한 인지적 영역, 지필 평가 중심의 결과중심평가의 비중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수능 등 서열화가 용이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평가 대다수가 이와 같은 모습을 띤다. 따라서 상급학교에서 중요하게 운영되는 평가방법이 초등학교의 평가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초등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변화는 초등교육 차원의 정책 추진만으로는 한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초등학교 이외의 상황은 그대로인 채, 과정중심평가의 수행을 강조하는 것은 ‘고수’ 유형의 실천을 늘어나게 할 가능성이 있었다.
타협 유형에는 수업과 평가를 연계해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학습자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고자 하지만 평가의 방법은 한정적인 사례들이 해당한다. 이 유형은 크게 두 가지 사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첫 번째, 프로젝트 수업을 하지만, 인지적 영역 중심의 지필 평가를 보는 사례였다. 이들 또한 몇몇 교과에 치중되어 관찰된다는 특징을 보였다.
박상민: (...) 사회나 도덕에서 프로젝트 수업은 기본적으로 거의 다 배움중심수업을 하거든요. 평가할 부분들이 이거고 그래서 학생들에게 줄 학습지를 수업을 계획하며 만드는 거죠.(...) 사회에서는 단원 평가를 실시하는 부분이 경제랑 역사 단원이에요. 아무래도 역사를 배우려면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적 사건이 전개됐다는 걸 알아야 되거든요. (...) 경제 단원에서도 시장의 개념과 정부, 기업의 개념, 그리고 개인의 가계 개념이 나와요. 기본적으로 학생들이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어떤 직업을 갖든 잘 살기 위해서는 경제에 대해 좀 아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 경제 단원도 단원평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평가의 운영은 일차적으로 수업과 평가의 분리를 유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도 학습자들이 배우기를 기대하는 내용은 일제식 수업과 같으므로 학생들은 수업 후 추가적 학습에 참여할 것이 예상되었다. 즉,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의 양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참여해야 할 평가의 양을 증가시킬 수 있어 보였다. 이전에는 단원평가로 끝났다면 현재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학습지를 작성하고 단원평가까지 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업은 바뀌었는데 평가 방식은 그대로라는 점에서 과정중심평가의 실천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두 번째, 평가의 근거가 되는 자료의 형식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전과 같은 문서화된 평가 근거를 선호하는 사례였다. 평가의 방식은 이전과 비교해 다양하긴 하나, 평가 근거를 남길 수 있는 평가로 한정된다. 구체적으로 특정 학습 내용의 평가에 관찰 평가가 적절하지만 관찰 평가를 기피하거나, 관찰 평가의 경우에도 관찰 상황을 기록할 수 있는 평가지를 만들거나, 항상 평가의 근거를 보일 수 있는 루브릭을 만드는 사례가 포함된다.
하여름: 저희 학교는 학부모를 많이 의식하기 때문에 수행평가 일정, 수행평가가 이뤄지는 것에 대한 주간학습 안내, 모든 게 다 미리 예고가 되고. 아이들한테도 알림장에도 내일은 무슨 과목 수행평가가 있습니다. 라고 꼭 얘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객관적인 자료가 남지 않은 상태에서 B를 맞으면 그거에 대해 뭐라고 설명할까는 정말 어려운 거죠. 그래서 더 (관찰평가를)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해요. 만약에 정말 과정중심평가를 했다 하면 그냥 거의 다 잘함으로 결과를 주게 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거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 제가 충분히 반론할 수 있는 근거를 대야 하는데. 이 아이는 이 점수를 맞았기 때문에 B가 나왔어요 라고 하면 편한 거죠.
교사의 전문적 지식에 비추어 교육 내용에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평가를 하고, 이를 통해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 과정중심평가의 취지이다. 하지만 타협 유형의 운영은 그 목표 실현을 방해할 수 있어 보였다.
VI. 결론 및 시사점
초등학교 교사들을 과정중심평가를 수행하며 수업, 평가수행, 평가결과 처리 등 교육과정 운영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를 보였다. 교사들은 첫 번째, 학습한 내용을 확인하기에 가장 적절한 평가 방법을 고민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번째, 수업 안에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폭넓게 공유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세 번째, 근본적인 변화로서 평가의 목적은 선발이 아닌 학습자에 대한 지원이라고 여겼다.
본 연구는 이 변화를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첫 번째, 총괄평가, 지식 중심의 지필 평가 일변도의 평가 방식을 벗어나 학습한 내용에 적절한 평가 방법을 이용하는 평가의 수행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구체적으로 내실 있는 수행평가를 하거나, 인지적 영역 중심의 결과중심평가를 지양하는 변화로 나타났다. 두 번째, 수업의 변화였다. 과정중심평가가 논의된 가장 큰 이유는 평가가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는데 활용되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였다. 따라서 결과만을 보는 평가방식을 바꾸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수업 또한 변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수업한 것과 달리 결과만을 보는 평가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학생들은 교사의 변화된 수업방식을 신뢰하지 않는 것처럼(장홍월, 2017), 역으로 수업은 그대로인데 평가 방식만 바꾸면 수업의 중요성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과정중심평가 정책이 가장 잘 내면화되어 이를 실천하는 유형은 평가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수업도 변화시킨 사례로 보았다. 이렇게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분류한 교사들의 과정중심평가 운영 유형은 수용, 순응, 고수, 타협의 네 가지였다. 정책의 실천과 내면화까지 이루어진 수용 유형은 그 수가 비교적 적었다. 반면, 정책을 실천하기는 하지만 수업의 변화라는 내면화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한 사례를 가장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과정중심평가 정책이 그 효과에는 어느 정도 제약이 있었지만, 평가 방법(형식)을 바꾸는데 기여함을 드러냈다. 평가를 보고 시험지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학습의 재료로 보고 성장하는 계기로 삼았다. 하지만 이 경우 학습자의 성장이 성취기준 도달과 동일시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외에 부분적으로 과정중심평가를 수행하는 유형과(타협), 정책의 필요성은 알고 있지만 수행하지 못하는 유형(고수) 또한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유형의 경우 교사 한명이 특정 유형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교과에서만 한정적으로 나타난다는 특징을 보였다. 이와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과정중심평가 정책에 대한 시사점을 추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평가와 수업은 서로를 견인하므로(장홍월, 2017) 수업의 변화와 평가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즉, 교사들 대다수를 차지하는 순응 유형이 수용 유형으로 옮아갈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수용 유형으로의 변화는 교사들에게 평가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평가와 수업의 긴밀한 연결을 요구한다. 교수평 일체화의 확산 노력은 두 가지 방안으로 전개될 수 있다. 첫째, 교사들의 경험의 폭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교사들은 지금까지 평가가 주로 선발의 도구로 활용되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교직생활을 해 왔다. 따라서 교수평 일체화는 경험하지 않은 방법이다. 교사들은 보통 자신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배운 대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배우지 않았던 방식으로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는 것”(Hargreaves, 2003/2011, p. 57)이므로, 이것을 가르쳐주는 주체가 필요하다. 교사들 대부분 과정중심평가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는 나름의 방식을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가르침은 과정중심평가가 기초한 이론, 철학에 대한 교육보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한 지식을 대체할 수 있는 강력한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구체적으로 실천의 과정을 안내하고, 이때 활용되는 질문을 실습하며, 교수평 일체화의 효과성을 확인하는 내용을 제안할 수 있다.
둘째, 평가의 패러다임 변화가 평가 결과를 활용한 피드백, 수업 도중에 이루어지는 평가로만 이해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교사들에게 제공되는 연수가 평가 방법에만 치우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홍수향 외, 2017). 이렇게 이해되는 경우 평가 형식은 변화했으나 교사는 평가의 결과만을 참조하는, 실질적으로는 결과중심평가만 실천하는 상황으로 변모한다. 교수평 일체화에서 평가는 시간을 따로 빼서 평가지를 나누어주고 그 결과를 수합해야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평가는 수업 동안 교사가 학생과 상호작용하며 적절한 발문과 조언, 비계를 제공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오해가 광범위하게 공유되어 있으므로 본 연구에서 제시한 과정중심평가에 대한 교사들의 해석을 확인하고 이를 교정하거나 명확히 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타협과 고수 두 유형에서 과정중심평가의 실천을 저해하는 요인은 학교의 규정, 학부모의 민원, 상급학교에서의 평가방식, 입시제도 등 외부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외부적인 요인이 해소되거나 완화된다면 이 유형의 교사들 또한 순응 또는 수용 유형으로 옮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를 보완하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전개될 수 있다. 첫째, 평가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는 가정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방안이 제기될 수 있다. 평가의 목표가 학생을 평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을 돕는 데 있음을 홍보하는 것이다(홍수향 외, 2017).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 차원에서의 변화이다. 학교는 평가의 시기를 학기초에 계획하게 하거나, 계획된 평가만을 강조하거나, 시간을 할애한 평가를 중시하고 이를 공지하게 하는 등의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평가를 수업 시간 동안 학생과의 상호작용에 근거해 끊임없이 피드백을 투입하는 행위로 본다면 사전의 촘촘한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수용이나 순응 유형의 평가를 하더라도 교사들은 주지교과, 특히 수학 교과에서는 결과중심평가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가의 변화와 관련한 수업의 변화 또한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로 교사들은 수학 교과서와 수학익힘책에 제시된 개념을 설명하고 관련된 문제를 풀게 하는 방식으로 수학 수업을 운영해 왔다(김영실, 곽소영, 2022). 하지만 과정중심평가는 특정 교과에만 적용되는 정책이 아니며, 특정 교과에서만 그 효과가 감소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실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주지교과에서, 특히 수학 교과에서 어떻게 과정중심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정보제공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질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교사들의 과정중심평가 대처 유형을 도출하려 시도하였다. 질적 데이터를 양적 방식으로 간략화하면서 질적 데이터가 갖는 맥락적, 상황적 특성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형화된 결과를 통해 교사들의 실천 모습을 비교적 명료하게 제시함으로써 과정중심평가 정책이 교사들의 평가에 대한 인식과 실천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과정은 ‘평가된 교육과정’을 구분하고 이를 중시한다. 평가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습자의 성장에 기여하는 평가는 무엇인가 계속 고민하고 공유되어야 한다. 평가의 유일한 결과가 석차였던 기억은 이제 사라질 때가 되었다.